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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아리따운 주꾸미야
작가 : 정민
작품등록일 : 2019.9.5

천신에게 바칠 제물을 해신이 가로챘다. 두 신의 줄다리기 속에 새우등 터지는 '그 제물', 인간처녀 주욱금의 이야기.

 
수중궁궐 (1)
작성일 : 19-09-08 15:39     조회 : 187     추천 : 0     분량 : 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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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천신 유와를 마중하러 온 늙은 보좌 오낭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금방 알아챘다. 인세(人世)에서 돌아온 유와의 곁에 마땅히 있어야 할 제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에 그 어느 때보다도 냉기가 짙게 깔려있는 것도 이상신호였다.

 

  "어찌 빈손이십니까? 오다가 도적질이라도 당하신 겝니까?"

 

  평소처럼 가볍게 농 던졌던 그는 유와가 고개를 끄덕이자 저도 모르게 '예?' 하고 되묻고 말았다.

 

  "어, 어떤 간 큰 놈이…."

  "이각타."

 

  놈이 아니라 신이라 하니 오낭은 입을 합 다물었다. 유와는 오낭을 뒤로 하고 궐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오낭은 허겁지겁 그에게 따라붙으며 어찌 된 영문인지를 생각했다.

 

  인간과 얽히는 일엔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바다 밑에서 잠잠히 지내던 이각타였다. 그는 그의 품안에 있는 바다세계만을 사랑했으며, 그곳에 속한 생명들에만 관심을 쏟았다. 갑자기 변덕을 부려 천계에 맞서는 것과 다름없는 일을 저지르는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별안간 유와가 우뚝 멈춰 섰다.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오낭에게 툭 던지듯 선언했다.

 

  "신세(神世)의 질서를 해쳤으니 원칙대로 처리한다. 빠른 시일 내에 선인들을 전부 소환해라."

 

  선인을 소환하라는 것은 공개적인 형 집행을 의미했다. 오낭은 사나처럼 의뭉스러운 일에도 무조건 복종하는 부류는 아니었지만, 유와에게서 느껴지는 시퍼런 살기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었다.

 

  "…제물을 반드시 되돌려받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저 가만히 고개를 조아리는 오낭의 머리 위로 유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미 바다의 사람이 되었더라도."

 

 ***

 

  막자매가 만든 문 너머에는 별세계가 있었다. 신이하게 생긴 정원과 으리으리한 궁궐.

 

  이각타는 욱금이 지낼 방을 하나 내주겠다며 궁궐 안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분에 넘치게 호화로운 기세에 눌려 한사코 사양했던 욱금은 '허면 내 침실에서 같이 지낼 테냐?' 하는 이각타의 짓궂은 물음에 곧바로 입을 다물고 그를 얌전히 따랐다. 그녀의 뒤로는 막자매가 또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정신이 없어 미안하구나. 이 땅에 새로운 이를 들인 지 워낙 오래된지라."

 

  빈 것으로 추정되는 방문을 열어젖혔다가 먼지더미를 발견한 이각타가 머쓱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욱금은 그 사과에 기분이 아리송했다. 어차피 제멋대로 굴고 있으면서, 태도만은 어찌 이리도 정중하고 친절할까. 포로나 다름없는 제 처지를 깜빡 잊을 만큼.

 

  아무튼 이각타는 마침내 딱 알맞은 방을 찾아냈다. 넓고 깨끗하며 볕이 잘 들고 후원과 가까워, 욱금이 얼핏 보기에도 몹시 좋은 방이었다. 당연히 막자매의 반발이 거셌다.

 

  "마마말도 안 돼! 이 방은 비워두기로 약속했잖아!"

  "행랑채에 방 내주고 말아! 이 계집을 이렇게나 가까이 두겠다는 거야? 이 인간계집을?"

 

  뾰족하게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막자매는 입에 거품을 물 듯 으르렁거렸다. 이각타는 그녀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핏줄이 바짝 선 언니 가막의 모가지를 손에 쥐었다. 동생 담막이 비명을 질렀다.

 

  "캬악!"

  "어어언니!"

  "힘도 안 줬다, 이 엄살쟁이야."

 

  이각타는 손끝으로 가막의 뺨을 툭툭 건드리며 따분하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목을 휘감은 손은 느슨했지만, 이대로 비틀어버릴 수 있음을 암시하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이를 알기에 막자매는 더 이상 나대지 못했다. 이각타가 가막을 놓아주자 막자매는 반은 분한 듯, 반은 겁먹은 듯 몸서리를 치더니 물거품과 함께 자리를 떠버렸다.

 

  모든 광경을 꺼림칙하게 지켜보던 욱금은 이각타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각타는 씁쓰레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욱금을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한동안은 사나가 너를 보필할 게다."

 

  사나라고? 잠시 눈을 깜빡이던 욱금은 곧 아까 저를 죽이려 들었던 이각타의 심복을 떠올려냈다. 그 사람 무서운데…. 얼굴에 다 떠오른 욱금의 생각을 읽어냈는지, 이각타는 싱글싱글 웃으며 달래는 투로 덧붙였다.

 

  "겪어보면 알 테지만, 그리 차가운 아이는 아냐."

 

  이각타는 돌아갈 것처럼 휙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제 주위로 물거품을 일으켰다. 그 모양을 가만히 보던 욱금은 뒤늦게야 아차 싶었다. 아직 묻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잠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물거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가, 보기보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휘청거리는 몸을 잽싸게 받아낸 이각타가 순식간에 제 주위의 물거품을 거두어버렸다. 양팔이 단단히 붙잡힌 욱금은 머쓱해서 이각타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조금 놀란 듯이 보였다.

 

  "조심해야지, 주꾸미야."

  "저만 남겨두고 가시려는 것 같아서…."

 

  말하면서 제가 듣기에도 의도를 오해받을 것 같아 말꼬리를 흐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각타가 무슨 뜻이냐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스스로 머저리 같다고 생각하며, 욱금은 태연한 척, 그러나 빠르게 덧붙였다.

 

  "그 전에 여쭙고자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아, 그래. 물을 게 있다고?"

  "예. 아까 말씀하셨던."

 

  욱금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그, 혼례라는 건…."

 

  띄엄띄엄 말하던 그녀는 결국 다시금 말꼬리를 흐렸다. 이각타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녀를 빤히 보다가 이내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그런 것이 아니오라!"

 

  발끈하여 변명하려는데 이각타는 이미 안 들어도 안다는 듯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욱금은 차라리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 모습에 이각타의 즐거운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참으로 귀여운 주꾸미로고.

 

  "인간들에게 혼례가 큰 의미를 지닌다지. 들어 알고는 있다."

 

  인간들에게? 욱금은 잠시 의아했다. 마치 신들에게는 큰 의미 없다는 것으로 들리지 않는가.

 

  "허나 신세에서는 애당초 ‘부부’라는 관계가 존재하지를 않거든."

  "존재하지 않는다니, 그 무슨…."

  "한 사람이 한 사람만을 평생토록 사랑하기를 기약하는 관계, 그것이 없다는 말이다. 인간들이 서로를 종속시키는 제도가 여기서도 통할 줄 알았더냐?"

  "허면 아까 저를 신부로 들인다고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는지요?"

 

  욱금은 당연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어쩐지 제가 아쉬워서 따져 묻는 입장이 된 것 같아 억울했다. 이각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지만.

 

  "바다세계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그뿐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듯 이각타는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욱금은 안도감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살짝 김빠지는 제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각타는 그런 욱금을 보고 빙글 웃고는 상체를 살짝 굽히고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애당초 네가 내 옆자리를 꿰차는 거였다면, 아마 뱀 자매부터가 독니로 너를 물어 죽였을 테지. 그것들은 나와의 밤을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거든."

 

  뭐, 혼인하지 않아도 나와 밤을 보내는 건 네 자유지만 말이다. 따라붙는 이각타의 말에 욱금의 뺨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입이 거친 빨래터 아낙네들의 갖은 음담패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자라왔지만, 사내들과는 행동반경의 접점이 도통 없었던지라 그 입에서 나오는 '밤'이라는 은근한 단어조차 생소했다.

 

  차가운 손등으로 홧홧한 두 뺨을 누르며, 욱금은 눈에 힘주어 이각타를 째렸다.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이각타는 또 다시 킥킥 웃었다. 그러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그만 노닥거려야지. 가보마.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어."

 

  욱금에게는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았다. 허면 천신의 새신부가 된다는 것도 고작 그런 정도의 의미였는지, 어째서 당신은 나를 훔친 건지, 이 모든 것이 그저 신들의 장난질일 뿐인지…. 그런 의문들을 분명 눈치 챘을 터인데, 이각타는 모르는 척 바쁘다며 사라져버렸다.

 

 ***

 

  홀로 남은 욱금은 꼬리를 무는 잡생각을 애써 끊어냈다. 그 대신 제가 머무르게 될 거처를 둘러보는 데로 관심을 돌렸다. 이각타를 따라 얼핏 둘러보면서도 느꼈지만, 수중궁궐의 내부는 의외로 인간들의 그것과 똑같았다. 침상이 있고 탁자와 걸상이 있어 입식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은 낯설었지만, 욱금은 그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이들은 본래 이렇게 사는가보다 했다.

 

  방을 꼼꼼히 구경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사나가 나타났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해신의 제1보좌 사나입니다."

 

  욱금은 그제야 사나를 바로 보았다. 사나는 막자매보다 훨씬 인간을 닮아있었다. 단정히 땋아 한쪽으로 늘어뜨린 머리카락이나 죽 뻗은 두 다리가 젊은 여인네의 것이었다. 단단해 보이는 살결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욱금은 멍하니 그녀를 보다가 정적이 흐른 후에야 제 소개를 잊었음을 알았다.

 

  "주욱금입니다. 마, 말씀 낮추시지요."

  "이각타님께 직접 보필의 명을 전달받은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욱금은 사나의 칼 같은 대답에 금세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러나 제가 먼저 말 꺼내지 않으면 어색한 침묵에 잠겨 죽을 것 같았기 때문에 아무 질문이나 던졌다.

 

  "흠흠. 이곳에서 제가 할 일이 있나요?"

  "무엇을 하려고 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편안히 지내면 되십니다."

  "허나 저를 이리로 데려온 이유가 있을 텐데요."

  "아니오. 이각타님은 본래 이유 없이 행동하는 분이십니다."

 

  사나는 즉각 대답했다. 욱금은 조금 황당했다. 어찌 편안히 지내라고요. 세상이 뒤바뀌어 물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데요. 말대꾸를 하고 싶은데 무서워서 참았다.

 

  더군다나 신세에는 도통 '질서'라는 게 없는 듯 보였다. 인세에서 욱금은 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에 따라 제 분수를 지켜야 했고, 때 되면 시집을 가 지아비를 섬겨야 했다. 그러나 신세는, 이각타의 입을 빌리자면 혼례도 없다 하고, 막자매의 태도를 보아하니 위아래도 없는 듯하고, 심지어는 큰일을 저지르는 데에 마땅한 이유조차 없단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논리에 따라 살아야 하는가.

 

  한창 혼란에 빠져있는 욱금에게 이번에는 사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다만."

  "예?"

  "이각타님은 호와 불호를 극명히 하는 분이시지요. 당신을 이리로 데려왔다는 것은 그분께서 당신을 호의 범주에 넣었다는 뜻입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사나의 목소리가 욱금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호의 범주, 그 말이 어쩐지 천근의 무게를 짊어지고 다가오는 듯했다.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그저 시선을 받아내는 욱금에게, 사나는 마지막으로 한 자 한 자 주지시키듯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니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곳에서 지내며 유의할 점은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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