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
 1  2  3  4  5  6  7  8  9  >>
 
자유연재 > 현대물
남과북
작가 : 플라다
작품등록일 : 2019.9.8

북한 최고위원이 된 석모.
남한 국정원 블랙요원이 된 미란.
남매의 운명처럼 남북의 운명이...

 
망명자의 죽음
작성일 : 19-09-08 15:21     조회 : 198     추천 : 0     분량 : 793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죽음

 

 강철민가족의 망명에 대해 대통령의 뜻이었는지 야당의원의 뜻이었는지 국정원내에서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 상태로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남한은 건국이래 첫 야당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그 여파로 국정원 안은 전 정권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들이 중단됐고, 심한 인사이동을 강행했다.

 정보과 호석과 가까워진 영진이 호석을 찾았다.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넘어올 때도 이렇진 않았는데 이 정부는 왜 사사건건 야단법석 복잡해?”

 영진이 먼저 입을 떼었다.

 “과장님 말씀 조심하셔야 해요.”

 “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아휴, 과장님 뭘 모르시네.”

 호석이 영진을 끌고 옥상으로 올랐다.

 “과장님, 지금 분위기 모르시겠어요?”

 “모르긴 뭘 몰라? 야당에서 당선되니까 물갈이 하는 거잖아.”

 “이거 지금 보통 물갈이 아니에요.”

 “뭐가 또 있어?”

 “목소리 좀 낮추세요.”

 호석이 바짝 긴장해서 말을 이었다.

 “이번 정권은 그냥 정권이 아니에요. 지금 국정원 내에 대공 관련부서들이 대부분 공중분해 됐어요.”

 “왜? 나도 모르게 우리나라가 통일이라도 됐대?”

 “자세한 건 알아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선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녜요.”

 “뭐 좀 나온 거 있어?”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어쨌든 당분간 조심하셔야 할 거 같아요.”

 “알았어. 뭐 나오면 바로 알려줘. 이거 원 국정원 안이 뒤숭숭해서.”

 

 

 강철민 가족에게는 우려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한 달이 지나 과천의 한 고급빌라에 새 보금자리를 꾸렸다.

 북한에서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기 때문에 강철민은 그렇게 북한에서도 조용히 잊혀졌다고 믿고 싶었다.

 오늘은 석하와 미란이 만나보고 싶어 했던 겨레와 늘이를 함께 인사시키기로 한 날이었다.

 “아니, 우리가 저녁 초대 받아 가는데 왜 우리 집 부엌에서 음식냄새가 진동해?”

 부엌에서 고소한 음식 냄새가 가득하니 영진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아내 정미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제 한국에 와서 한 달인데 그 집에 가서 얻어먹겠다는 발상이 나쁜 거 아니냐구?”

 “맞는 말이네. 그래서 이렇게 잔치집 음식마냥 준비 한 거야?”

 부엌에 들어 영진이 꼬치전 하나를 입에 물었다.

 “잔치집은 무슨. 그냥 이것저것 조금씩 해봤지. 입에 맞으려나 몰라.”

 “맛있어. 무조건 맛있어. 당신 음식 솜씨는 최고잖아.”

 정미가 음식을 준비한 것처럼 겨레와 늘이도 새로 만나게 될 친구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한 듯 했다.

 이렇듯 철민이 영진의 가족을 초대할 만큼 철민은 영진에 대한 경계를 풀고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끼리 아이들끼리도 함께 친하게 지내는 것이 여러 가지로 좋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봉천동에서 과천까지 가는 동안 영진의 두 아이들은 쉬지 않고 재재거렸지만 영진은 어제 철민이 자신에게 털어 놓은 놀라운 이야기들을 곱씹어보고 있었다.

 

 “내가 북을 떠나 남한으로 망명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영진은 철민이 자신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상부에 보고해야만 했지만, 어쩐지 영진은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영진의 자동차가 과천 고급빌라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영진은 철민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곳곳에서 일반인을 가장해 지키고 선 국정원 요원들을 확인했다.

 영진이 철민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경호하고 있는 이정길 팀장 곁에 차를 세우며 물었다.

 “경호팀 인원 교체가 있었습니까?”

 “네. 오늘 오후에 국정원소속에서 일부 경찰청소속 경호팀으로 인원이 바뀌었습니다.”

 철민의 가족을 경호하는 경호원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던 영진의 눈에 낯선 경호원들이 보이기에 묻는 질문이었다.

 “수고하십시오.”

 인사를 챙긴 영진은 철민이 살고 있는 빌라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옥상을 한번 둘러보았다.

 각 건물 옥상마다 배치된 경호원들은 강철민의 2층 빌라를 둘러싸고 있었고,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5분 내에 달려올 병력도 대기하고 있었다.

 영진은 오늘 이 찜찜한 기분은 어제 철민으로부터 비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서오세요.”

 철민의 아내 김영희는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듯 불안해하던 모습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미인형의 얼굴이 이제야 빛이 나기 시작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진이 철민의 가족이 이사한 집과 세간을 준비했으니 영진은 자신의 집에 있는 세간보다 철민의 집에 있는 세간살이들을 더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자자 들어오세요.”

 철민의 빌라는 단독 2층으로 새 가구와 최신 가전제품들로 가득했으니 영진의 작은 18평 아파트에 비하면 호화스러웠다.

 두 아내의 솜씨 낸 음식들이 푸짐하고 정갈하게 차려졌고, 저녁식사 내내 두 가족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즐겼다.

 

 “이번엔 우리 미란이가 노래 한 곡 부를까?”

 늘이에게 선물 받은 인형을 안고 미란이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글동글 왕 감자 대홍단감자 너무 커서 하나를 못다 먹겠죠. 아하 감자감자 왕감자 정말정말 좋아요. 못다 먹겠죠.’

 미란의 노래에 다 같이 빵 터져서 한참을 웃던 영진의 말이었다.

 “강형, 웃는 거 처음 봅니다.”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동갑내기 미란과 늘이가 친해진 것과 같이 형이 없던 겨레도 석하를 형으로 잘 따랐다.

 “형, 남한에 와보니까 어때요?”

 “좋구나! 북한으로 들어가기 전 아버지 따라 외국에 많이 다녀봤는데 다른 외국에 뒤지지 않아.”

 “좋겠다. 나도 형처럼 외국도 많이 다녀보고 싶다.”

 “외국은 아무리 좋아도 외국인거야. 내 조국이 최고인거지.”

 “형 멋있다. 형은 뭐가 되고 싶어요?”

 “나는 뭐가 되고 싶다기 보다. 내 조국을 통일조국으로 만들고 싶다.”

 “통일조국이요?”

 “그래. 남북이 갈라져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겠어.”

 겨레는 한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석하가 어른스럽게 어려운 말을 하는 것이 멋져보였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방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철민과 영진이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간 사이 정미와 영희도 서로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잡채가 입에 안 맞으시나 봐요. 잡채를 통 드시지를 않네요.”

 “그게 아니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심한 버섯 알러지가 있어요. 그래서 버섯이 들어간 음식을 못 먹어요.”

 “어머, 그런 걸 모르고.”

 “아녜요. 우리 식구가 별나서 그렇죠. 어떻게 이렇게 음식을 다 해오시고, 전 남편이 남쪽으로 망명하자고 했을 때 정말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와서 이런 좋은 분들을 뵈니까 북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안타깝네요.”

 “정말 잘 오셨어요.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울게요.”

 “감사해요. 저희가족이 남편 분 도움을 정말 많이 받고 있어요.”

 “다행이에요.”

 

 철민의 가족들이 남한에 와서 제일 기분 좋은 날이었다고 할 만큼 좋은 시간을 보낸 후 썰물 빠져나가 듯 영진의 가족들이 막 돌아갔을 때였다.

 

 - 띵동.

 

 “하하하, 한형이 뭘 두고 간 모양이야.”

 영희와 함께 뒷정리를 하던 철민이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한형이오?”

 철민이 잠긴 문을 열려는 데 복면을 한 사내들이 문을 확 잡아당기며 들어서자 철민이 뒷걸음을 걸으며 안으로 밀려 들어섰다.

 “여보, 왜 그래요? 꺄아악.”

 복면을 한 사내 중 맨 앞에 있던 사내가 순식간에 철민을 걷어차며 거꾸러뜨렸고, 다른 사내는 주방에서 나오는 영희의 입을 틀어막으려 들었다.

 그때, 영희의 비명소리를 들은 석하가 계단을 내려서다가 영희와 눈이 마주치며, 재빨리 미란의 방으로 가 방문을 잠그고 미란을 안아 입을 막고 책상 밑에 몸을 숨겼다.

 “미란아. 쉿!”

 “오빠, 무서워.”

 “괜찮아. 오빠가 있잖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미란을 석하가 안심시켰지만 석하는 이 상황에 자신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종간나새끼. 어드렇게 조국을 배신해. 배신자에게는 죽음밖에 없는 걸 모르는 기야?”

 퍽퍽 발길질에 철민의 이가 부러졌고, 옷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결박당하고 입에 테이프가 붙여진 영희가 몸부림 쳤지만 막을 수 없었다.

 “간나새끼. 500억 달러래 어드렇게 했어?”

 “모른다.”

 “이 간나새끼래 뱃대지래 부르구만. 우리 수령동지래 너래 목숨은 붙여오라하셨지만 내래 배알이 꼴려서 말이야!”

 사내의 거센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고, 한 번 걷어찰 때마다 철민의 몸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확확 꺾이는 것이 고통이 심한 듯 했다.

 “말을 하란 말야! 500억 달러 어딨어? 그 돈은 신형 원자로 개발을 위해 쓸 돈이란 말이야!”

 “핵 개발은 안 된다고.”

 철민이 고통을 참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너와 네 가족을 죽이는 것 쯤 내게 일도 아니야! 임자래 믿고 있는 임홍식이도 죽었어.”

 “뭐라고? 임홍식이 죽었다고?”

 “기래. 스위스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지비. 그러니 이제 불으라!”

 사내가 철민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갖다 댔다.

 영희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방울방울 눈물을 떨궜지만 사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총을 발사하려 했다.

 

 - 쩔걱.

 

 그 순간, 사내가 갑자기 몸을 돌려 철민에게 겨눴던 총의 방향을 바꿔 영희의 심장에 총구를 겨눴다.

 “안돼!”

 철민이 놀라 소리쳤다.

 “강철민이래 자기 죽는다고 안 불줄 내 모르갔나? 아새끼들 데리고 오라!”

 사내의 고함에 다른 사내들이 흩어져 문이란 문을 죄 열어 석하와 미란을 찾았다.

 사내들이 이제 계단을 올라 2층 석하와 미란이 있는 방문을 발로 걷어차며 열었을 때 활짝 열린 창으로 바람을 안은 커텐이 세차게 날리고 있었다.

 “여기, 여기. 아새끼들 밖으로 튀었어!”

 “뭐야? 잡아! 잡으라고!”

 2층에서 창을 통해 석하가 미란을 업고 거의 내려간 참이었는데 사내들이 석하를 향해 고함을 치자 석하가 마지막 힘을 짜냈다.

 

 한편, 영진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아까부터 뒷덜미를 잡는 뭔가가 있었다.

 영진 자신도 모르게 휴일인 오늘 경호요원들이 바뀐 것도 이상했고, 간간이 비릿한 기름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여보, 아이들 데리고 먼저 들어가. 나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

 영진은 차를 주차시키지 않고 그대로 다시 오던 길을 되돌려 철민의 집으로 향하며 액셀을 깊이 밟았다.

 “아무래도 이상해!”

 영진이 부국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부국장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 불길한 생각을 더욱 불길하게 만들었다.

 어째 신호마다 걸리는 느낌처럼 빨리 달려지지 않는 서울의 도로상황이 오늘처럼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겨우 빌라 머리가 보이려 할 때였다.

 

 - 타앙.

 

 이건 분명 철민의 집 쪽에서 들리는 총성이었다.

 영진이 정신없이 차를 아무렇게나 버려두듯 주차하고, 차안에 깊이 둔 총을 꺼내 들고 뛰려는 데 다시 총성이 울렸다.

 

 - 탕탕탕 탕탕탕 탕탕.

 

 영진이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철민의 아내와 철민이 거친 숨을 겨우 내쉬고 있었다.

 “강형, 강형, 강형, 정신 차려! 강형!”

 “한형, 우리 아이들을 우리 아이들을 부탁해. 그리고······.”

 강철민은 영진에게 몇 마디를 더 하고는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아, 안돼! 안돼!”

 그때서야 뒤 늦게 경호팀이 들이닥쳐 철민과 그 아내를 병원으로 호송했지만 그 아내조차 가망은 없어보였다.

 그보다 영진은 아이들을 찾으러 밖으로 나서 아이들 이름을 불렀다.

 “석하야! 미란아! 석하야! 미란아! 석하야! 미란아!”

 빌라 밑에서 보니 열려져 있는 2층 창에 옷가지들이 엮어져 늘어진 걸로 봐서 석하가 어쩌면 미란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온 듯 보였다.

 “아이들이 무사해야 할텐데.”

 영진의 마음은 타들어가는 듯 했다. 영진이 얼마쯤 주변을 살피다 보니 바닥에 핏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어 그 핏자국을 따라갔다. 갑자기 두런두런 들리는 소리가 있어 영진이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숨겼다.

 

 “석하야, 이 아저씨랑 같이 가자!”

 “싫어요!”

 “니 어마이 아바이는 조국을 배신했어! 너는 그 배신자들과 달라! 너는 우리 북조선의 아들이야! 그리고 니 동생도 이래 내라. 많이 다쳤지 않니?”

 석하는 자신의 왼쪽 옆구리가 타들어가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피를 흘리는 줄로 생각했는데 등에 업힌 미란이 총을 맞아 흘린 피가 상당했다.

 “아저씨, 우리 미란이. 우리 미란이를 살려주세요. 그럼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석하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알갔어. 우리랑 같이 가믄 니 동생도 살려주갔어.”

 석하가 친친 동여맨 끈을 풀어 등에서 미란을 내렸다.

 미란이 새까만 입술을 움직여 말했다.

 “오빠, 추워. 너무 추워.”

 “미란아, 조금만 참아.”

 석하가 미란을 안았다.

 “아저씨, 우리 미란이 꼭 살려주세요.”

 석하가 순순히 사내에게 미란을 내 주었다. 그런데 그때 사내들이 석하의 양팔을 잡아끌어 데려가려해 석하가 소리쳤다.

 “아저씨! 안돼요. 아저씨!”

 “석하야, 니 동생은 가망이 없어.”

 미란이 희미한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사내의 총구가 미란을 향했다.

 “미란아아아아아!”

 

 - 타앙.

 

 총성이 울리고보니 불을 뿜었던 총은 영진의 총이었고, 그 총알은 사내의 이마에 정통으로 박혀 사내가 쓰러졌다.

 

 - 탕탕탕 탕탕 탕탕탕.

 

 사내들이 영진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자, 영진의 뒤로 보이는 경호원들이 영진을 보호하며 사내들에게 사납게 총을 쏘았다.

 

 - 탕탕탕탕 탕 탕탕탕 타탕.

 

 “미란아! 미란아! 미란아!”

 

 석하가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도 동생에게 가려 했지만 사내들이 석하를 놓아주지 않았다.

 영진이 가까스로 총알을 피하며 미란을 끌어안았을 때, 영진은 어깨의 타는 통증을 느꼈다. 아마도 총알이 어깨를 스친 모양이었다.

 

 - 콰콰콰쾅!

 

 순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튀는 파편에 영진이 미란을 꼬옥 감싸 안았고 폭발불길로 인해 후끈한 열기가 영진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불길에 몸을 낮췄던 사내들은 석하의 입을 틀어막고 석하를 억지로 차량에 태워 달아났다.

 주변의 열기가 가라앉고 났을 때 천천히 영진은 자신이 안고 있는 미란을 보니 총을 맞아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듯 싶었다. 영진은 희미하게 정신을 잃어가는 미란을 안고 경호팀에서 준비한 구급차 쪽으로 내달렸다.

 “제발, 제발 죽지 말아라. 제발 미란아!”

 

 철민은 결국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고, 철민의 아내 영희는 수술에 들어간 상태였는데 이제 다시 미란이 관통상으로 수술대에 누웠다.

 영진은 피 범벅에 축 늘어진 미란을 안고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에게 어떻게든 살려내라 우격다짐까지 하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미란의 수술은 몸 안에 박힌 총알을 빼내는 것이 아니라 연한 어린 아이의 속살인 장기들을 총알이 심하게 상처를 내고 뚫고 나간 자리를 봉합하는 수술이라 수술이 쉽지 않았다.

 

 - 삐익 삐익 삐익 삐익.

 

 미란이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맥박과 혈압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5살 아이인 미란의 장기는 속살 자체가 너무 연해서 수술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찢어져 수술은 몇 시간이 지나도 재 자리였다.

 수술실 밖에서 수술실 앞을 떠나지도 못하고 서성이는 영진은 피가 마르는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과장님, 과장님도 다치신 것 같은데 치료를 좀 하시죠.”

 “아냐. 괜찮아. 그보다 아들 석하를 태우고 간 차량은 수배했어?”

 “네 차량을 찾았는데 도중에 차량을 바꿔 타고 달아났습니다. 지금 수사 중에 있습니다.”

 “꼭 찾아야해.”

 “알겠습니다.”

 “김영희 씨 수술은?”

 “거기도 아직 수술중입니다.”

 “으음.”

 영진은 이 모든 것들이 꼭 자신이 제대로 못 살핀 결과인 것만 같아 통증과 같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침까지 몇 번의 고비를 넘긴 후에야 엄마 영희와 딸 미란의 수술이 끝이 났다.

 “어떻게 됐습니까?”

 수술실 문이 열리며 나서는 의사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그렇지만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아이가 워낙 어린데다 상처가 깊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진은 그 어리고 연약한 미란이 죽지나 않을까 밤새 애간장이 녹아내리듯 피가 말랐었는데 수술이 잘 끝났다니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모든 신께 감사했다.

 “당분간은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해야 합니다.”

 “예,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영진이 이제 미란이 살았다는 기쁨에 넙죽넙죽 인사를 하니 그제서야 어깨에서 욱씬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미란이 살았다는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저··· 과장님.”

 “왜?”

 “김영희가 수술도중 조금 전에 사망했습니다.”

 “이··· 이런.”

 

 북한의 로열패밀리이면서 로동당 39호 간부였던 강철민의 망명은 부부의 처참한 죽음과 남매의 생이별이라는 비극적이고 참혹한 결말로 끝이 났다.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의 결말을 너무 쉽게 덮어버리려는 상부의 지시가 영진에게는 더 혼란스러웠다.

 단독빌라 한 채가 폭발로 사라진 사건조차 단순화재로 처리가 되고 모든 것은 없었던 일처럼 덮여갔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4 새로운 이름 2019 / 9 / 8 220 0 7363   
3 버려진 아이 2019 / 9 / 8 207 0 6099   
2 망명자의 죽음 2019 / 9 / 8 199 0 7930   
1 망명 2019 / 9 / 8 340 0 6616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고딩부부
플라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