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의 이야기>
죽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살고 싶지 않다.
죽고 싶은 건지.
이렇게 살기 싫은 건지.
진짜 싫다.
너무 나도 너무 나도 싫다.
내 앞에 놓여진 모든 숫자들과 모든 문제들을 다 그냥 찢어 버리고만 싶다.
내 눈앞에 있는 문제집의 모든 숫자들이 나를 옭아맨다.
내 인생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수 많은 문제들이 책을 벗어나
둥
둥
떠버린다.
그렇게 나는 그 모든 숫자들과 문제들 사이에 갇혀버렸다.
그렇게 모든 숫자들이 한꺼번에 내 목을 졸라버린다.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만 같다.
숫자들은 서로 그 끝과 끝이 만나서는 기다란 고리를 형성한다.
그리고는 그 엮인 숫자들이 내 목을 향해 스르르거리며 다가온다.
그리고는 내 목을 휘감는 그 기나긴 숫자들의 고리.
고리는 내 목을 여러 번 감싸고 돈다.
그리고는 양 옆으로 강하게도 쭈욱 하고 당겨진다.
그렇게 내 목이 졸려간다.
수 많은 숫자들과
수 많은 문제들과
수 많은 괴로움 속에서
나는 그렇게 점차 숨을 잃어간다.
손을 들어 내 목을 조르는 숫자들의 띠를 끊어내려 하지만
내 손이 닿자 그 모든 숫자들은 더욱 쎄게 나를 목조른다.
꺽..
꺽..
그러나 그 모든 문제들은 단 한 순간도 나를 배려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내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들이 희박해질수록 나의 시선 또한 흐릿해진다.
그렇게 나는 희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지 못하고 문제들 위로 고꾸라진다.
쿵.
.
하고는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아무리 죽고 싶다고 말해도 어른들은 그저 어린아이의 투정같이 느껴지나 보다.
학생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는 듯 한
어른들의 대수롭지 않은 대처에
나는 더욱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말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점차 나를 점령해간다.
말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처음부터 죽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입 밖으로 내뱉기엔 너무나도 금지된 것처럼 느껴졌기에.
진심은 내 안에 담겨서 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미 내 속은 썩어 문드러졌으나
나는 내 속은 썩지 않았다고 그저 내 안에 나를 가둬갔다.
내 안의 어두움을 숨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은 채로
슬픔도
우울도
나쁜 생각들도
그냥 덤덤하게 그렇게 무표정한 표정 속에 묻어버렸다.
그렇게 내 모든 감정들은 그렇게 갇혔다.
내 안에
내 속에
그 모든 우울감을 내 안에 잘 숨기고 살았으나,
그 모든 우울감을 내 안에서 내보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칼을 찾았다.
내 안에 가득 들어찬 끔찍함을 밖으로 내보내고 싶어서.
나는 그렇게 칼을 쥐었다.
우울감과 괴로움이 내 안에 차고 넘치면 내 온 몸이 덜덜거리며 떨려 온다.
그 어두움은 내 어두운 속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그렇게 나는 완전한 어두움 속으로 빠져든다.
그럴 때면 나는 칼을 들어 내 속을 긋는다.
. 그렇게 내 속에 들어찬 어두움을 쓱_ 하고 베어버리면
고인물이 빠져나가듯 내 몸에서 우울감이 빠져나간다.
내 몸 속에 있을 때는
축축한 음지에서 끔찍하게 번식해 나간 이끼 낀 초록의 물과도 같은 핏줄이
나로 인해 그어져서
내 몸 밖으로 흘러 나가면
너무나도 빨갛게 살아있는 것만 같다.
그것을 바라볼 때면
나는 이 미칠 듯 한 감정을
조금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알 수 없는 해소감이 흘러내리는 피에서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나를 공격했다.
공격이라고 해야 하나
해방감을 준 구원자라고 해야 하나.
한결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은 틀림이 없으니
안정감을 주는 구원자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해를 가했다.
오늘도 목적 없이 학교로 향한다.
학교 학원 집.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너무 힘들어서 다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지금이 좋을 때라고 한다.
어른이 되면 더 힘들다고.
지금도 버티기 힘든데.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그냥 여기서 다 멈췄으면 좋겠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피터팬과 같이.
어른이 되면 더 힘들다면
청소년으로 생을 끝내고만 싶다.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저 넘겨버리는 부모님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
나중 되면 공부도 하고 싶어도 못한다.
할 수 있을 때 공부해.
그만두고 싶다고만 하지 말고.
그만두고 싶다는 것은 학업이 아닌데,
내 인생을 두고 말하는 거였는데.
엄마한테 좀 더 명확하게 말했어야 하나.
말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
그렇게 나는 오늘도 죽어서 학교에 도착한다.
그렇게 목적 없는 목 졸림이 계속되었다.
경쟁과 시험들과 비교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남을 짓밟아야 네가 산다.
그러나 그러한 경쟁 속에서 정작 짓밟혀지는 것은
나였다.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짓밟았다.
그렇게 무엇을 위한 건지도 알 수 없는 경쟁이라는 것이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선생들은 계속해서 우리들 간의 싸움을 부추긴다.
그렇게 살기 싫은데, 왜.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마음 편한 삶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