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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여행의 목적
작가 : 랑글렛
작품등록일 : 2019.9.2

임도훈. 33세. 직장을 잃고 소일거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 어느날 명품 브랜드 지사장의 불륜여행을 대신해 3박 4일 하와이 위장여행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여자, 지성을 보고 반하게 된다.

유지성. 31세. G랜드 그룹의 임원이자 백화점 사장. 세한그룹의 임원과 약혼 뒤 쇼윈도 부부로 지내던 중, 원치 않는 결혼을 하면서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한 남자. 도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3박 4일 하와이 여행에서 펼쳐지는 로맨스의 시작. 그 이후의 이야기.

 
7화. 사랑한다면 해야 할 최선의 행동
작성일 : 19-09-07 00:56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8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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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훈이 차를 세웠다. 조수석에서 졸고 있던 지성이 눈을 떴다. 그들은 어느 선착장에 와있었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수많은 요트들이 줄을 지어 정박되어 있었다.

 

 “여기서 뭐할 건데요?”

 

 “오늘의 하이라이트에요. 요트 투어.”

 

 차에서 내린 도훈이 누군가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얼마 후에 깔끔한 차림의 백인 남성이 나타나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멀찌감치 서있던 지성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그들을 쫓았다.

 

 “이거 엄청 어렵게 예약한거에요.”

 

 도훈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그녀를 데려간 곳에는 호화스럽게 생긴 요트가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말고도 서양인 세 커플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둘은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40대 초반의 미국인 조지와 프랑스인 세리나 부부, 30대 중반의 영국인 부부 존과 제인, 풋풋함이 느껴지는 외모의 20대 아일랜드인 헨리와 스페인인 루시 커플이었다. 도훈은 자신을 제임스라고 소개하며 한국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걸 지켜본 지성은 자신을 소피라고 소개하며 도훈을 장난스럽게 째려봤다. 소개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선장이 탑승할 것을 요청했다. 요트가 부드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바다로 나아갔다.

 

 “왜 제임스라고 했어요?”

 

 요트의 실내로 들어가며 그녀가 물었다.

 

 “그냥…… 내 이름이 싫어서요. 제임스가 더 듣기 좋잖아요?”

 

 그들은 자연스럽게 손을 마주잡고 실내로 진입했다. 요트는 승객 8명과 선장, 요리사와 스태프 등 12명의 인원이 타고 있었다. 사실 8명만 타기엔 꽤 큰 배였다. 실내는 현대적인 느낌의 세련된 공간이었다. 나무 바닥엔 카펫이 깔려있었고 수작업으로 만든 것 같은 고급 소파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바깥쪽엔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만든 널따란 공간이 나타났다. 계단을 타고 올라간 2층엔 아늑한 공간에 짙은 갈색의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위에 식사도구들이 가지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도훈은 자신이 위대한 개츠비라도 된 것만 같은 환상에 빠져들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최태호의 블랙카드 덕분이지만…….

 

 *

 

 요트는 멀리 오아후 섬이 내다보이는 바다의 한 가운데 정착했다. 먹구름이 끼었던 날씨는 거짓말처럼 맑아졌고 부분부분 떠있는 구름과 함께 강렬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도훈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노클링 장비를 쓰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젊은 헨리와 루시가 그를 따라 바다로 들어갔다. 지성은 소파에 앉아 신나게 놀고 있는 그들을 바라봤다. 제인이 그녀의 옆으로 와 앉았다. 제인의 남편인 존은 조지와 함께 낚시를 하는 중이었다.

 

 “귀엽네요. 어린아이처럼요.” “He’s cute. Like a child.”

 

 제인은 방금 막 지성이 떠올렸던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그녀는 어쩐지 자신이 갖고 있던 문장을 뺏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요.” “I know.”

 

 “결혼할 사이인가요?” “getting married?”

 

 제인의 물음에 그녀는 일순간 마음이 혼돈됐다. 결혼은 이미 다른 사람과 했는데……. 적당히 둘러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모르겠어요.” “I'm not sure yet.”

 

 제인이 그 마음을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성은 갑자기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를 사랑하나요? 당신의 남편, 존이요.” “Do you love him? Your husband, John”

 

 제인이 갑자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Do you wanna hear our story?”

 

 지성은 제인의 표정에서 인자한 분위기를 느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닌데 훨씬 더 깊이 있는 감정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녀는 제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대학 입학을 앞두고 만났어요. 3주 뒤에 각자의 대학으로 떠나야 했었죠. 나는 미국의 콜롬비아로 가야했고, 존은 런던에 가기로 되어 있었죠. 우린 매일 통화를 했어요. 어떻게든 인연을 이어가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잘 안될 때가 더 많았죠. 그가 축구 경기를 보러가거나 내가 대학교 파티에 참석하는 날이면 연락이 두절됐어요. 만날 수 있는 날은 짧았고 헤어져있는 날은 길었죠. 반복의 연속이었어요. 당연하게도, 서로 다른 대상을 만나기도 했죠. 그러다 서른 살이 됐는데, 문득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거에요. 오랜 기간 동안 우린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했는데, 어차피 시간이 지나도 똑같을 거라고 여겨졌어요. 그와 내가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우린 꽤 오래 만났고 서로 연결된 무언가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에게 말했죠. “까짓것, 차라리 결혼하자!” 그 이후엔 간단했어요. 그동안에 고민돼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나는 그가 있는 런던으로 갔고, 결혼을 하고, 새 일자리를 구했어요. 생각해보면 이미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죠. 첫 만남에서 나는 그가 브래드 피트처럼 보였거든요. 알 수 없는 떨림이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선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었어요.”

 

 지성은 한 편의 이야기를 감상하듯 제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들었다. 특히 마지막 대목의 알 수 없는 떨림과 감정이라는 부분을 들으면서 그녀의 눈이 자연스레 도훈에게로 향했다.

 

 “그를 사랑해요? 진심으로?” “Do you love him? Seriously?”

 

 “난…… 잘 모르겠어요. 이게 어떤 감정인지.” “I…… don't know. what this feels like.”

 

 “어떤 데요?” “How do you feel?”

 

 “난 잘 웃지 않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그런데 그 앞에선 자꾸만 하고 싶어져요.”

 “I rarely smile, and I hardly show my feelings. but, I want to do it in front of him.”

 

 “이봐요, 아가씨. 그게 바로 사랑이에요.” “Hey, lady. That is love.”

 

 

 어젯밤, 그리고 그와 손을 잡을 때 느꼈던 떨림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바다에 떠있던 지성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턱을 괸 채 그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제인의 말처럼 정말 그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혹은 잠시 스쳐지나가는 감정에 불과한 걸까.

 

 *

 

 스노클링을 마치고 올라온 도훈은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헨리와 루시 커플은 실내의 카페테리아로 가서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고, 제인과 한참을 떠들던 지성의 자리엔 어느새 존 까지 합석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밝은 표정으로 흥미롭게 대화를 하고 있는 지성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선상 앞쪽에서 홀로 낚시를 하고 있는 조지가 보였다. 그는 낚싯대 하나를 들고서 조지의 옆으로 갔다.

 

 조지는 낚싯대와 바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을 하고 있었다. 낚시를 처음 해보는 도훈이 옆에서 낑낑대고 있자 조지가 사려 깊게 릴링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조용히 낚시가 시작됐다. 그러나 고기는 잡힐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부인? 아니면 애인?” “Wife? or Girlfriend?‘

 

 과묵하던 조지가 도훈에게 먼저 질문을 걸어왔다.

 

 “음…… 애인이요.” “Um…… Girlfriend.”

 

 “한창 뜨거울 때겠네.” “It must be hot.”

 

 “그렇죠. 데인 적인 한두 번도 아니에요.” “That's right. I've been burned several times.”

 

 그는 아마도 조지가 생각하는 것(뜨거운 것의 정체)은 이때껏 없었지만, 지성의 손을 붙잡았을 때의 온기를 떠올리며 농담조로 대답했다.

 

 “뜨거운 것 좋지. 그러나 중요한 건, 뜨거움이 식고 난 이후야. 그땐 폭풍이 몰려오거든.”

 “That’s good. But the important thing is right after the heat has cooled down. Then there's a storm.”

 

 그는 시를 읊는 것처럼 알쏭하게 말하는 조지의 어감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What should I do when I do that?”

 

 “우린 대화를 했지. 수많은, 반복적인.” “We talked. A lot. Repeatedly.”

 

 도훈은 2층의 테라스에서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고 있는 세리나를 흘끔 쳐다봤다.

 

 “지금은 싸운 건가요?” “Did you fight her now?”

 

 도훈의 농담에 조지가 피식 웃었다.

 

 “아니. 지금은…… 각자 쉬는 거지. 우린 너무 많은 대화를 했거든. 이젠 그녀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어.” “No. Now just……We're taking a break. We’ve been talked too much. Now I can see what she's thinking just by looking at her face.”

 

 “오래 만났군요.” “You've been seeing her for a long time.”

 

 “오래 만났지만, 여전해. 여전히 놀러가길 좋아하고, 여전히 전쟁 날 듯 싸우고. 여전히 뜨겁게 불타올라.” “for a long time, but we still. Still like to go where. Still fight like a war. Still burning hot.”

 

 “부럽네요.” “I envy yours”

 

 도훈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조지자 선글라스 위로 그를 응시했다.

 

 “너 저 여자 엄청 좋아하지?” “You really like her”

 

 “내 나라보다 더요.” “More than my country.”

 

 도훈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최선을 다해.” “Then do your best.”

 

 조지의 대답에 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사실 그녀와의 만남이 과연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와이에서의 우연한 만남. 그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내일이 지나고 그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과연 그녀를 계속 만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최태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언제 어떻게 밝혀야 할지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큰 거짓말을 한 게 있어요.” “But I lied to her.”

 

 “이런. 다른 여자가 있나?” “Oh, Do you have another woman?”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Absolutely not.”

 

 “이봐, 나와 세리나. 우리는 지금껏 정말 많이 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별 것 아니었어. 네가 누굴 죽였거나,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털어놓고 용서를 구해. 그게 최선의 행동이야.”

 

 그는 조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진실이 밝혀진 뒤에 발생한 결과를 감당할 수 없다면? 차라리 추억으로 남기는 편이 최선이라면? 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저울질을 감당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 갔다. 당장이라도 가서 고백하고 싶었다. 그러나 발이 바닥에 딱 붙은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그녀는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비가 다시 내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해가 진 후에 있을 식사 시간이 앞당겨졌다. 요리사들이 준비한 음식들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전부 2층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랍스타, 해산물, 코코넛 요리를 비롯해 그릴에서 방금 구운 바비큐들이 올라왔다. 헨리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양을 떨며 와인을 땄다. 여덟 명의 잔이 채워지고 다 같이 건배를 했다. 어느새 익숙해진 수다를 떨며 식사를 시작했다.

 

 “당신들은 어떻게 만났어요?” “How did you meet? guys.”

 

 제인이 헨리와 루시에게 물었다.

 

 “어, 우린 카나리아 제도에서 만났어요. 여행을 하러 갔다가 서핑을 하던 중 루시를 만났죠. 그리고 나서 바르셀로나에서 1년 동안 동거를 했어요.” “Uh, we met in the Canary Islands. I went on a trip. I was surfing when I met Lucy. Then we lived together in Barcelona for a year.”

 

 헨리가 대답했다. 헨리와 루시는 시도 때도 없이 키스를 했는데, 헨리가 말을 하는 와중에도 루시는 헨리의 볼에 연신 뽀뽀를 해댔다.

 

 “우린 아직까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싸우기 전에 먼저 침대로 향하거든요.”

 “We haven't had a fight yet. Before we fight, we head to bed.”

 

 루시가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싸움이군.” “That’s a good fight.”

 

 조지가 말했다.

 

 “두 사람은 얼마나 됐어요?” “How long have you two met?”

 

 루시가 도훈과 지성에게 물었다. 지성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도훈이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린 어제 만났어요.” “Actually, we met yesterday.”

 

 “이럴 수가!” “Oh, shoot!”

 

 도훈의 대답에 모두가 소리를 질렀다. 저녁식사가 한 순간에 왁자지껄해졌다.

 

 “잤어요?” “Did sleep?”

 

 루시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키스는 당연히 했겠지.” “Of course did kiss”

 

 헨리가 덧붙였다.

 

 “아직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요.” “We're still getting to know each other.”

 

 도훈이 지성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지성은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둘이 너무 잘 어울려요.” “You two look so good together.”

 

 “맞아요.” “That’s right.”

 

 제인이 말하자 존이 맞장구를 쳤다.

 

 “만약 둘이 잘 안되면 평생 둘을 싫어하게 될 거에요.” “If you break up, I'll hate you forever.”

 

 “맞아요. 한국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을 거에요.” “That's right. I won't even put my feet in Korea.”

 

 헨리와 루시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훈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자 조지가 그를 보며 살짝 윙크를 했다. 조지는 분위기를 정리하듯 스푼으로 와인 잔을 때렸다. 그리고 나서 와인 잔을 높이 들었다.

 

 “제임스와 소피를 위하여.” “For james and sopie”

 

 조지의 리드에 맞춰 모두가 와인을 들이켰다. 도훈은 곁눈으로 지성을 지켜봤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을까. 혹은 조금 착잡한 마음일까.

 

 *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각자 원하는 자리로 이동했다. 수평선 끝에서 저무는 해를 지켜보는 게 투어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헨리와 루시는 2층 테라스 난간에 걸터앉았고, 존과 제인은 1층 소파에, 조지와 세리나는 그 반대편에 앉았다. 도훈은 지성과 함께 선상 앞 쪽에 앉아 두 발을 바다 속에 담근 채 빨갛게 익어가는 해를 바라봤다.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랬죠. 어떨 때 가장 외톨이 같다고 느껴요?”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요.”

 

 “지금도 그래요?”

 

 “조금은요.”

 

 그는 그녀가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만약 할 수 있다면,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난 가장 외톨이 같다고 느꼈을 때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중학생 형들한테 돈을 뺏겼어요. 당연히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형들이었으니까 아무런 저항도 못했죠. 그래도 울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집에 갔는데, 엄마를 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왜 우냐고 묻는 엄마 말에 집으로 오는 길에 있었던 얘기를 했죠. 난 엄마가 나가서 그 형들을 혼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오히려 엄마한테 혼났어요. 바보같이 걸어 다녀서 얕잡아 본거라고. 그때 내가 깨달은 게 있어요. 나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결국 내 자신은 나 스스로 지켜야 하는 거구나.”

 

 “가슴 아픈 교훈이네요.”

 

 지성이 그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가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

 

 “지성씨도 그런 경험 있어요?”

 

 그는 조심히 물으며 그녀의 표정을 지켜봤다. 역시나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져갔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상처를 들쑤셔내고 싶진 않아요. 대신 이야기하고 싶어지면 편하게 해도 좋아요. 조용히 들어줄게요.”

 

 그녀는 입을 열 듯 말 듯 머뭇머뭇 했다. 그는 담담하게 바다 속을 내려다봤다. 도훈이 실망해 하는 표정을 느낀 지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딸기맛 사탕이 먹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요. 부모님은 몸에 좋지 않다면서 절대 사주지 않았거든요. 가게에서 사탕 봉지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날 버리고 가버렸어요. 차로 멀리 떨어진 곳이었는데……. 울면서 집까지 걸어갔어요.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쳐다보더라고요. 울다가 바지에 오줌을 싼 거였어요. 기억을 더듬어서 집까지 가긴 했는데, 혼날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서 조용히 집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거실로 나왔죠. 그때 어머니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빨리 와서 밥 먹어라…….””

 

 “상처가 됐겠네요.”

 

 “오히려 괜찮아요. 지금은 웬만한 일로 상처받지 않으니까.”

 

 그녀가 자연스레 그의 왼쪽 가슴께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조용히 그녀를 받아들였다. 그들의 눈앞에서 석양이 저물어갔다. 뚜렷했던 불빛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불빛과 형체를 잃어가던 노을은 마지막 한 가닥의 선을 그린 후 수평선 너머로 잠식했다. 그는 그녀를 품에 껴안았다. 석양의 온기는 사라졌지만 그의 품에 들어온 그녀에게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 최선의 행동을 하라고 했던 조지의 충고가 떠올랐다.

 

 “지성씨, 사실 저는…….”

 

 그의 품에 안겨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그의 눈망울에 물결이 일렁였다.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것 같은 물방울이 되어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는 두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젖혔다. 자신이 없었다. 진실이 밝혀지고 난 뒤에, 그녀가 실망하게 될 모습을 보는 것이. 이 아름다운 시간의 흐름이 깨어지는 것이.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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