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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이스트 포인트
작가 : 필스너
작품등록일 : 2019.9.3

* 美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와 비교해도 생도들의 자질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서 절대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자신의 학교를 '이스트 포인트'라고 부르기도 하였음. 


<집필 의도>

 1653년, 무역선을 타고 네덜란드를 떠나 태평양을 거쳐 일본의 나가사키로 향하던 젊은 선원 하멜은, 뜻하지 않게 제주도 근처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하여, 간신히 살아남은 선원들과 함께 강제로 조선에 억류됩니다.
이후 하멜은 조선에서 보낸 13년 동안의 행적을 꼼꼼하게 기록하였고, 극적으로 조선을 탈출하여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간 뒤, 그 기록을 토대로 소위 ‘하멜 표류기’라는 책을 출간하는데,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 이후 미지의 세계에 대한 유럽인의 호기심을 반영하듯, 당시 '하멜 표류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필자는 이 ‘하멜 표류기’를 모티브로, 동서양의 실제 인물과 역사를 소재로 삼아, ‘이스트 포인트’라는 사관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우정,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를 판타지 세상 안에서 그려 보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발명품이 포함된 '르네상스 시대'의 눈부신 발전과, 동방을 정복하겠다는 '대항해 시대'의 거친 야망이 서양의 소재라면,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흥기, 병자호란의 발발과 이후 전개된 효종의 북벌준비가 동양의 소재입니다.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보다는, 자연 그 자체를 존중하고 이에 동화되어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겸손한 자세도 중요한 주제로 잡았습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소현 세자와 세자빈의 높은 뜻도 기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인 ‘일월오봉도’에,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나오는 ‘최후의 만찬’과 같은 어떤 수수께끼를 담아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내고자 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에 나오는 비행기나 낙하산도 판타지 안에 넣었습니다.
 고구려의 웅대한 기상이 서려있는 만주 벌판까지 이야기의 무대를 넓혔으며,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넘보려는 일본의 탐욕에도 일침을 가하고 싶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은 네덜란드의 왕자 하멜과 조선의 공주 하이란이 결혼을 하는 로맨스로 결말을 맺습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과 네덜란드, 양국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기원합니다.


 
<8화>
작성일 : 19-09-06 10:43     조회 : 190     추천 : 0     분량 : 39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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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사냥 대회

  

  1월 중순이지만 날씨가 그렇게 많이 춥지는 않았다. 

  프로스(Pross)궁 대전 앞에는 여러 장군과 근위병들이 모여 국왕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에반은 군대를 사열하듯 거만한 표정으로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뜻밖에 파르코를 발견하자, 측근에게 불쾌하다는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장군 토리크가 신경질을 내며 말을 꺼냈다.

  “아니, 파르코 장군, 장군도 초대를 받은 거요?”

  “그렇소이다,” 파르코은 토리크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장군 에반에게만 형식적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토리크는 남들 다 들리는 목소리로 “해군들은 그냥 브로(Bro)강에서 뱃놀이나 즐길 것이지, 산에는 뭐 하러 간담?”이라고 혼자 툴툴거렸다.

  “거, 뒤에 있는 표류인들은 여기 왜 데려온 거요? 내일 사냥터에서 뭐 광대 공연이라도 하는 거요?” 장군 나리프가 조롱을 섞어 말하자 몇몇 장군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아니오. 폐하께서 궁금하다고 하시며 한 번 데려오라고 명하셨소.”

  “아 그렇소? 저번처럼 또 무례를 저지르면 어쩌려고 폐하께서는 이런 인간들을 부르셨담? 거기 너! 제일 꼬마. 너 이리 나와 보거라!” 나리프는 하멜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뜨끔한 하멜이 움찔하였다. 그러자 얀스가 절대 흥분하지 마시라는 눈치를 주었다. 하멜은 약간 긴장하면서 앞으로 나왔다.

 

  “네 이름이 무어라 했었더라?”

  “... 하멜입니다.”

  “하멜. 그래 경비대에 적응은 좀 된 것이냐?” 나리프는 말에서 내려 하멜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 그렇습니다.”

  “그렇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이 아이의 이마에는 도장이 이 모양으로 있는 거요, 파르코 장군?” 나리프는 하멜의 이마를 만져보더니 신경질적으로 말을 했다.

  “글쎄요, 언젠가는 잘 되겠지요...” 파르코가 말을 흐렸다.

  

  그때, 에반의 말 안장에 함께 타고 있던 송골매 빌로(Veelo)가 하멜을 노려보며 “꺄악!!!”하고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거 보시오. 빌로로 다시 한 번 경고를 하네... 그래서 이 아이는 아주 불길한 징조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 않았소? 저번엔 처음이라 폐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지만, 만약 이번에도 그랬다간 그땐 내가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나리프가 쏘아붙이며 말했다. 하멜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국왕이 어린 왕세자와 함께 나타났다. 뒤에는 탐피(Tamphi)를 비롯한 문관 대신들이 따라왔고, 행차에 함께 나서는 신하들은 다시 한 번 대열을 갖추었다.

 

  “떠날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왕이 점잖게 말을 꺼냈다.

  “물론입니다, 폐하. 어서 말에 오르시지요.” 에반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대답했다.

  “폐하, 이처럼 좋은 날씨에 저희들을 불러 사냥을 할 수 있게 허락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 있는 장군들은 그저 폐하의 깊으신 배려에 감격할 따름이옵니다.” 나리프가 실실거리며 왕에게 말했다.

 

  “거기 파르코 장군도 오셨군요.” 왕은 나리프는 쳐다보지도 않고 시선을 돌려 반갑게 말을 건넸다.

  “예, 폐하. 이런 귀한 자리에 소신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불러주시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파르코가 공손하게 감사를 드렸다.

  “무슨 말씀을. 참 표류인들은 데려왔습니까?”

  “예, 그렇사옵니다. 추후에 인사를 올리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럽시다. 그럼 다들 출발합시다.” 파르코와의 가벼운 담소를 마친 왕은 천천히 말에 올랐다. 이런 왕의 태도가 못마땅한 에반과 수하들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졌다.

 

  *            *            *

 

  브로강을 경계로 북쪽은 한즈(Hanz)시였고 남쪽은 약간의 벌판만 있을 뿐 그 아래로는 대부분 크란(Krann)산 줄기의 산악지방이었다. 그리고 크란산의 북쪽, 브로강을 내려다보는 산자락에는 ‘전몰장병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코르 역대 국왕들의 왕릉은 한즈시 주위에 다양하게 퍼져 있었지만, 전쟁 중에 순국한 일반 병사들을 위한 제대로 된 묘지는 사실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퓨그(Fuug)에게 참패한 ‘7일 전쟁’을 겪으면서 국방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 브리젠 왕세자는,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전몰장병의 묘지'를 조성하였다. *브리젠은 디퍼슨에 볼모로 가 있던 중에도 호크런의 허락을 받아 세 번 한즈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크란산에 들러 공사를 독려하고 또 부족한 비용을 충당하는데 사재를 아낌없이 털어 넣었다.

 

  **바르티 제국의 잔당을 퓨그군이 완전히 격퇴하면서 후방의 근심이 사라지자, 호크런은 코르의 왕자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명을 내렸다. 영구 귀국한 브리젠은 새롭게 충혼문과 충혼탑 공사에도 착수하였고 곧 완공을 보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브리젠은 갑작스럽게 요절했고 부인인 진주(Jinju)는 남편의 시신을 따로 봉분을 만들지 않고 석관에 담아 충혼탑 안에 모셨다.

 

  ***전임 국왕인 슈젠타는 맏아들인 브리젠과 며느리의 현명함을 시기했는데, 디퍼슨에서 브리젠 부부가 여러모로 활약하면서 제국의 고위관료와도 가까워지자 그 진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내쫓고 왕이 되려 한다고 오해를 한 것이다. 브리젠이 한즈로 돌아왔을 때 적에게도 배울 것은 배우자고 건의한 것에 슈젠타가 진노한 이후로 둘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는데, 이 때문에 브리젠이 아버지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브리젠의 사후, 예법에 의하면 그의 큰 아들이 왕위계승자가 되어야 했으나, 슈젠타는 대신들의 반대도 뿌리치고 브리젠의 동생인 휘레스를 왕세자로 임명하였다. 당시 휘레스를 적극 지지한 인물이 바로 에반으로서, 이 때문에 에반과 측근들은 휘레스가 즉위한 이후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에반은 화근을 없애고자 진주를 모함하여 슈젠타로 하여금 그녀를 프로스궁에서 내쫓게 하였고, 급기야는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독배를 마시게 하였다. 슈젠타는 자신의 어린 손주들마저 코지로 귀양을 보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슈젠타는 전몰장병의 묘지 바로 옆에 있던 진주의 친정인 ****드루파(Droopa) 마을마저 모두 불태우는 잔인함을 보였다. 

  어쨌든 진주는 사약을 받는 순간, 자신의 시신을 충혼탑 안의 남편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 실제로 소현세자는 청나라의 수도 심양에 볼모로 가 있는 동안, 황제의 허락을 받아 세 번에 걸쳐 한양을 잠깐 방문하였음.

 

  ** 청나라는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을 함락시키며 명을 완전히 멸망시킨 뒤에야,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조선으로 돌려보냈음.

 

  *** 인조와 소현세자 간의 갈등. 인조는 며느리인 소현세자빈 강씨와 그녀의 어머니와 형제를 모두 죽이고 손주들을 제주도로 귀양 보내는 잔인함을 보였음. 또한 소현세자의 아들인 원손 대신 봉림대군이 왕세자가 되었던 역사적인 사실임.

 

  **** 태어날 때 상서로운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을 가진, 고려의 영웅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인 낙성대. 소현세자빈 강씨는 강감찬 장군의 19대 후손임.

 

  

  왕자 시절부터 형님과 우애가 좋았던 휘레스는 국왕에 오른 뒤에도 매년 형님의 기일이면 거르지 않고 크란산에 참배를 하였다. 하지만 브리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에반은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그동안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참석하면서 자기 휘하의 특수부대가 준비한 무술의 시범과 사냥 대회까지 개최한다고 나섰다.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크란산에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였고, 이 때문에 웬만한 담력과 활솜씨가 없는 무사라면 이곳에서의 사냥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이제 막 15살이 된 왕자 베니안(Beniann)은 휘레스가 디퍼슨에 있을 때 얻은 자식인데,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그동안 잔병치레를 많이 하여 늘 왕의 근심이 깊었다. 

  하지만 요즘은 병세가 무척 호전되었기에 왕위계승자로서의 본분을 가르쳐주려고 처음으로 크란산에 데려가기로 했다. 

  물론 아직 소년인 베니안은 솔직히 참배보다는 사냥 대회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더 들떠 있었다.

 

  *             *            *

 

  브로강을 건너 크란산 기슭으로 향하는 중에 하이란은 계속 사방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하멜은 슬쩍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하이란, 아까부터 너 좀 이상하더라. 오다가 뭘 본 게 있니?"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여기를 처음 오는 데 왠지 낯설지가 않아서 그래. 그런 거 있잖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마치 전에 자주 봤던 사람이랄까? 아니면 그런 비슷한 장소랄까..."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하이란이 말했다.

  "살다보면 나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어. 처음 보는 똑같은 동물인데도 어떤 동물은 마치 전에 많이 봤던 동물이거나... 아니면 사람 같다는 기분 말이야...“ 하멜은 농담을 좀 섞어 가볍게 말했다.

  "장난하지 마, 난 진심이야. 크란산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편안한 느낌이 들어. 코지(Cozee)섬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형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아주 포근하게 만드네. 여기도 갤라산처럼 뭔가 신비로운 기운이 있는 것 같아." 하이란은 계속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그 이유를 찾고자 했다.

 

  “모든 산은 다 아름답고 신비롭지 뭐. 내가 살던 고향은 대부분의 땅이 밋밋한 평야 지대였는데, 여기 코르에는 웬 산이 이리도 많은지... 그것도 엄청 크고 높게 말이야..” 하멜은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냐, 브리젠 왕세자께서 한즈시 근처의 여러 장소를 마다하고, 굳이 브로강을 건너 이곳에 묘지를 조성하신 이유가 뭐겠니? 순국한 병사들의 넋을 이 장엄한 크란산의 정기로 위로하고 싶으셨을 거야. 아마도 이 포근함은 그분들이 이곳에서 편한하게 잠들어 계시기 때문 아닐까? 나도 브리젠 왕세자님과 같은 그 애국의 마음으로, 이 한 몸 다 바쳐서 끝까지 호크런과 싸울 거야...” 경건하게 말하는 하이란의 눈시울이 살짝 젖었다. 그러자 하멜은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나도 명색이 네론의 왕위계승자인데 지금껏 내가 우리 병사들의 죽음을 이처럼 챙긴 적이 있었던가?’ 브리젠의 이야기를 들은 하멜은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동안 철부지로 살아온 것에 대해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슈젠타가 며느리인 진주에게 사약을 내렸다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이었다.

  ‘권력 앞에서는 부모 형제 간에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멜은 갑자기 자기 어머니가 떠올랐다.

  ‘무슨 이유로 나는 어머니의 초상화만 못 보고 자란 것일까? 할아버지는 왜 어머니의 흔적을 슈반궁에서 모두 지워버린 것일까? 그러고 보니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유모나 시종들이 말을 조심했던 것 같다.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다는데, 혹시 진주처럼 어머니의 죽음에도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복잡한 추측이 하멜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             *             *

 ​

  거대하게 솟아 오른 크란(Krann)산. 그리고 눈에 포근히 덮혀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무수한 기암절벽들.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크란산의 북쪽 경계로 들어서자 하멜과 하이란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바빴다. 그러나 얀스는 계속 파르코의 뒤를 따라오면서 주변의 지형을 살피고 기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었고 눈발도 날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전몰장병의 묘지'에 도착했다. 

  국왕과 일행은 충혼문을 통과해 ‘충혼 묘역’으로 들어섰다. 너른 잔디마당의 끝, 산 쪽을 바라보는 곳에는 충혼탑 하나가 높게 세워져 있었다. 저 탑 안에 브리젠과 진주가 잠들어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안으로 들어오자 조금 전까지도 거세던 바람이, 미세하게나마 약해진 것을 얀스와 하이란은 느낄 수 있었다.

  “어? 살짝 부드러워졌어...” 하이란이 중얼거렸다. 방금 전 그녀와 가볍게 어깨를 스쳤던 하멜은 “내가?”라고 물으며 속으로 으쓱했다. 그러자 하이란은 피식!하고 잠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탑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느낌은 더 확실해졌고, 이제는 하멜도 눈치를 채었다.

  “이보게, 파르코. 이곳은 어딘가에서 아주 포근한 기운이 나오는 것 같은데? 특별한 향기가 나지는 않지만, 분명 무슨 편안한 기운이 여기를 감싸고 있어...” 얀스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파르코는 충혼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역시 자네의 예리한 감각은 변함이 없구먼. 저기 탑을 한 번 자세히 보게.” 파르코가 대답하자 얀스는 바로 충혼탑을 주시했다. 옆에서 듣던 하멜과 하이란도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바라보았다. 탑의 군데군데에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큼지막하고 투명한 돌이 수십 개나 박혀 있었다.

 

  “저게 뭐지?” 하멜이 가볍게 말을 던졌다.

  "수정...인가요, 파르코 장군님?”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하이란이 물었다.

  “수정이 맞구먼, 그래.” 망원경으로 대번에 눈치를 챈 얀스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역시 천하의 얀스는 모르는 것이 없군, 허허. 브리젠 왕세자께서는 60개의 크고 맑은 수정을 박아 넣어 저 충혼탑을 완성하셨다네.” 파르코가 점잖게 웃으며 말했다.

  “60개? 근데 왜 60개죠? 60이란 숫자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하멜은 세밀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알고자 했다.

  “코르에서 60의 의미는 자신의 간지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가 있어. 순국의 영령들이 부활하라는 의지를 브리젠 왕세자께서 천명하신 건 아닐까...?” 확실하지는 않다는 표정으로 하이란이 말했다.

  “그럼 수정은?” 하멜은 계속 궁금했다.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 걸? 장군님, 탑에 왜 수정을 넣으신 거죠?” 하이란이 어깨를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파르코는 자신도 그 이유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러자 얀스가 바로 대답했다.

 

  "*과학적으로 수정은 다른 광물에 비해 매우 안정하며, 가장 일정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지. 쉽게 말해서 그 기운에 기복이 없다는 얘기야."

  “아, 그런가? 그런 성질이 있는 줄은 나도 몰랐네.” 흠칫 놀라며 파르코가 말했다.

  “아마도 그래서 이 묘역이 밖과는 다른 것 같네 그려.” 얀스가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하멜과 하이란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국왕과 왕세자는 천천히 제단 가까이 다가갔다. 물론 에반과 측근들은 멀찌감치에 서서 다른 곳을 쳐다보며 관심도 두지 않았다.

  국왕이 헌화를 마치고 묵념을 하자 도열한 신하들이 모두 따라했다. 은은한 음악이 흘러 경건함을 더했다.

 

  모든 의식을 마친 일행은 천천히 충혼문을 빠져나와 다른 묘역도 둘러본 뒤에 야영장에 설치한 각자의 숙소로 들어갔다.

 ​ 

  * 석영(quartz, =수정)은 화학적으로 매우 순수하고 안정하며 진동수가 일정해, 아날로그 시계의 부품으로 쓰임.

 ​

  *             *            *

 ​

  다음 날, 

  묘지에서 조금 떨어진 들판의 연병장에는 사냥 대회를 지켜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튼튼한 재목으로 크게 울타리를 쌓았고 귀빈들이 앉을 높은 단상과 일반인들을 위한 관중석도 마련되었다. 

  먼저 국왕과 왕세자가 단상에 자리를 잡았다. 대전에서 보았을 때와 같은 그림의 병풍이 역시 왕의 뒤에 놓여있었다.

 

  하멜은 다시 한 번 그림을 주시하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하이란에게 물었다.

  국왕이 앉는 곳이면 어디든 놓이는, 왕국의 존엄과 영원함을 상징하는 '솔루노픽스(SolunOpeaks)'라는 그림이라고 하이란이 설명했다. 태양과 달, 산과 돌, 물 등 아주 귀한 것들을 한데 모아 놓은 저 그림이 너무 신성하고 멋지다고 말하며 하이란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하멜은 왜 저렇게 말도 안 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지 당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에반은 국왕과 왕세자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사냥 대회를 허락하신 것에 감사를 드렸다. 주위의 측근들도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파르코는 오히려 이런 에반의 태도에 더욱 긴장이 되었다. 얀스도 분위기가 좀 이상한 것을 감지했다고 파르코에게 속삭였다.

 

  장병들의 무술시범을 시작하라고 국왕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베니안 왕자는 흥분이 되었는지 살짝 엉덩이를 들어 큰 창고의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기대했던 군인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갑자기 창고 안에서 어떤 동물의 괴이한 울음소리만이 계속 터져나왔다.

 

  에반은 지난 ‘7일 전쟁’의 패인을 분석하여 적의 매머드만을 담당할 정예부대를 그동안 육성했고, 드디어 그 성과가 나타났다고 사방에 공표했다. 퓨그 군사 고문단의 감시를 피해 크란산 기슭에 훈련장을 마련하여 매머드를 제압할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했다고도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직접 부대원들의 실력을 보이겠다고 거만하게 얘기하는 에반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왕의 낯빛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에반이 지시를 내리자 거대한 우리에 갇힌 엄청나게 큰 코끼리 여러 마리가 수레에 실려 들판으로 끌려나왔다. 몸통과 머리에는 갑옷으로 무장을 하였는데, 퓨그의 매머드와 가장 비슷한 조건으로 훈련을 시킨 코끼리들이라고 나리프가 설명했다.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자 흥분한 코끼리들은 “꽤액!”하고 괴성을 지르며 우리에서 나가고 싶어 자기를 가둬놓은 통나무를 쿵쿵 들이받았다.

 

  반대편에는 새로 개발했다는 기다란 석궁과 창, 밧줄로 무장한 특수부대원 수십 명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동이 간편하도록 개조한 투석기와 투망기를 군데군데에 설치해 놓았다.

 

  잠시 후, 

  우리의 문이 열리자 흥분한 코끼리들은 벌판으로 뛰쳐나와 코와 상아를 휘저으며 닥치는 대로 부수고 다녔다. 군인들도 말을 달렸고 일부는 투석과 투망 공격을 위해 수레로 올라갔다.

  관중석도 갑자기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사방에서 응원의 함성이 솟구쳐 저 멀리 크란산의 깊숙한 계곡까지 진동시켰다.

 

  군인들은 코끼리의 머리 쪽으로 화살을 퍼부어 시야를 방해했고, 코끼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사정없이 바위와 포획망을 목표한 곳에 날렸다. 밧줄이 달린 긴 창이 코끼리의 갑옷에 여러 개 박혀 걸리면, 이를 모두 한쪽으로만 당겨 코끼리가 중심을 잃어 비틀거리도록 만들었다.

  정예병은 창을 지지대 삼아 순식간에 코끼리의 등에 올랐다. 그리고 칼을 뽑아들고 사정없이 정수리를 내리쳤다.

 

  꾸왜애애액~~~ 꾸왜액~~~

  코끼리가 잔인하게 살육당하는 모습에 베니안은 고개를 돌리며 구토를 했다. 다른 문관 대신들도 심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에반은 크게 웃으면서 이제부터 적의 매머드에게 무참히 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특수부대의 실력이 어떠냐고 왕에게 물어보는 에반의 태도는, 올 여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퓨그에 선전포고를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자 무력시위였다. 왕은 답답했지만 형식적이라도 훌륭하다는 치하를 생략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왕의 안색은 더 어둡게 변했다.

 ​

  에반의 빌로는 어느새 하늘로 올라갔고, 주위에는 다른 송골매와 까마귀들도 날아들어 지상을 살폈다. 그러다 특수군이 물러가고 코끼리의 시체를 치우는 작업이 시작되자, 빌로의 “까악!” 소리를 필두로 모두 내려 앉아 푸짐한 점심을 즐겼다.

  

  

  에반과 그 측근들은 국왕과 문관 대신, 해군 장성들의 기분이 어떠할지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모든 행사는 자기들의 계획에 맞추어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나리프 장군 휘하의 보병들이 펼친 무술시범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되지 못하였다. 적당한 공연 하나를 그냥 끼워 넣은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에반이 자신의 아들인 에보크(Evoke)를 나오라고 하여 왕에게 소개했다.

  “폐하, 신에게 이제 막 장성한 아들놈이 하나 있사옵니다. 어릴 때부터 무예를 좀 가르쳤더니 제법 빨리 배워 이제는 이스트 포인트에 입학을 시켜 제대로 된 군인으로 키워볼까 하옵니다. 마침 폐하께서 사냥을 하신다기에 이 자리에 데리고 왔는데, 폐하께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어 하옵니다. 어떻게 제 아들놈의 청을 좀 받아 주시겠습니까?”

  “에반 대장군 가문이야 대대로 우리 코르에서 제일가는 무인 집안인데, 그 아들의 무예가 어련하겠습니까? 어디 한 번 보십시다.” 왕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에보크는 왕 앞에 나아가 공손하게 무릎을 꿇었다. 왕은 별다른 말이 없이 어서 시작하라는 표시를 했고, 목검 대련을 벌이겠다는 사회자의 발표가 있자, 다시 자리를 잡은 베니안도 관심을 보였다. 

  에보크가 준비를 마치자 토리크 장군 휘하의 군인 열 명이 목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시작 소리와 함께 군인들은 함성을 지르며 에보크에게 달려들었고, 에보크도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이들과 대적을 벌였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목검이 어디쯤에서 움직이는지 따라가지도 못할 만큼 에보크의 무예는 빠르고 날카로왔다.

  

  슉~ 슉~ 슉슉~~!

  휙~ 휙~ 휙휙~~!

  

  퍽~! 퍽~! 퍽퍽~~!!

  목검에 급소를 찔린 군인들은 한 명씩 쓰러졌고, 마지막으로 뒷통수에 일격을 당한 군인 한 명은 거품을 물으며 의식을 잃었다. 이를 지켜보던 파르코와 측근들은 물론, 하이란마저 에보크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련을 마친 에보크는 왕 앞으로 다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역시 훌륭한 재목이다. 수고한 너에게 술을 한 잔 하사하노라.” 크게 치하하면서 왕이 말했다. 베니안도 손뼉을 치며 진짜 놀랍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폐하께서 이리 칭찬을 해주시니 아비인 신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에반이 제법 공손하게 말했다.

 ​ "......" 그러나 왕에게서 더 이상의 호의적인 대꾸는 나오지 않았다. 왠지 좋은 말을 억지로 쥐어짰다는 느낌이 모인 사람 대부분에게 다가왔다. 어찌 되었든 에반은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는 표정을 보였다.

 

  “신기에 가까운 목검 솜씨는 보았으니, 이번엔 진짜 칼을 다루는 솜씨가 어떤지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에반 대장군?” 그런데 신이 난 베니안이 아버지의 눈치는 살피지도 않고 불쑥 말을 꺼냈다.

  “물론입니다, 왕세자 저하. 미약하나마 소인의 칼 솜씨를 지금 바로 보여드리겠사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 기다렸다는 듯 에보크가 신나게 대답했다.

  

  에반은 입가에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이번에는 조롱하는 눈빛으로 파르코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파르코는 관심없다는 듯 고개를 아예 돌려버렸다.

 " ​폐하, 에보크 혼자서 칼춤을 추는 걸 보는 것보다야, 상대를 골라 둘이 겨루는 것을 보시는 게 더 화끈하지 않겠습니까?” 토리크가 슬쩍 말을 던졌다. 왕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베니안이 “오, 그거 멋지겠는데요?”라고 바로 대답을 하자, 토리크는 대번에 웃으며 군중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누구든 여기 에보크와 칼 솜씨를 겨루어 이길 수 있는 자가 있으면 한 번 나와 보라!!! 승리하면 큰 상을 내리겠도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군사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가 나설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아무리 에보크라 해도, 특수군이 보기엔 이제 19살의 신출내기가 아닌가? 

  하지만 최정예 요원들마저 지금은 나서기를 꺼려했다. 아마도 에보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대장군 에반과 그의 측근들에게 찍힐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어쨌든 나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를 어쩐다... 왕세자 저하께서는 두 무사가 칼로써 그 솜씨를 겨루는 걸 꼭 한 번 보고 싶어 하시는데... 흠... 이를 어쩌지...?" 토리크가 머리를 약간 긁적이며 말을 꺼낸 뒤, 슬쩍 나리프에게 다음의 공을 넘겼다.

  "그러게나 말일세... 총명하신 왕세자 저하께서 원하시는 결투인데, 우리가 저하를 여기까지 모셔와서 보여드리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큰 송구함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야... 흠... 아, 가만 있어봐... 거 듣자 하니, 파르코 장군이 에보크와 동갑인 하멜을 이스트 포인트 경비대에 배속시켜 나름대로 뛰어나게 훈련시켰다고 하던데, 이참에 둘이서 한 번 겨루어보게 함은 어떻겠소, 장군?” 갑자기 나리프가 실실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러자 놀란 얀스는 앞에 있던 파르코에게 “말도 안 돼!”라며 성난 표정으로 속삭였다.

 

  “나리프 장군의 제안이 참으로 멋지옵니다, 폐하. 앞으로 우리가 퓨그(Fuug)를 이기려면 이런 젊은이들이 자주 대련을 통해서 그 무예를 한층 심화시켜야 하는 것이옵니다. 어디, 파르코 장군의 생각은 어떻소이까? 이쯤 되면 에보크와 하멜이 폐하 앞에서 진검의 대련을 벌일 수 있게 허락하는 것이...” 토리크도 간사한 소리로 거들었다.

 

  신이 난 에보크는 기회를 빨리 달라고 졸랐지만, 하멜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파르코도 헛기침을 해대며 머뭇거렸다. 그런데 하이란은 기다렸다는 듯 나지막이 “저는 자신이 있습니다, 장군님.”이라고 말했다.

  “어떻소, 파르코 장군? 내 아들놈과 장군이 아들처럼 보살피는 그 하멜과 한 번 솜씨를 겨뤄보게 하는 것이...” 에반이 점잖게 회유했다. 그러나 에보크의 무예를 이미 가늠한 파르코는 깊은 갈등에 빠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하이란이 불쑥 앞으로 나섰다. 하멜이 팔을 잡아 말리려 했지만, 이미 하이란은 당당하게 저만치 나아가 있었다.

  

  “파르코 장군의 호위무사인 하이란이라 하옵고, 소인도 나이가 열아홉이옵니다.” 고개를 숙여 왕에게 인사를 올리며 하이란이 말을 꺼냈다. 그러자 에보크는 계집애처럼 약골이 지금 나랑 뭐하자는 것이냐며 비웃었다. 그때 에반이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보내자 옆에서 실실 웃던 나리프와 토리크도 이내 헛기침을 하며 조용해졌다.

 

  하이란은 긴장한 낯빛으로 에반을 바라보았다. 에반도 하이란을 잠시 쳐다보며 눈알을 몇 번 굴렸다.

  "이름이 뭐라고?" 에반이 말했다.

  "하이란이라고 하옵니다, 대장군." 

  “누굴 약간 닮은 것 같은데...? 혹시 어디 출신의 어떤 아이오, 파르코 장군?” 에반이 근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음, 음... 그저 어려서부터 고아였던 아이를 제가 데려다 키운 것뿐입니다, 대장군.” 파르코는 자세한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고아? 또 고아? 아니 얘도 고아, 하멜도 고아... 어째 장군의 근처에는 죄다 고아밖에 없소이까? 그렇게 신분이 천한 아이랑 이 고귀한 가문의 에보크랑 지금 폐하 앞에서 대련을 펼치라고 하는 것이오? 장군은 지금 정신이 있는 게요? 없는 게요?” 나리프가 비꼬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에반이 손을 들자 바로 주둥이를 닫았다.

 

  “네 부모가 누구인지 기억하느냐?” 에반이 물었다. 하이란은 아니라는 뜻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에반은 뭔가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때 에보크가 어서 대련을 하고 싶다며 또 한 번 재촉했다. 에반이 왕을 향해 준비가 다 되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그러자 대련을 하지 말라는 명분을 찾기 어려웠던 왕은 어쩔 수 없이 이제 시작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침묵이 흘렀다.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 미동도 하지 못했다. 하멜은 자신이 심장소리가 이렇게 큰지 오늘 처음 느꼈다.

 

  에보크의 칼이 먼저 공기를 갈랐다. 하이란의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챙!!! 챙!!! 챙!!!

  섬광이 비쳤고 번갯불이 튀었고 살을 베는 듯한 금속음이 계속 터져나왔다. 갑자기 칼바람에 눈발도 세차게 날렸고, 이들의 칼소리에 크란산 전체가 전율했다. 당장이라도 저 멀리 산꼭대기부터 눈사태가 날 것만 같았다. 한치의 오차와 흐트러짐도 없이 둘은 그렇게 상대의 명줄을 끊으려 으르렁댔다.

  

  하이란에게 저런 독기가 있는 줄은, 하멜은 물론 파르코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지금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기는, 코지섬의 원주민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대장군 에반과 그 측근들을 향한 거대한 분노였다. 그들이 누려온 거만함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었다. 그런 하이란의 복수심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왕을 비웃고 조롱하던 에반의 능글맞은 표정을 무참히 짓밟고 있었다.

 

  그렇다고 에보크의 솜씨가 밀리는 건 전혀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에반의 아들이었다. 피냄새를 좋아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 탐닉하는 에반의 적장자였다. 그런 에보크에게서는 하이란의 피를 당장 보고야 말겠다는 본능이 거침없이 분출되고 있었다.

  누가 더 낫고 누가 조금 밀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다들 대결을 지켜보느라 입이 바짝 마르고 손에 땀이 흥건해진 것조차 느끼지 못할 뿐이었다.

 

  그런 시간이 한참 동안 계속 되었고 관중들의 입술은 삼 년 가뭄에 말라버린 논바닥처럼 변하고야 말았다.

  “중지!” 심판관의 외마디가 나왔지만, 칼소리에 밀려 잘 들리지 않자, 급기야는 군인 하나가 징을 크게 울렸다. 결국 왕은 대결을 멈추라 명했다.

  에보크와 하이란은 서로를 계속 노려보며 헐떡거렸고, 다른 이들은 모두 왕을 쳐다보았다.

 

  “너희 둘의 무예가 참으로 출중하도다. 짐은 둘 중 어느 누구도 잃고 싶지가 않다. 칼솜씨는 모두에게 인정을 받을 만큼 다 보여주었으니, 진정한 승부는 활로써 가리도록 하라.” 어명이 떨어졌다.

 

  잔뜩 화가 난 에반은 파르코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에보크는 어찌나 분했는지 괴성을 질렀다.

  파르코는 자리로 돌아온 하이란의 등을 두드리며 잘 싸웠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하이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에보크와 비긴 것에 만족할 하이란이라면 애당초 대결을 자청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둘의 최종 승부는 사냥감의 크기로 정하자고 심판관이 제안했고, 에반이 이를 받아들였다. 파르코도 고개를 끄덕이며 하이란에게 준비를 시켰다.

 

 

  해가 지기 전까지 제일 큰 사냥감을 잡아 오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심판관이 말하자, 출발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뿌우~’하고 길게 뻗어나갔다.

 

  하이란이 활과 화살을 챙기면서 좁고 기다란 관과 얇은 침을 꺼내는 것을 본 하멜은 그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하이란은 코지에서 자기가 직접 만든 마취제를 바른 침이라고 말하며, 조그만 종지에 담긴 약물을 하멜에게 선뜻 보여주었다.

  “혹시 그럼... 코지에서 내가 갑자기 쓰러진 게 이것 때문이었어?” 종지와 여분의 침을 받아 든 하멜은 이제야 이유를 알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이지, 한 번 더 맞아 볼래?" 하이란이 살짝 웃으며 관을 훅~ 부는 흉내를 내자, 하멜은 움찔하며 뒷걸음질쳤다.

 

  하이란은 다정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내 돌아서 사냥에 나서려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하멜은 그 종지를 하이란에게 돌려주지는 않았다. 자기도 언젠가는 이 마취제를 한 번 제대로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파르코와 얀스는 절대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하라고 당부했고, 하이란은 걱정 마시라고 자신있게 대답하며 당당히 말에 올랐다.

 

  *             *             *

 

  예로부터 크란산에는 호랑이가 떼로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어 감히 계곡 깊이 혼자서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에보크는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그 많은 사람은 물론, 아버지의 걱정과 당부도 무시한 채 두려움 없이 계곡 안으로 말을 달렸다.

  

  적막이 흐르자 에보크는 말발굽 소리를 낮추었다. 누군가가 사방에서 노려보는 듯했지만 에보크는 침착하게 주위를 살폈다. 

  저 멀리 간간히 꽃사슴 무리가 보이기는 했다. 물론 사슴은 에보크의 성에 차질 않았다. 무조건 큼지막한 호랑이를 잡고 싶었다.

  계곡의 안으로 조금씩 계속 들어갈수록, 태풍 전의 고요는 더욱 더 깊어만 갔다.

  

  침묵의 시간이 잠시 흐른 뒤, 낮은 소리의 무언가가 휙~ 스치듯 움직였다. 에보크는 즉시 활을 들어 누군가와의 대적을 준비했다.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기다리자... 섬뜩한 눈빛을 깜빡이며 하나 둘 늑대들이 어슬렁거렸다. 잔뜩 굶주렸는지 늑대들은 먹잇감이 나타나자 침을 질질 흘리며 거리를 좁혀 왔다. 하지만 에보크는 눈 하나 깜짝하질 않았다.

 

  슉~!

  화살 하나가 공기를 가르며 늑대 한 놈의 대가리를 관통했다.

  캑!!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앞선 늑대가 쓰러지자, 옆에 있던 놈들이 복수의 눈빛을 이글거리며 에보크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에보크는 화살 세 개를 동시에 조준하여 한 번에 활시위를 당겼다.

  슉~! 슉~! 슉~!

  동시에 세 마리의 늑대가 절명했다. 에보크는 한 번 더 그렇게 했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나머지가 계속 다가오자 화가 치민 에보크는 말에서 내려 그들과 직접 마주치려 앞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몇 마리는 에보크가 휘두르는 칼에 선혈을 내뿜으며 눈 위에서 나뒹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다른 늑대들은 즉시 꽁무니를 뺐다.

  “에잇, 시간만 낭비했구나!” 

  늑대 몇 마리 죽인 것으로 에보크는 흡족해하지 않았다. 그가 노리는 무시무시한 수놈 호랑이가 아직 보이질 않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에보크는 다시 말을 달려 계곡의 폭포수 쪽으로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

  

  에보크와는 달리 반대편의 언덕 위를 택한 하이란은, 화살을 꺼내기는 커녕 초식동물들이 많이 있을만한 벌판으로 조금씩 점잖게 내려갔다

  

  저 멀리에서 꽃사슴 무리가 한가로이 먹이를 찾는 광경이 들어왔다. 인간과 많이 동화가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하이란을 눈치채지 못해서 그런 건지, 사슴들은 말발굽 소리에 놀라지 않고 있었다.

  하이란은 말에서 내려 무장을 모두 해제한 채로 천천히 사슴들에게 다가갔다. 

  아주 가까이서... 사슴의 움직임을 바라보는데 한참의 시간을 소비하고도... 하이란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입을 삐죽 내밀고 다시 들이쉬고 하면서 하이란은 사슴과 같은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쀼~ 끼우~ 꾸우~

 

  마침내 뿔이 제일 큰 수사슴의 앞에 서게 되자 하이란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 사슴과 눈을 맞추며 무언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 하이란에게 호기심을 느꼈는지 주위에 있는 다른 사슴도 어슬렁거리며 가까이 모여들었다. 하이란을 경계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

 

  쏴아~

  폭포 소리만이 계곡의 고요를 깨고 있었다.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호랑이 한 마리를 발견한 에보크는 말에서 내려 몸을 낮추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폭포수 안쪽에 호랑이떼의 소굴이 있는 것이었다. 그놈들은 방금 잡은 사슴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호랑이 한 마리를 잡으려다 아예 이놈들의 소굴까지 발견했으니 언젠가는 모두를 다 잡아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선은 돌아다니는 한 마리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단 티가 나지 않게 바깥쪽으로 유인을 해야 했다.

 

  에보크는 숲속에서 살짝 고기 냄새를 풍기고는 그 호랑이가 폭포수에서 멀리 나와주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인내의 결과는 확실했다.

  노렸던 그놈이 무리에서 제법 떨어진 곳까지 천천히 다가왔다. 에보크가 원하던 바로 그 큰 수놈이었다.

  고기 냄새에 본능이 발동한 그 호랑이는 혼자서 계속 에보크가 유인하는 곳으로 다가왔다. 물론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아니었다.

  

  슉~!

  퍽~!!

  끽~!!!

  이번에도 어김없이 에보크의 화살은 호랑이의 미간에 정확히 박혔다. 짐승의 제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에보크에겐 그저 한 마리의 사냥감에 불과했다. 덩치가 얼마이든, 화살을 맞은 호랑이는 사지를 축 늘어뜨리며 에보크에게 모든 걸 허락했다.

 

  에보크는 다가가 호랑이가 죽은 것을 확인한 뒤, 나뭇가지를 엮어 눈썰매를 만든 다음에 그놈을 밧줄에 감아 말 안장에 묶고 당겼다. 호랑이를 죽인 시간은 찰나였지만, 그놈을 썰매 위에 올려놓으려면 많은 시간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에보크는 그놈을 끌고 조용히 계곡을 빠져 나왔다.

 ​​

  

  크란산에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봉우리의 그림자는 차츰 사냥터와 야영지를 덮어갔고, 길게 늘어진 그 끝은 한시가 다르게 왕이 있는 단상 쪽으로 밀려왔다. 근위병들은 곳곳에 횃불을 밝히느라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저쪽에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말 한 마리가 보였다. 군사들이 달려가보니, 에보크와 말이 커다란 썰매를 함께 끌고 있었다. 토리크 장군이 호랑이의 크기를 확인하더니 괴팍한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단상 가까이 당도한 에보크는 이마에 꽃힌 단 한 발의 화살을 가리키며, 이보다 더 큰 호랑이를 본 적이 있냐고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다른 곳에는 화살이나 칼 자국이 전혀 없는 것을 확인한 심판관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이는 파르코 측도 마찬가지였다.

  베니안 왕자는 단상에서 내려와 호랑이를 발로 한 번 툭 쳐보더니 정말 죽은 것을 확인하자 대단한 활솜씨라며 에보크에게 쉴 새 없이 찬사를 보냈다. 에반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왕을 바라보자, 에보크의 실력에 감탄한 왕도 고개를 조금씩 끄덕이기 시작했다.

  속이 뒤집어진 하멜은 발을 동동 구르며 하이란이 빨리 나타나길 기다렸다.

 

  산속에 밤안개가 뿌옇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이 다했다며 취타대에서 길게 나팔을 불었고 이 메아리가 크란산의 계곡과 들판에까지 멀리 퍼져나갔다.

  나팔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저 멀리서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제법 크고 넓은 무언가가 이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군인들이 바짝 긴장을 했다.

  그림자는 가운데부터 조금씩 형체를 나타내었다.

  그것은 바로, 

  하이란이 큰 수놈 꽃사슴의 등에 탄 모습이었다. 사슴이 얼마나 큰지 말과 비교해도 덩치에서 별로 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코지(Cozee)에서 하멜이 그랬던 것처럼... 옆에는 하이란이 탔던 말이 혼자서 따라 오고 있었다.

  양 옆의 나머지 그림자는 정체를 나타내지 않은 채, 하이란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천천히 다가왔다.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것입니까? 저는 그 많은 호랑이떼 중에서도 이렇게 제일 큼지막한 호랑이를 단 한 발의 화살로 죽여 잡아왔는데, 저놈은 기껏 한다는 게 꽃사슴의 등에 타고... 아니 여기 놀러 온 겁니까? 폐하 앞에서 이렇게 무례한 행동을 보여도 되는 것입니까??!!” 흥분한 에보크가 심판관에게 따지듯 말했고, 듣고 있던 사람들도 하이란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했다.

  파르코와 얀스도 어쩔 줄을 몰랐지만, 뒤에서 지켜보던 하멜만은 '혹시...?'하면서 어둠에 잠긴 저쪽의 그림자를 계속 바라보았다.

 

  잠시 후, 하이란은 숲 속을 쳐다보며 입으로 사슴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갑자기 어둠 속에서 수십 마리의 사슴이 하이란 쪽으로 종종 몰려들었다. 그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큰 사슴의 곁으로 간격을 좁혀 몰려들어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었다.

  하이란은 사슴의 등에서 내려서 왕 앞으로 나아가 사냥을 마쳤다고 보고했다. 왕은 하이란을 보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관이 판정을 내리려고 했으나, 언뜻 보아서는 축 늘어진 호랑이와 서 있는 수사슴의 크기를 비교하기가 곤란했는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군인들도 호랑이의 크기는 정확하게 쟀으나, 꽃사슴을 재려 하니 사슴이 귀찮은 듯 몸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자세한 측정이 어려워 심판관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때 나리프가 재촉하며 한 마디를 했다.

  “빨리 판정을 내리지 그러시오? 크기는 보아하니 비슷한데... 짐승의 제왕인 호랑이를 연약한 꽃사슴이랑 비교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겠소? 심판관은 무얼 그리 망설이시나?”

  그러자 심판관은 고개를 살짝 돌려 은근히 왕과 에반의 표정을 살피며 떠듬떠듬 말을 꺼냈다.

  

  “예... 폐하, 그럼 소신이 판정을 내리겠습니다. 이번 사냥의 승자는... 승자는... 에...보...”

  “잠깐, 심판관님! 이번 사냥의 판정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순간 뒤에  서있던 하멜이 불쑥 끼어들며 말을 던졌다.

  “판정 기준? 그야 제일 큰 사냥감을 잡아 오는 사람이 승리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심판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심판관님? 제가 잡아 온 사냥감은 여기 수사슴 한 마리가 아니라 주위에 모여든 수십 마리의 사슴 모두이니, 이 점을 깊이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이란이 또박또박 말했다.

  에반과 에보크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고, 토리크는 한숨을 턱 쉬더니 다짜고짜 신경질적으로 말을 꺼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맹수의 왕 호랑이 중에서도 제일 큼지막한 대장 수놈을 화살로 정확히 쏘아 죽인 것과, 수사슴 한 마리 꼬셔서 등에 타고 온 것과 어떻게 비교가... 아니 그럼, 제일 큰 사슴놈이 오면 어린 놈들이 같이 따라오지, 자기네들끼리만 들판에서 놀고 앉았겠는가? 따라온 사슴들을 어찌 잡은 사냥감이라 할 수 있느냐 말이다!?”

  “토리크 장군님의 말씀대로라면, 에보크가 죽인 호랑이는 일단 호랑이들 중에서 제일 큰 놈은 아니겠군요. 다른 호랑이들이 따라오지 않은 걸 보니 말입니다.” 에반 측의 허를 찌르는 하이란의 말이 경쾌했다.

  “뭐라? 아니 저 놈이??” 토리크와 에보크는 거의 폭발 직전이었다. 에반의 얼굴도 심하게 일그러졌다. 빌로(Veelo)는 역겨운 비명을 지르며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주인보다도 더 흥분했다고 사방에 알리자, 빌로를 따르는 송골매와 까마귀들이 근처로 모여들었다.

 

  이번에는 파르코도 에반 측에 밀리지 않으려고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얀스와 하멜도 그의 뒤를 따랐다.

 냉정하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하이란의 말에 틀린 곳이 하나도 없다고 파르코가 거들자, 갑자기 양 측이 한 판 붙을 기세가 되어버렸다.

  근위병들은 긴장하며 국왕과 에반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놀란 베니안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자리에 앉아 가슴만 졸였다.

  누군가 먼저 칼을 꺼낸다면, 왕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당장이라도 피바람이 몰아칠 형국이었다.

  순간 왕이 번쩍 손을 들자 모든 혼란이 일시에 수그러들었다.

 

  그리 밝은 낯빛은 아니었지만, 이제 이런 갈등에는 이골이 났는지 왕은 일단 험악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래서 파르코는 더 가슴이 저미었다.

  “허허, 아주 영리한 아이구나. 아니, 아이라고 하기에는 그 능력이 보통이 아니다. 에보크의 활솜씨도 훌륭했고 하이란의 재치도 훌륭했다...... 결과적으로...... 이 승부는 무승부이다.” 갑자기 왕이 딱 잘라서 선을 그었다. 이 말에 에반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 없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파르코도 왕이 이렇게 단호한 결론을 내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폐하. 저렇게 커다란 호랑이를 에보크가 혼자 잡았사온데 어찌하여 무승부라 하시옵니까?” 나리프는 그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왕에게 하소연했다.

  “폐하께서 내리신 어명이오. 나리프 장군은 어찌 이에 토를 달고 있는 것이오?” 자신감이 생긴 파르코는 즉각 응수했다. 그러자 에반 측은 증오의 눈초리로 파르코를 쏘아보면서도 잠시 머뭇거렸다.

  이후 아주 짧은 침묵이 흐르며 모두가 왕의 그 다음 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규칙은 규칙이오. 사실 규칙대로 하자면 하이란이 잡아 온 사슴의 합이 에보크의 것보다 훨씬 더 크지 않소? 호랑이 한 마리는 사슴 몇 마리와 동등하게 보겠다는 규칙을 애당초 정한 것이 없으니, 솔직히 크기로만 본다면 에보크가 좀 밀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이 어려운 사냥에서 단 한 발의 화살로 호랑이를 잡은 걸 어찌 여러 마리의 꽃사슴과 비교를 하겠소? 어쨌거나 그런 여러 상황을 감안하여... 자, 이번 시합은 무승부라고 짐이 정하였으니 더 이상은 언급을 마시오. 그래, 이름이 하이란이라고 했느냐?” 지금까지 늘 끌려가듯 대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강한 어조로 왕이 에반 측의 건의를 끊어버리자, 에반과 측근들은 적잖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놀란 것은 파르코도 마찬가지였다.

  “예, 폐하. 그렇사옵니다.” 하이란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너의 지혜가 참으로 출중하구나. 어떤 연유로 파르코 장군의 호위무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오늘 네가 보여준 그 기지가 대단한 걸 보니 그냥 장군의 자택에서만 머무를 평범한 인물은 아닌 듯싶도다. 그래... 너도 인생의 어떤 목표나 소원을 분명히 가지고 있을 터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한 번 말해보거라. 오늘 사냥에서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에 대한 칭찬으로, 너의 희망이 상식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짐이 흔쾌히 허락을 하리라.” 왕이 기분 좋게 말했다.

  이런 뜻밖의 제안에 놀란 하이란은 서둘러 무릎을 다시 꿇었다.

  “저, 정말이시옵니까, 폐, 폐하?” 방금 전까지 그 당당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하이란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어갔다. 에반 측도 이 볼썽 사나운 광경을 어쨌든 억지로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아무렴, 짐이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왕은 에반 측에겐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네 폐, 폐하. 소인은, 아니 소녀는... 이스트 포인트에 입학해서 사관생도의 길을 가고 싶사옵니다. 장교가 되어 훌륭한 군인이 되고 싶사옵니다.”

  “소녀??”

  순간 모두가 '소녀'라는 말에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 그러자 파르코가 왕에게 한 발 더 다가서서 고개를 조아리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고해 올리겠다고 말하였다. 동시에 하이란은 이마에 붙인 파란 딱지를 떼어버렸다. 속에 있던 붉은 인장이 그대로 드러나자 여자였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아니, 쟤가 계집이었어?” 에반 측은 기가 막혔다.

  “아니 그럼, 제가 여태껏 계집이랑 겨뤄서 무승부밖에는 못했다는 겁니까?” 에보크는 더 기가 막혔다. 대장군 에반은 목덜미를 움켜쥐고라도 억지로 냉정을 되찾으려 하였다. 그래서 천천히 한 마디를 하려고 앞으로 나서려 했으나, 이를 눈치챈 파르코가 에반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

  “폐하, 하이란은 사실 코지(Cozee)의 총독인 완저(Wanzer)의 외동딸이옵니다. 신이 가끔 코지를 시찰하러 내려갔을 때마다 보았사온데, 어려서부터 그 무예가 남다르고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했습니다. 나이가 열여덟로 장성하여 남자들과 겨뤄도 뒤지질 않으니 본격적인 무사로 키울 때가 된 듯싶어, 작년에 얀스와 하멜을 만나러 코지로 갔을 때, 소신이 완저를 설득하여 함께 한즈로 데려온 것이옵니다.”

  “아, 그랬소? 완저 총독에게도 외동딸이 있었구려...” 왕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하지만 에반 측은 “코지의 원주민이 그것도 여자가 코지를 떠나는 건 엄연한 불법인데, 지금 파르코 장군은 스스로가 법을 어겼다는 말이오??!!”라고 말하며 모두가 이를 트집 잡아 들고일어났고, 흥분한 토리크는 괴상한 소리로 넋두리마저 쏟아냈다.

  “폐하, 법을 무시한 파르코 장군은 반드시 큰 벌로 다스리셔야 하옵니다!” 나리프도 가슴을 치며 당장 거들었다. 그러나 에반은 아직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국법 어디에도 그런 조항은 없소이다. 그동안 장군들을 비롯한 한즈의 귀족들이 관행적으로 코지의 원주민을 업신여기고 깔보고, 남자 아이들을 강제로 본토로 데려왔었고, 그런 관행이 오래되어 이제는 하나의 법처럼 백성들 사이에서 굳어진 개념일 뿐, 우리 왕국의 법 어디 어느 조항에 코지의 원주민은 코지에서만 고립시키라는 문구가 있다는 말이오?” 파르코는 물러서지 않고 조목조목 에반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자 나리프와 토리크는 입만 벌린 채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짐도 오래 전부터 그런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소. 하이란이 한즈로 온 것은 절대 불법이 아니니 더 이상은 거론을 하지 마시오.” 왕이 단칼에 결론을 내렸다.

  하여간 에반 측은 계속 죽을 쑤고만 있었다. 

  물론 사냥터에 모인 대신들과 군중 중에는 에반을 따르는 무리가 조금 더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의 분위기는 예전에 에반과 측근들이 누리던 그 거만함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파르코는 감사의 뜻으로 다시 한 번 왕에게 고개를 숙이며 하이란을 일어나게 하였다. 그리고 왕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라고 말하였다. 하이란은 공손하게 몇 걸음을 옮겼다.

  “네 어미가 진정 완저 총독이 맞느냐?” 하이란을 유심히 쳐다보며 왕이 천천히 물었다. 하이란도 얌전히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그렇사옵니다, 폐하.”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누구를 많이 닮은 것 같은데... 네 아비는... 혹시 누구인지 아느냐?” 왕이 다시 물었다.

  “모르옵니다, 폐하. 그저 어미 혼자 소녀를 키웠다고만 들었사옵니다.”

  “완저와 같은 여장부가 아무 남자와 인연을 맺지는 않았을 터... 완저의 딸이라면 네 아비는... 분명 한즈에서 코지로 유배를 간 높은 선비 중 하나였을 텐데... 그게 누굴까... 누구를 이렇게도 닮은 것일까...” 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에 하이란은 지난 세월이 설움에 북받쳤는지 고개만 숙인 채 낮은 소리로 훌쩍였다.

  이를 본 에반의 측근들은 계집애라 역시 찔찔거린다면 고개를 돌려 혀만 찼다.

 

  “그래, 네 소원이 이스트 포인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느냐?” 왕은 결심이 선듯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 하이란은 눈물을 닦으면서 “네, 폐하!!”라고 당차게 말하다가 다시 울먹이고야 말았다.

  "이스트 포인트의 훈련과정은 매우 힘들고 벅차다. 남자들도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의 몸으로 그런 곳에 들어가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번에는 매우 냉정한 표정으로 왕이 물었다. 그러자 하이란은 기다렸다는 듯, 작심한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소녀의 어미인 완저 총독은 어느 남자 장군에게도 뒤지지 않는 무예와 지략,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가졌사옵니다. 또한 오합지졸이었던 코지의 원주민을 불러 모아 섬을 지키는 경비대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강한 전사로 훈련을 시켰고, 그들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퓨그(Fuug)와 싸워야하는 조국의 독립전쟁에서도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또 본토가 아닌 코지에서 산다는 그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고 싶다는 그 포부마저 제대로 펼쳐 보일 수 없었습니다. 폐하, 소녀는 퓨그와의 전쟁에서 가장 선봉에 서고 싶사옵니다. 이 한 몸 조국에 바쳐 우리의 위대한 조상님들이 말 달리시던 저 맨츠(Mantz) 벌판을 휘저어, 민족의 원수인 호크런의 심장에 칼을 꽂고 싶사옵니다. 그러니 폐하, 이런 소녀의 간절한 소원을 부디 거두어 주시옵소서.” 하이란이 눈물로써 왕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이스트 포인트 출신 장군들은 버럭 화를 내며 가만히 있질 않았다.

 

  나리프와 토리크는 왕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는 “절대 불가하옵니다, 폐하!”라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다른 장군들도 몰려와 고개를 조아리며 한 마디씩 반대 의견을 강하게 쏟아냈다.

  “유사 이래로 이스트 포인트에 계집이 입학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사옵니다!”

  “여자 아이 하나가 이스트 포인트에 들어온다고, 아군의 군사력이 두 배가 되겠사옵니까? 아니면 호크런이 겁을 먹겠사옵니까?”

  “하이란을 장교로 만들어 전방에 보낸다 한들, 우리 군사들이 그녀의 말을 제대로 따르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퓨그의 매머드를 쓰러뜨리려면 에보크처럼 호랑이를 잡는 용기와 무예가 필요한 것이지, 하이란처럼 꽃사슴의 등에 올라타는 조련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옵니다, 폐하!!”

  에반의 측근 장군들의 항의는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다. 대신들이 모두 보고 있는 왕의 앞이라는 최소한의 격식과 예의도 이들에겐 전혀 의미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왕은, 무릎을 꿇은 장군들을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이미 충분히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에반 대장군의 뜻도 이들과 같습니까?” 오히려 담담한 어조로 왕은 에반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에반은 가볍게 고개를 한 번 숙인 뒤 천천히 점잖게 대답을 했다.

  “여기 장군들이 저 여자 아이에게 사사로운 감정이 있어 이토록 반대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옵니다, 폐하. 조국에 충성을 바치고 싶은 하이란의 그 마음이 매우 훌륭하고 소중한 것처럼, 이스트 포인트라는 유일한 사관학교의 오랜 전통을 지켜 내는 것 또한, 동문 장군들에게는 목숨처럼 소중한 일이옵니다. 여자도 사관생도가 될 수 있고 남자 병사를 여자가 지휘할 수도 있다는 나쁜 선례가 생긴다면, 이스트 포인트의 전통은 물론이거니와 700년 넘게 내려온 이 나라의 예법은 송두리째 뒤집어질 것이옵니다. 남자가 해야 할 일과 여자가 해야 할 일은 분명 구분이 되어 있지 않겠사옵니까? 폐하께서는 장군들의 이런 충정을 깊이 헤아려 주시옵소서.” 에반은 제법 침착하고 어진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대답했다.

  왕은 에반의 얘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스트 포인트의 전통이라...... 그럼, 파르코 장군의 의견은 어떠하시오?” 이번에는 조금 초조한 목소리로 왕이 물었다.

  “예, 폐하. 신은 이스트 포인트를 다니지 않아 그곳 동문들의 분위기를 잘 알지는 못하옵니다. 하지만 소신이 알기로 *700여 년 전, 콘스트라(Konstraa) 태조 폐하께서는 삼국으로 분열된 이 땅을 통일하시고 코르(Corr) 왕국을 세우시어 민족통일의 초석을 마련하시면서, 동시에 이스트 포인트도 창설하여 전국 각지에서 인재를 선발해 훌륭한 군인으로 키워내실 때, 폐하의 건국이념에 거부감을 느끼고 반대했던 지역의 출신들은 일단 입학을 시키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것도 왕국 초기의 전통이라면 전통이었을 텐데, 세월이 흘러 지역 간의 반목이나 대립이 약화되고 코르라는 하나의 나라로 정신적 통일을 이루어가면서 모든 지역에서 골고루 이스트 포인트의 졸업생이 나왔사옵니다. 다만, 아직도 코지섬은 그 혜택을 받지 못했고, 코지 출신이기 이전에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유사 이래로 지금처럼 코르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사온데, 독립전쟁을 앞두고 이제는 남녀의 구분 없이 백성 중에 능력이 있는 자는 이스트 포인트에 입학을 시켜 훌륭한 군인으로 키워 내는 것이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바가 아닐까 싶사옵니다. 폐하께서 하이란의 입학을 허락하신다면, 또한 하이란 뿐만 아니라 다른 유능한 여장부의 입학도 허락해 주신다면 이들은 몸과 마음을 바쳐 폐하와 국가에 충성을 다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사옵니다. 시대가 변하면 전통도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시대에 맞지 않는 전통은 미래를 위해 바꿔 만들면 다시 새로운 전통이 되는 것이옵니다. 그러니 폐하, 하이란의 입학을 부디 허락하시옵소서. 폐하의 대에서 스스로 새로운 전통을 세우시옵소서." 파르코의 논리정연한 발언에 에반 측에 속하지 않은 중립적인 장군 중 일부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에반과 측근들의 표정은 다시 한 번 처절하게 일그러졌다.

 

  모든 의견을 고루 청취한 왕은 사방을 둘러보며 근엄하게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이스트 포인트의 입학생 심사에서 남녀 간의 차별을 두지 말라. 오직 그 사람의 능력과 정신력, 국가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입학의 여부를 결정하라. 그런 면에서 에보크와 하이란은 오늘 짐에게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이 둘은 별도의 심사 없이 이스트 포인트의 입학을 허락하노라. 오늘의 사냥은 이것으로 파한다.” 불호령 같은 왕의 명령에 찬성이든 반대든 모두가 받들겠다고 대답을 했다. 다만 에반 측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폐하, 여자의 입학은 불가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숙소로 들어가는 왕의 뒤에서 에반은 다시 생각해 달라며 분노에 가득찬 항의를 했고 측근들도 옆에서 복창을 하였다. 그러나 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에반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측근들 중에는 긴 칼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울분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솔직히 왕이 에반에게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내관들은 종종 걸음으로 왕을 따라가기는 했지만, 당장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지는 건 아닐지 걱정하며 불안에 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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