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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열한번째 시간
작가 : 현실주의
작품등록일 : 2019.9.3

하늘을 채웠던 신화는 흩어지고, 땅을 메웠던 전설은 부스러진 현대.

신화의 후예인 강력팀 형사 이치현은 자신의 정체를 억누른 체, 인간으로서 살아간다.

하지만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둠이 그의 삶을 뒤흔들기 시작하는데...

과연 그는 끝까지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4화
작성일 : 19-09-05 13:19     조회 : 192     추천 : 0     분량 : 7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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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경인 고철상 주변은 이미 경찰이 통제 중이었다. 치현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층층이 뒤섞인 냄새들이 휴식 중이던 코를 깨웠다. 두통이 몰려왔다. 치현은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러니 왠지 <레옹>의 게리 올드만 같은데.

 

 “왔냐. 할만 해?”

 

 “네 괜찮습니다. 어떻습니까?”

 

 “먼저 보고 말해봐라.”

 

 “감식반 아직 안 왔습니까?”

 

 “그러니까 보라는 거지. 걔들 있으면 우리가 어디 고개라도 들이밀 수 있겠냐.”

 

 팀장은 너스레를 떨었다. 치현은 현장으로 접근했다. 새벽이슬이 내려앉은 바닥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있었다.

 

 “족적 신경 쓸 필요 없다.”

 

 녹슨 고철더미의 무덤 사이로, 문이 열린 하얀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에 붙어있던 청 테이프가 바람에 처연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피해자가 그 안에 있었다.

 

 시신은 이미 부패가 시작된 상태였다. 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냄새를 맡았다. 오래는 되지 않았다. 길어야 이틀? 사흘? 고철상 주변의 냄새가 정확한 추정을 방해했다. 다른 정보가 필요하다.

 

 피해자는 외견 상 60대쯤 되어 보였는데, 표정이 평온했다. 외견상 추정되는 사인은 가슴에 꽂힌 칼로 보였지만, 주변 출혈량이 적은 게 걸렸다. 칼의 손잡이가 익숙했다.

 

 사냥용 나이프다.

 

 억지로 냉장고에 집어 넣다보니 다리는 심하게 꺾이고 접힌 상태였다. 손은 배꼽 부근에서 잘 모아져 있었다. 피해자는 모직 와이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와이셔츠는 소매 끝이 해져있었고, 바지는 흰 페인트와 검은 때, 시멘트가 묻어있었다.

 

 누렇게 변한 식탁보 같은 것이 볼에 붙어있었다. 치현은 장갑으로 식탁보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조금 뭉개지긴 했지만, 식탁보에는 얼굴 모양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식탁보는 삼베와 자투리 천으로 무늬를 넣어 만들었다. 치현은 식탁보를 원래대로 돌려놨다.

 

 보는 것은 이정도로 충분하다.

 

 치현은 피해자 주변에서 몇 번이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신중하게 냄새를 분석했다. 고철장의 금속 냄새와 오물 냄새를 한참 걷어내고서야 피해자의 냄새가 드러났다.

 

 먼저 술 냄새. 도수 높은 소주다. 오래 절은 땀내와 분비물 냄새, 지린내. 매연에 검게 절은 도시의 흙냄새. 시멘트 가루. 조금 더 정밀하게 분리하고 싶었지만, 고철상의 냄새와 너무 뒤섞인 탓에 더는 특정할 수가 없었다.

 

 대신 치현은 식탁보에 집중했다. 그는 식탁보를 만진 장갑을 코에 갖다 대었다. 역한 시체 냄새에 코가 화끈거렸다. 하지만 치현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더욱 코를 가까이 가져갔다.

 

 깊게, 깊게, 더욱 깊게.

 

 끝도 없이 들이마시는 숨에 폐가 비명을 지를 때 즈음, 마침내 잔뜩 엉킨 냄새의 실타래 속에서, 치현은 가느다란 실 한 줄을 찾아냈다.

 

 향냄새.

 

 절일까, 아니면 점집일까. 어쩌면 장례식장일수도 있다. 더 참으면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 치현은 서둘러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시간이 다 되었다. 감식반이 도착한 것이다.‘비’전문가는 이만 물러나야 한다.

 

 “어떠냐.”

 

 팀장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발로 뛰는 걸 선호하는 팀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남들과는 다른 것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치현은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특이합니다.”

 

 “어떤 점이?”

 

 “일관성이 없습니다. 용의자는 냉장고에 피해자를 넣어 고철상에 유기할 정도로 대담합니다. 반면 시체의 가슴에 꽂힌 칼을 은닉하지 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얼굴을 식탁보 같은 걸로 덮었습니다.”

 

 “얼굴을 덮었다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식탁보에 얼굴 형태가 남았습니다.”

 

 “우연일 가능성도 있을 텐데.”

 

 “시신을 냉장고에 억지로 넣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식탁보가 우연히 끼어들어갔다면 모를 리가 없습니다.”

 

 팀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아마 혀를 찰 것이다. 어디서 탐정 놀이를 하냐면서. 형사는 증거를 모아서 조각을 맞추는 것이 일이다. 추리를 하면서 상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치현은 팀장이 유독 왜 자신에게만 이런 것을 물어보는지 알지 못했다. 승태는 항상 치현에게 남들과 다른 것을 물어보았고, 남들과 다른 것을 시켰다. 치현은 그럴 때마다 매번 냄새를 맡으며 팀장의 속내를 가늠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시도는 항상 실패로 돌아갔다. 팀장에게서는 오직 신뢰와 믿음의 냄새만이 났기 때문이다.

 

 그저 따르는 것 외에 무슨 선택지가 있을까.

 

 “칼은?”

 

 “사냥용 나이프입니다.”

 

 “어떻게 알았냐? 확실해?”

 

 확실하다. 치현이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물건이니까. 그의 아버지는... 사냥꾼이었다. 사냥감을 가리지 않는. 머리가 오래된 기억 속에서 화약 냄새를 끄집어냈다. 산과 산 사이를 튕겨 다니며 불어나던 그때의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헐떡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죽음에 임박한 생물의 채근거림.

 

 치현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아버지가 사냥꾼이십니다.”

 

 “포수라.”

 

 팀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약한 호기심.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팀장은 절제했다. 그는 팀원 파악과 관음증의 미묘한 경계를 파악할 줄 알았다.

 

 “아까 대담하다고 했다만, 내가 보기에는 그냥 우발적인 살인으로 보인다.”

 

 팀장의 냄새는 치현이 물어뜯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나 참. 빨리 진급하던가 해야지. 입술이 꼼지락거렸다.

 

 “사냥용 나이프는 눈에 띄는 곳에 보관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복장을 보아하니 그쪽이 직업인 것도 아니고. 거기에 유기방법이 문제입니다.”

 

 “당황해서 대충 커 보이는 곳에다 쑤셔 박고, 쓰레기장에 버렸다. 이게 왜?”

 

 “일반적으로 유기는 혐의와 증거를 없애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버리기도 힘든 냉장고에 넣었고, 반드시 들킬 장소에 유기했습니다.”

 

 치현은 뒷말을 삼켰다. 팀장 역시 치현의 말을 이해했다. 그는 주위를 살폈다.

 

 “아까 대담하다고 말한 게?”

 

 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은 허리에 손을 얹었다. 심각한 표정이었고, 심각한 냄새였다.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래서 결론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입니다.”

 

 팀장은 치현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피식했다. 그렇다. 지금 상황에서는 100점짜리 정답이다. 예제든 변형기출이든 상관없이 통용되는 정답. 하지만, 치현과 팀장 모두 1점짜리 불안을 지우지는 못했다. 증명에서 ∴를 빼먹은 것 같은 그런 불안감 말이다.

 

 “뭐 일단 감식반 분석결과 나오기 전까지는 전부 다 가상이네. 넌 나하고 여기서 잠깐 대기하자.”

 

 “일단 탐문을 해야”

 

 “이미 애들 풀었다.”

 

 “그래도.”

 

 “이미 냉장고 수거한 아파트 단지 쓰레기장에도 보냈다. 더는 할 일 없어.”

 

 팀장은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더는 토 달지 말라는 뜻이다. 치현은 통제선 밖으로 물러났다. 말이 대기지, 사실 잠깐 쉬라는 말이다. 당직했다는 것을 고려한 팀장의 배려였다. 덩치도 큰 양반이 이런 곰살가운 짓은 또 잘한다니까.

 

 잠시 쉬는 동안 감식반이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하자 현장은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감식반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온갖 잡다한 것들을 봉투에 담았다. 팀장은 감식반장과 잠깐 이야기하고는 치현에게 다가왔다.

 

 “한숨 자고 오후에 나와라.”

 

 “괜찮습니다.”

 

 “젊은 놈이 지금부터 몸 안 챙기면 나중에 골병든다. 게다가 피곤해서 제대로 눈도 못 뜨면서 무슨 고집이야. 잠깐 잠이라도 자고 와. 어차피 한동안 집에 들어갈 일 없을 테니까.”

 

 아까 관자놀이를 만졌던 것이 팀장의 눈에 걸린 모양이다. 사실 한 번의 당직 정도로 피로해지진 않는다. 나는 늑대니까. 하지만 치현은 팀장의 고집이 얼마나 질긴지 알고 있었기에, 얌전히 물러났다.

 

 치현은 집으로 가는 길에 공중전화를 찾았다. 신호음이 길게 갔다. 평소였다면, 이렇게 조심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평소가 아니다.

 

 “누구십니까?”

 

 점잖은 늙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접니다, 회장님.”

 

 “이 경장님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연락을 주시는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송찬요 회장이 다정하게 말했다. 오래 전, 아버지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다는 그는 어머니를 제외하면 늑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우연히 업무상으로 치현과 엮이게 된 이후, 송 회장은 종종 그에게 도움을 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그가 의심스러웠다.

 

 “잠깐 만납시다. 오늘 시간 언제 되십니까.”

 

 “어쩌지요. 제가 지금 급한 일이 있는데.”

 

 치현은 송 회장의 숨소리와 말에 집중했다. 불안이나 초조함은 감지되지 않았다. 정말 그는 결백한 걸까? 아니면 연륜으로 쌓은 위장일까?

 

 “그럼 언제 시간되십니까.”

 

 “좀 복잡한 일인데다가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확답 드리기가 어렵군요. 제가 나중에 연락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이가 시큰거렸다. 이 도시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가족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늑대에 대해서 아는 인간이다. 이렇게 점잔피울 필요가 있을까? 바로 달려가서 이라도 드러내야.

 

 “형사님?”

 

 “그러면 그때 전화주시죠.”

 

 치현은 전화를 끊었다. 난 인간이다. 아니, 인간의 삶을 살기로 했다. 인간답게, 경찰답게 행동하자. 그렇게 해야만 한다.

 

 치현은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낡은 빌라의 원룸은 한기가 가득했다. 최소한의 가구와 생필품만이 있는 원룸은 집이라기보다는 은신처에 가까웠다. 치현은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침입이나 도청의 흔적은 없었다. 여기는 안전하다.

 

 내 영역이 어디이고 적의 영역이 어디인지 아는 것부터가 사냥의 시작이다.

 

 언젠가 아버지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맞는 말이다. 동시에 잊어야하는 말이기도 하다. 치현은 고개를 흔들며 얼른 그 말을 잊어버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깟 고개를 흔드는 것 따위로 무엇이 지워지겠는가.

 

 어쨌든, 어쨌든, 어쨌든. 제발, 어쨌든.

 

 이제부터는 개인시간이다. 시간은 9시 17분. 팀장은 오후에 나오라고 했다. 최대 14시까지는 여유가 있다. 집에서 공사장까지는 1시간 거리.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치현이 공사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한창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인부들이 하나둘 흩어지는 와중에, 관리사무소장은 통제선을 지키고 있는 경찰과 실랑이 중이었다.

 

 “아니, 여기 전체서 패싸움 난 것도 아니고, 꼴랑 사무실 앞에서만 이라면서요? 거기만 빼고 들어 가겠다니깐?”

 

 “선생님,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누차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 납기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루 늦어지면 손해가 얼마인줄 알아? 당신이 책임질 거야! 어? 책임자 불러!”

 

 마법의 단어 나왔네. 통제선을 지키고 있던 경찰은 순경이었다. 그는 열심히 무전기와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하지만 대답을 하는 선임이나 상사는 없었다. 어쩌겠나. 짬 처리지만 그거라도 먹어야 짬이 늘지. 순경은 치현을 향해 애처로운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지나갑시다.”

 

 순경을 뒤로한 채, 치현은 문제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핏자국과 번호 스티커. 벽에 난 금. 더는 달콤한 부패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경직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혹시 유기물이 있는지 둘러봤지만, 현장은 청소라도 한 것처럼 아주 깨끗했다.

 

 치현은 잠시 주변을 지켜봤다. 아침부터 꽤 많은 인력들이 나와 있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봤지만,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당연히 있어야할 감식반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 있는 인원들은 대부분 순경이거나 사복인원들이었다.

 

 입안이 찝찝했다.

 

 공사장은 우리 서의 관할구역이다. 때문에 최소한 한두 명이라도 우리 서 인원이 있어야 한다.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타 서 인원의 활동은 월권행위이다. 이런 월권행위가 묵인되려면, 최소한 본청 급에서 케어 해야 한다.

 

 돈 가방 정도야 아직 못 찾은 것뿐이지 찾는 건 시간문제니까.

 

 감찰관의 말. 쌍둥이파와 형수파의 관계. 현장의 인원들. 팀장 때문일까. 무의식적으로 추리를 하기 시작했다.

 

 최소한 본청 급에서 형수파를 이용하여 쌍둥이파를 낚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계획이 어그러졌고, 나를 쌍둥이파의 빨대로 의심하고 있다. 뭐가 어그러졌기에 나를 빨대라고 의심하고 있는 걸까. 뻔하다.

 

 김원규. 그리고 사라진 돈 가방. 이 두 개다. 특히 김원규의 경우는 심각한 문제다. 그는 나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본청이든, 형수파든 쌍둥이파든 어딘가에 속한 자라면, 그 조직 역시 나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봐야한다.

 

 사방이 적이다. 선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유출경로를 차단하고.

 

 차단? 어떻게 차단하게? 고소라도 하게? 아니면 협박이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어지럽다. 생각이 많아진다. 움직이자. 치현은 천천히 김원규의 도주 경로를 되짚으며 주변을 탐색했다. 인부들이 먹다버린 간식봉지와 음료수병. 종량제 봉투. 시멘트 포대. 파레트. 최소한 빨대라는 의심은 없어지지 않을까? 불운이었다고, 우연의 연속이었을 뿐이라고 결론내리면서 말이다. 한 3~4일만 고생하면 금방 오해도 풀리고

 

 슬슬 사람들 눈앞에 지렁이라도 보여줘야 모가지 보전하실 분들이 있다는 뜻이야.

 

 난 지렁이구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백업. 치현은 으르렁거리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공구상자, 삽. 철근더미, 배선작업을 위해 뚫은 구멍.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타일, 바닥재. 모래더미, 빈 물통과 수레.

 

 공사장 입구. 통제선을 지키던 순경과 공사장 직원간의 실랑이는 잠시 소강상태였다. 직원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었고, 순경은 대답 없는 무전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치현은 돈 가방을 찾지 못했다. 못 찾을 리가 없는데. 이미 현장 인원들이 수거해갔나? 하지만 찾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들도 아직 찾지 못한 듯 했다. 내가 뭘 빠트렸나?

 치현은 몇 번이고, 꼼꼼하게 경로를 재탐색했다. 하지만 여전히 돈 가방의 행방은커녕 냄새조차 찾지 못했다. 치현은 계단에 걸터앉았다.

 

 당일 도주 경로는 일직선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곳은 펜스나 격벽이 세워져서 출입이 불가했으니까. 그리고 사건 발생시점부터 지금까지 공사장은 완벽한 차단 태였다.

 

 철민의 보고 후에 동료들이 오기 전까지만 빼고.

 

 같은 경로로 왔다면 내가, 아니 우리가 몰랐을 리가 없다. 누군가 다른 경로로 들어와서 돈 가방을 가져간 거다. 확인이 필요하다. 치현은 공사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난간 하나 없이 탁 트인 옥상은 아찔했다.

 

 치현은 옥상의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섰다. 그리고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땀 냄새. 짜증과 피로. 철근과 시멘트, 물을 머금은 모래. 아이스크림과 초코파이. 중국음식 특유의 향신료, 라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썩은 나무와 배기가스, 쉰 김치와 곰팡이, 생선 썩은 냄새. 음식물 쓰레기다. 먼지와 온갖 오염물질에 뒤섞인 흙냄새, 찢겨진 종이 박스의 퀴퀴한 냄새. 너무 들어왔다. 조금만 빠져나오자. 딱 어제의 냄새까지만 파고들어야 한다. 의약품용 알코올 냄새, 담배. 욕망, 분노, 혐오. 냄새가 점점 더 강해졌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냄새였다. 이건.

 

 “아래 경치가 괜찮죠? 그래도 한 발자국 정도는 뒤로 물러나시죠. 제가 그런 건 별로 안 좋아해서.”

 

 오래 물을 만나지 못한 돼지들에게서 나는 진하고 독한 냄새.

 

 감찰관이 그를 보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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