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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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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25 재탄의 날
작성일 : 19-09-04 22:40     조회 : 306     추천 : 0     분량 : 4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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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초에 허공이 있었다. 그 허공을 비집고 세상을 만든 것이 원초의 빛이었다. 그 원초의 빛이 자신을 떼어내 세상의 규칙과 모든 형체를 만들자, 빛이 아니게 된 그것들로부터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림자는 세상에 온갖 부정을 흩뿌렸고, 곧 저주라 불리게 되었다.

 

  원초의 빛이 창세를 거듭할수록 저주 역시 거듭 힘을 키워갔다. 이윽고 원초의 빛에 대적하는 원초의 저주가 나타났다. 원초의 존재들이 세상의 권좌를 두고 싸우자, 세상에 큰 혼란이 찾아왔다. 무수한 창세와 멸망이 반복되며, 겨우 살아남은 이들만이 숨을 죽일 뿐이었다.

 

  조지는 그 모습을 생생하게 바라보았다. 자신이 왜 이것을 보고 있는 것인가. 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렉을 살리기 위해 상처를 치유하는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날 즈음에 새하얘진 눈앞은 이 광경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없어. 나는 그렉 형을 살려야 한다고. 그러자 조지의 앞에 놓인 풍경이 빠르게 흘러갔다.

 

  창세와 멸망의 반복 속에서 원초의 싸움을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서로 다른 종족,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다른 창세와 멸망의 생존자들. 이 싸움을 멈추기 위해 모인 그들은 모두 다른 재능을 가진 예술가였다. 그들은 원초의 존재들이 아름다움에 이끌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예술로 싸움을 끝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홉 선지자, 조지는 그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어릴 적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기도문에 그들의 이름이 올라오곤 했으니까. 후에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드높여져 불리겠지. 미하일로스, 지브릴, 라파엘라, 아우리엘, 라구엘, 사리엘, 셀라피엘, 예레미엘, 바라키엘.

 

  원초의 싸움이 끝나고, 마지막 창세가 시작되었다. 원초의 빛은 원초의 저주와 함께 잠들었다. 아홉 선지자는 거듭된 창세와 멸망 속에서 망가지거나 사라진 여러 규칙을 되살려 세상을 완성했다. 하지만 세상 곳곳에 크고 작은 저주가 아직도 남아 있었고, 선지자들은 저주로부터 세상을 지키기 위해 원초의 빛을 본뜬 영혼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것이 영원한 빛의 시작이었다.

 

  조지는 다급해졌다. 이런 것을 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니까. 그렉 형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야 해. 조지는 계속해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창세기의 끝에서 두 엘프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사랑스러운 눈길과 환한 미소로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지는 그들을 몰랐다. 하지만 그의 생각보다 먼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엄마, 아빠.”

 

  셀 수 없는 시간의 윤회. 조지는 그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자신의 첫 번째 생임을 알아차렸다. 조지의 첫 번째 생인 그 엘프는 순식간에 자라, 부모를 도와 대장간 일을 돕다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 마지막 창세기가 끝나 혼란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그는 행복하게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생을 마감했다.

 

  빛의 궤적은 남쪽의 대양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생은 인어였다. 맏언니로 태어난 조지의 두 번째 생은 여동생들을 옛 멸망의 흔적인 해구의 심연에서 튀어나온 저주의 산물로부터 지키다가 짧은 생을 마감했다.

 

  세 번째 생은 서쪽 평원의 가난한 인간 가정의 막내로, 네 번째 생은 다시 북쪽의 엘프로, 다섯 번째 생은 대삼림의 요정으로. 그는 윤회의 시작과 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하나의 생이 끝날 때마다 그 모든 이야기가 한 편의 책이 되에 조지의 영혼 속에 있었던 서고에 차곡차곡 들어가고 있었다.

 

  조지는 혼란스러워졌다.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이 휘몰아치는 희로애락의 감정은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웠다. 자신이 경험했지만, 조지가 경험한 것은 아니니까.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그의 서고는 어느새 마지막 한 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지가 기억하는 이번 생의 부모님은, 유구한 전통을 가진 형리 집안이었다. 하지만 그 유구한 전통에는 평생을 떠돌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글픈 가업을 이을 외동은 날 때부터 병약했다. 그들은 포대기에 싼 조지를 처음 안아 들었을 때부터 직감했다. 그들의 집안은 여기서 끝이라는 것을.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대대로 형리였던 그들은 유복했다. 병약한 아이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만약 그가 건강해진다면, 그때 다시 가업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들은 조지를 자신들의 인내가 닿는 만큼 열심히 키웠다.

 

  그러나 조지의 병약함은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몸의 병약함은 자라면서 해결될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마음의 병약함은 남이 해결해줄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몇 해를 넘기면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로 떠나는 집에서 살고, 일하고 돌아올 때마다 사람의 피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는 부모와 살면서 병약한 마음은 오히려 더 상처 입었다.

 

  결국, 그들은 포기했다. 이 아이는 우리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는 쪽이 더 행복했을 것이라며. 그들은 쉬이 상처 입는 마음을 보듬어주는 부모가 아니었다. 오히려 상처 입지 않기 위해 무감각해지기로 한 자들이었다. 아무리 죄를 지은 자들에게 벌을 주는 역할이라고는 하나, 사람이 사람에게 큰 고통과 죽음을 내린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조지도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새벽녘 교단에 도움을 청했다.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면 줄곧 그 마을의 성소에 들러 사제들과 함께 기도했다. 하지만 성소는 곧 마을 전체였다. 형리는 마을의 외부인이고, 형리의 자식도 다르지 않다.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고, 엮이지 않는 게 좋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조지와 함께 기도해주었지만, 그 이상으로 조지의 문제를 도와주려고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형리의 아들인 그와 아이들이 놀지 않도록 은근히 따돌렸다. 조지는 그가 거쳐 간 모든 성소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그들은, 교단은 조지는 물론이고 조지의 가족도 구해주지 않았다.

 

  교단이 따르는 영원한 빛이 이 세상의 온갖 미덕과 아름다움의 현신이라면, 그들이 가리키는 모든 것이 모순이다. 조지는 언제부턴가 성소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조지는 사랑과 상처를 동시에 받으며 떠돌다가 아르티제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렉을 만났다. 거기서 처음으로 그는 빛의 존재를 다시 느꼈다. 쉬이 상처 입는 마음은 고쳐지지 않고, 마을 사람들의 은근한 눈길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는 행복했다. 상처를 치유해줄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것이 자신이 그렉을 사랑하고 있기에 그의 치유를 받아들일 수 있었음을 알았을 때, 그는 고민했다. 이 마음을 그에게 털어놓아도 괜찮을까. 또 상처 입지는 않을까. 그나마 얻은 행복을 자신의 손을 망가뜨리지는 않을까. 그렇지만 그는 끝내 그렉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안아주었다. 상냥한 거절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마저도 조지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 사랑에 끝을 고해야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조지는 그 뒤로 조용히 그를 좋아하기만 했다.

 

  아르티제를 떠나게 된 그 날, 조지는 사실 알고 있었다. 조지는 형리의 일을 이어받지 않는다. 그의 부모도 무감각해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한마음으로 안식을 원했다. 폭풍우 속의 사고를 가장해서.

 

  그래서 그렉이 뒤늦게 사랑을 이야기하려고 했을 때, 조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말을 듣고서 대답하게 된다면 떠날 수 없었으니까. 도망칠 수도 있지만, 차마 그렇다고 가족을 배신할 수도 없었으니까. 안식을 버리고 가시밭길의 행복을 취할 각오와 언젠가 기사가 될 그렉을 영원히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힘들어하는 자신을 보는 그렉의 마음이 더 아프니까. 조지는 있을 수 없는 다음을 기약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멈추었다.

 

  폭풍우 속에서 마차가 쓰러지고, 마지막으로 눈동자에 새겨진 것이 흡혈귀 에어드부르가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자신을 흡혈귀로 만들어준다면, 어쩌면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흡혈귀가 된 나를 보고 그가 슬퍼하면 어쩌지. 조지는 마지막까지도 그렉을 걱정했다.

 

  “그랬구나.”

 

  영원한 빛은 이제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창백했던 얼굴에 건강한 혈색이 돌고, 퇴색된 머리카락에 생기가 돋는다. 그 찬란함이, 시간을 되감아 상처를 닫고, 다친 생명을 치유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거둬지고, 늪에 빠진 어린 생명이 지상으로 올라온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여기에 있었던 거야.”

  “조지.”

 

  그렉은 조지를 바라보았다. 행복한 얼굴에 어딘가 씁쓸한 표정이 감돌았다. 그는 일어나서 조지를 향해 달려가 안겼다. 그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했다.

 

  “미안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아니야. 나를 봐, 형.”

 

  조지는 허공에 살짝 발을 떼고 그렉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보면, 자신이 그렉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감이 온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지켜주고 싶기에 더 조심스러운 사람.

 

  “나는 여기에 있어. 이 마을에 온 순간부터, 형과 떨어졌던 적은 없었어.”

 

  조지는 그대로 그렉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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