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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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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24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4)
작성일 : 19-09-04 22:37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3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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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흐를수록 조지는 자신의 허기를 더 버틸 수 없었다. 어제 그렉의 목덜미와 가슴팍에서 맥동하는 달콤한 향기에 순간 눈이 돌아갈 뻔했다. 자신을 물어도 좋다고 말한 그의 말 때문에 더더욱. 조지는 본능에 먹히려는 자신과 그 본능을 부추기는 그렉으로부터 뒷걸음질 쳤다.

 

  해는 천천히 떨어지고 있다. 오늘은 오지 않으려나. 아니면 오늘은 늦게 오는 걸까. 오지 않았으면 하는데. 분명 오늘도 그가 자신을 찾아온다면, 자신은 이겨낼 수 없겠지. 조지는 자신이 그렉을 밀어내는 상황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렉과 에어드부르가의 목적이 그것은 아닐까.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잘못을 저질러 아르티제에서 영원히 떠나는 것 말이다.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조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등을 떠밀려 쫓겨나는 것은 싫다.

 

  내가 직접 떠나자. 짐승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도 허기는 달랠 수 있다. 햇빛에도 타지 않는 특별한 신체가 있으니 정처 없이 떠돌 수 있다. 그러다가 체칠리아처럼 강경하고 강한 힘을 가진 사제를 만나면, 끝내 그렉의 이름을 부르며 소멸하겠지.

 

  그는 그믐달 왕의 무덤이 드리운 그림자에서 발자국 하나를 뻗었다. 작별이다.

 

  “어디 가?”

 

  조지의 뒤로 그렉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손에는 어제 가지고 놀았던 가죽 공이 들려 있었다. 조지는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그를 돌아보는 일은 없다. 조지의 뒤로 그렉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조지의 결심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조지, 가지 마. 나 여기 있잖아.”

 

  조지는 검은 안개가 되어 몸을 숨기려 했다. 여기서 몸을 숨기면 그렉의 앞에 나타날 일은 앞으로 없다. 그렉은 손에 들려 있던 가죽 공을 땅에 내던지고 빠르게 달렸다. 뒤에서 그렉이 팔을 뻗었다. 그렉의 가슴과 조지의 등이 맞닿았다.

 

  차갑게 식기를 원하는 심장의 뒤에 사랑으로 뜨겁게 뛰는 심장이 포개졌다. 조지는 숨을 헉 들이켰다. 살아있는 생명의 따스함이 주는 자극은 너무나도 컸다. 조지의 입안이 바짝 말랐다. 이 본능은 지금 그렉에게 너무 위험했다.

 

  “…도망쳐.”

  “아니, 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가지 마.”

  “제발!”

 

  조지가 그렉의 팔을 벗어나 뒤돌았다. 창백한 얼굴에 터질 듯이 상기된 붉은 볼. 떨어지는 눈물이 닿는 입가에는 어느새 삐죽 튀어나온 송곳니가 보였다. 억눌러온 흡혈귀의 본능이 혈관에 박아 넣기 좋게 신체를 변형한 탓이다.

 

  조지가 뛰쳐나가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넘어진 그렉은 그의 입가를 보고 상황이 심각해졌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는 진짜 흡혈귀가 아니다. 거짓된 본능을 달랠 수만 있다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다. 그렉은 조지를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조지는 팔을 휘두르며 그렉의 손길을 거부했다.

 

  “내가, 못된 짓을 하는 것을 원하는 거야?”

  “조지, 그게 무슨 말이야?”

 

  붉게 상기된 볼을 넘어, 창백했던 얼굴 전체가 눈물의 소금기에 긁혀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마을을 떠났으면 하는 거잖아. 사제가 흡혈귀에게 먹히기를 바란다느니, 이대로 굶주린 나를 여기에 둔다느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뿐이잖아.”

  “그런 거 아니야. 조지,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다가오지 마!”

 

  조지의 외침에도 그렉은 천천히 다가왔다. 조지는 그렉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조금은 무섭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몸이 굳어서 차마 도망가지도, 그를 밀쳐내지도 못했다.

 

  그렉은 씁쓸한 웃음도 지을 수 없었다. 조지에게 참을 수 없는 갈증과 마음의 고통을 안겼으니까. 그것이 그의 진정한 모습을 끌어내기 위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조지에게는 그 하나하나가 그렉의 거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것이 이 여린 아이에게 어떤 충격으로 다가왔을지는 그렉이 감히 상상할 수도 없겠지.

 

  그렉은 몸이 굳어 어쩌지도 못하는 조지를 다시 껴안았다. 심장과 심장을 다시 포개자, 조지의 굳은 몸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축 늘어지듯이 조지의 팔이 그렉의 등을 휘감았다. 그렉은 그의 등을 토닥였다.

 

  “이, 이거 놔!”

  “미안해. 네가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내가 너에게 또 상처를 줬구나.”

  “이거 놓으래도! 정말 위험하단 말이야!”

 

  그렇게 말할수록 그렉은 그를 더 세게 껴안았다. 조지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렉은 조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놀란 마음을 어루만지듯.

 

  “봐,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았잖아. 앞으로도 영원히 네가 어디에 있든 너를 찾아낼 거야. 그러니까 떠나지 말아줘.”

 

  조지는 아직도 대답이 없었다. 그렉은 조지를 부르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조지는 본능에 거의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흡혈귀에게 치명적인 장미의 향이 어렴풋하게 나는 목덜미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결한 맥박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을 느끼고 있었다.

 

  그렉은 침을 꿀꺽 삼켰다. 두려웠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 조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치겠다고 했지만, 정말로 죽음이 다가올지도 모를 상황이 되자 생명의 본능이 공포 어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가지 않겠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그는 조지를 믿기로 했다.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해, 조지.”

 

  조지는 그대로 그렉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조지의 입가에는 피가 흥건했다. 입가만이 아니라 그의 목선과 가슴팍에도 핏물이 흘렀고, 손에도 피가 묻어 끈적끈적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렉이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그렉 형…?”

 

  조지는 그렉의 어깨를 흔들었다. 목덜미의 피는 아직 흐르고 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간 옅은 숨결에 핏물이 거품을 일으켰다. 조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피를 빨았다면, 그렉 역시 흡혈귀가 되어야 할 텐데, 그는 그저 죽어가고 있었다. 조지는 그렉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흡혈귀인 그가 어떻게 죽어가는 인간을 구한단 말인가.

 

  “영원한 빛! 이 죄의 대가로 나는 죽어도 좋으니 부디 그렉 형을 살려줘!”

 

  조지는 소리 높여 외쳤다. 자신의 주변을 맴돌던 것을 다 알고 있다며 그는 그렉을 살려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제발! 너희는 뭐든지 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그렉 형을 살려달라고!”

 

  조지는 그렉을 껴안았다. 순수한 생명의 맥박은 흡혈귀가 지은 죄로 인해 옅어지고 있었다. 영원한 빛들의 속삭임이 들렸다.

 

  “가련한 흡혈귀의 모습을 가진 자여. 이 일은 그대가 치러야 할 대가, 그대만이 할 수 있는 일. 너를 위해 죽음의 늪으로 뛰어든 사제 그렉을 살려내라.”

  “내가, 내가 어떻게 하라고! 너희는 항상 이런 식이야. 이 불합리한 세상의 현신들!”

 

  조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영원한 빛들에게 저주의 말을 흩뿌렸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그렉의 숨결이 거의 멎어갔다. 조지는 그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그렉을 편하게 눕혀주었다. 조지는 그를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그렉이 읊었던 기도문들을 떠올렸다. 어둠 속에서, 성소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그의 목소리를 잊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탄생을 축복하고, 죽음을 애도하고, 기쁨을 함께하고, 슬픔을 덜어내는 기도들. 그는 그 어떤 기도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그게 그렉의 목소리였기에 들었고, 우연히 몇 구절을 외었을 뿐이다.

 

  그중에 하나가, 상처를 치료하는 기도였던가.

 

  그는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그렉을 살릴 마지막 방법이라면, 자신의 오랜 회의를 접어두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기도문을 입에 올렸다.

 

  “영원한 빛의 찬란함으로, 시간을 되감아 상처를 닫고, 다친 생명을 치유해주소서.”

 

  조지의 눈물이 그렉의 목덜미에 떨어져 석양을 머금고 금빛으로 떨어졌다.

 

  그렉은 천천히 눈을 떴다. 검은 갈색의 나무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피가 흘렀던 목덜미를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아주 약간의 통증만이 있었던 일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조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의 옆에는 그저 금빛 섬광뿐이었다.

 

  “조지…?”

 

  퍼져나가는 빛줄기는 그의 말에 천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조지가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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