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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내 손가락의 남은 시간
작가 : 모험
작품등록일 : 2019.9.3

"제가 당신께 드릴 능력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입니다. 언제든 저를 떠올리며 시간을 되돌려달라고 비는 순간 전 당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줄 겁니다. 당신이 능력을 사용하고 지불할 대가는 [당신의 신체의 일부, 손가락] 을 주십시오."

.. 예기치 않은 악마와의 만남을 통해 얻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 허나 능력에 따른 대가는 어마어마 했다

 
1부 - 2회 나락의 장소로
작성일 : 19-09-04 09:23     조회 : 184     추천 : 0     분량 : 4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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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읍.. 으아아.."

 

 그는 악어가 먹잇감을 집어삼키듯 머리부터 성식을 삼켜갔다. 숨이 막히는 괴로움과 습한 먼지 향리 가득한 그의 안에서 성식이 용기 내어 눈을 뜨자 뱅글뱅글 도는 나선형의 빛줄기 끝에 그의 눈동자로 보이는 하얀 점이 하나 보였다. 그 점은 점점 커지더니 밝은 빛과 함께 어두컴컴한 골목 안 가로등 아래에서 눈을 뜨게 만들었다..

 

 "여.. 여긴 어디지?"

 

 둘러보니 이곳은 성식이 골목에 들어오기 직전의 거리였다. 그와 함께했던 골목은 사방을 둘러봐도 없었지만 성식은 방금 전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성식의 손가락엔.. 실반지 모양의 까만 문신이 열 손가락 모두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

 

 

 다음날 날이 밝았다.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나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으나 생각 외로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혹시나 싶어 살펴본 손가락엔 여전히 문신이 남아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깨알 같은 글씨로 빙 둘러놓은 듯 새겨져 있지만 영어도 아니고 한글도 아닌 처음 보는 글자라 그냥 넘겼다.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대 속에 출근 준비를 하지만.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김 과장님! 이거 타투 하신 건가요?"

 

 출근 후 자리에 앉자 같은 팀 정대리가 손가락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물었다. 순간 성식은 말문이 막혔다. 어차피 믿지 않을 거라는 심정으로 그냥 퇴근길에 문신을 했다고 했다. 그러자 부서장 자리에 앉아 있던 오 부장이 불같이 화를 내며 성식을 불렀다.

 

 "야! 김 과장! 너 지금 제정신이야? 어제 제안서 다 끝내고 가라니까. 뭐? 문신을 하고 자빠졌어? 이 새끼가 회사가 장난같이 보이냐? 나이 처먹고 뭔 개 같은 짓거리를 하고 앉았어!"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그에게 좋은 떡밥이 던져졌다. 아침 댓바람부터 먹은 욕지거리에 화가 목 끝까지 치밀었지만 성식은 참았다. 꾹 눌러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 부장은 더 득달같이 달려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너 이 새끼 왜 말이 없어? 이제 시팔 대꾸도 하기 싫다 이거냐? 어~ 좋아. 어디 그 잘난 제안서 얼마나 잘 썼는지 한번 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이거 엉망이면 저번 달처럼 인사고과 바닥인 줄이나 알아라."

 

 성식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 참자. 참자. 참고 견뎌야 한다. 이런 일 한두 번 당하냐. 워낙 지랄 맞기로 유명한 오 부장의 팀에 들어왔으면 당연하게 각오하고 참고 지내야 할 일이었다. 마흔이 넘어 직장을 때려치우는 것은 특별한 능력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당장 월급이 끊기면 가뜩이나 가난한 생활이 얼마나 더 힘들어지겠나. 성식은 자리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화를 참았다. 그때 평소와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제 받은 능력. 그걸 사용하면 이 거지 같은 직장을 때려치워도 되지 않을까..?"

 

 순간 답답했던 가슴이 신이 난 듯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참고 지낼 필요도 없고 여차하면 오 부장에게 한방 날릴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축 처져있던 온몸에 힘이 솟아났다. 성식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절로 피어나는 웃음을 간신이 참으며 그대로 회사를 뛰쳐나왔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힘이 넘쳐나고 무작정 뛰고 싶었다. 15년간 한순간도 쉬지 않고 머슴처럼 일했던 직장. 즐거운 순간도 분명 있었지만 그에겐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넘치고 넘치는 희망이 생겼다. 한방. 인생 한 방역전을 노릴 순간이 온 것이다.

 

 '이제.. 뭘 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회사에서 나온 성식은 멀찌감치 떨어진 카페에 차를 대고 들어가 항상 먹던 연한 아메리카노 대신 진한 에스프레소를 한잔 시켰다.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고 그건 나름 효과가 있었다.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머금을 때마다 별의별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일단은 로또다!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야. 당첨번호만 확인하고 바로 시간을 돌리면 1등은 확실해!'

 

 성식은 스마트폰을 켜고 로또의 판매 종료시간을 확인해 봤다. 토요일 오후 8시까지 판매하고 8시 40분 당첨번호 발표. 40분.. 맙소사. 손가락 4개다. 게다가 40분을 되돌린다고 해서 바로 당첨번호를 적고 구매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1분이라도 지체하게 되면 손가락 4개는 아무 의미 없이 날아가 버린다. 따라서 안전하게 50분을 되돌려야 한다.

 

 '50분은 되돌려야 확실히 당첨될 수 있다. 손가락 5개.. 가장 쓸모가 없는 새끼손가락 2개와 약지 2개. 왼손 중지 1개가 없어진다면..'

 

 성식은 양손을 피고 다섯 손가락이 없는 상상을 해보았다. 끔찍했다. 로또 당첨금 20억이 들어온다 해도 어느 게 더 이득인지 섣불리 판단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차라리 왼손에 있는 손가락만 없어지는 게 나아. 괜히 양손을 다 불편하게 하면 일상생활이 더 힘들 거야. 한 손이라도 성한 게 낫지. 아니 우선.. 로또 당첨금 20억에서 세금을 제외하면 13억 정도일 건데.. 그게 손가락 5개 없이 평생 사는 것보다 큰 이익일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손가락은 2개. 아니.. 3개까지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30분을 돌려서 10억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면 곤란해. 그러니 로또는 안되겠어..'

 

 로또 말고 30분만으로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역시.. 도박인가? 그는 도박 한번 해본 적 없는 범생이 인생을 살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이렇게 급박하게 회사를 뛰쳐나올 성격이 아닐뿐더러 당장 손가락을 걸고 돈을 벌려고 모험하지도 않는 그였다. 하지만. 오늘은 말 그대로 평소와 달랐다.

 

 능력이 있다는 것. 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성격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다.

 

 '카지노에 가서 10억 정도를 벌 수 있을까? 판돈이 그렇게 크지 않을 텐데.. 하지만 여차하면 손가락 1개로도 큰 돈을 벌 수 있어.'

 

 성식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단 한판으로 1억 이상을 벌 수 있을 리는 없어. 그렇다면 배수야. 1분 만에 결정 나는 게임의 승패를 10번 외우면 10연속 승. 판돈은 계속 배수로 올라가니까.. 지금 내가 가진 돈이 500만 원..'

 

 성식은 노트를 꺼내 필기를 해보며 계산했다.

 

 한 번 이겨서 500만 원이 천만 원이 되고. 그게 다시 2천만 원. 4천만 원. 8천만 원. 1억 6천만 원, .. .. 51억 2천만 원. 이거다! 성식은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손가락 하나로도 50억을 넘게 벌수 있는 기회. 그렇다면 게임타임이 짧고 판돈이 큰 도박판을 찾으면 된다.

 

 '일단은 정선에 가자. 가서 어떤 종류의 도박이 있는지 확인해보자.'

 

 성식은 바로 차에 올라타 정선으로 향했다. 도박 한번 해본 적 없던 그가 막연한 기대만을 품은 채 말이다.

 

 

 ***

 

 

 카지노에 들어간 성식은 어리둥절했다. 평일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라니. 카지노라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가득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마치 시장 틈바구니에 있는 듯 나이 들고 허름한 옷차림의 아저씨, 아주머니가 가득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둘러보다 정장을 입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저기.. 판돈이 제일 큰 곳은 어디입니까?"

 

 직원은 생 초짜 같은 성식의 물음에 망설이다 답해주었다.

 

 ".. VIP 룸이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입장하려면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나이, 소득을 증빙할 서류, 그리고 입장 가능할 현금이 필요합니다."

 "소.. 소득 증빙서류.."

 

 안 그래도 아무 말없이 뛰쳐나간 성식에게 불이 나게 전화가 오는 중인데 소득증빙서류를 요청할 순 없다.

 

 "현금은 얼마 정도 있어야 합니까?"

 "평일엔 일천만 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시면 입장토록 하고 있습니다."

 

 이곳도 아니다. VIP 룸을 들어갈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잠시 떨어져 생각에 잠겨있는 성식에게 웬 여자가 다가와 말했다.

 

 "저기요. 게임할 데 찾는 거지요?"

 "네?"

 

 파마머리에 누런 이.. 향기 따위는 기대도 안 했지만 찌든 담배 냄새가 이렇게 지독하게 풍기는 여자는 처음 보았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성식에게 위험한 제안을 건넸다.

 

 "VIP 룸에는 우리 같은 사람은 잘 못 들어가~. 대신에 비슷한 판돈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 한번 가보실 라우?"

 "거.. 거기가 어디죠?"

 "오늘 밤 9시에 연세병원 삼거리로 나와봐요. 어떤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 거야. 현태엄마가 소개해줬다고 하면 [놀이터]로 안내해줄 거요~"

 "놀이터요? 거기가 카지노 같은 덴가요?"

 "네. 우리 같은 사람들 노는 곳이죠. 호호. 이따 봐요."

 

 성식은 위험한 장소만을 알려준 채 떠나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추악하다'라는 감정을 느꼈다. 가뜩이나 위험한 도박을 정식으로 즐길 수 있는 카지노가 아닌 더 나락에 빠진 인간들이 모여있는 곳에 있는 그녀. 돈이 있을만한 사람에게 자신이 소개해줄 테니 와달라고? 분명 사람을 불러 커미션을 먹는 게 틀림없었다. 성식은 잔뜩 찌푸린 경멸에 찬 시선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봤지만. 그 역시 겉으로 깨끗한 척 연기하는 버릇이 남아 있었을 뿐 속마음은 이미 [놀이터]에 가서 빨리 한탕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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