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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붉은 장미의 제국
작가 : 임다온
작품등록일 : 2016.8.21

나를 불러온 건 당신들인데.
나를 버리는 것 또한 당신들인가.......

어느 날, 평범한 현실에서 제국으로 오게 된 하랑.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것도 황당한데, 게다가 자신을 신이라 하며 천 년 동안 피지 않았던 붉은 장미를 피우라고 한다!

오직 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아름다운 황제 샤를과 오직 신만을 지켰던 매혹적인 기사 칼. 그리고 신이 되고자 하는 소녀 하랑.

그들 앞에 펼쳐질 가혹한 운명과 세 남녀의 애틋한 로맨스 판타지.

 
28. 장미 가시밭길(1)
작성일 : 16-09-29 19:09     조회 : 569     추천 : 1     분량 : 7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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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돌아오지 말 걸 그랬다.’

 

 작은 발소리가 조용한 복도를 연이어 울렸다.

 올라간 다리가 땅에 닿을 때 저릿한 통증을 동반 했다.

 그러한 것도 잊고 바쁘게 달리던 이의 발의 속도는 이윽고 점점 느려 졌다.

 멈추어 선 다리의 힘이 빠져 바닥으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방금 있던 복도와 다른 풍경이었다.

 자신이 얼만큼이나 뛰어왔는지 하랑은 알지 못하였다.

 벌어진 입술에서는 가쁜 숨 대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참고 참았던 슬픔이 물을 가득 채운 잔처럼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기어코 넘친 것이다.

 

 “나 너무 아파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이.

 

 “너무 아프다고요.......... 칼.”

 

 

 ***

 

 

 칼의 시선은 미카에게 고정된 채로 움직일 줄 몰랐다.

 그것은 옆에 있던 하랑도 마찬가지였다.

 칼이 하랑에게 이동하고 싶은 곳을 생각하라고 해서 무의식적으로 이전에 칼과 대화를 나누었던 복도를 떠올렸다.

 그리고 꼭 붙으라는 칼의 말에 마른 침을 삼키며 그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칼의 낮은 음성과 함께 바람이 그들을 감싸더니 몸이 붕 공중으로 떠올랐다.

 놀란 것도 잠시였다.

 

 “날 꽉 잡아.”

 

 그렇게 말하며 오히려 칼이 하랑의 어깨를 더욱 감싸 쥐었다.

 하랑은 작게 미소 지으며 안심했고 괜히 퉁명스럽게 그에게 말을 뱉었다.

 

 “나 참. 이런 능력이 있으면 진작에 쓸 것이지. 괜히 고생했네.”

 

 툴툴거리며 올려다보자 칼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그런 시선을 받을 때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랬기에 하랑은 시선을 돌렸다.

 공간 이동으로 온 그들의 앞에 누군가 있었다.

 잠입한 것을 들켰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랑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꿈을 꾸고 있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옆에서 꼿꼿이 서서 굳어있는 칼의 모습을 보니 꿈이 아니었다.

 

 “밤바람인가 싶었더니 검은 바람이 날아들었네요.”

 

 강물처럼 부드럽게 넘실거리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그들의 앞에 다가왔다.

 

 “도둑입니까......?”

 

 붉은 신이었다.

 하랑이 꿈속에서 그렇게나 보아왔던 그녀였다.

 그녀의 외관은 물론 동작 하나하나, 분위기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도둑이라면......”

 “도둑이 아닙니다.”

 

 그녀의 말에 칼이 대답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은 그의 말에서 하랑은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하랑의 어깨에 얹어진 그의 손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마음을 요동치는 무언가를 하랑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

 

 “알지 않습니까.”

 “당신을요?”

 “모릅니까.”

 “알죠.”

 

 오고 가는 짧은 대화.

 그 속에 그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하랑은 알 수 없는 기나긴 세월이.

 그렇기에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시선이 얽힌 그 세계는 온전히 그들만의 것이었고,

 꿈속에서처럼 하랑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존재였다.

 

 “......칼.”

 

 그리고 붉은 신의 입술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하랑의 옆에 있던 칼에게 닿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마음이 멀어져 갔다.

 어깨에 있던 칼의 손도 결국에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하랑은 그 손을 다시 잡을 용기도 나지 않았다.

 자신의 접촉은 그에게 공기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다.

 달빛처럼 새하얀 손이 하랑의 시선 끝에 걸렸고 천천히 칼의 얼굴에 다가왔다.

 칼, 나 여기 있어요.

 제발 여기 봐 줘요.

 제발.......

 간절하게 잡는 하랑의 시선은 닿지 않았고, 다가오는 손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덮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붉은 신의 거리만큼 하랑은 뒷걸음치며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한 발.

 두 발.

 세 발.

 뒤로 내디딜 때마다 붉은 신은 가까워졌다.

 이윽고 장미가 칼의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

 

 

 어둠 속으로 하랑이 사라지는 것을 미카는 보았다.

 자신의 앞에 나타난 신의 기사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 눈동자에 사로잡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것들이 담긴 어둠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 어둠은 무척이나 고결해서 자신의 추함을 송두리째 드러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가지고 싶었다.

 애써 여유로운 척하며 미소를 짓자 그의 눈가가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때부터 미카는 대담해졌다.

 옆의 여자는 꽤 신경 쓰였지만.

 그의 눈이 온전히 저를 향해 있었고, 내뱉는 숨 하나하나까지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이제는 강렬한 재회를 만드는 것.

 갈색 머리의 여자는 커다란 눈을 하고는 금방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 보였다.

 

 ‘훗. 뭐야,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

 

 그렇게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고 놀라게도 그는 자신을 받아들였다.

 황제보다 더 쉽게 현혹되다니.

 붉은 장미를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미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침내 완벽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하아...... 칼.......”

 

 미카가 작게 속삭이자 그가 그녀의 몸을 떼 내었다.

 떨어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어둠을 가진 사내였다.

 한 번 더 다가가려고 하자, 칼이 입을 열었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미카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를 보자마자 너무 놀라 잠시 자신이 기억을 잃은 척 해야 한다는 것을 잊었었다.

 그에 대한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했지만, 베일에 싸일 정도로 신비해서 준비가 많이 필요하긴 하였다.

 그와 붉은 신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이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미카는 분위기를 달리하기 위해서.

 칼의 손이 자신을 잡게끔.

 아련하고 애틋한 몸짓으로 칼에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나는 기억을 잃었어요. 하지만 어쩐지 보자마자 그 이름이 떠올라서.......”

 

 하지만 그는 짧게 소리를 낼뿐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그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싶어 미카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칼은.... 나를 잊지 않았지요......?”

 “물론입니다.”

 

 칼이 가까이 다가왔다.

 미카는 뒤로 물러서다 이내 등이 자신의 방문에 부딪혔다.

 

 “어떻게 잊겠습니까.”

 

 칼이 미카의 손가락을 잡고 자신의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입술이 살포시 미카의 손등에 닿아왔다.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미카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만족스럽게 눈가를 휘었다.

 

 “내일 건국일 기념식에 신의 증명을 하는데 나와 함께 해주겠어요?”

 “그보다는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미카는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는 그를 쌜쭉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까 그 여자......와 온 것과 관련 있나요?”

 “황제를 만나는 일입니다.”

 “그래요? 같이 만나기로 했나요?”

 “......”

 “그런데 그 여자, 황제의 침실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던데. 같이 만나기로 한 건 아닌가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칼은 미카가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 그러니까 하랑이 사라진 방향으로 눈길도 주지 않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돌릴 거라 생각해 조마조마했는데 너무나도 확실하게 그의 마음 속에서 그 여자의 존재가 지워진 것을 확인하게 되어 기뻤다.

 

 “당신이 신경을 둘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낮은 음성이 미카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

 

 

 “흑........흐..흑......”

 

 어둠 속에서 퍼지는 울음은 애처롭고 쓸쓸했다.

 하랑은 손을 들어 올릴 힘도 없어 그저 눈물이 아래로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울음이 나는데 한 장면만은 뚜렷하게 그려졌다.

 칼과 붉은 신의 재회.

 흘러가는 눈물에 그것이 떠내려가면 좋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끈질기게 매달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일까.

 바깥에서 끔찍한 장면들을 보고서도 견뎌냈는데 어째서 이런 것에 무너지는 것일까.

 나약한 자신을 탓하는 하랑은 끝에서야 이런 생각을 하였다.

 왜 자신은 이곳에 보내진 걸까.

 신이 아니라면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눈물에 흐려진 자신의 손이 투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 존재의 이유마저 사라져간다.

 

 “흑....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힘없이 중얼거리는 하랑의 앞으로 작은 그림자가 져 왔다.

 눈물에 젖은 얼굴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접힌 눈꼬리로 웃으며 하랑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르만.....?”

 “이곳은 꽤 춥습니다. 어서 일어나시죠.”

 

 울음소리를 들은 바르만이 방에서 나오자 주저앉아 있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버림받은 신이 있었다.

 하랑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달빛이 산산이 부서지며 눈물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내버려 둘 수 없어 그녀의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작은 어깨를 잡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이제 좀 진정이 되십니까.”

 “네.......”

 

 눈물을 그친 하랑에게 그가 따뜻한 김이 나는 찻잔을 내밀자 조심스럽게 들었다.

 차의 향기가 밀려들었다.

 

 “아..... 티무스차......”

 “네. 어찌 아십니까?”

 “이전에 샤를이....... 칼과 함께 있을 때.......”

 

 하랑은 대답을 흐렸다.

 칼이 있던 샤를의 집무실에서 이 차를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눈물 한 방울이 잔으로 떨어져 작은 파동을 만들었다.

 하랑은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꼭 깨물어보았지만 계속 떨어져 내렸다.

 결국, 손에서 떨리는 잔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를 떠올리는 것이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와 함께 지냈던 모든 시간이 하랑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최악이었던 첫 만남.

 만나기만 하면 싸우던 날들.

 그러면서도 결국 위험할 때는 대신 나서주고, 하랑에게만은 솔직했던 그였다.

 그런 시간 속에서 착각했었나 보다.

 그가 나만의 기사라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한 마음이 더 아팠다.

 

 “죄송해요. 주책없이 눈물이나 흘리고.......”

 

 하랑은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바르만에게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무슨 일인지...... 안 물어보시네요.”

 “물어보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해서.”

 “하하. 감사해요. 캐묻지 않아 주셔서....... 바르만은 참 좋은 분이세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르만이 한숨을 쉬듯 이야기했다.

 

 “황궁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물론 하랑님에게 안 좋은 쪽으로 말이지요.”

 

 그 목소리에 하랑은 안타까움이 녹아든 느낌을 받았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하지만 이 말은 이방인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그.....저......샤를을 만나기 위해서요. 샤를은 제가 온 것을 알고 있나요?”

 “모르고 계십니다.”

 “그럼 바르만이 이야기해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급한 일이라.......”

 “이제 폐하를 만나실 수 없습니다. 밖에 나가서 보았다면 아시겠지만 인간은 뱀파이어에게 가축보다 못한 노예나 다름없습니다.”

 “.......”

 “그러니 이제 하랑님은......”

 

 미처 말하지 못 하겠는지 바르만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노예나 다름없다.

 이전과는 신분이 달라졌다.

 감히 황제를 만나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 말이었다.

 하랑은 쓰게 웃었다.

 그래도 자신에게 꼬박꼬박 존댓말과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주는 바르만을 보며 그가 자신을 많이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더는 그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랑이 알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그 대신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몸을 돌려 나가는 하랑에게 바르만의 목소리가 붙잡아 왔다.

 

 “건국일 기념식에 폐하를 볼 수 있습니다.”

 “건국일 기념식. 그럼 붉은 신도........”

 “내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그 자리에 갈 수 있나요? 게다가 이렇게 누추한 몰골로 샤를을 만날 수 없어요.”

 “아까 말씀드렸었죠?”

 “......네? 무슨.......”

 

 의문을 가득 담은 갈색 눈동자가 바르만을 보았다.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

 

 

 방안에는 붉은 드레스들이 가득 나열되어 있었다.

 미묘하게 옷 선과 색깔이 조금씩만 다를 뿐.

 모두 하나같이 강렬한 붉은 색이었다.

 

 “브릴, 브릴!”

 “네! 미카엘라님.”

 “이 드레스 허리가 맞지 않잖아. 짜증나게. 다른 걸 가져와.”

 “또, 말입니까? 저...... 미카엘라님, 지금 100벌도 넘게 갈아입으셨는데. 너무 시간이 지체되면 기념식 참석에 늦으실 텐데요........”

 “뭐? 내가 좀 늦겠다는데 누가 뭐라 그래?

 “오늘 기념식엔 귀족들과 황제 폐하까지 계시지 않습니까. 늦는 것은 아무래도 좀.......”

 “좀, 뭐? 주인공은 원래 늦게 등장하는 법인 거 몰라?”

 “하지만.......”

 “나는 오늘 최고로 아름다워야 해.”

 “.......”

 

 미카의 앞에서 입을 삐죽거리는 브릴은 생각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황제의 시녀들은 죄다 물리며 오로지 새벽부터 눈을 부비며 일어난 자신 혼자서 미카의 준비를 도왔는데 그녀는 죄다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부족해했다.

 

 “그러려면 최고의 드레스를 입어야 하고.”

 “네.......”

 “뭐해?! 멀뚱히 서 있지 말고 빨리 다른 드레스나 가져와!”

 

 미카의 불호령에 브릴이 다른 드레스를 미카에게 입혀주었다.

 크림슨의 실크 드레스는 어깨에서 무릎까지 선을 살려주었고 밑단은 마치 장미꽃의 형상처럼 주름이 져 있었다.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돌려보던 미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똑똑-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때 바깥에서 마리에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카가 문 쪽으로 걷어가자 브릴이 급히 문고리를 잡고 열어주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마리에와 그 뒤에는 신의 기사인 칼이 있었다.

 깔끔하게 각이 잡힌 검은 제복을 입고 있는 그였다.

 아름다운 미카를 보고서도 어떠한 말도, 표정 변화도 없었지만, 그녀가 손을 내밀자 칼이 잡았다.

 

 ‘그래, 그는 나의 기사고 나는 그의 신이야.’

 

 이 이상 뭐가 더 필요할까.

 미카는 오늘 자신을 가장 빛나게 해줄 그를 바라보며 연회실로 걸음을 옮겼다.

 

 높은 아치형 천장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샹들리에의 촛대에 불이 켜져 크리스탈을 반사시키며 빛이 반짝반짝 퍼져 나갔다.

 그 아래에 모인 화려한 옷을 입은 뱀파이어 귀족들은 저마다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홀의 단상 위에 마련된 붉은 벨벳의 의자에는 황제인 샤를이 앉아 있었고 은빛 머리카락과 어우러지는 푸른색의 웨이스트 코트가 그를 한층 빛내 주고 있었다.

 그런데 황제의 옆에 심복처럼 붙어있던 바르만이 보이지 않았다.

 홀로 있는 황제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던 귀족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보지 못하고 흘끔거리는 그 모습에 샤를이 인상을 작게 쓰며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었다.

 게다가 매년 하는 행사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절단의 참석이었다.

 뱀파이어 귀족들의 사이로 마치 물처럼 스며드는 교황이 자꾸 거슬리는 것도 한몫하였다.

 그때 샤를의 맞은편 끝에 있는 계단 위의 문이 열렸다.

 

 “아아.”

 “이럴 수가.”

 

 일제히 시선이 집중되었고, 열린 문에서 나온 이들을 본 귀족들은 입에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느리게 계단을 내려오는 이들은 붉은 신과 신의 기사였다.

 천 년 전의 영광이 재현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이들 중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본 샤를도 몸을 일으켰다.

 붉은 신과 칼을 보는 샤를 또한 그랬다.

 기억이 선명하게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그녀의 옆에 있던 그녀의 기사.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샤를은 언제나 칼을 미워했었다.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치기 어린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황제가 된 지금까지도 그 어린 아이가 남아 붉은 신의 말을 따르며 살아왔고 그녀를 되살리는 노력까지 하였다.

 그래서일까.

 샤를은 눈앞에 존재하는 붉은 신이 아닌 자신의 손에 의해서 태어난 하랑의 잔상이 자꾸 아른 거렸다.

 신이 걸어가는 곳에 있던 자들이 물결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이윽고 샤를이 있는 단상 앞까지 걸어온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국의 영광을 다시 되살릴 것이다.”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샤를의 외침과 함께 귀족들은 투명한 액체가 채워진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식이 시작되었다.

 

 “그대는 붉은 신임을 증명하라.”

 

 샤를의 시선이 붉은 드레스를 입고 한 송이의 장미처럼 서 있는 미카를 향했다.

 그녀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샤를을 보았다.

 시녀는 크리스탈 쟁반에 담긴 흙을 끌고 와 단도를 미카의 앞에 놓았다.

 미카는 조심스럽게 단도를 집에서 빼어내 들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날카로운 칼날이 닿는 것을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

 

 “멈추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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