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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록되지 않은 쐐기용사의 영웅담
작가 : SolaR
작품등록일 : 2019.9.1

인류는 ‘이레귤러의 시대’라 불리는 최악의 시대와 맞서며 끔찍한 고통을 견디어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괴물들, 생태계를 뒤바꿔버릴 정도로 지독한 이상기후, 그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인간들까지.
그러나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나날들 속에서도 누군가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을 누군가의 영웅담이다.

 
1장 시스터 바리 카흐(4)
작성일 : 19-09-03 17:31     조회 : 209     추천 : 0     분량 : 7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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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신을 믿지 않으면서 정작 신을 받드는 신녀를 믿는다.

 

 언뜻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바리의 종교가 가지는 핵심과도 같은 내용이었다.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없는 진에게는 그저 모순된 선문답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눈치였다.

 

 "난센스 퀴즈예요?”

 “아니거든!”

 

 흥미 없다는 듯이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진의 표정은 바리의 말마따나 염세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뭐가 되었던 상관없어요. 저는 손에 닿지 않는 조물주보다는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더 좋거든요.”

 “귀여운 맛이 없어!”

 “그런 말 많이 들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견디지도 못할 시련으로 인간을 말려 죽이는 신과 그런 신의 농간을 이겨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 과연 둘 중 누구를 더 반길 것 같으세요?”

 “흥. 하지만 이레귤러의 시대라고. 이렇게 힘든 시기에 아무런 대가 없이 나서는 사람이 있겠냐고.”

 

 토라진 척 콧방귀를 뀌는 바리를 보며 진은 아차하며 손뼉을 쳤다.

 

 “아! 혹시 못 만나신 건가요?”

 “만나다니? 누구를?”

 “상단 분들 말이에요.”

 

 상단이라는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짚이는 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엇갈렸을 수도 있겠네요. 저희 마을을 원조하는 상단이 있는데 그분들이 언니를 구조하셨어요.”

 “헤에....... 이레귤러의 시대에도 그런 괴짜 아니, 훌륭한 사람들이 있구나.”

 “훌륭하다마다요. 마침 잘 되었네요. 안 그래도 그분들께 새참을 챙겨드리러 가던 참이었거든요. 누구 씨가 다 먹어버린 탓에 다시 돌아와야 했지만.”

 “으윽!”

 

 소쿠리에 감자를 다시 채워 놓은 진이 현관문을 열고 앞장섰다.

 

 “따라오세요. 그분들께 안내해드릴게요.”

 

 **

 

 진은 마을의 중앙광장이라면서 상단의 캐러밴이 주차되어 있던 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바리를 안내했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면서도 바리는 역시 석연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힘들어하는 진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마을이 살기 힘든 곳이라는 것은 역시 믿을 수가 없어.’

 

 규모에 비해 한적한 마을은 평화로운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활기차게 뛰노는 어린아이들이나 우거진 푸른 숲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납득을 못한 채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중앙광장에 도착했다. 이름조차 없는 마을답게 중앙광장이라 해도 그저 넓은 공터일 뿐이었다.

 

 그 넓은 공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진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 새참이 왔답니다.”

 

 곰살맞게 인사를 하자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던 사람들이 바리와 진을 돌아보았다.

 

 진이 바리의 옆구리를 가볍게 찌르며 속삭였다.

 

 “저분들이에요. 저분들이 저희 마을을 도와주시는 ‘빌헬름 상단’의 상단 분들이세요.”

 

 은인을 소개받은 바리의 표정이 어쩐지 떨떠름했다.

 

 “저기, 혹시 내가 잘못 들었어? 상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맞는데요.”

 

 태연하게 대답하자 바리는 진의 귓가에다 대고 소리 죽여 외쳤다.

 

 “저 얼굴들이 어딜 봐서 상인이라는 거야?! 상단이 아니라 도적단을 잘못 말한 거 아니야?!”

 

 바리의 말대로 상단의 단원이라고 소개받은 그들은 상인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외모를 하고 있었다.

 

 차라리 주판을 굴리는 간탐한 상인의 이미지였다면 실망은 할지언정 납득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외모는 납득조차 시키지 못했다.

 

 하나같이 선이 굵은 것이 주먹 꽤나 쓸 것 같은 얼굴들이었다.

 

 험상궂은 인상에 질겁한 바리에게 따끔한 꾸지람이 돌아왔다.

 

 “떽! 수녀라는 분이 얼굴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셔도 되는 거예요?”

 

 사실 수녀가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도리가 아니었다.

 

 “으윽. 그 말대로야.”

 “그렇죠?”

 

 진은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 싱긋 웃어 보였다.

 

 “이분들은 곤란에 처한 저희 마을을 도와주시는 은인들이시라고요.”

 “...... 그랬었지......”

 

 마지못해 대답하는 바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떠름했다.

 

 반성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바리 또한 선입견이 깨어진 탓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실언일 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할 정도로 인품이 떨어지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목소리가 개운치 못한 것은 단단하게 다져진 단원들의 다부진 근육 탓일 것이다.

 

 상인들 중에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옮기며 자연스레 근육이 발달한 이들이 많았는데 눈앞의 인물들은 그런 종류의 상인들과는 엄연히 달랐다.

 

 바리는 배움이 제한적인 수녀원에서 힘을 기르고자 다양한 서적들의 힘을 빌려왔다. 특히 효율적으로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의학이나 해부학과 관련된 서적들도 빼놓지 않고 읽었는데 그렇게 쌓은 지식들은 눈앞의 인물들이 범상치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노동으로 인한 근육이 아니야. 그렇다고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해 다듬은 근육도 아니지. 저것은.......’

 

 바리는 확신했다.

 

 ‘전투를 위한 근육이야. 그것도 실전으로 단련된.’

 

 그때 누군가가 탄성을 터뜨렸다.

 

 “와아! 누군가 했더니 대책도 없이 사막을 횡단하려던 말괄량이 아가씨잖아?”

 

 그 목소리를 중심으로 상단의 무리가 갈라졌다.

 

 갈라진 무리의 틈에서 걸어 나온 것은 험상궂은 상단의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쑥한 차림새의 청년이었다.

 

 느긋하면서도 빈틈없는 걸음걸이로 걸어 나온 그는 살가운 태도로 진에게 인사했다.

 

 “진 아가씨. 우리 때문에 수고가 많네. 항상 고마워.”

 “에이, 수고는요. 여러분께서는 저희 마을을 위해 언제나 힘써주시잖아요.”

 “아하하.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그는 진이 내밀은 소쿠리에서 감자 하나를 꺼내어 크게 한입 베어 물더니 바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씩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그의 모습은 진을 대할 때와는 다르게 어딘가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아하하! 만나서 영광이야. 객기만으로 사랄 왕국의 국경에 도전하는 멍청이는 좀처럼 볼 수 없는데 말이야.”

 “뭐? 멍청이?”

 “설마 그곳에서 사람을 줍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어.”

 

 멍청이라는 단어에 바리가 발끈했지만 상대방은 전혀 괘념치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일방적으로 맞잡은 바리의 손을 천연덕스럽게 흔들어댔다.

 

 “나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빌헬름 상단의 단장이지. 아하하.”

 

 **

 

 이름 없는 마을의 주거지 뒤로는 나무가 드리워진 그림자를 따라 걷기 좋은 오솔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레귤러의 시대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 이름 없는 마을에서는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인해 푸른 잎의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척박한 사막의 삶에 스며든 예상치 못한 변화를 순수하게 기뻐했다.

 

 물론 기후 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산책을 하는 여유로운 삶을 꿈꾸며 호젓한 오솔길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삶은 척박해져만 갔다.

 

 더위가 사라져버린 마을에서는 사막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쩐 일인지 오아시스도 말라버렸다.

 

 주민들은 당장 저녁에 먹을 끼니를 걱정하며 그간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살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여유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오솔길은 그렇게 미완성인 상태로 잊혀져갔다.

 

 “그러니까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수녀원을 뛰쳐나왔다 이거지? 어디라고? 크로우베리 수녀원? 아하하. 이거 참 걸작이로군.”

 

 헌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오솔길이 소란스러웠다. 상단 일행에서 빠져나와 바리의 자초지종을 듣던 빌헬름은 그야말로 포복절도했기 때문이다.

 

 바리보다 네댓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이 청년은 신사다운 이미지와는 달리 감정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바리는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마음껏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음이 터진 거야?”

 “그야 물론 수녀라는 부분에서.”

 “왜 그 부분이냐고!?”

 

 발끈한 나머지 아차 싶을 새도 없이 빌헬름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리고 말았다.

 

 ‘이 사람 점잖을 것 같은 외모를 해서는 무례하기 짝이 없네!’

 

 빌헬름이 얻어맞은 엉덩이를 문지르며 억울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아야야. 지금 네 꼴을 봐. 머리는 모래바람을 맞아 엉망이고. 옷은 그게 뭐야? 넝마야? 그런데 그 꼴을 하고 수녀라니! 웃기지도 않지.”

 “넝마?! 이래 봬도 모험가 상점에서 구입한 전문가용 망토거든! 게다가 신상이고!”

 “아하하. 전문가용? 신상? 바가지를 아주 거하게 쓰셨나 보네.”

 “으윽!”

 

 억울하다는 듯이 악을 쓰는 바리였지만 되돌아본 자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화, 확실히 수녀라기보다는 풋내기 모험가가 어울리는 모습이네.”

 “아하하. 어느 모험가가 그런 몰골로 다니냐? 요새는 모험가도 패션에 신경 쓰는 시대라고.”

 “어쩔 수 없잖아. 사막에서 호된 꼴을 당한 직후니까. 그렇지만 망토를 벗는 순간 나의 수녀다운 모습에 깜짝 놀라 자빠질 걸?”

 “제발 놀라게 해 봐.”

 “자, 봐. 엉망이 된 망토를 이렇게 벗으면...... 짜잔!”

 

 요령 좋게 망토를 벗어던진 바리는 수녀의 표상과도 같은 자신의 고결한 모습에 깜짝 놀란 빌헬름을 예상하고 의기양양하게 미소 지었다.

 

 바리가 망토를 벗어던지자 빌헬름의 눈이 번쩍하고 뜨였다.

 

 “아하, 방랑 검사! 너는 방랑검사였구나!”

 “누가 방랑 검사라는 거야!”

 

 분노한 바리가 빌헬름의 엉덩이를 다시 한 번 걷어찼다. 무방비 상태로 걷어차인 빌헬름은 최소한의 낙법도 펼칠 겨를 없이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걷어차인 엉덩이는 후끈거렸고, 넘어지며 생긴 찰과상은 따끔거렸다.

 

 하지만 아픈 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억울함이 앞섰다. 바리의 모습은 누가보아도 수행을 쌓기 위해 방랑하는 방랑 검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검은색을 기조로 만든 독특한 디자인의 얇은 외투와 하얀색 블라우스. 통이 넓은 반바지와 목이 긴 부츠. 깔끔하게 정리한 밤색 단발머리까지. 활동성에 중점을 둔 의상은 허리에 걸쳐 둔 장검과 기가 막히게 어우러졌다.

 

 빌헬름을 걷어차고도 성이 안 풀린 바리가 씩씩거리며 따졌다.

 

 “대체 어디를 어떻게 봐야 방랑 검사로 보이는 거야! 이 옷을 봐! 누가 봐도 수녀복이잖아!”

 

 자세히 보니 독특한 모양의 외투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담긴 심벌들이 곳곳에 수놓아져 있었다.

 

 “수녀복이라고? 수녀복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세상에! 수녀복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거야?”

 “수녀복의 복식은 천차만별이잖아. 내가 모르는 수녀복이 있을 수도 있지.”

 “뭐?! 그, 그런 거야?”

 

 극도로 폐쇄적인 성향의 수녀원에서 자란 바리는 같은 종교라도 수도회나, 시설에 따라 수녀복의 복식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자신이 입고 있는 것이 수녀복의 표준일 것이라 막연하게 단정지어왔을 뿐이다.

 

 빌헬름은 모양새 좋게 다듬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바리의 수녀복을 유심히 살폈다. 그것은 상품의 가치를 가늠하는 상인의 눈이었다.

 

 “너희 수녀복은 디자인도 나쁘지 않고 기능성까지 좋아 보이는군.”

 “맞아. 밖에서까지 수녀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수녀복만큼은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

 

 빌헬름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일단 움직이기 편해 보이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언뜻 얇아 보이지만 재질을 보아하니 방한과 방서 대책도 확실한 것 같고. 게다가 엉망진창인 네 꼴 중에서 가장 멀쩡하잖아. 아마 오염 대책도 철저한 것이겠지.”

 “엉망진창!?”

 “이 정도면 상품성이 있어. 독점 판매 계약을 맺고 싶을 정도야.”

 “정말로?”

 “정말이고말고. 아마 방랑 검사들에게 불티나게 팔릴걸!”

 “방랑 검사는 이제 그만 잊어!”

 

 바리는 빌헬름이 자신을 놀린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지만 크로우베리 수녀원의 특색 있는 수녀복은 상인들이 눈독 들일만한 가치가 충분한 물건이었다.

 

 크로우베리 수녀원의 수녀복은 에리니에스 수녀가 원장 수녀가 되면서 보급한 것으로 그 안에는 병단에서 활약하던 당시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바리는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는 너는! 너는 어디 상인으로 보이는 줄 알아?”

 “나? 내가 왜? 어디가 상인답지 않은지 어디 한 번 들어볼까?”

 “으윽.......”

 

 빌헬름이 심술 가득한 표정으로 능글맞게 되묻자 할 말이 궁해진 것은 바리였다. 막상 트집을 잡으려고 보니 빌헬름에게는 어디 하나 트집 잡을만한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는 약 이십 대 초중반. 훤칠한 키에 비해 선이 가늘긴 하지만 어깨까지 기른 금발을 머릿기름으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이 청년은 한눈에 보아도 상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을 도전적으로 살피는 녹취색의 두 눈에서는 한 상단의 단장을 맡을만한 패기가 엿보였고, 무엇보다도 온몸에 두르고 있는 값비싼 장신구나 고급 원단으로 만든 의상은 부(富)의 향기를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야말로 젊은 도련님의 표상과도 같았다.

 

 그 젊은 도련님이 능글맞게 웃었다.

 

 “그래서 말이야. 시스터 바리.”

 “뭐, 뭐야? 갑자기!”

 

 아까까지만 해도 수녀라는 사실을 대놓고 비웃던 빌헬름이 능글맞게 시스터라고 부르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치솟았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볼까?”

 “본론이라니?”

 “알잖아. 내가 궁금하지도 않은 네 신상이나 캐려고 일행들과 떨어져 나왔다 생각해?”

 “서, 설마!”

 

 아니나 다를까 빌헬름은 손가락을 비비며 지폐를 세는 듯한 손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바리의 목숨 값을 요구할 모양인 것 같았다.

 

 대체 얼마나 큰 금액을 부르려고 이리도 은밀하게 말을 꺼내는 것일까!

 

 빌헬름은 불안한 표정으로 떨고 있는 바리의 귓가에다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혹시 주변에 괜찮은 여자 없냐? 너희 수녀원의 수녀님도 괜찮은데.”

 

 아하. 그런 것인가? 상단의 도련님이랍시고 아무리 점잔을 빼 봐도 결국은 혈기 왕성한 사내에 불과하구나.

 

 바리는 빌헬름이 수녀에 대해 조신하고 헌신적일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을 거라 추측하고 헛웃음 지었다. 크로우베리 수녀원의 수녀들은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수녀들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리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뭐, 원한다면 우리 수녀원의 위치라도 알려줄게. 직접 한번 가보던가.”

 “오오!”

 

 수녀원의 위치를 전해들은 빌헬름이 낮게 침음했다.

 

 “그러니까 산맥 한가운데에 수녀원이 있다는 거지? 어지간히도 깊은 곳에 숨어 있군.”

 “중간에 조난당하지 않기를 바랄게.”

 “막상 찾아갔더니 종교적인 이유로 연애를 못한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당연하지.”

 

 빌헬름은 그제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안심했다는 듯이 웃었다.

 

 “혹시 몰라 확인 해본거야. 상인들은 확실한 것을 좋아하거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히죽거리는 빌헬름을 보고 있자니 괜한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무심코 되묻던 빌헬름이 본 것은 기묘한 포즈를 잡고 선 바리였다.

 

 제 딴에는 섹시하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최고의 미소녀를 앞에 두고 다른 여자를 찾는다니. 언어도단이라고. 우후~♡”

 

 .......

 

 침묵.

 

 그저 당황한 빌헬름을 보고 싶어서 시작한 장난은 마치 시공이라도 비틀린 것은 아닐까 싶은 아찔한 침묵을 오솔길로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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