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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내 손가락의 남은 시간
작가 : 모험
작품등록일 : 2019.9.3

"제가 당신께 드릴 능력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입니다. 언제든 저를 떠올리며 시간을 되돌려달라고 비는 순간 전 당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줄 겁니다. 당신이 능력을 사용하고 지불할 대가는 [당신의 신체의 일부, 손가락] 을 주십시오."

.. 예기치 않은 악마와의 만남을 통해 얻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 허나 능력에 따른 대가는 어마어마 했다

 
1부 - 1회 탐욕스러운 계약
작성일 : 19-09-03 09:14     조회 : 313     추천 : 0     분량 : 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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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말한 대로.. 약지 손가락이 잘려나갔다..

 

 

 ================================================

 

 

 성식은 전날 이 세상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든 남자를 만났다. 2m에 달하는 커다란 키에 마른 몸매.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이 감도는 하얀 얼굴에 대비되어 피를 머금은 듯한 검붉은 입술은 평범한 인간은 절대 아니라는 확신을 주었다. 여자처럼 긴 속눈썹과 며칠은 잠을 못 잔 듯이 핏줄이 솟아오른 눈빛.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 사이에 어두운 골목 속 그런 그의 하얀 얼굴은 무서운 것을 죽도록 싫어하는 성식마저 골목 안으로 들어서게끔 호기심을 자극했다.

 

 "잘 오셨습니다."

 

 그의 첫마디였다.

 

 애초에 말을 걸 목적으로 다가간 것도 아니었기에 그다지 답할 말이 없었다. 그저 커다란 그의 앞에 서서 유달리 다른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덜덜 떨기만 할 뿐이었다.

 

 "이 골목 안에 들어온 것은 당신이 처음이 아닙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이곳은 항상 열려 있었고 참지 못할 욕망을 가진 인간에게만 허락되어 저의 능력을 부여받게 되었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저음의 목소리는 전달력이 떨어지기는커녕 성식의 뇌에 직접 말하는 것처럼 쏙쏙 들어왔다. 능력을 준다고? 그리고 내가 욕망이 있었다고? 그 짧은 순간 성식은 이 골목을 발견하기 직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

 

 평범한 회사의 기획 담당으로 일하는 마흔 살의 직장인. 두 딸을 키우는 한 집안의 가장. 게다가 외벌이 아빠. 마흔을 넘자 회사에서의 압박은 더욱 심해지고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딸의 학원비와 두 살배기 막내딸의 잠투정에 집에 가서도 쉴 새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두 아이를 키우는 애 엄마는 어찌나 더 힘들까. 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창구는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돈.

 

 돈만 있으면 뭐든지 된다. 원하는 걸 모두 채울 수 있다. 두 아이도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것이고 애 엄마도 잠시나마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성식은 어떠한가. 돈만 있으면 서러운 회사생활 때려치우고 조그마한 카페나 하나 차려 용돈 벌이만 하면 그만이다.

 

 그날도 성식은 느지막한 퇴근길에 로또를 3천 원어치 사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

 

 

 성식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느.. 능력은 무엇이죠?"

 

 가늘게 떨리는 성식의 물음에 그는 검붉은 입술을 볼 끝까지 길게 찢으며 끔찍한 웃음과 함께 답했다.

 

 "이 세상에 가장 값진 게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돈? 가족? 명예? 권력? 아닙니다. 이것들은 누구나 이룰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혜로 돈과 명예, 권력,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돈]. 성식의 머릿속엔 돈이었다. 이 나라 살면서 가장 값진 것은 바로 돈뿐이다. 하지만 그는 예상외의 능력이 더 값지다고 말했다.

 

 "시간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간이죠. 시간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 만일 그런 시간을 조종할 수 있다면 원하는 것을 이루기가 훨씬 쉽겠죠. 저는 당신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드릴 수 있습니다."

 

 시간? 시간을 되돌린다면 과연 돈이 될까? 단번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로또 번호만 알고 과거로 되돌아가면 엄청난 돈을 단숨에 벌 수 있다.

 

 "제가 당신에게 이 엄청난 능력을 준다면 당신은 내게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이미 이 능력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생각할 여유는 지나갔다. 성식의 머릿속은 능력과 맞바꿀 재산이 뭐가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제.. 제가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이 능력이 얼마 정도 할까.. 요?"

 

 성식의 더듬더듬 뱉은 질문에 그는 갑자기 뾰족하게 솟은 이빨을 드러내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소리는 성식의 귀를 찢을 듯이 높고 강렬한 소리를 냈고 양 귀를 막았지만 전해지는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에 절로 무릎을 꿇었다. 그런 성식을 본 그가 서둘러 웃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제 웃음소리가 좀 과격했죠? 하지만 당신의 그 질문은 정말 몇백 년간 들어본 농담 중 가장 웃겼어요."

 

 그는 또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고는 성식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전 이미 재산은 넘치고 넘칠 정도로 많습니다. 이깟 아시아의 소국 정도는 단번에 살 정도로 말이죠. 호호호. 하지만 이런 저도 갖고 싶은 게 있죠."

 

 성식은 고통에 감고 있던 눈을 이제야 뜨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흰자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그의 동공은 갑작스레 커지며 갖고 싶은 게 바로 앞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 당신의 몸이 갖고 싶습니다.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듯 펄떡이는 인간의 몸. 저에 비해서는 매우 비천한 당신이지만 저보다 훨씬 신선한 몸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능력을 드릴 때마다 당신은 저에게 그 몸을 주시면 됩니다."

 

 "모.. 몸이라고요!?"

 

 몸이라니. 이건 완전히 장기밀매와 같은 방식이 아닌가? 이건 위험하다. 이 정체 모를 남자와 같이 있는 것 자체도 위험하지만 저런 말도 안 되는 교환 조건을 제시하다니. 인간 같지 않은 외향과 말투. 몇 백년을 살았다는 말을 보면 그는 악마가 틀림없었다. 악마라면 분명히 영혼이든 몸을 가로챌 수 있다는 불안감에 절대로 응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 안돼요! 모.. 몸을 가져간다니요.."

 

 부들부들 떨며 양팔로 몸을 감싼 채 안 된다고 외친 성식의 답에 그는 끔찍하게 웃고 있던 입꼬리를 내렸다. 그리곤 180도 달라진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욕심쟁이로군요. 인간들은 항상 그렇죠. 처음엔 뭐든 다 줄 것처럼 빌다가도 자기 것을 빼앗길 때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을 바꾸죠. 그저 갖기만을 원할 뿐.. 당신은 조금 다르기를 바랐건만.. 당신도 여느 쓰레기 같은 새끼들과 같은 인간이로군요."

 

 존칭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하던 그의 입에서 나온 욕설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일었다. 성식은 조심히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봤다.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듯 잔뜩 찡그린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욕망을 비추더니.. 그딴 몸뚱어리 하나에 거절을 해? 난 능력과 교환 조건을 다 알려줬는데? 그럼 내가 허비한 이 금쪽같은 시간과 아무에게나 말하지 않는 비밀에 대한 대가로 무얼 줄 거지?"

 

 예상치 못했다. 골목에서 만나 이야기한 대화에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니. 성식은 곧 상황을 파악하고 엎드려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 이럴 줄은 몰랐어요. 그.. 그냥 한 번만 보내주시면..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아니. 지금도 계속 소비되고 있는 내 시간은 약 7분 20초. 거기다 능력에 대한 비밀의 대가를 합치면.."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성식의 온몸을 훑어보았고 갑자기 뭔가를 알아낸 듯 기뻐하며 말했다.

 

 "그래! 니 눈이면 되겠다!"

 

 성식은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순간 온몸에 흐르던 땀이 마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슴이 옥죄여옴이 느껴지고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눈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다시는 앞을 볼 수 없고 소중한 두 딸의 커가는 모습조차 놓칠 것이다. 성식은 애원하듯 빌었다.

 

 "아.. 안돼요!! 안됩니다.. 제발요!"

 "그럼 도대체 무얼 줄 거냐?"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끝까지 그 어느 것도 줄 수 없다는 것이냐? 무조건 자기 것은 잃기 싫어하는 인간의 태도가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다! 니 눈알을 오독오독 씹어서 이 기분을 풀어야겠다!"

 "제발.. 제발.. 부탁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제발요!"

 

 그는 눈물을 쏟으며 엎드려 비는 성식을 바라보며 몰래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조금은 흥분을 가라앉힌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

 

 "평소라면 당장 두 눈을 파먹고 말았겠지만, 진심으로 엎드려 비는 너에게 단 한 번 기회를 주마."

 

 기회를 준다는 그의 말에 성식은 펑펑 쏟아내던 눈물을 멈추고 올려다보았다. 그는 엎드려 있는 성식의 앞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계약을 해라. 그렇다면 앞에 소비한 시간도 내 비밀에 대한 것도 낭비하지 않은 것이 되니 너의 두 눈은 가져가지 않겠다."

 "계.. 계약은 정확히 어떤 것인가요.."

 

 그는 찡그렸던 두 눈을 피고 입꼬리를 다시 올린 채 성식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수분이란 하나도 없는 미이라의 손처럼 시커멓고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했다. 절대 잡고 싶지 않은 위험한 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의 배려를 거절하긴 어려웠다. 슬며시 잡은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손을 빼려던 찰나 그가 성식의 손을 덥석 잡아당기며 말했다.

 

 "제가 당신께 드릴 능력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입니다. 언제든 저를 떠올리며 시간을 되돌려달라고 비는 순간 전 당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줄 겁니다. 당신이 능력을 사용하고 지불할 대가는 [당신의 신체의 일부, 손가락]을 주십시오. 지금 잡고 있는 당신의 손은 생기가 가득하고 촉촉하군요. 호호."

 

 성식은 정신없는 마음을 추스르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이미 정수리 끝이 찌릿할 정도로 경련이 일고 있었지만 애써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곤 열심히 생각한 질문을 했다.

 

 "느..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요..?"

 

 그는 군침을 삼키며 성식의 손을 바라보다 말했다.

 

 "능력을 쓰지 않으면 저 또한 손가락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 계약입니까. 손가락을 잃기 싫으면 평소처럼 지내면 됩니다. 게다가 이 세상 누구라도 갖고 싶은 능력을 갖추게 되다니.. 이건 지금까지 고생한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위해 제가 드리는 선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엄청난 능력을 손가락 하나랑만 바꾸면 된다. 거기다 계약만 맺고 사용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닌가.

 

 "자, 두 번째 조건. [손가락 하나당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10분]. 가끔 턱도 없이 많은 시간을 고작 손가락 하나랑 맞바꾸려 하는 염치없는 인간들이 있어 만든 조건입니다. 어떻습니까? 조건은 고작 단 두 개! 열 개나 있는 손가락으로 그 누구도 쓸 수 없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계약을 하시겠습니까?"

 

 10분? 아주 잠시 되돌릴 수 있을 줄 알았던 시간에 구체적인 시간을 부여하니 꽤나 넉넉해 보였다. 성식은 두 눈을 빛내며 어린아이처럼 계약이 성사되길 비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좋습니다."

 

 계약에 순응한 순간! 그의 입이 사정없이 벌어지더니! 그대로 성식의 머리통을 삼켰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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