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데이터를 찾아서}

　어릴 때 플레이했던 내용을 되찾으세요.

　보상 : 소원권 1개}

　“전 화연님만 애타게 기다렸는데.”

　억, 살풋 웃으며 나에게 죄책감을 심겨주는 은가람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기억이 안 나니 반박을 못하는 것도 한몫했고.

　“그쪽에서 하룻밤이 여기선 일 년이라고 하셨죠. 여기서 3년간 화연님이셨고, 지난 10년간은 천호였으니 화연님은 여를 밤 만에 이쪽을, 저를 잊으신 건가요?”

　“켁, 그, 그게. 음.”

　당황해서 말을 아끼고 있자니 은가람이 무척 서운하다는 투로 말했다.

　“이쪽에서 첫 친구라며 특별하게 대해주셔 놓으시곤, 잘생겨서 절대 잊을 리 없다며 칭찬을 늘어놓으셔놓곤, 이렇게 간단히 잊어버리시는군요.”

　“아니, 그렇게 간단히 잊어버린 건 음. 맞나? 아니, 나는 애초에-,”

　내가 횡설수설하며 손짓을 동원해 최대한 변명을 해보려 할 때, 은가람이 갑자기 내 손 하나를 낚아채더니 나를 끌어당기려 했다.

　부드럽고 상냥하게.

　“!”

　그럼에도 갑자기 잡아당기니 당연, 놀란 나는 쭈그려 앉은 그 자세 그대로 순간적으로 버티며 되려 은가람을 잡아당겼다.

　그에 뒤로 기울 듯 앉아진 나와 그런 내 위에 덮치는 앉게 된 은가람.

　은가람은 잠시 놀라더니 이내 이 자세도 나쁘진 않다는 양 달콤한 미소를 걸쳤다.

　“그래도 돌아오셨으니 용서해드릴게요.”

　여전히 천사같이 황홀하게 잘생긴 미소.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진득한 유혹의 분위기에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나를 원했다는 듯, 내 반응이 마음에 든 듯한 은가람은 내 머리카락을 소중히 가져다 작게 입을 맞췄다.

　오...

　잘생김은 뭔들.

　은가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한 폭의 화보를 보듯, 명화를 보듯 홀려갔다.

　스륵, 조심스럽게 내 머리카락을 놓은 은가람이 말했다.

　“화연님, 화연님은 저를 잊으셨어도 저는 화연님에 대해 잊지 않았어요.”

　원래의 천호와는 같은 듯싶지만 묘하게 다른 부분이 많아서 항상 비교하다 보니 각인처럼 된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어쨌든 이요.

　“아름답고, 잘생기고, 반짝이고, 화려하고. 때론 차분하고 깔끔한 것들도. 계열을 가리지 않고 예쁘면 다 좋아하시잖아요. 어때요, 저는 화연님의 취향에 맞게 잘 컸나요?”

　기대하신 만큼으로요. 아, 저와 함께했던 추억을 잊으셨으니 대답 못 하시려나.

　살풋 웃는 은가람은 취향 따윈 부숴버리는 잘생김이었다.

　나는 여전히 꼼짝 못 하는 분위기에 사로잡힌 채 대답했다.

　“그때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로는. 응, 잘 컸네.”

　그에 은가람은 눈을 내리깔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곤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화연님, 화연님은 욕심이 많으시니 한율과 저. 둘 다 가지고 싶으신 거죠? 저는 한율과 달리 천호인 화연님의 옆자리를 독차지하고 싶어 아등바등거리지 않아요.”

　살풋, 내리깔린 속눈썹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들어 올려지더니 선명한 은가람의 오드아이와 정확히 마주쳤다.

　이거야말로 보석이네.

　감탄하는 사이, 이게 진정 유혹이다 ,를 보여주는 것처럼 야살스런 표정을 짓은 은가람이 내게 주문을 걸듯 말했다.

　“원하신다면 모든 가지세요, 화연님.”

　그리곤 내 손을 잡아 제 가슴팍에 올렸다.

　그 행동의 의미가, 이런 상황이 채 파악되기도 전에 내 손은 은가람의 손과 함께 은가람의 앞섬을 벌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퓨전 한복이라 그런지 쉽게 은가람의 탄탄한 앞가슴이 들어났다.

　와,

　나는 나도 모르게 진지해지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런 내 반응이 기꺼웠는지 은가람은 살짝 웃으며 내 손을 움직였다.

　복근, 배꼽, 바로 직전.

　거기서 내 손을 멈춘 은가람은 나와 시선을 맞추며 한 번 더 야살스럽게 웃었다.

　그뿐일까, 유혹하는 듯, 적당히 붉은 입술은 달콤한 어투를 내뱉었다.

　“그 첫 번째로 절 드릴게요.”

　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은가람은 천사의 탈을 쓴 악마다.

　달콤하고 진득한 유혹을 건네는 악마.

　*

　거부할 수 없는 은가람의 묘한 분위기가 나를 감싸 안았다.

　그에 나도 모르게 손을 움직이려 하는 순간.

　“!”

　부스럭, 수풀을 헤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귀여운 여우 한 마리가 내 팔을 건드렸다.

　여우?

　의아했지만 내 팔에 제 얼굴을 비비는 여우 한 마리 덕에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사라졌으니 상관없었다.

　그리고,

　여우 귀여워!

　순간 여우에 신경이 쏠려 제멋대로 움직이려던 손을 여우에게 받쳤다.

　“발토시, 발토시 낀 것 봐. 귀여워.”

　어느새 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여우만 쓰다듬는 나에 조금쯤 짜증을 섞어 웃은 은가람은 여우에 완전히 시선 팔린 내 위에서 내려오며 읆조렸다.

　“뜬금없이 여우라.”

　“뜬금없지만 귀여워.”

　“네, 뭐.”

　화연님이 그리 생각하신다면야.

　약간 삐진 듯 한거 같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와 동시에 다시 부스럭거리며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지는 발걸음 소리까지.

　누가 왔나?

　그에 자연스럽게 발소리 주인을 향하자 보이는 건 바론.

　“바론?!”

　너무 뜬금없어 소리치자 바론 또한 당황한 듯 침묵했다.

　둘 다 당황한 그사이, 은가람만이 여유로이 일어나며 혼자말인척 읆조렸다.

　“여긴 궁 밖인데.”

　어쩐지 담을 넘더라니.

　궁 밖이었구나.

　몰랐던 사실을 깨닫는 사이 은가람이 비식, 비웃음을 걸치며 바론에게 말했다.

　“자리 이탈이군. 징계는 각오하고 우릴 쫓아온 거겠지. 바론 예무.”

　그에 바론은 잠시 동공 지진을 일으키더니 이내지지 않겠다는 듯 맞받아쳤다.

　“오늘은 비번이며 미호가 갑자기 뛰어가는 바람에 따라왔을 뿐입니다.”

　그러고 바론은 조용히, 깊게 상처 입은 눈동자로 은가람의 풀려있는 앞섬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 이건 또...

　망했음을 직감하는 순간, 바론은 내게서 시선을 돌리곤 지극히 공적인 어투로 이어 말했다.

　“절대 천호 폐하와 제 1단, 은가람 예단님을 따라온 것이 아닙니다. 섣부른 오해는 거두시기 바랍니다.”

　정중히 고개 숙인 바론은 여타 다른 감정은 없다는 걸 보여주듯 단호한 태도로 내 옆에서 비비적거리는 여우를 불렀다.

　“미호, 이리 와.”

　말을 알아들었는지 여우는 곧바로 바론에게 다가가 순순히 안겼다.

　한쪽 무릎을 꿇고 여우를 안아 든 바론은 다시 한번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론은 입술을 굳게 다무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의 말 없이 물러났다.

　“아니, 잠-,”

　{뜬금없이 나타나는 패널티.

　당신은 오늘 하루 바론에게 갈 수 없습니다.}

　{패널티 -1}

　{남은 패널티 : 4 }

　그런 바론을 잡으려던 나는 시스템에 막히고 은가람에도 막혔다.

　은가람은 여유롭게 유혹하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다급하게 내 옷 끝자락을 잡았다.

　그렇다고 표정마저 다급한 건 아니었지만.

　“오늘은 저와 있는다고 하셨잖아요. 어항에 넣었다고 벌써부터 밥을 안 주는 건 너무한데요?”

　“...”

　와우, 노리개에 이어 어장관리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천호인 나는 많은 이성을 거느려야 한다는 세계관이지만,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은 건가?

　*

　은가람과의 시간은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어색하기는커녕, 현실에선 삼일, 여기선 3년이란 시간의 공백에 대해 묻기 바빴다.

　어떻게 만났는지, 내가 천호가 아니라 나인 걸 어떻게 알아챘는지, 3년 동안 어떤 식으로 놀았던 건지 등등.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아까 바론이 은가람에게 예단님,이락 했다.

　예무가 기사같은 느낌이면 예단은 기사단의 단장 느낌.

　그럼 은가람은 바론의 상사지.

　상사면?

　“이렇게 놀아도 돼?”

　“네?”

　“아니, 너 예단이라며 이렇게 놀아도 돼?”

　그에 은가람은 아, 음. 하며 뜸 들였다.

　그러다 곧 생각난 듯 생긋 웃으며 말했다.

　“예단이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저 한율과 똑같은 보름가의 여화잖아요.”

　좋아, 한마디로 뒷배경이 있으니 놀아도 된다는 거네.

　내가 짜게 식은 눈으로 저를 쳐다보자 은가람은 치사하게도 미인계를 썼다.

　“제가 옆에 있는 게 싫으세요...? 그럼 화연님 옆 말고, 일하러 갈까요...?”

　머뭇거리는 척, 순수한 마음으로 곁에 있고 싶어서 그런 건데 거절당해서 서운해하는 척.

　천사같이 잘생긴 얼굴과 어우러지니 나도 모르게 아니, 내 옆에 있어. 라고 말했다.

　잘생긴 거 최고.

　거기에 몸도 좋으니 더 최고.

　물론 저 척하는 것에 속은 건 아니지만 속아준 척 한 거다.

　진심으로 속기엔 아까의 야시시한 행동들이 뇌리에 깊게 박혔으니까.

　아, 잠깐, 가만 보니 아까전,

　‘저는 한율과 달리 천호인 화연님의 옆자리를 독차지하고 싶어 아등바등거리지 않아요.’

　이 말의 의미가 혹시 다른 사람들이 내 옆자리를 독차지할 수도 없게 나를 홀릴 자신이 있으니까, 인 건가?

　확실히 설득력 있었다.

　셋 중에 은가람이 제일 여우 같으니까, 응.

　아님, 아까 다급히 내 옷자락을 잡았던 걸 생각하면 내 마음을 얻으려고 한발 양보해서 저런 말을 한 건가?

　한참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역시 하나였다.

　나한테 역하렘은 힘들어.

　물론 행복에 겨운, 가볍고도 가벼운 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