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게임; 지뢰를 피하라!]
오늘 하루 바론과의 대화에서 무사히 지뢰를 피해 보자!
한 방에 끝나면 아쉬우니 방어권 두 개를 드리는 서비스까지.
보상: 무사히 지뢰를 피해 대화를 끝내면 바론의 오해를 풀 수 있다}
역시 시스템.
이렇게 쉽게 오해를 풀게 해주진 않겠지.
반쯤은 예상하고 있어서 그런지 덤덤히 퀘스트를 읽었다.
지뢰를 피해서라, 약점이나 상처 같은 것만 안 건들면 되는 거겠지? 쉽네.
나는 내 뒷말을 기다리는 바론에 적당히 다른 말로 대체했다.
“아니, 그냥. 다른 예무들은 다 저쪽에서 하는데 왜 너만 여기서 하나 해서.”
띠링,
[축하합니다, 지뢰를 밟으셨군요! 방어권 -1 ]
“어?”
이게 왜 지뢰야?
뜬금없는 시스템의 안내에 당황하며 바론을 쳐다봤는데 지뢰가 맞았는지 바론의 안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아니, 왜?!
{“바론. 이제부터 자율훈련일 땐 넌 여기서 하면 돼. 다른 이들에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언질 줘뒀으니 자율훈련일 때만이라도 편하게 집중해.”
다른 예무들과는 약간 떨어져 있는 곳, 천호의 애인인 자신에게 날아오는 여타 시선들과 말들에서 미묘히 벗어나는 위치라 혼자만의 수련에 집중할 수 있는 곳.
명백한 배려임에 바론은 몽클한 감정이 벅차올라 그저 감사하다, 깊은 배려에 감사하다, 되내었다.
천호의 배려가, 자신을 향한 천호의 애정이, 사랑이 담긴 곳.
종종 백호가 보름의 눈을 피해 사랑을 속삭이는 곳.
그렇기에 바론은 이곳이 매우 소중했다.}
와우.
이런 거면 방금 너만 왜 여기서 하냐, 라는 내 물음의 의미는 아주 이상하게 변질된다.
가령 예전엔 널 사랑해서 배려해줬지만 이젠 널 사랑하지 않으니 여기서 꺼져라, 너도 그걸 알 텐데 왜 아직도 여기를 쓰냐. 이런식으로.
내 생각이 맞다는 듯 바론은 습관적으로 주먹을 꽉 주고 고개를 떨구며 죄송하다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습관이 되어. 바로 원래 위치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여기가 너무 좁은 거 같아서 새로 넓은 곳을 찾았거든. 너보고 저번에 여기 말고 거기서 하라고 하지 않았나? 아차! 생각해보니 아직 너한테 말 안 했었네. 하하, 기다려, 곧 새로운 훈련장소 알려줄게. 더 편하고 더 넓을 거야!”
와하하, 어색하지만 유쾌하게 웃고 있자니 바론은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씁쓸한 미소를 짓긴 했지만 기다리겠다 했으니 일단 잘 넘어간 거겠지?
나는 바론과 헤어지면 해야 할 일에 지도를 펼쳐 이곳보다 넒으면서도 훈련장으로 사용 가능한 곳 찾기, 를 넣었다.
그리고 찾아오는 어색한 침묵.
바론 또한 그것을 느꼈는지 먼저 조심스레 제안해왔다.
“대화, 보다 오늘은 대련을 해주시겠습니까.”
“그, 으래! 대련하자, 대련.”
어감이 뭔가 예전처럼 애정 어린 대화는, 나에게 마음 떠난 너에겐 무리겠지. 그러니 차선책으로 대련이라도 하자. 라는 느낌이라 거절하기 매우 그랬다.
아, 대련이라 할만한 건 현실에서 해봤긴 하지만 그건 보호장치 다 끼고 했었던 거고 지금 이건 너무 맨몸으로 하는 거라 별론데.
속으로 꿍얼거렸으나 어차피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여기서 거절하면 바론이 역시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식으로 더욱 오해할 테고 그렇다고 대련 말고 대화하자, 제안하기엔 내가 어색했으니까.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난 지금 바론을 본 게 두 번째다.
그러니 솔직하게 오해를 푸는 게 아니면 할 말도 없는 것.
“언제나처럼 먼저 선공하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자세를 잡는 바론에 나 또한 자세를 잡다가 깨달았다.
나는 무기도 없고, 룬도 사용할 줄 모르는데...?
와, 엿됐다. 생각하고 있자 시스템 창이 띠링거리며 올라왔다.
{플레이어의 목숨 보전을 위하여 자동 행동 기능이 켜집니다.}
그와 동시에 나를 죽일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내 심장을 향해 다가오는 삼지창.
놀라 반사적으로 피하자 몸이 저절로 움직여 삼지창을 발로 차 냈다.
그러자 바론은 삼지창이 차여진 방향 그대로 한 바퀴 돌아 내 미간을 노려왔다.
그에 나는 고개를 살짝 틀어 삼지창을 피했고, 자동적으로 내 왼쪽 귀를 스쳐 지나가는 삼지창을 잡은 후, 그대로 반 바퀴 돌아 노려지기 쉬운 위치로 이동된 바론의 왼손을 오른발로 돌려 차올려 삼지창에서 떨어뜨렸다.
누가? 내가.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니.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바론을 쳐다보자 바론 또한 놀라며 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그걸 보고 있자니 뭔가 더 뿌듯해졌다.
놀랍냐? 놀랍지?
하핫, 그래, 나도 놀라우니 실컷 놀라워해.
내가 이렇게 빨리 움직인다.
바론은 무기를 빼앗겼으니 공격할 수단은 육체와 룬밖에 없었다.
신체조건이 꽤나 차이 났으나 나에겐 시스템 버프가 있으니 무서울 게 없어 자아도취 하며 도발했다.
“뭐해?”
넋 놓지 말고 어서 덤벼, 라는 의미로 내뱉곤 바론이 덤벼오는 걸 기다렸다.
덤벼, 덤벼. 이 기세를 몰아 이겨줄 테니-... 까아... 아?
“바, 바론. ...울어?”
그러나 덤벼오긴커녕 대뜸 바론의 얼굴이 울 것같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당황해서 우냐고 묻자 바론은 질문에 답하는 대신 뜬금없는 말을 짓씹듯 말했다.
“역시, 역시였습니까... 제 예상이, 맞았던 겁니까”
“?”
뭔 예상? 뭔 예상을 했는데?
어리둥절하자 시스템이 띠링, 띠링, 띠링 울리며 바론 대신 설명해줬다.
{[축하합니다, 지뢰를 밟으셨군요! 방어권 -1 ]}
{방어권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바론은 룬을 이용한 대련 시간을 꽤나 좋아했다.
천호 폐하께서 친히 자신을 대련 상대로 선택해 주어 항상 마주할 수 있는 것도 모자라 대련할 때 마다 느끼는 자신을 향한 폐하의 애정때문이었다.]
이것은 필시 지뢰를 밟았다는 증거. 망했네, 속으로 직감하며 시스템의 설명을 계속 읽었다.
[역대 천호중에 가장 약할 뿐, 여타 일반 사람들과 비교하면 무척 강한, 몇백 년 만의 인재라 불리는 백호가 보름보다 약간 못 미칠 만큼이나 강한 폐하는 언제나 자신을 위해 세밀한 조절로 둘 다 다치는 일 없이, 상처하나 없는 채로 대련을 끝냈다.
그뿐 아니라 대련이 끝나면 항상 걱정어린 표정으로 다친 곳은 없냐며 다정히 물어봐 주었다.
폐하께서 이리 애정 어리게 물어보면 자신은 그저 다친 곳이 없다 덤덤히 대답했고 폐하께선 다행이라며 내가 다치면 슬프다고 말씀해주셨다.
꼭 스쳐 지나가야 하는 절차처럼 대련 후에 항상 반복되는 이 대화가 대련시간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
아니, 아니! 대련하는데 얼마나 섬세하게 대해 줬던 거야?!
경악과 함께 정지한 몸과 다르게 시스템은 히힛, 이만큼? 이라는 문구라도 띄워야 될 만큼 친절히 알려주었다.
[저번에 어쩌다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일 게 분명한, 대련하다 화연께서 실수로 바론에게 상처를 입혔을 땐 정성이 정성이, 누가 보면 목숨이 위태로울 만한 상처인 줄 알았을 정도였다.
바론이 다친 건 그저 화연의 얼음 조각에 손이 살짝 베인 것뿐이었다.
계속 지켜보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겨우 그딴, 조그마한 상처로 화연께선 안절부절못했고 결국 선의를 불러 진찰을 받게 했다.
그뿐이랴, 친히 붕대까지 감아주셨다. 분명 치료 룬을 가진 선의에게 명령해 상처나, 흠짓 하나 없이 완치된 바론의 손에!
그것도 모자라 옆에서 밥 먹는 거, 필기하는 거 하나하나 챙겨주기까지.
제일 상처받았던 건 그때였다.
손에 붕대를 감은 바론을 친히 앉히시고 대신 나를 대련 상대로 지목하셨을 때.
그땐 그저 바론의 대타라는 것도 생각 못 하고 좋다고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읏, 잠깐, 화연. 너무 몰아붙-!”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검이 날아갔다.
화연은 덜썩, 주저앉아진 나의 앞에 대충 만든, 끝이 날카로운 얼음 대를 들이밀었다.
“끝이다.”
대련 상대로 자신을 집어주었다는 사실에 들뜬 마음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바론은! 천하디천한 바론은 그리 다정히 대련해주셨으면서...!
나는 나에게 등지고 구경하고 있던 바론에게 뛰어가는, 걷는 것도 아니고 뛰어가는 화연에 혼자 울음을 삼키며 일어섰었다.]
이걸 한율 시점으로 알려준다고?
어이없음이 올라왔다.
아니, 진짜 이딴건 미리 좀 알려줘야 내가 어떻게 할 거 아냐.
이미 상처는 났는데.
결론은 저를 상처 입혔는데 당황하기는커녕 일부러 상처 입힌 것 마냥 당당하게 뭐해, 라고까지 말하는 내 모습을 보고 바론이 혼자만의 상상을 펼쳤다는 거 아냐.
망했네, 라는 절망감을 착실히 억누르며 시선을 움직여 바론의 상태를 살폈다.
음?
그냥 살짝 까진 정도였다.
이 정도에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거면 도대체 뭔 상상을 했길래?
와그작, 울것같이 얼굴을 일그러트리고만 있는 바론에 나는 일단 선의를 불러올까, 아님 보건실, 여기선 의료실이라 불리는 곳에 갈 거냐를 물어봤다.
“선의를 불러다 줄까?”
“...”
“아님, 의료실 갈래?”
{축하합니다, 지뢰를 밟았군요!}
“아닙, 니다. 저 혼자, 의료실에 가겠습니다.”
{미니게임에 실패하였습니다.}
아니, 왜?!
띠링, 울리는 시스템 창에 세상 억울해졌다.
진짜, 나는 진짜로, 비록 대련이지만 나 때문에 바론이 다친 거니까 좀 더 편한 선택지를 고르라고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지뢰였는지 게임은 실패했다 뜨지, 바론은 내 말이 뭐가 그리 상처였다고 서글픈 얼굴로 저 혼자 의료실로 가지.
뭐지? 왜?
이번엔 정말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어 의아해하며 그의 뒤태를 보고 있자니 헷, 빨리 뒤따라가지 않으면 바론의 상상 속 너는 개쓰레기가 될걸.이라는 듯 정보가 떠올랐다.
[그저 대련하다 입은 작은 상처였다.
피가 조금 나오긴 했지만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걱정하는 폐하를 보자니 아픈 것 따윈 느껴지지도 않았다.
폐하께선 내가 괜찮다 했음에도 선의를 불러올까? 의료실 갈까? 데려다줄까? 라는 물음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선의를 불러와 치료받게 했다.
그리고선 말끔해진 손에도 혹시 모른다며 정성스럽게 붕대를 감아주셨다.
‘오른손이라 불편하겠지만 일주일 동안은 계속 붕대 감고 있자.’
‘예’
‘대신 옆에서 도와줄게. 앞으로도, 혹시나 다치면 바로 말해. 네가 다쳤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긴 싫다는 내 마음, 다친 너를 혼자 의료실에 보내긴 싫은 내 마음. 이해하지?’
붕대를 감아주시는 그 손이, 그 말이 얼마나 따스하던지-]
아아아아아아!!!
“야야야! 바론! 같이 가! 데려다줄게! 아까 말한 건 헛소리였어! 내가 어떻게 다친 너를 혼자 보내. 그렇지?”
다급한 내 붙잡음에 바론은 순순히 발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그에 나는 안도했다.
됐, 됐다! 이런 식으로 또 오해를 쌓을 순 없지! 일단 붙잡았으니 천천히 변명하는 거야!
는 무슨, 바론은 이미 상처 한가득 받고 포기한 사람의 표정으로 나를 담담히 만류했다.
“억지로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러지 않으셔도 저는 착실히 천호님의 노리개로 남아있겠습니다.”
“...으, 응?”
듣기 좋은 중저음으로 충격적인 말을 내뱉은 바론은 충격받아 멍청히 굳어있는 나를 아련하게 쳐다보더니 씁쓸히 등졌다.
나는 그런 바론을 감히 잡을 생각도 못 하고 굳어있었다.
노리... 노리개... 미친...
잘 쓰지 않는 단어라 그런가 노골적인 단어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노리개, 와, 하, 허! 노리개! 와! 하!”
어이가 와장창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단 하나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래, 이 게임 속 내 역할은 인간쓰레기다.
그것도 개쓰레기!
나는 절망하며 내 궁으로 돌아갔다.
“바론 예무와 싸우기라도 하셨습니까? 표정이-,”
“...”
“아...”
호위무사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습니다, 라는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됐어, 이제 거의 다 놓았다.
패널티가 불리는 내일, 한율에게는 괜히 변명 늘어놓다 이번처럼 지뢰 밟고 싶지 않으니 사과만 하자, 담백하게 사과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