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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완] 벙커
작가 : 강냉구
작품등록일 : 2019.9.2

2048년,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가 멸망 후 벙커에 살게 된 상류층들과 그들에게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실험!

 
진실 - 03
작성일 : 19-09-02 20:44     조회 : 189     추천 : 0     분량 : 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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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도를 달렸다. 천장에 붙은 스피커가 기분 나쁜 잡음을 내기 시작했다. 달리면 달릴수록 기분 나쁜 잡음은 내게 가까워져 갔다. 이내 듣기 싫었던 존재의, Z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거 같다. 나는 Z의 목소리가 들리자 발걸음을 멈췄다.

  “오는 11월 8일, 제 9회 연회의 밤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연회의 밤은 조금 더 특별하게 꾸며보자 합니다.”

  Z의 말에 침을 삼켰다. 그리고 목울대가 심하게 울렁거렸다. 나도 모르게 긴장했나 보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Z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연회의 밤, 최후의 1인에게 이 벙커의 소유권을 드리겠습니다.”

  Z가 말했다.

  Z의 말에 나를 포함한 복도 위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서로 마주본다. 표정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겁이 났다.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나는 멈추지 않고 B-102를 향했다.

  B-102 안으로 들어온 나는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소파에 앉아 멍하니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은 금방이라도 저 깊은 해수면 아래로 잠겨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여자는 나를 외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자의 부름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할 말 있어!”

  나를 더 귀찮게 하는 여자에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인터폰으로 밖을 확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를 확인했다. 하지만 여자는 없었다. 밖에는 그 무엇도 없었다.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다시 소파로 돌아갔다.

  장난치는 건가…….

  다이닝룸에서 여자를 만났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나에게 다가온 여자는 내게 “Z의 말이 뭘 뜻하는 걸까. 최후의 1인은 뭐고…….”라며 내가 궁금했던 알고 싶었던 그리고 두려웠던 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Z의 말에 아주 많은 예측을 했다. 그리고 그 많은 예측 중에 답은 한 가지였다.

  “죽이는 거겠지?”

  “뭐?”

  내 말에 여자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답을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최후가 뭐겠어.”

  나는 여자에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 이건 배틀로얄이나 마찬가지야.”

  다시 한 번 여자에게 말했다. 확인사살을 하는 듯한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여자는 미간을 있는 힘껏 구겼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Z가 우리를 학살하려고 하면 넌 날 죽일 거야?”

  여자가 물었다.

  나는 여자의 말이 이상했다.

  “어째서 학살이라고 하는 거지?”

  내가 물었다.

  여자의 대답을 얻고 싶었다.

  “그러니까…….”

  여자는 내 말에 당황한 듯 보였다. 그리고 대답을 주지 않을 거 같았다.

  “너 나 죽일 거야?”

  내 말이 맞았다. 여자는 내가 원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자에게 여자가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여자의 말은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해야 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 벙커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넌?”

  하지만 난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네가 하는 거 봐서. 네가 날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나도 널 죽이지 않을 거야.”

  한참 후에 나는 여자가 원하지 않는 답변을 줬다. 여자는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황급히 자리를 떴다. 나는 여자가 자리를 뜨고도 벽에 기대고 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이 지났다.

  복도를 걷는 나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여자에게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제 갈 길을 갔다. 그런데 여자가 그런 나를 뒤따라와 내 앞을 앞질렀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나 죽일 거야?”

  여자가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짜증났다.

  “뭐?”

  “난 너 안 죽일 거야. 절대로. 그러니까 우리 딜 해야 돼.”

  여자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무슨 딜……? 죽이지 않기로?”

  내 말에 여자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응.”

  나는 그런 여자의 모습에 대답했다. “알았어.”

  죽이지 않겠다는 확답을 들은 여자는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환하게 웃어보였다. 나는 여자의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여자를 따라 억지 미소를 지었다. 억지스러운 내 표정에 여자는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들기고 뒤를 돌아 나와 반대편으로 걸었다. 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확인한 듯 복도 위를 걸었다.

  왜 저렇게 웃는 걸까.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여자가 내게 말했던 건 진실이었다. 여자는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방금 전에 여자가 내뱉은 말이 이 벙커 안에서 들은 말들 중 진실에 가까운 말이었다. 여자의 말이 내가 내뱉은 말들 보다 더 진실에 가까웠다.

 

  다이닝 룸으로 가자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아주 외롭게 둥근 테이블에 혼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이닝 룸 안의 사람들은 그런 여자를 쳐다보지만 여자는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을 무시한 채 묵묵히 도시락을 먹는다.

  “최희준!”

  내가 여자의 시선에 들어 온 듯 여자는 나를 불렀다.

  돌아갈 걸.

  커피야 빨리 나와라…… 도망이라도 가게.

  “야!”

  여자는 또 다시 나를 불렀고 다이닝 룸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커피가 나왔다.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커피를 들고 다이닝 룸을 빠져나갈 찰나에 여자가 나를 붙잡았다.

  “왜…… 나랑 있기 싫어?”

  여자가 물었다.

  “할 게 있어서.”

  내가 말했다.

  “뭐 하려고?”

  “있어. 그런 게.”

  바보 같은 나의 대답에 여자는 나를 더 이상 잡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이닝 룸을 빠져나가는 동안에 여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주 날카로웠다. 커터 칼 보다 날카롭고 송곳보다 뾰족하다.

  커피가 따뜻하다.

  커피는 차디찬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나는 다이닝 룸을 나와 체력 증진 센터로 가는 내내 여자의 진실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왜 나를 살려주려고 하는 걸까. 여자는 나에게 한심한 마음이 생긴 걸까……? 하지만 답은 없었다. 나는 여자의 마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여자를 아주 싫어한다.

  체력 증진 센터 안으로 들어 온 나는 평소처럼 스트레칭을 하고 러닝머신 위에 올라탔다. 러닝머신에 딸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TV를 틀었다.

  “남자B. 희준. 최희준!”

  한참을 달렸을 때 누군가 나를 방해했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군가에게 휘말리지 않았다.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나는 10분…… 20분을 더 달렸다.

  이어폰을 뺐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러닝머신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나는 덤벨을 들었다. 무겁지 않았다. 그런데 이 덤벨을 맞는다면 뇌진탕은 걸릴 것만 같았다. 절대적으로 체력 증진 센터에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내 모습이 너무나도 우습다.

  운동을 끝마친 나는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물줄기가 아주 세차게 내 몸을 때렸다. 차가운 물에서 뜨거운 물로 바뀔 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비누로 거품을 내고 머리를 닦았다. 감을 필요가 없었다. 머리에 있는 거품을 닦아내려고 할 때 즈음 갑자기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샤워기의 구멍을 봤다. 검지로 샤워기를 툭툭 쳤다. 그러자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샤워를 시작했다.

  물이 아주 세차게 나를 때렸고, 아주 투명하게 흘러갔다. 나는 하수구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응시했다.

  “물……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거지…….”

 

  샤워를 끝마친 나는 체력 증진 센터를 빠져나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운동에 열중하고 있었고 저마다 무언가를 하며 바삐 움직였다.

  나는 그 사람들과 달랐다. 어서 B-102 안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무언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B-102로 향했다.

  B-102에 다와 갈 때 즈음 스피커에서 기분 나쁜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나는 스피커에서 Z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전에 B-102로 달려갔다. 쫓기는 사람처럼 급하게. 주머니에서 카드 키를 꺼냈다. B-102 현관 문 옆에 딸린 기계에 카드 키를 대자 삐빅 소리를 내더니 문이 작은 틈을 보이며 열렸다. 나는 B-102 안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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