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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완] 벙커
작가 : 강냉구
작품등록일 : 2019.9.2

2048년,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가 멸망 후 벙커에 살게 된 상류층들과 그들에게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실험!

 
진실 - 02
작성일 : 19-09-02 20:44     조회 : 198     추천 : 0     분량 : 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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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은 아주 일정했다. 특별한 게 없었다. 특별한 일도 없었다. 여자와 관계를 가지거나 체력 증진 센터에서 운동을 하거나 B-102 안에 틀어박혀 오래된 동영상을 보거나 자판기에서 참치김치볶음밥을 꺼내 먹거나 휴게실에서 재미없는 TV를 보거나…… 아주 재미없고 반복적인 삶의 연속이었다.

  아…… 특별한 게 있다면 나는 다시 약을 먹지 않았다. 한때 시달리는 열사병처럼 약에 대한 갈망은 말끔히 끝이나버렸다.

  체력 증진 센터 안으로 들어 온 나는 커다란 거울 앞에 서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다른 사람들을 쳐다봤다. 아니, 감시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을 정도로 사람들을 봤다.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의식하지도 않고 자신만의 목적을 달성해야만 하는 사람들처럼 움직이고 운동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스트레칭을 끝낸 나는 러닝머신 위에 올라탔다. 평소처럼 48번 채널을 뚫어져라 보지 않았다. TV를 틀지 않았다. TV는 검은 회면으로 뒤덮여 있다. 그냥 운동만 하고 싶었다.

  러닝머신 위를 한참 달렸을 때 러닝머신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하지만 나는 러닝머신에서 내리지 않았다. 저번처럼 무언가 끼지 않고 다시 또 러닝머신이 작동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들어맞았다.

  러닝머신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계속 운동할 거야?”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러닝머신의 속도를 줄이고 여자를 쳐다봤다. 운동을 할 마음이 전혀 없는 듯 운동복 차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자는 가장 눈에 튀었다.

  “밥 먹으러 가자.”

  여자가 말했다.

  “나 방금 전에 왔어. 운동해야 돼.”

  “나랑 먹긴 할 거야?”

  여자는 아주 퉁명스러웠다.

  “응. 먼저 가있어.”

  먹을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배가 고팠다.

  “알았어. 가있을게.”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바람처럼 다가와서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여자가 사라지고 러닝머신의 속도를 올렸다. 나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아!”

  내가 한참을 러닝머신 위를 달렸을 때 발목이 삔 사실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무리해서 달리지도 않았는데…….

 

  온 몸 여기저기 파스 투성이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파스 냄새가 풍겼다. 나는 이 냄새가 좋았다. 사람마다 이상한 취향이 있는데 나는 파스 냄새가 좋다. 벙커에 오기 전부터 파스냄새는 좋았다. 그리고 또…… 목욕탕의 냄새도 좋다.

  “늦었네……?”

  B-114 앞에서 나를 반기는 건 여자였다. 하지만 여자의 음성은 나를 반기지 않았다.

  “운동 한다고 했잖아.”

  나는 여자의 음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여자가 싫어할 법한 음성으로 여자의 말에 대꾸했다. 여자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자를 따라 B-114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서 저런 것들을 찾은 건지……? 식탁 위에는 붉게 빛나는 초가 있었다. 분위기를 낸 듯하다. 난 저런 게 싫다.

  “앉아.”

  여자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여자의 맞은 편에 앉았다.

  “다 어디서 난 거야?”

  “샀어.”

  그러겠지……. 훔칠 수 없는 시스템이니까…….

  “사실 연회의 밤에서 잔 남자가 고기를 보냈더라고.”

  내 표정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건 진실이었다. 나는 여자의 말에 대한 진실 감별사가 된 듯하다.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하지만 여자는 나를 모른다. 내 웃음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한다.

  “다음에 또 만나자는 건가?”

  내가 물었다.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입김을 불어 붉은 빛을 꺼버렸다. 어두워졌다. 여자의 형체가 보인다.

  나는 불을 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위치를 찾았다. 딸깍 소리와 함께 B-114 안이 환해졌다.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았다.

  “……!”

  놀랐다.

  심장에 전기충격기를 가한 만큼 심하게 놀랐다.

  여자는 내 뒤에 서있었고 나를 나이프로 찌르려고 했다.

  “쫀 거야?”

  내 표정을 본 여자가 나를 무시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여자는 배를 부여잡고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뭘 그런 거 가지고 쫄아?”

  또 다시 나를 무시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 말 없이 질긴 고기를 썰었다. 잘 썰리지 않는다. 나이프를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러더니 질긴 고기가 반 토막이 나버렸다. 그리고 다시 고기를 썰었다.

  “네가 날 정말 찌를 거라고 생각 했거든.”

  내가 놀란 이유이다.

  여자는 내 말에 멈칫하다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여자와 달리 아주 평온하게 고기를 썰어먹었다.

  핏물이 보인다. 좋은 고기인가…….

 

 

  B-102로 돌아 온 나는 책 한 권을 꺼냈다. 저번에 봤던 ‘팬텀 오브 더 나이트메어’를 다시 보고 싶었다. 팬텀 오브 더 나이트메어를 책장에서 꺼내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접힌 부분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집에 오니 3시가 넘었다. 집에 와서 씻고 누웠다. 운동을 했더니 더 피로가 쌓인 것 같았고 누워있으니 잠이 스르륵 오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꿈속에 있다. 그런데 너무 이상했다. 기분이 너무 이상해. 나는 약을 먹지도 않고 잠이 들었는데 나무괴물이 나올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제발 나오지 마. 제발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제발 사라져줘. 제발 내 눈앞에서 영영 사라져줘. 마음속으로 누누이 되뇌었다. 검은 암흑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암흑이 그림자가 내 몸을 조여 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더니 멀리서 검은 형체가 다가왔고 나는 고개를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감으려고 해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두려움에 떤 채로 멀리서 내게 다가오고 있는 그 형체를 두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천식환자가 기침을 하듯 난 미친 듯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목을 조여 오는 답답함에 내 두 손으로 목을 계속 긁었고 두려움에 식은땀이 계속 흘렀다. 어떡해. 나 이제 죽는 건가. 땅 바닥엔 온갖 벌레들이 기어 다닌다. 그 벌레들은 내 몸을 타고 귓속으로 들어왔다. 내 고막을 벌레들이 긁어 먹고 있다. 왼손으로는 귀를 오른손으로는 목을 긁었다. 미칠 듯한 기분이 들었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 밖은 어둑해졌고 까마귀들이 까악 하며 울고 내 창밖에 날아다닌다. 이상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내 눈앞에 펼쳐졌고 나는 그것을 맞닥뜨리고 있다. 약을 먹지도 않았는데 나는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되겠다.

 

  “뭐지?”

  이상했다.

  누가 날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내가 처한 상황과 비슷했다. 제인의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패트릭이게 문자를 보내자 전화가 옴과 동시에 창밖의 까마귀들이 나를 쪼아보며 부리로 유리를 깨기 시작했다. 패트릭은 놀랐는지 큰 소리로 말을 하는데 머리가 너무 깨질 것 같다. 그리고 까마귀들이 문을 뚫고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까마귀들을 피하다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유리가 된 마냥 내 몸은 땅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목젖은 살아있는 마냥 말이 나왔다. 내게 달려들었던 까마귀들은 부서진 나의 파편조각들을 쪼이며 내 마지막 남은 목젖까지 쪼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땐 난 침대 위에 누워있고 이마엔 수건이 얹혀져있었다. 다행이다. 패트릭이다. 패트릭은 내게 왜 그러냐며 되묻는다. 나는 패트릭에게 바닥에 벌레가 기어가서 내 귓속으로 들어와 내 고막을 파먹었어. 그리고 나는 밖에 까마귀들이 유리창을 뚫고 나는 까마귀를 피하려다가 넘어져서 깨져버렸어. 그리고 난 죽었어. 내 말에 패트릭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패트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패트릭은 방을 나가 버렸다. 나는 패트릭에 놔둔 물과 함께 약을 먹었고 침대에 누웠다. 참 이상했다. 내 꿈속에서 검은 물체가 나한테 빠르게 다가왔고 나는 그 얼굴에 놀라서 꿈속에서 기절을 해버렸고 그와 동시에 현실에서 깨어났어. 그리고 생각하기도 싫었던 일이 일어났다. 그 검은 물체는 눈이 없었다. 그리고 코도 없었다. 그저 입 밖에 없다. 그 것은 내 몸을 관통했고 내 귓속에 ‘제인 조심해’ 이렇게 말을 했다. 무엇을 조심하라는 것 일까. 그리고 검은 물체는 무엇일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이 내 눈 앞에서 나를 죽여 갔던 이유는 무엇일까.

 

  약이 문제인 걸까…… 나는 책을 읽는 걸 멈추지 않았다. 오늘 밤에는 밤새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벙커 안, 보이지 않는 존재라도 나와 같은 존재가 있다고…… 그게 바보 같은 책 속의 주인공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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