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래서 이제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이런 상황에서도 게임을 클리어해야 했다.
중도 포기가 불가능하니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게임 클리어뿐.
패닉에 빠질수록 머리는 침착해진다.
좋아, 이런 위험한 환경에서 바론의 마음부터 얻는 건 무리야.
한율부터 공략한다.
그러는 사이 역대 천호들처럼 모두를 억누를 수 있게 룬? 그걸 키워서 백호가 보름에게 대응할 정도의 힘을 만들고 바론도 공략하고 그 뒤에 뜰 다른 메인 퀘스트 애들도 공략하는 거지.
그리고 집에 간다.
결심한 나는 시스템에게 물었다.
역대 천호처럼 룬 강하게 만들 거야, 스킬이나 그런 기능 없어?
{없습니다.
팁 : 스토리가 일정 이상 지나거나 메인 퀘스트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때, 단계적으로 강해진다.}
“...”
그에 나는 짜게 식었다.
게임 시스템이면서 상태 창이나 이공간 주머니 기능, 스킬 뭐 그런 거 다없네.
게임 시스템 맞아?
{ [시스템은 죄가 없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시스템을 욕하다니 플레이어의 인성이 의심됩니다.
그러므로 패널티가 주어집니다. + 5
중요한 순간 패널티가 적용되며 그에 대한 감당은 오로지 플레이어의 몫.}
아, 진짜 개새끼.
{ [시스템은 죄가 없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시스템을 욕하다니 플레이어의 인성이 의심됩니다.
그러므로 패널티가 주어집니다. + 6
중요한 순간 패널티가 적용되며 그에 대한 감당은 오로지 플레이어의 몫.}
{플레이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6 패널티를 달성하다니 당신에게 [패널티 부자]의 칭호를 달아줍니다. 특별한 기능은 없습니다.
언행에 주의하세요.}
“...”
충고 참 고맙네. 쓸데없는 칭호도.
*
어쨌든 한율의 마음을 얻으면 퀘스트도 깨고 룬도 강해지고 등의 순차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에 당연 한율을 찾으러 집무실을 나갔다.
나가는 건 딱히 뭔가 할 필요 없었는지 선세 기능이 있는 것 마냥 앞에 서자 착착, 거리며 열렸다.
그렇게 집무실 밖을 나온 나는 한율을 찾으러 돌아다니기 위해 지도를 펼쳤고, 절망했다.
하루종일 뛰어다녀도 못 찾을 듯한 크기인데...?
좋아, 그냥 물어물어 찾자.
아, 이건 포인트 입력 안 되나?
한율 위치.
{튜토리얼이 완료됐으므로 사용할 수 없는 기능입니다.}
“...”
띠링, 시스템 창이 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한 즉시 정색한 나는 주위 사람을 찾았다.
스토리 안내하려는 건지 나를 방해하려고 저러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열받게 하려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네, 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천호가 집무를 보는 궁, 호지 궁을 나섰다.
그리고 바로 제 앞을 지나치는, 백금 발에 보기 좋게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
호지 궁에서 천호와 백호가 보름, 한율 여화가 싸운다는 소문이라도 퍼졌는지 백금발의 남성말곤 아무도 없었기에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백금 발의 남성을 불러세웠다.
아, 근데 무슨 말투를 써야 되지?
저기요? 한율 어딨는 줄 알아요? 이건 천호 같지 않고 야, 한율은 어딨어.는 너무 인성 없어 보이고 한율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느냐.는 게임 속 설정 상 천호가 쓰는 말투가 아닌 거 같던데.
고민하던 나는 적당히 중점을 찾아 내뱉었다.
“거기 너, 혹시-,”
내 부름에 백금 발의 남성이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리며 돌아봤다.
그리고 나는,
한율 어딨는 줄 알아?
“천사세요...?”
천사를 보았다.
앗, 속마음과 내뱉을 말이 뒤바뀌었네.
하지만 내 앞에 서 있는 남성의 얼굴을 본다면 누구든 내 실수를 이해할 거기에 괜찮았다.
비단실과도 같은 백금 발, 하늘에 백색을 풀어 담아놓은 듯한 왼쪽의 투명하게 푸른 눈동자와 천사들이 가지고 다니며 연주하는 금색 하프를 녹여 만든 듯한 오른쪽의 금안.
농부들의 피와 땀이 담긴 새하얀 쌀처럼 하얗고 보드라워 보이는 피부.
탐스럽고 보기 좋게 도톰한 입술까지.
천사다, 천사가 아니고서야 저 미모를 설명할 방도가 없다.
내가 거기 너, 라고 부를 때 인상 쓰며 돌아보더니 천사냐고 묻자 놀란 듯, 어벙한 표정으로 변하는 것조차 성스러우니, 천사가 아니면 무엇이랴.
어벙한 표정으로 있던 천사는 잠깐 생각하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가 곧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나를 쳐다봤다.
아, 잠깐만. 미소가 너무 눈부셔서 뇌까지 정화되는 느낌이야.
이게 바로 낙원인가?
“천사라니. 깊은 찬사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여기서도 천사란 말을 쓰나?
음, 쓰겠지.
그것보다 이게 바로 귀 정화구나 싶네.
심지어 착해.
내가 넋 놓으며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천사는 약간 몸을 숙이더니 나와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좌로 갸웃. 그에 천사의 결 좋은, 보기 좋게 곱슬거리는 백금 발이 호수에 얹혀진 햇빛처럼 살랑였다.
와-,
나는 코피가 쏟아질 거 같은 기분에 넓은 소매로 거리가 부담스러워 얼굴을 가리는 척, 얼굴 하관을 가리며 코를 부여잡았다.
물론 건강해서 코피 같은 거 안 나지만 혹시 모르니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천사가 이래도 코피가 안 날 것 같아? 하듯이 잔잔한 웃음을 흘렸다.
내 눈앞에서.
얼굴 미쳤다.
“칭찬 말고 제게 질문할 게 있는 듯해 보였는데. 맞나요?”
눈치도 빠르고 상대를 배려할 줄도 아네.
나는 코를 부여잡은 손을 놓지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한율, 어디 있는지 알까 싶어서.”
내 질문에 설핏, 천사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너무 찰나라 내가 잘못 본 건가 착각할 정도로.
뭐지? 천사랑 한율이랑 사이가 안 좋나?, 라고 예상했으나 이어진 천사의 말로 그 반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한율과 ‘무척’ 친한 저이니 어디 있을지 정도는 예상 가능합니다.”
‘무척’에 강조라니. 나는 약간 당황했다.
이거... 궁인들이 전부 호지 궁에서 멀어질 정도로 시끄럽게 한율과 싸웠으면서 염치없이 바로 한율을 찾아? 그것도 한율과 무척 친한 나한테? 라고 눈치 주는 거 맞지? 맞네, 맞아.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결국엔 내가 한 행동들이니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는 애써 웃으며 나도 모르게 변명했다.
“한율한테 너무 심하게 한 거 같아서 찾아서 화해하려고. 뭐, 생각하다 화나서 따지러 간다 이런 게 아니야. 어디에 있을지 예상할 수 있다니 잘됐네. 어디어디 인지 대충이라도 가르쳐줘. 자세한 건 내가 돌아다니면서 찾을 테니까.”
말을 마친 나는 긴장했다.
솔직히 나 같아도 내 절친한 친구를 울린 사람이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 친구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위치를 알려줄 수 있냐고 하면 장난치나 ?라는 생각이 듬과 함께 망설임 없이 네 알아서 찾으라고 말하며 거절할 거 같거든.
그래, 네 마음 이해하니깐 내 부탁 거절해도 알아서 뛰어다니며 찾을게.
반쯤은 체념하고 있었는데 이럴 수가 천사는 성격마저 천사인 건지 돌아온 대답은 긍정이었다.
“당연히 알려드려야죠. 아, 아니다. 폐하. 같이 찾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함께해도 될까요?”
게다가 같이 찾아준다니.
나긋하게 웃으며 내 허락을 기다리는 천사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외모를 거절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에 천사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안내를 시작했다.
“그럼 천궁의 동화부터 가시죠.”
천궁의 동화?
그게 어딘가 싶어 바로 지도를 켜 찾았다.
천궁이란 천호가 거주하는 궁.
동화란 천궁에 딸린 다섯 개의 정원 중 하나.
나머지 네 개의 이름이 춘화, 하화, 추화, 알 수 없음. 인 거 보니 동화는 겨울을 모티브로 만든 정원일 게 분명했다.
겨울을 모티브로 만든 정원이라, 어떨지 조금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며 천사를 따라가고 있자니 뜬금없이 천사가 제 이름을 소개했다.
“그리고 폐하. 제 이름은 천사가 아니라 가람. 은가람입니다.”
계속 속으로 천사라고 불렀지? 라고 묻는 듯한 오드아이가 살풋, 야살스럽게 접혀있었다.
오, 뭐지. 초능력-,이 아니라 룬이 독심술인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 또한 내 소개를 했다.
“아, 내 이름은 화연이야.”
“예, 알고 있습니다. 천호 폐하시잖아요.”
아차, 그랬지.
먼저 자기소개하기에 나 또한 자기소개해야 할 거 같은 기분에 휩싸여서 그만.
재밌다는 듯 조곤조곤하게 웃는 은가람에 약간 머쓱해졌다.
알고 있어도 처음 들은 척해주지.
민망함에 괜히 속으로 투덜대자 은가람이 아,하며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럼에도 말씀하신 건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는 허락인가요?”
그에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띠링, 띠링 거리며 시스템 창들이 올라왔다.
{메인 퀘스트 [마음을 얻어보자 3.]
옛 기억만 바라보며 그대만을 기다린 은가람.
천사 같은 얼굴 그렇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 반전매력 은가람.
당신에게만큼은 한없이 착하게 굴 그의 마음을 얻어 보자!}
{ [은가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한걸음!]
올바른 선택지를 골라 은가람에게 한발 다가가보자.
선택지 1 : 이름을 허락해준다.
선택지 2 : 이름을 허락하지 않는다.
선택지 3 : 아까부터 천호인 나에게 하는 행실이 건방지다 생각했는데 기어이 도를 넘는구나! 성낸다.
제한 시간 1초.}
0. 몇초로 타이머의 숫자가 내려가자 전부 다 읽지도 못하고 바로 선택지로 내려가 대충 읽고 1번을 골랐다.
마음을 얻어라, 잖아.
그럼 은가람이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다정하 게 하는게 더 나을 거니 당연 1번.
게다가 어차피 선택지가 아니더라도 부르게 했을 거니까.
다시 말하자면 저런 미남을 거절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
움직이지 않던 입이 선택을 하자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불러도 좋아.”
그에 은가람은 웃었고 시스템은 띠링 거리며 새로운 창을 띄웠다.
{축하합니다! 은가람의 마음에 한발 다가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