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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완] 벙커
작가 : 강냉구
작품등록일 : 2019.9.2

2048년,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가 멸망 후 벙커에 살게 된 상류층들과 그들에게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실험!

 
B-114 - 02
작성일 : 19-09-02 20:40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3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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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해졌다.

  비밀의 방에는 1인용 소파가 있었고 의자 하나가 있었고 책상 하나가 있었고 서랍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사진이 있었고 서랍 안에는 벙커에서 관리자를 통해 구매한 것들과 정확히 2년 11개월 23일간의 기록이 담긴 수첩이 있었다. 그 서랍은 자물쇠로 잠가져 있었고 열쇠는 액자 뒤에 붙어있었다. 다른 곳에 숨겨 놓고 싶었지만 폐쇄회로로 보고 있는 한 벙커 안은 안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소파에 앉았다. 다리를 쭉 펴고, 몸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B-102와는 다르게 사람의 방 그러니까 집 같은 모습이었다. 난 이 방을 비밀의 방이라고 부른다. 이름 참 유치하다고 느끼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었다. 비밀의 방…… 아무도 모르는 방…… 다락 방……. 그나마 괜찮은 게 비밀의 방이었다.

  난 궁금한 게 있었다. 다른 벙커 주민들의 집에도 이 비밀의 방이 있을까? 그들도 책장 뒤에 이런 방이 있을까? 하지만 답은 없다. 난 다른 이들의 벙커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다. B-114에는 가봤지만 책장 뒤의 비밀의 방은 발견하지 못했지. 아니. 혹시 몰라. 내가 비밀의 방의 존재를 알고 나서 여자가 날 불렀으니까. 알고 있겠지. B-102에만 비밀의 방이 있는 게 아니겠지.

  허탈해서 웃음이 나왔다.

  Z는 벙커를 만들면서 개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나? 그래서 벙커 안에는 폐쇄회로를 설치해 놓고 특별히 비밀의 방을 만들어서 발견하든 말든 간에 이 안에서는 개인을 존중 한다……? 참으로 엿 같았다. 이게 진짜면 Z는 정말…… 완전 엿 같은 사람이다. 아니 미친 사람이다.

  난 소파에 앉아 비밀의 방을 눈으로 한 번 둘러보았다. 물건의 위치가 바뀌거나 누가 들어 온 흔적은 없었다. 처음에 벙커에 처음 들어오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B-102에 나오는 누군가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관리자의 옷을 입었지만 관리자 같지 않았다. 그 이후로 벙커 내에서 본 적이 없으니까. 그는 B-102 안에서 뭘 한 건지 가구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상 옆에 단짝처럼 있어야 될 의자가 화장실 앞에 가 있었다. 폐쇄회로도 모자라 아주 작은 초소용 몰래카메라도 설치한 걸까? 생각했다. 그래서 난 하루 이틀 밖에 나가지도 않고 문을 잠그고 몰래카메라를 찾았다. 있었다. 그 관리자는 관음증이라도 있는 건지 협탁 위 액자의 작은 구멍에 몰래카메라를 넣어 놨었다. 절대 건들지 않을 건들면 안 되는 액자에 넣어 놨었다. 그 이후로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부터 난 그걸 사용했고 일지를 적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관음증에 걸린 Z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우스게스러운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며칠이 지나고 그런 생각들은 사라졌다. 그냥 이 답답한 벙커를 탈출하고 싶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비밀의 방을 빠져 나왔다.

  책장을 밀고 고리를 연결하고 어둠 속에서 리모컨을 찾았다. 그리고 난 침대 위에 두고 B-102를 빠져나갔다.

  복도를 비추는 빛이 노을빛 같았다. 직감적으로 새벽임을 느꼈다. 그리고 또 다시 엿 같은 벙커 안에서의 엿 같은 하루가 시작됨을 느꼈다.

  난 아무도 없는 복도 위를 걸어 아무도 없는 체력 증진 센터로 향했다.

  “아무도 없네…….”

  체력 증진 센터는 내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난 이 말이 떠올랐다. 부자들은 부지런하고 가난한 자들은 게으르다. 벙커 주민들은 부자이다. 하지만 부자였고 계급이 존재하는 이 벙커 안에서 B구역 주민들은 가난하다. 그래서 게으르다. 난 지난 3년 동안 느꼈다. 계급이 사람들 만든다는 것을. 세계에서는 부자였지만 벙커에서 그들은 아주 가난하다. 그들은 늘 게을렀고 부지런히 행동하지 않았다.

  난 스트레칭을 했다.

  평소 보다 더 오래 더 열심히 스트레칭을 했다. 저번처럼 무릎이 다치고 싶지 않았다. 10분 정도 스트레칭을 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편안했다.

  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여전히 48번 채널을 켜둔 채로 달렸다. 10분 정도 달렸을 때 내 옆에 있는 TV가 켜졌다. 그 TV는 48번 채널이 틀어졌고 순간 오싹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TV가 오작동이거나 연결 돼있거나 여러 가지 경우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10분을 더 달렸을 때 땀이 흘러 눈으로 들어갔다. 난 러닝머신을 멈췄고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눈이 따가웠고 물로 헹궈내고 싶었다. 손을 오므려 물통에 있는 물을 부어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눈을 헹궜다. 땀이 흘러내려간 듯 눈이 아프지 않았다.

 

  거칠게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B-102에 울려 퍼졌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던 내 귀를 괴롭혔다. 그 소음에 내 미간이 심하게 구겨졌다. 난 베게로 귀를 막았지만 그 소음은 여전했다.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난 신경질 적으로 덮어있던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빠져 나와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내 뜻과는 상관없이 아주 거칠게 문이 열렸고 남자 몇 명이 B-102 안으로 들어왔다. 나를 밀치면서. 그리고 문이 아주 굳게 닫혔다.

  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D구역에서 날 무자비로 팼던 남자들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이 십 새끼 얼굴 맞네.”

  “그러니까. 이 새끼 이거 저번에 봤던 그 거지 새끼.”

  “거지새끼가 친절하게 집까지 알려준다.”

  남자들은 나를 보며 대화했고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미친 새끼 침 삼키는 거 봐.”

  의찬은 내 목을 쳤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어 고통스러웠지만 그들은 내 고통을 느끼지 못 했다. 즐거워했다. 덩치 큰 남자는 내 배를 주먹으로 내리 꽂았다. 이번엔 배가 아팠다. 배 안의 무언가가 파열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파열 되지 않았다. 쉽게 파열 되지 않는다. 난 그들은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며 나를 보고 욕을 내뱉었고 그리고 내게 폭력을 가했다. 아주 고통스러웠고 쪽팔렸다. 그들의 폭력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의 숨은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병신 새끼. 겨우 저거 맞았다고 질질 짜냐?”

  의찬의 말에 자존심이 구겨졌다.

  “이 새끼는 오줌 안 싸는데? 오- 남자 새끼네. 기지배들처럼 오줌 질질 쌀 줄 알았는데.”

  그리고 또 다른 남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난 이 새끼도 기지배들처럼 질질 짤 줄 알았지.”

  D구역 남자들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 만큼 수치심을 느꼈다. 기절하고 싶다……. 난 있는 힘껏 다해 폐쇄회로를 쳐다봤다. 여전히 아주 작은 붉은 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거지새끼가”

  의찬이 말했다.

  그리고 내 복부를 주먹으로 쳤다.

  난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D구역에”

  또 다시 의찬이 말했고 또 다시 내 복부를 주먹으로 쳤다.

  “왜”

  아주 잔인했다.

  “와!”

  그때였다.

  B-102의 문이 열렸고 관리자들이 들어왔다. 관리자들은 D구역 남자들을 제지하기 시작했다.

  “그만 하세요.”

  하지만 D구역 남자들의 귀에는 관리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의찬은 다시 한 번 내 복부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 개쌔끼가……”

  내가 맞는 걸 두 눈으로 본 관리자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는 테이저건을 꺼내 의찬에게 쏘았다. 그는 곧바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몸을 심하게 떨었다. 그를 본 D구역 남자들은 깜짝 놀랐고 테이저건을 쏜 관리자는 D구역 남자들에게 테이저건을 겨눴다. 그러자 겁을 먹은 D구역 남자들은 순순히 B-102를 나갔다.

  “무슨 일 있으면 호출 버튼을 누르세요.”

  안경을 낀 관리자가 내게 말했다.

  나는 바닥에 누워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잘 모르겠다. 고개를 끄덕인 건지. 아니면 그렇게 느낀 건지. 너무 많이 맞아서 감각을 잃은 거 같다.

  “치료팀 불러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난 그의 말에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그렇게 누워서 잠이 들거나 기절 하거나 치료 팀을 기다리거나 선택할 수 없이 그대로 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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