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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록되지 않은 쐐기용사의 영웅담
작가 : SolaR
작품등록일 : 2019.9.1

인류는 ‘이레귤러의 시대’라 불리는 최악의 시대와 맞서며 끔찍한 고통을 견디어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괴물들, 생태계를 뒤바꿔버릴 정도로 지독한 이상기후, 그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인간들까지.
그러나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나날들 속에서도 누군가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을 누군가의 영웅담이다.

 
1장 시스터 바리 카흐(3)
작성일 : 19-09-02 17:47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7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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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아아아압!”

 

 어찌나 힘을 줬는지 몽둥이를 쥐고 있는 골목대장의 손가락 끝은 창백하게 말라 있었다.

 

 ‘망설이는 척이라도 해라. 확 메다꽂아버릴까 보다!’

 

 타고난 성정부터가 그리 너그럽지 못한 바리였기에 위기에 처하자 폭력적인 해결법부터 떠올랐다.

 

 그러나 들끓는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아니지. 더 이상 오해를 샀다간 밥 한 끼 얻어먹지 못하고 쫓겨날지도 몰라.’

 

 물론 성직자답지 못한 지극히 타산적인 이유에서였고, 그마저도 위기를 벗어날 최후의 수단이 있었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먹은 게 없어서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지척까지 쇄도한 골목대장은 바리를 겨누고 몽둥이를 쏘았다. 전력을 다해 내지른 찌르기.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간 탓에 오히려 어설픈 공격이 되고 말았다.

 

 바리는 골목대장의 공격을 간파해낸 뒤 몽둥이가 닿지 않는 아슬아슬한 위치까지만 물러났다.

 

 골목대장이 분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내 공격쯤은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거지? 하지만 포메이션 S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힐끗 돌아보니 바리를 둘러싼 포위망이 어느새 구축되어 있었다.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거든!’

 

 신경질적으로 혀를 차며 포위망을 빠르게 훑어보지만 좀처럼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대체 어느 놈이야? 꼬맹이들에게 이런 위험한 진법을 가르친 놈이. 만나면 반드시 엉덩이를 걷어차 주겠어!’

 

 충돌 없이는 진법을 빠져나갈 수 없다 판단한 바리가 슬며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모습은 전의를 상실하고 패배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눈을 감은 바리의 표정에서는 언뜻 경건함 같은 것이 엿보였다.

 

 깊게 들이마시던 호흡을 천천히 내쉬자 은은한 빛이 바리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비록 지척에서나 알 수 있을법한 미약한 빛이었지만 그것은 골목대장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바리에게 무언가 꿍꿍이가 있음을 눈치 챈 골목대장이 아이들에게 경고를 하려고 했지만 그보다는 바리가 움직인 게 먼저였다.

 

 한 쪽 발을 축으로 삼은 바리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망토가 거친 바람 소리를 내며 펄럭였다.

 

 방향을 돌린 바리는 포위망을 향해 망설임 없이 돌진했다.

 

 예상 밖의 행동에 퇴로를 막고 있던 아이들이 당황하며 허둥지둥 몽둥이를 내질렀다.

 

 네 방향에서 동시에 날아드는 몽둥이.

 

 하지만 어느 것도 바리의 몸에 닿지 않았고 바리는 너무나 간단히 아이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다잡은 고기를 놓친 골목대장은 분을 못 이기고 아이들에게 성질을 냈다.

 

 “이 멍청이들이! 네 명이서 고작 한 명을 못 막아!”

 

 골목대장의 성난 목소리에도 아이들은 넋이 빠진 얼굴로 쥐고 있는 몽둥이만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분했다. 몹시 분했다. 지금껏 열심히 연습해 온 비장의 진법이 예상치 못한 기습 한 번으로 무너져버렸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분함보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느낌이 앞섰다.

 

 순간 방향을 돌려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바리. 당황한 나머지 끝이 무딘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아무리 예리하지 못한 공격이라 해도 네 방향에서 동시에 찔러드는 공격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네 개중 하나는 적중할 만했다. 아니, 적중해야 만했다!

 

 하지만 스치지도 않았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바리의 움직임이 그리 빠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마치 허깨비라도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아무런 대꾸도 없이 멍청하게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골목대장을 더욱 자극시켰다.

 

 골목대장은 씩씩거리며 바리를 향해 몽둥이를 겨누었다.

 

 “그렇다면 내 필살기도 한 번 받아보시지!”

 “필살기? 필살기라고? 그것 참 기대가 되네.”

 “까불지 마!”

 

 버럭 소리를 지른 골목대장이 몽둥이를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골목대장은 거침없이 봉을 돌리면서 먹힐만한 기술을 고르고 있었다. 직선적인 공격은 바리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화려하고 변칙적인 공격은 어떨까? 화려함으로 시선을 빼앗고 그 틈에 필살기를 꽂아 넣는다면?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필살기는 단봉술과 진법을 가르쳐 준 스승님도 인정한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골목대장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바리가 번쩍하고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필살기라는 게 고작 봉이나 돌리는 거였어?”

 “뭣!?”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힌 바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던 골목대장의 몽둥이를 대수롭지 않게 낚아챘다.

 

 그러자 몽둥이가 우지끈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순간 아이들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바리가 어떠한 수를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눈에는 두려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정체모를 힘으로 상황을 모면한 바리는 손에 남은 나무 조각을 툭툭 털어냈다.

 

 “어때? 이제 대화할 마음이 생겼어?”

 

 겁에 질린 아이들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좋아. 이제 이 녀석들을 구워삶기만 하면....... 어라?’

 

 흡족하게 웃으며 흑심을 드러내던 바리는 문득 현기증을 느꼈다. 시야가 핑 하고 돌더니 노랗게 물들었다.

 

 바리는 균형을 잃고 넘어지며 아차 했다.

 

 ‘이런! 이래서 배고플 때는 쓰고 싶지 않았는데.......’

 

 아까까지 멀쩡하던 바리가 돌연 쓰러져 버리자 아이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골목대장만은 온몸을 떨며 전율했다.

 

 “이럴 수가. 필살기를 쓰지도 않고 적을 쓰러뜨리다니. 역시 나는 천재였던 건가?!”

 “바보냐!? 나는 배가 고파서 쓰러진 거라고!”

 “졌으면 얌전히 패배를 인정해. 그리고 이 천재님을 숭배하란 말이야. 패배자 아줌마.”

 “아줌마? 지금 아줌마라고 했어?! 방년 17세의 꽃다운 나에게?”

 “우리 마을에서 열일곱이면 시집갈 나이야!”

 “농촌 아니랄까 봐 시집도 빨리 가네!”

 

 꼬르륵

 

 계속해서 울려대는 뱃속 지진에 더 이상 언쟁을 벌일 힘도 없었다.

 

 “알았어. 내가 졌으니까 먹을 것 좀 줘. 내가 여기서 굶어죽는다면 네 녀석들에게 평생 동정으로 늙어죽는 저주를 걸고 말겠어!”

 

 도무지 성직자가 하는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먹을 걸 구걸하는 사람이 뭐가 그렇게 당당해?”

 “구걸? 아까부터 말을 참 예쁘게도 하는구나?! 난 수녀라고!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수녀!”

 “수녀.......라고?”

 

 수녀라는 말에 아이들이 주춤하고 물러섰다.

 

 이레귤러의 앞잡이라고 밝혔을 때보다 훨씬 더 동요하는 눈치였다.

 

 “수, 수녀? 정말로? 우리 마을에 왔던 수녀들은 아줌마랑 전혀 다르던데.”

 “그게 무슨 의미야!? 그리고 너 또 아줌마라고 했겠다! 이리 와! 안 와?”

 “우왁! 이레귤러 아줌마가 난동 부린다!”

 

 바리가 마지막 남은 기력을 끌어 모아 발악하자 아이들은 그 모습에 혼비백산하며 줄행랑을 쳐버렸다.

 

 기력이 다한 바리는 아이들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바리가 무기력하게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놈들아. 갈 때는 가더라도 먹을 것은 주고 가야지.......”

 

 현기증에 시야가 핑핑 돌아갔다. 노랗게 물든 하늘은 뒤집힌 것만 같았다.

 

 그런 바리의 눈앞으로 무언가가 불쑥 내밀어졌다.

 

 바리는 눈앞으로 내밀어진 무언가를 힘없이 응시했다. 그것은 먹음직스럽게 잘 쪄진 감자였다.

 

 눈앞에 내밀어진 그것이 먹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바리는 걸신이라도 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꺄악!”

 

 먹을 것이 입 안에 들어가자 그제야 비명을 지른 소녀를 돌아 볼 여유가 생겼다. 얼굴에 난 주근깨나 양쪽으로 땋은 붉은색 머리카락은 전형적인 농가의 처녀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밭일을 하기에는 체구가 왜소했고 어딘가 삶에 찌든 듯한 무기력한 분위기도 느껴졌다.

 

 놀랐던 감정을 추스른 소녀는 비뚤어진 밀짚모자를 고쳐 쓰고, 감자를 급하게 집어삼키는 바리를 걱정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아주머니?”

 

 바리는 입안의 감자를 채 삼키지도 않은 채 우물거리며 골을 냈다.

 

 “그러니까 아줌마가 아니래도.......”

 

 **

 

 바리는 감자를 적선해준 소녀의 집까지 따라와 본격적으로 식량을 축내고 있었다.

 

 배도 어느 정도 찼고 먹을 것이라고는 소쿠리에 담긴 찐 감자가 전부였지만 고달픈 노숙 생활을 하며 생긴 기회가 있을 때 먹어두자 라는 거지근성이 가득 찬 위장으로 끊임없이 감자를 집어넣게 만들었다.

 

 감자를 적선해준 소녀는 입안으로 감자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 바리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잘 드시네요. 언니.”

 

 언니라는 호칭이 유독 경직된 것은 바리의 협박에 가까운 강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리는 대답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가득 찬 입안으로 감자를 하나 더 욱여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핏 듣자니 언니는 수녀라고 하던데. 맞나요?”

 

 의심이 가득한 물음에 바리는 입안 가득히 감자를 물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당당히 입을 열었다.

 

 “용케도 알았구나! 내가 바로 크로우베리 수녀원이 자랑하는 수녀. 시스터 바리야!”

 “먹으면서 말하는 건 그만둬주세요.”

 

 소녀는 얼굴에 튄 감자 파편을 닦아내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미안, 미안.”

 

 겸연쩍게 사과를 한 바리는 헛기침을 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쇄신한 뒤 경건한 수녀의 모습을 꾸몄다.

 

 “신녀님의 사도인 제게 친절을 베푼 그대여. 시스터 바리의 이름으로 당신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어디 보자...... 이름이....... 뭐더라?”

 “진이에요. 그리고 신의 이름을 빌린 축복 같은 것은 필요 없어요. 저는 신을 믿지 않으니까요.”

 “이럴 수가! 이 마을은 이런 소녀까지도 이렇게 염세적이라니.”

 “염세적이라니요.”

 

 과장스럽게 기겁하는 바리를 보며 눈썹 사이를 찡긋 오므린 진이 푸념하듯 말했다.

 

 “이 마을에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다녀갔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잘 모르겠어. 우리 수녀원은 워낙 폐쇄적이거든.”

 “저도 정확히 알고 물은 게 아니에요.”

 “이 녀석이 언니를 놀리네.”

 “저도 모르지만.......”

 

 말을 늘리는 진의 표정은 어쩐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격앙되는 감정을 애써 추스르려는 듯이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선교사들이 입버릇처럼 내뱉었던 축복의 절반만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사는 게 힘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레귤러의 시대.

 

 지극히 평화로운 마을 분위기에 잠시 잊었던 단어를 떠올린 바리는 뒤늦게 아차 했다.

 

 하지만 괜히 티를 내는 대신 무심히 감자 하나를 더 집는 것으로 마음을 썼다.

 

 “흐음. 그래? 겉으로는 굉장히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인데. 내가 보았던 어느 마을보다 말이야.”

 “겉으로는 말이죠.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에요.”

 

 어느새 젖어버린 눈가를 슬쩍 닦아낸 진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자그마한 체구를 보고 어리다고 미뤄 짐작했었지만 생각보다는 나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저기. 진 양. 혹시 올해 나이가?”

 “저요? 올해 열여섯이 되었어요.”

 “거짓말! 나랑 한 살 차이잖아?!”

 “하지만 사실인걸요.”

 “괘씸하네! 고작 한 살 어리면서 나를 아주머니라고 불렀던 거야? 이 녀석이!”

 

 바리가 와락 달려들어 진의 머리를 팔로 조이며 장난을 쳤다.

 

 “아악! 놔주세요! 우리 마을에서는 저희 나이 또래면 결혼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고요!”

 “그러면 혹시 너도?!”

 “결혼은 아직이지만...... 미래를 약속한 사람은 있어요.”

 “뭐라고?! 이 배신자가! 일단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보다 머리 조르는 것은 그만둬주세요!”

 

 한차례 장난을 주고받은 바리와 진은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웃고는 있었지만 바리는 마음 한편이 찌르르 아파왔다. 품에 들어왔던 진의 몸이 너무도 말라있었기 때문이다. 나이보다 체구가 작은 것도 제대로 된 영양섭취를 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었다.

 

 손님을 대접하는 상에 감자 밖에 없는 것을 보고 눈치 챘어야 했는데.

 

 “하지만 역시 믿을 수가 없어.”

 “뭐가요?”

 “내가 쓰러졌던 곳은 정말로 지옥 같았으니까. 거기에 비하면 이곳은 낙원이나 다름없는데.”

 “지옥이요? 이상하다. 언니는 왕국의 국경 지역에서 쓰러져 있었다고 들었는데.......”

 “맞아. 그런데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바리의 표정에 진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왜냐고요? 그야 이 마을도 사랄 왕국의 국경에 위치해 있으니까요.”

 “엥? 사랄 왕국이라니? 사랄 왕국의 국경은 사막이라고.”

 

 마치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뒤엉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리가 눈을 뜬 이 마을은 정신을 잃기 전까지 시달리던 끔찍하게 말라붙은 자갈 사막과는 생태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진은 눈치 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러고 보니 언니는 기절한 상태로 이 마을에 왔다고 했죠.”

 “응. 맞아.”

 “당황스럽겠지만 이곳도 사랄 왕국의 악명 높은 국경에 위치한 마을이에요. 이름 없는 마을이죠. 많은 여행자들이 쉬어 갔던 곳이라 여행자들을 대접하는 문화가 정착된 마을이랍니다.”

 

 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어느새 텅 비어버린 소쿠리를 가리켰다.

 

 “이 마을은 원래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평범한 사막 마을이었어요. 10년 정도 지속된 이상기후 탓에 사막에 위치한 마을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게 변해버렸지만요.”

 “이상기후? 이상기후 때문이라고?”

 

 마치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과 같은 충격이 바리를 덮쳤다.

 

 이레귤러의 시대에 접어든 뒤로 세계 곳곳에서 터무니없는 이상기후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격다짐으로 수녀원을 나선 것이니까.

 

 하지만 이상기후가 사막 한복판에 숲을 만들어 낼 정도로 심각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리는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본인의 상식은 어디까지나 수녀원으로 흘러들어온 제한된 정보들의 집합체일 뿐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야말로 군맹무상이었다.

 

 “이해가 안 돼.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이상기후가 있었기에 논밭을 가꿀 수 있게 된 거잖아. 작물을 기르기에는 건조한 사막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유리한 거 아니야?”

 “그렇죠. 지금 상황이 유지만 된다면 내후년은 분명 풍족한 해가 될 거에요.”

 “내후년이라니? 내년이 아니고? 그보다 올해는 어쩌고?”

 

 진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헛웃음을 지었다.

 

 “보셨을지 모르지만 저희 마을에는 종류가 다른 논밭들이 여럿 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글쎄. 이모작? 아님 다양한 작물을 기르나?”

 “맞아요. 하지만 단순히 수확물의 종류를 늘리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사치스러운 고민은 할 수도 없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 살 것이 없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지역의 기후는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급변하고 있어요. 풍토를 뒤바꿀 정도로요. 근래를 예상하고 모종을 심어도 수확할 때까지 지금과 같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여러 가능성을 예상하고 다양한 품종에 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 정도라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남은 것이라고는 씨알이 작은 감자뿐이네요.”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진상에 바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고민을 하던 바리가 벌떡 일어나더니 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이 시스터 바리가 모두 해결해 줄 테니까. 나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

 “언니가요? 그보다 감자 먹던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지 말아 주세요!”

 

 자신감을 드러내며 가슴을 두드리는 바리를 못 미덥다는 듯이 바라보던 진이 슬그머니 꼬집는 소리를 했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생사를 헤매던 사람에게 대체 무슨 기대를 하면 좋을까요?”

 “과거의 일은 이미 잊었다!”

 “그렇게 뻔뻔한 점은 본받고 싶네요.”

 “뻔뻔한 게 아니야. 당당한 거라고. 그리고 내가 못 미더우면 믿지 않아도 돼.”

 “그러면요?”

 “대신 내가 믿는 신녀님을 믿으렴.”

 

 진은 텅 비어버린 소쿠리를 들고 일어섰다.

 

 “말했지만 저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요.”

 “나도 신의 존재가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

 “네?”

 

 선문답 같은 아리송한 말에 진이 돌아보자 바리는 걱정할 것 없다는 듯이 빙긋 미소 지었다.

 

 “내가 믿는 것은 신이 아니라 신녀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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