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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김원봉(욕지도)
작가 : 금보
작품등록일 : 2019.9.2

비운의 독립군 김원봉님과 최초 여 비행사 권기옥님의 일본과의 독립항쟁을 시류에 맞게 판타지화하여 각색한 글.

 
2. 운명적인 만남.
작성일 : 19-09-02 07:16     조회 : 383     추천 : 0     분량 : 7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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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적인 만남

 

 SC #5. 1917년 5월. 경성 여의도 비행장

 

 십 칠세 숭의 여학교 학생인 기옥과 갑순은 경성으로 가는 열차에 올라 차 창가에 마주보고 앉는다.

 

 갑순 : 너는 비행기라는 것을 본적은 있는 것이냐?

 

 기옥 : 아니! 현숙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날개달린 큰 인력거가 사람을 태우고 날아다닌다고 하셨어.

 

 갑순 : 내 기차 비까지 어디서 생겼냐?

 

 기옥 : 언젠가 나도 그렇게 하늘을 날고 싶다고 말씀 드린 적이 있었는데 마침 경성에서 비행기 쇼를 한다며... 선생님이 주셨어 혼자가면 위험 할 지도 모르니 너랑 같이 갔다 오라고.

 

 기옥의 사랑스런 얼굴과 어두운색의 교복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맑고 큰 여옥의 두 눈은 깊은 바다를 연상케 하고 단정하게 빗어 두 갈래로 묶은 머리와 가지런한 눈썹은 전체적으로 반듯한 인상을 준다.

 아무도 꺾을 수 없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형용하기 어려운 신비한 미모이다.

 

 -14-

 경성 나들이에 들떠있는 갑순은 가지고 온 가방에서 종이로 정성스레 싼 삶은 달걀을 꺼내 놓는다.

 

 갑순 : 엄마가 아침도 못 먹고 간다며 기차 안에서 먹으라고 싸주셨다.

 

 달걀껍질을 벗기고 있는 갑순은 기옥보다 머리 하나 만큼 키가 크다. 마치 기옥을 보호하는 호위 무사처럼 여겨질 정도로 여자치고는 상당히 큰 키다. 허지만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오목조목한 이 목 구 비 며 하얀 가녀린 손은 아기자기하다. 한마디로 참 귀여운 얼굴이다.

 열차를 가득 매운 사람들 중에서도 여옥과 갑순은 눈에 띄기에 충분하였다.

 

 기차 다른 칸에는 1916년 중국에 가서 독일어를 배우고 있던

 김원봉과 그의 친구 김약수, 이의성이 이미 타고 있었다.

 

 기차는 경성 역에 도착하고 기차에서 내린 여옥과 갑순은 마포나루로 가는 전차를 타려 했으나 비행기 쇼가 조선 팔도에 소문이 났는지 어마어마한 인파로 전차표는 아예 구경조차 할 수도 없다. 조선이 생기고 이런 관중들이 몰리긴 처음인 것 같다. 공연장 까지 가는 길은 몰라도 되었다. 여옥과 갑순도 마치 큰 강처럼 움직이는 군중들 틈에 섞여 십오 리를 걸어 마포나루에 도착한다.

 

 전차역이나 마포 나루는 셀 수도 없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멀리 나루건너 여의도 비행장에는 대형 천막이 2동이 설치 되어있고 높은 지위로 보이는 조선인과 일본관리,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이 의자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다.

 

 일본인들과 행세하는 조선인들만 나룻배로 비행장이 있는 여의도로 옮겨주고 경성 쪽 마포 나루 터 주위 뚝 길과 강 건너 비행장 서쪽 편 시흥에서 오는 길에는 조선 백성들이 가득하다.

 

 족히 5만은 될 듯하다.

 걸어오느라 행사일정에 늦은 듯하고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것을 미루어 비행기가 움직이는 것이 분명하다. 급한 마음의 여옥과 갑순도 마포 뚝 방 길로 접어든다.

 

 굉음이 들리고 난생 처음 보는 물체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마치 어마어마한 커다란 독수리가 먹이를 잡으려고 낮게, 높게, 하늘을 휘젓고 다니는 것 같다. 하얀 연기 띠가 허공에 지나간 자리를 표하고, 연신 비행기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여의도를 진동 시키고 있다.

 여옥은 보이는 광경에 말을 잊어버리고 갑순의 손을 꽉 잡고 있다.

 짧고도 긴 비행기 공연이 끝난 후에 비로소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다. 비행기가 하늘에 뜨는 원리를 모르는 여옥과, 갑순은 마치 마술을 보는 듯 신기하기만하다.

 

 조금 떨어진 둑에서 원봉과 친구들도 매우 진지하게 비행기의 움직임을 눈 여겨 보고 있다.

 

 원봉은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얼굴이며 슬퍼 보이나 힘 있는 두 눈은 멋진 사각 학모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왠지 그 눈은 어느 그림에서 본 듯 친근하다. 택견으로 단련된 균형 잡힌 몸매와 175cm가량의 비교적 큰 키는 믿음직스럽고 듬직하다. 까만색 가쿠란에 망토를 두른 모습은 한눈에 대학생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얼굴에 특징이 있다면 조선인 치고는 콧날이 유달리 오뚝하다.

 

 기옥 : 갑순아 언젠가는 나도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꼭 날아 볼 거야!

 갑순 : 무슨 소리냐. 되지도 않을 꿈은 애당초 말거라.

 

 

 기옥 : 지켜보려무나.

 

 기옥의 눈에는 비장한 결심이 엿보인다. 비행기는 20분 남짓 하늘을 날다 다시 여의도에 착륙하여 본 행사는 끝이 났다.

 

 여옥, 갑순은 귀가를 위해 경성 역 쪽으로 움직이는 인파를 따라 걸어가고 있다. 여옥은 오늘 하늘을 종횡무진 활공하는 비행기를 보고 놀란 여운으로 귀가길이 늦어진 것도 아랑곳없이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행인들을 따라 무심히 걷고 있는 것이다. 원봉 일행도 여옥, 갑순이 뒤에서 인파에 떠밀리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봄 햇살에 지쳐 이제 지기 시작하는 길가의 벚나무 꽃잎만큼이나 사람들이 많다. 교복을 입은 여옥의 앳된 모습과 뛰어난 미모, 갑순의 큰 키와 귀여운 얼굴은 유난히 남성들의 눈길을 끈다.

 

 한 무리 기모노 차림의 남자들이 사람을 밀치면서 뒤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이들 중 3명은 죽도를 어깨에 메고 불량스럽게 걷고 있다.

 여옥, 갑순 옆을 지나던 이 무리 중 한명의 시선이 여옥과 갑순에게 머문다. 이들은 저희들끼리 떠들며 걸음을 늦추더니 계속 기옥과 갑순의 뒤를 따라간다.

 

 일인1. : 야! 이 개집들 엄청 예쁜데.

 

 일인2. : 보니 경성 애들은 아닌 것 같고...

  오늘 사냥감으로 최고다. 잘 해보자!

 

 벌써 시간은 저녁 7시를 지나 하나, 둘 씩 가로등이 켜지고 있다.

 우연히 여옥, 갑순의 이 삼,사보 뒤에서 같은 방향으로 걷게 된 원봉은 일본 낭인들을 보게 되었고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니 시정잡배 들 임이 분명하고 왠지 불안한 느낌으로 친구 약수, 의성과 의미 있는 눈빛을 교환한다.

 

 원봉은 길옆에 있는 각목들을 주워 약수와 의성에게 건네고 망토 속에 각목을 숨긴 체 계속 뒤 따라 걷고 있다.

 공덕동 5거리에 도달하자 사람들이 분산되어 길이 그나마 좀 한적해진다. 경성 역 가는 길로 여옥과 갑순이 접어들자 일인 무리 중 한명이 다짜고짜 여옥의 손목을 낚아챈다. 놀란 여옥의 고함소리와 동시에 갑순 역시 다른 일인에게 손목이 붙잡힌다.

 

 일인1 : 어이! 우리가 맛있는 저녁 살 테니 같이 가자.

 

 일인2 : 교복을 보니 경성 사람은 아닌 듯하네...

  온 김에 경성 구경도 좀 하고 흐! 흐!

 

 여옥이 황급히 손을 뿌리치고 일인을 밀쳐 내려하나 역부족이다.

 갑순 역시 있는 힘을 다해 일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하고...

 밀고 당기며 엉키다 마침내 두 여인의 머리채는 일인들에게 잡혀

 짓눌리고 있었다. 두 여학생의 다급한 비명에 조선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둘러서서 이 광경을 안타깝게 쳐다만 보고 있다. 조선인들이 빙 둘러싸자 일인들이 고함을 친다.

 

 일인1 : 이년들이 나한테 돈을 빌려 안 갚고 도망 다니다 이제 잡힌 것이니 간섭 말고 가던 길 가라.

 

 군중을 행해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죽도를 허공에 대고 휘두른다.

 순간 원봉 일행이 각목을 들고 일인들에게 달려들어 일인 3.4.5와 교전을 벌인다. 일인3.4.5의 죽도는 원봉일행의 의기에 넘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제압당해 쓰러진다. 택견의 고수였던 원봉의 노련한 발차기와 약수와 의성의 각목은 몇 합 안 가서 일인들을 제압해 버린 것이다. 일인1.2는 여옥과 갑순의 머리채를 아직도 잡고 있다.

 

 일인1 : 내가 누군지 알고..

 

 허세를 부리려 했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 .. 일인 1.2의 얼굴엔 공포의 그림자가 지나친다. 원봉일행의 각목이 일인1.2의 머리를 향해 날았다.

 순간 일인1.2의 머리가 터져 피가 얼굴을 타고 주르륵 흐른다.

 일인1.2는 머리를 감싸 안으며 쓰러지고 그때야 여옥과 갑순은 그들로부터 놓여졌다.

 

 이때 갑자기 일본 순사들의 호각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며 다가온다.

 둘러쌌던 조선인들이 엉거주춤 일본 경찰들의 길을 방해하는 동시에

 원봉일행과 여옥일행이 도망갈 수 있도록 반대편 길을 열어 준다.

 

 여옥과 원봉 일행은 정신없이 달린다. 도중 오르막길에서 여옥이 넘어진다. 원봉이 다시 돌아와 여옥을 일으켜 세우고 잡히겠다 싶은 다급한 마음에 앞선 일행과 순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다.

 

 어두운 길모퉁이를 돌아 뛰어가는데 조그마한 상점의 문이 열려있고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둘은 마치 홀린 듯 서둘러 안으로 들어간다.

 낡은 탁자위에는 흐릿한 남포 불이 타고 있고 등이 굽은 백발의 노인이 의자에 앉은 체 그들을 가다렸다는 듯 구석의 지하실로 내려가는 덮개 문을 가리키며 내려가라는 손짓을 했다. 둘이 무엇에 이끌리듯이 지하실로 내려가자 노인은 덮개 문을 닫는다.

 노인은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와 가게 문에 열쇠를 채운 후 모퉁이를 돌아 큰 길로 사라진다.

 

 큰 길에는 아직도 호각 소리가 들리고 일본 경찰들이 뛰어다니며 수색을 하고 있다.

 

 

 

 

 

 

 SC #6. 아현동 어느 상점 지하실.

 

 멀리... 가까이 일본 순사들의 호각 소리가 가끔씩 들린다.

 

 시간이 꽤 흘러 밖이 잠잠해지자. 원봉이 호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불을 켠다. 칠흑 같던 어둠이 성냥불 빛으로 저만치 동그랗게 물러 난 다. 원봉이 구석에서 양초를 발견하여 불을 붙인다. 이제 지하실의 좁은 공간이 환해진다. 잡화상 창고로 쓰이는 좁은 지하실이라 여러가지 물건 상자들이 쌓여 있어 여유 공간이 적어 둘은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도망 오느라 헐떡이던 숨이 가라앉자 여옥이 앉을 자리를 만들려 여기 저기 뒤져본다. 원봉은 둘이 있을 공간을 확보하려 이리저리 상자들을 옮기고 있다. 이것저것 쌓아둔 상자들 사이로 벽에 걸린 낡은 족자가 흐릿하게 보인다. 산신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선도이다. 신선이 호랑이를 앞에 앉히고 위로 하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그림이다. 왠지 신선의 눈이 슬퍼 보였다. 어디서 본 듯한 눈이다.

 

 대충 상자들을 정리해서 앉을 자리를 만들어 둘은 비스듬히 어색하게 앉았다. 원봉은 모자를 벗고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친다. 여옥도 흐트러진 머리와 옷맵시를 가눈다. 둘은 새삼 서로를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피한다.

 

 여옥 : 제 친구나 그 쪽 일행들이 무탈해야 할 텐데...

 

 근심어린 표정으로 여옥은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원봉 : 나는 중국 난징에서 독일어 공부를 하고 있는 김 원봉 이라하오.

 

 -20-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나지막하나 또렷한 목소리로 원봉이 자기소개를 한다. 여옥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원봉을 다시 쳐다본다.

 참 잘생긴 얼굴이다.

 

 여옥 : 저는 평양 숭의 여학교 권 여옥이라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여옥 : 독일어 공부를 하신다고요?

 

 원봉 : 일본 놈들이 총과. 군함, 비행기로 이 나라를 짓밟고 있습니다.

  칼과 창으로 어찌 그들을 물리칠 수가 있겠습니까?

  독일의 기술이 세계에서 제일 앞선다하여 그들을 배우기 위해 중국 난징에서 독일어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옥 : 저도 비밀 단체인 송죽회에서 활동 하고 있습니다.

 

 비밀단체란 말에 원봉은 자못 놀란다.

 

 원봉 : 송죽회.. 비밀단체라..그런데 어찌 평양에서 여기까지?

 

 여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하다...

 대답 대신 두 눈에서 눈물이 쭉 흐른다.

 

 

 

 

 

 

 

 

 overlap/SC #6-1 1910년 봄. 평양 상수리

 

 일제는 1909년 주세법을 공포하고 개인이 집에서 술 담그는 것을 금지하였다. 탁지부 소속으로 양조 시험소를 설치하고 조선백성들이 집에서 술 담그는데도 세금을 부가하였다.

 

 뛰어나게 미인인 기옥 엄마를 호시 탐탐 노리던 일본형사 다나까는 기옥아버지를 집에서 술을 빚었다는 혐의로 괴롭히고. 마침내는 기옥의 엄마를 능욕하려다 이에 맞선 아버지를 구타해 그 상처가 결국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기옥이 엄마도 아버지를 따라 죽으려 했지만 울며 매달리는 기옥과 기복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기옥은 이 모든 일들을 뚜렷이 기억한다. 아니 죽어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사연을 처음 본 원봉에게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옥 : 저는 언젠가 비행기 조종사가 될 겁니다. 그래서 ...

 

 원봉 : 네! 비행사가 되시겠다고요?

 

 원봉이 놀라며 다시 물어본다.

 기옥이 목소리를 조금 높이며 원봉을 쳐다보며 따지듯이 되묻는다.

 

 기옥 : 비행기는 여자가 조종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원봉 : 그런 법은 없지만...

 

 기옥 : 중국에 가서라도 꼭 비행기 조종사가 될 것입니다.

 

 기옥이 눈에는 다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기옥의 눈물에 원봉은 잠시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며 슬며시 화제를 바꾼다.

 -22-

 원봉 :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기옥 : 넘어져 다리가 좀...

 

 그제야 울음을 멈춘 기옥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러고 보니 기옥의 깨어진 무릎에서 흐른 피로 하얀 양말이 붉게 물들어 있다. 원봉은 손수건을 꺼내 기옥의 다리를 타고 흐르다 굳어가는 피를 닦아내고 무릎 까진 부분을 묶어준다. 원봉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순간 야릇한 긴장감이 스친다.

 

 기옥 : 부탁이 있습니다.

 

 원봉은 의아해하며 기옥을 쳐다본다.

 

 원봉 : 말..씀하세요.

 

 기옥 : 오늘 일어난 일처럼... 나라 잃은 조선 여자들이 정조를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허나 죽어도! 일본 놈들에게 첫 정을 빼앗기긴 싫습니다.

 

 기옥의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담담하고 차분하다.

 

 기옥 : 해서... 저의 첫 정을 그대에게 드렸으면 합니다.

 

 원봉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소리가 난다.

 

 원봉 : 음... 뜻을 알 것도 같지만...

 

 원봉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하기만하다.

 

 -23

 기옥 : 특별한 뜻은 없습니다. 단지 앞으로 저가 가야할 험난한 길에 왠지 그것이 거추장스러울 것 같습니다. 오늘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 내가 비참하게 유린당하더라도 조금은 덜 억울할 테지요....

 

 기옥이 천천히 촛불 쪽으로 몸을 돌려 불을 훅 꺼버린다.

 

 

 SC #6-2. 다음날 아침.

 

 밖에서 멀리 차 다니는 소리와 사람들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침이 밝은 것 같다. 원봉이 곤한 잠에서 깨어나 옆을 보니 기옥이 이미 깨어 단정히 앉아 원봉을 응시하고 있었다.

 머쓱해진 원봉은 계단을 올라가 덮개를 밀어 올리고 나와 잠긴 문을 흔들어 본 다음 잠깐 주위를 살핀 후 가게 구석 탁자에 앉는다.

 어제 생긴 일들이 도무지 현실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순간도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다. 여옥도 지난밤 흔적을 지우고 지하실에서 올라와 원봉의 맞은편에 앉는다. 뒷마당으로 난 조그마한 창으로 지난 하루는 어슴푸레하게 또 다른 하루를 위해 어둠과 이별을 고하고 있다.

 

 기옥 : 지난 밤 일은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잊어주세요..

 

 원봉 : 꼭 그래야 할 이유라도?

 

 원봉은 뭐라 형용 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여옥의 얼굴을 쳐다 볼 수도 없다. 그저 머릿속이 하얗다. 여옥이 보통 여자는 분명 아니다 라는 생각과 앞으로 내가 이 여자를 사랑 할 것 같다는 생각만이 어지러이 머릴 맴돌고 있다.

 

 -24-

 기옥 : 전 일본 놈들에게 복수를 하는데 저의 인생 전부를 바치려 아버지 죽음 앞에서 맹세를 하였습니다. 언젠가 비행기를 몰고 일본 천황에게 날아가 폭탄을 퍼부을 거예요... 기필코...!

 

 침묵이 흐른다. 원봉은 기옥의 기에 눌려 하고픈 말머리를 찾을 수가 없다. 묵묵히 탁자만 내려다보고 있다 겨우 입을 연다.

 

 원봉 : 조선의 사내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말끝을 흐리자 기옥이 빤히 원봉의 얼굴을 쳐다본다.

 

 원봉 : 서로 갈 길이 다르고 할 일도 다르지만 ... 조국이 해방되면 마포나루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기옥은 말이 없다...순간 식당 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어제의 노인이 스르륵 들어온다.

 

 노인 : 조금 있으면 일경들이 순찰을 돌 시간이다. 눈에 띄지 않게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지...!

 

 기옥이 먼저 나와 길 반대편으로 걸어간다. 뒤 이어 원봉이 빠져 나와 걸어가는 여옥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발길을 돌린다.

 가로수 벚꽃들이 아침바람에 꽃눈이 되어 흩날린다.

 

 원봉이 혼자서 중얼거린다. 마치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듯...

 

 원봉 : 숭의 여학교. 송죽회 .권 기옥... 나도 첫 정이었소...

 

 비가 오려나 하늘은 잿빛이고 막걸리처럼 탁하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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