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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사라진 가족
작가 : 장군12
작품등록일 : 2019.8.7

14년 전 발생한 일가족 실종 사건을 한 주간지 기자가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다룬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
서로를 파괴하며 처참하게 무너진 가족의 사연과 경찰이 숨긴 진실의 조각.
사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모든 일을 백일하에 드러내려는 이들의 숨막히는 대결로 치닫는데……

 
16. 2016년 3월 25일②
작성일 : 19-08-30 18:02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9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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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016년 3월 25일②

 

  한정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재우는 이 때다 싶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혈흔을 왜 없앴습니까.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한 겁니까."

  한참 멍하니 있던 한정우는 문득 정신을 차린 듯 말을 더듬었다.

  "내, 내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했습니까."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야. "

  상대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강 차장이 팔을 세게 잡아 당겼다.

  "한정우 형사님. 정신 차리세요. 일단 물부터 한 잔 드시고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길 잘 들으세요."

  강 차장은 로비 정수기에서 물을 떠 와 억지로 마시게 했다.

  "먼저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죠. 한 형사님을 돕기 위해 솔직히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금 저희 동료기자가 안양서에서 정우현 팀장을 만나고 있습니다. 아마 같은 내용을 묻고 있을 겁니다. 누가 왜 혈흔을 감췄냐고 말이죠."

  강 차장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거짓말을 섞어가며 설득을 시작했다. 잠시 당황했던 재우는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한 명이 몰아붙이고 다른 한 명이 달래면서 진술을 끌어내는 일명 ‘굿 캅, 배드 캅’ 전략이었다.

  강 차장은 물을 한 모금 더 권했다.

  "정우현 팀장이 이정근 청장 고향 후배라는 건 잘 아시죠? 중원서장 때부터 각별히 챙겼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취재한다는 사실도 이미 이 청장 귀에 들어갔을 겁니다. 지금쯤 기사를 막으려고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고 있겠죠.

  하지만 우리 편집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미 편집회의에서 이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넣겠다고 공표했으니 제 아무리 서울청장이라도 기사를 완전히 빼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면 이 청장은 어떻게 나올까요.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길까요.

  생각해 보면 답은 자명합니다. 현직 경찰 최고위 간부가 본인의 진퇴와 조직의 체면보다 은퇴한 경찰 한 명을 배려할까요? 지금 사실을 털어놓지 않으면 한 형사님이 혼자 몽땅 뒤집어쓸 수 있다는 얘깁니다. 지금이 아니면 늦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한정우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 다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재우의 인내심이 바닥을 치기 직전 간신히 목소리를 짜 냈다. 체념과 분노가 뒤섞인 음성이었다.

  "저는, 저는 언젠가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가 되면 담담하게 모든 걸 받아들일 생각이었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안 되네요."

  재우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기자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대체로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직적으로 저지른 일은 아닙니다. 그건 만은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지금 와서 뭘 숨기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문제를 이렇게 만든 게 바로 그 정우현입니다."

  한정우는 천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서글픈 톤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당시 수사 상황이 생상하게 떠오릅니다. 꿈에도 수 없이 나왔죠."

 

  한정우가 본격적으로 말을 시작하려는데 강 차장이 갑자기 전화기를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요한 순간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자 재우의 눈에 병원 로비에 나타난 경찰 두 명이 들어왔다. 한정우를 찾으러 온 이들일까. 지금 방해받으면 곤란했다.

  강 차장은 의아해하는 한정우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전화가 와서….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은데, 박 기자에게 마음에 쌓인 얘기를 다 털어놓으시죠."

  급하게 말을 마친 강 차장은 뒤로 돌아가 경찰의 시선을 차단하며 몸으로 한정우를 가렸다. 경찰들은 눈치를 못 챈 듯 응급실 쪽으로 발을 옮겼다.

  재우의 입이 말랐다. 한정우를 찾으러 온 경찰이라면 그가 응급실에 없는 걸 알게된 후 어떻게 할까. 결정적 증언이 나오기 직전인데 장소를 바꿀 수도 없었다. 일단 인터뷰 속행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한정우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할까요…. 이정근 서장이 부임한 건 사건이 일어나던 해 1월이었습니다. 이 서장이 온 후 갑자기 정우현 어깨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고향이 같은 데다 중고교 선후배 사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계급조직입니다. 아무리 서장의 고향 후배라 해도 상급자의 지시를 어기거나 마음대로 행동하진 않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두어 달 후 실종 사건이 터졌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이 서장은 월드컵을 언급하면서 사건을 불필요하게 확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팀장이었던 저는 대충 처리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서장이 뭐라든 결국은 제가 수사의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단서가 나오는 대로 주저 없이 수사하겠다고 결심했죠. 팀원들에게도 그렇게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수사가 제대로 안 굴러가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팀원들은 눈에 띄게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지시를 내려도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죠. 다들 필요 이상으로 눈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정우현은 증거도 없는데 뭘 수사하느냐, 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습니다. 참다못해 하루는 불러놓고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말이 귀에 들리지 않게 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틀 후 이 서장이 저를 불렀습니다. 증거도 없는 사건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셈이냐며 역정을 내더군요. 참담했습니다.

  그 때 강릉에서 승합차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증거가 나오면 아무리 서장이라도 사건을 뭉갤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장 내려갈 채비를 했죠.

  그런데 정우현이 같이 가겠다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증이 나오니 태도가 달라지는구나, 결국 형사는 형사구나 싶어 내심 흐뭇했습니다. 결국 저를 포함해 세 명이 강릉으로 내려갔습니다.

  차량 발견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후였습니다. 현지 경찰들이 순찰차를 근처에 대고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승합차 안을 둘러봤는데 수사에 도움이 될만한 게 없었습니다. 흔한 메모지, 티슈도 없었습니다. 공구함은 있었지만 안에는 공구가 하나도 없었고요.

  그나마 두 번째 열 매트의 핏자국이 유력한 단서였습니다. 보는 순간 혈흔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그 때 정우현이 직접 루미놀 검사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몇 번 해 보더니 반응이 잘 안나온다고 했습니다. 본부에 차량을 가져가 혈흔과 지문 등을 종합적으로 검사하겠다고 했죠. 정우현은 근처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에 견인차를 불러 올라갔습니다.

  저는 남아서 다음 날 주변을 탐문하고 인근 도로 CCTV를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쓸 만한 단서는 어디서도 안 나왔습니다. 결국 이튿날 같이 갔던 형사와 빈손으로 성남에 돌아왔습니다.

  오자마자 수사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정우현은 본부에서 다시 검사를 해봤지만 반응이 안 나와 차량을 국과수에 맡겼다고 보고했습니다. 두 번째 열 매트 얼룩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자 제대로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했습니다. 의아했지만 국과수에서 검사한다니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국과수에선 이틀 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세 번째 열 바닥에서 혈흔 반응이 나왔지만 소량이어서 누구 혈액인지는 알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차량 내부와 발전기, 사다리, 공구함 등에서 지문이 전혀 안 나왔다고도 했습니다. 두 번째 열 매트 얼룩을 물으니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더군요. 그제야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정우는 입이 말랐는지 다시 물을 마셨다. 그 때 재우의 눈에 응급실 쪽으로 갔던 경찰들이 다시 포착됐다. 옆에 선 간호사 한 명이 손가락을 재우 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재우는 말을 재촉했다. 하지만 한정우는 기억을 더듬는 듯 여전히 느릿한 어조였다.

  "국과수로 당장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둘째 열 매트에는 아무런 자국이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봐도 마찬가지였죠. 말 그대로 충격이었습니다. 국과수에서 돌아와 정우현을 추궁할 틈도 없이 지방청 회의가 열렸습니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지방청에서 보도자료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재우가 알려줘야 할까 망설이는 사이 경찰 둘이 다가왔다. 한 명은 키가 컸고 다른 한 명은 키가 작지만 체구가 단단했다.

  강 차장이 경찰을 막아서며 명함을 내밀었다.

  "주간시사 기자입니다. 취재 중인데 무슨 일이신지요."

  키가 큰 쪽이 나서서 한정우를 가리켰다.

  "기자님이 취재 중인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공무 집행 중입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저 분을 모셔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한정우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듯 동요하는 기색이었다. 재우는 몸을 일으켜 강 차장 옆에 섰다.

  "지금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경찰들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재우는 무의식적으로 경찰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이 분은 저희로서도 중요한 취재원입니다. 데려가시려면 이유라도 말씀해 주셔야죠."

  체구가 단단한 경찰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공무집행을 방해하시겠다는 겁니까."

  자신들이 하는 일은 정당하니 이유는 알 필요 없다는 식이었다. 되풀이되는 조직논리에 재우의 가슴속에 뭔가 치밀어 올랐다.

  "경찰이면 답니까. 왜 이유를 얘기 못합니까. 제가 얘기해 볼까요? 지금 양심선언을 하려는 사람 입을 막으려는 거 아닙니까."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체구가 단단한 경찰이 한 손으로 재우 어깨를 잡고 옆으로 밀쳤다. 재우가 밀리자 틈을 놓치지 않고 한정우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저희와 같이 가시죠, 선배님."

  다시 막아서려는 재우의 허리를 키 큰 경찰이 잡았다. 재우는 뿌리치려 했지만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한정우를 보내야 하는 걸까. 결정적인 증언을 얻기 직전에 물러난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 때 시야에서 잠시 사라졌던 강 차장이 나타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경찰분들, 죄송합니다. 오해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 이렇게까지 할 게 아닌데…. 전화 한 번만 받아보시죠."

  키 큰 경찰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전화기를 받았다. 한 손은 여전히 재우의 허리춤을 잡은 채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목소리가 커졌다.

  "네, 경무관님! 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후 분한 눈초리를 지으며 동료 경찰에게 다가갔다. 귓속말을 하자 체구가 단단한 경찰의 표정이 굳었다. 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를 떠났다.

 

  "윗선을 통해 얘기를 했습니다. 이제 안전하실 겁니다."

  강 차장은 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기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칫하면 제가 다 뒤집어쓰는 구도군요. 이렇게 된 마당에 제가 뭘 더 감추겠습니까."

  한정우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방청에서 보도자료를 냈다는 말씀까지 드린 거 같은데…. 저도 처음 보는 지방청 보도자료에는 ‘차량 뒷자리’에서 혈흔이 발견됐다고 돼 있었습니다. 전담 수사팀장도 모르는 곳에서 이미 내용이 결정돼 있었던 거죠.

  저는 회의 후 정우현을 불러 둘째 열 매트가 사라진 이유를 물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발뺌하더군요. 강릉에서 견인해 온 차량을 그대로 넘겼다고요. 나중에는 국과수에서 뭔가 잘못한 거 아니냐면서 버티더군요. 더 이상 말이 안 통할 것 같아 이 서장을 찾아갔습니다.

  이 서장에게 혈흔으로 보이는 얼룩이 사라진 걸 설명하고 정우현과 함께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뒷좌석 매트를 찾아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이 서장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마디 하더군요. 한 경위도 이제 승진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재우는 자신의 예상이 적중한 것에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결국 그런 거였나.

  "한 마디로 입막음을 당하신 거군요."

  한정우는 부끄러움과 슬픔이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 형사는 매트 얼룩을 어떻게 한 걸까요."

  강 차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상대는 어깨를 으쓱했다.

  "분명한 건 물티슈로 닦아내는 정도론 국과수의 눈을 속일 수 없다는 겁니다. 요즘 기술은 몇 번 세탁한 옷에서도 혈흔을 찾아낼 정도니까요."

  "매트를 교체했다는 거군요."

  강 차장이 신음처럼 말했다.

  "저도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그런 의심이 들더군요."

  한정우는 다소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당시 정우현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은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때만 해도 사건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른 둘에 아이 둘입니다. 연기처럼 사라지기엔 너무 많죠. 살았든 죽었든 머지않아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예상이 빗나가셨네요."

  재우가 이죽거렸다. 옆에서는 강 차장이 유 편집장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전직 경찰 사건 은폐 인정.

 

  한정우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모두 제 책임입니다. 이후 성남 실종사건 해결은 제 인생을 걸고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됐습니다. 공식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휴일마다 강릉과 성남을 오가며 실마리를 찾기 위해 뛰었습니다.

  반 년 동안 수소문한 끝에 문제의 스타렉스를 견인한 업체를 찾아냈습니다. 매트를 교체한 카센터도 성남 외곽에 있었습니다. 정우현이 아침 일찍 와 바쁘다며 여러 번 재촉한 게 기억에 남았다고 하더군요."

  "카센타 이름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한정우는 상호는 생각이 안 난다면서 대신 위치를 그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재우가 건넨 노트에 약도를 그린 후 돌려주다 한 가지만 바로잡을 게 있다고 덧붙였다.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강은정 씨와 차량 발견자를 여러 번 찾아간 거 아니냐고 하셨는데, 그건 아닙니다. 사건을 계속 기억하고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저 나름의 몸부림이었습니다. 그것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재우는 한정우를 부축해 응급실 쪽으로 향했다. 강 차장은 계속 유 편집장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듯 조금 떨어진 곳에서 따라왔다.

  "수면제는 왜 드신 건가요."

  재우의 기습 질문에 한정우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살짝 붉어진 얼굴로 들릴락 말락 속삭였다.

  "너무, 너무 무서웠습니다."

  둘은 한정우를 응급실에 돌려보낸 후 그의 아파트 앞으로 차를 돌렸다. 하지만 정우현과 서울 번호판을 단 차량은 사라진 후였다. 정우현의 반론을 받기 위해 몇 번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 되지 않았다.

  "일단 서울로 가지."

  강 차장은 결단을 내렸다. 오전 11시. 평소라면 기사를 이미 넘겼을 시간이었다. 재우는 올라오는 차 안에서 노트북 컴퓨터가 부서져라 키보드를 두드렸다.

 

  오후 2시. 사무실에 들어서자 마무리 작업을 하던 기자들이 고개를 돌려 한 마디 씩 던졌다.

  한 건 했네, 축하해. 잡지 나오면 한 바탕 하겠는데.

  자리에 앉자 누가 다가와 어깨를 주물렀다. 유 편집장이었다. 그는 수고했어, 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편집장실로 돌아갔다.

  재우는 정신없이 기사를 마무리했다. 강 차장의 데스킹을 받아 원고를 넘기고 뛰어다니면서 편집자, 그래픽 담당자와 지면을 조율했다. 가판이 나온 후에는 오탈자와 팩트를 점검했다. 누군가의 잘못을 비판하는 기사일수록 더 정확해야 했다. 상대가 눈에 불을 켜고 오류를 찾기 때문이었다.

  오후 5시, 표지 디자인이 나왔다. 제목은 ‘사라진 가족, 14년 동안 증거 은폐한 경찰’이었다. 오른쪽에는 경찰 제복을 입은 이정근 청장의 사진이 실렸다. 왼쪽에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가족들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급하게 만든 것 치곤 만족스러웠다.

  재우가 표지 시안을 보고 있을 때 거짓말처럼 제복을 입은 이정근 청장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역시 제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수행한 채였다. 재우는 시안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의자를 돌렸다.

  이 청장은 행정팀의 안내를 받아 편집장실로 들어섰다. 강 차장이 쏜살같이 뛰어 들어갔다. 기자들 사이에는 조용한 긴장이 흘렀다.

  재우는 태연하려 애쓰며 가판을 다시 점검햇다. 하지만 모든 신경은 편집장실로 향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기사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렇게 되면 사표를 쓰겠다면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기자를 그만두게 되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삼십 분이 지난 후 이 청장 일행은 상기된 표정으로 편집장실을 나왔다. 편집장은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나왔다. 재우는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면서 엘리베이터 앞을 지났다. 엘리베이터에 타는 이 청장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어깨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편집장실로 오라는 전갈이 왔다. 천천히 다리를 옮겼다. 단두대로 향하는 기분이었다. 방에는 강 차장도 있었다. 유 편집장은 메모지를 건넸다.

  "반론이니 기사에 넣어 주게."

  메모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며 오보에 대해 모든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임."

  기사에 해명이나 반론을 넣어주는 건 당연했다.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그게 다네."

  유 편집장은 재우의 마음을 읽은 듯 담담하게 말했다. 커버스토리를 바꾸거나 기사를 줄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재우는 안 보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사 점검을 마친 재우는 녹초가 된 채로 강 차장 차에 탔다. 전날 밤을 새우다시피 한 터라 피곤이 밀려 왔다. 특종 축하 술자리를 하자는 동료들의 권유도 뿌리쳤다. 차에서 손에 든 가판을 펼쳤다. 6페이지짜리 메인 기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어느 날 한 가족이 사라졌다. 부부와 네 살, 두 살짜리 아이 둘.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14년 동안 생사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경찰이 결정적인 단서였던 혈흔을 은폐한 사실이 주간시사 취재에서 드러났다. 은폐에는 현재 서울지방경찰청장인 이정근 당시 성남 중원서장도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는 한정우의 증언을 중심으로 경찰이 사건을 은폐한 정황을 낱낱이 밝혔다. 문체는 드라이했지만, 읽으면 누구라도 분노할 만했다.

  다만 최석우의 가정폭력 사실과 동반자살을 시도했다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에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생사와 상관없이 경찰의 책임은 엄중하게 추궁해야 한다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이어지는 서브 기사는 동료 기자 두 명이 나눠 맡았다. 경찰이 진실을 은폐해 왔던 오랜 역사, 그리고 은폐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어떤 죄목이 성립하는지 등을 정리한 내용이었다.

  "기분이 어때."

  강 차장이 뜬금없이 물었다.

  "글쎄요."

  재우는 성취감과 허탈함이 뒤섞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내일 더 중요한 승부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 갑자기 몸이 움츠러들면서 오한이 났다. 형, 어머니와의 대면을 피해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추슬렀다.

 

 
작가의 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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