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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잃어버린 자들
작가 : 라하비
작품등록일 : 2019.7.15


'록 바이러스(Lock Virus)'라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1부 시계 도시 中>

“오빠.”

잠시 침묵한 티아가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응?”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티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혹여나 안가겠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불안했다.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드러난 것일까. 티아가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 내일 갈 거야.”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부탁? 뭔데?”

티아가 싱긋 웃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안심이 들기는커녕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빼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행하기도 전에 티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게 먼저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거야. 내일 추첨 용지 넣을 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안 돼.”

나는 다급하게 티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싫어. 공포와 경악으로 몸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물며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악바리처럼 악쓰고 티아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나는 티아의 손 안에 갇혀있던 내 손을 빼고 어두운 눈빛으로 티아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안 돼”

널 잃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티아를 노려보았다.

“알아.”

무엇을 아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티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록 바이러스에 걸린 걸 토큰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나 알아, 오빠.”

티아의 눈에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
.
<중략>
.
.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 혹시라도”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른 티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가야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나로 살고 나로 죽고 싶어.”


 
17화 전조(3)
작성일 : 19-08-30 11:30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9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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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나는 이번에도 망설인다. 이미 각오하고 있었으면서.

 “오빠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요. 앞으로도 그렇겠죠. 삼촌은 알고 계시죠?”

 티아가 내 말을 가로막고 삼촌을 올려다본다.

 “말해도 되냐?”

 이것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삼촌이 얼굴을 굳히며 내 의견을 물었다. 때가 왔다는 걸 깨닫는다. 여기까지 와서 숨기는 것도 우스웠다.

 “네. 부탁드릴게요.”

 나는 삼촌에게 정중한 말투로 부탁을 했다. 도망치기 전에 말이다. 티아의 말이 맞다. 이젠 나중에 말해준다는 입에 발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입으로 진실을 말하는 건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힘들 것이다. 아직 그럴 용기가 나에게는 없었다. 삼촌이 내 표정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볼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지금 플램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이라는 건 알고 있지?”

 “네. 아빠도 그 연구를 위해서 가셨다고 들었어요.”

 “그래.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도 완벽한 백신을 만들지 못했어. 사람들의 기대감과 원망, 그리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좌절감을 느끼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 그로 인한 비극이 플램 안에도 발생했어. 어찌 보면 당연한 거겠지.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해 생겨난······. 말 그대로 불행한 비극이었으니까.”

 삼촌은 의미심장한 말을 끝으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삼촌의 마음도 내 마음과 똑같을 것이다. 여기서 티아가 더 듣고 싶지 않아 해주었으면, 혹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주었으면 하고 말이다. 그리고 가장 큰 마음은 티아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침묵은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설마······. 아니죠? 아니지?”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티아였다. 뭔가를 깨달은 듯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사실을 부정하고 우리의 입에서 부정에 말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보지 않아도 티아의 떨리는 목소리만으로도 알아챌 수 있었다. 나와 삼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답을 요구하는 티아에게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줘야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입술을 달싹이던 나는 이번만큼은 피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티아를 볼 수가 없었다.

 “미안.”

 맞는다는 걸 간접적으로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해줬는데 이제 와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만들 뿐이었다.

 “지속적으로 반쪽짜리 백신을 맞아야하는 상태인데다가 백신의 효과가 완벽하지 않은 만큼······. 규정상 일반인을 만나게 할 수는 없었어. 미안하다.”

 내가 인정하자 삼촌이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삼촌이 미안할 건 없는데. 너무 미안했다. 철없던 시절, 아빠를 만나게 해달라고 얼마나 삼촌을 괴롭혔는지 생각하면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런데 오늘도 나는 내가 힘들다고 그 짐을 삼촌에게 떠넘겨버렸다. 입술을 깨물었다. 내 자신이 한심했다.

 “삼촌이 미안해하실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희망은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간절하게 티아가 삼촌의 팔을 두 손으로 잡는다. 물기가 어린 목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그래.”

 삼촌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수긍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숨결을 내뱉는 것보다도 작았다. 희망. 이곳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있는 것. 나는 그렇게라도 티아가 안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판도라의 상자 속에 희망마저 없었다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 너무 깊게 들어가면 나올 수 없게 될 거야. 나는 애써 밝은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입가에 미소를 걸고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은 여기까지면 충분했다.

 “이제 그만 가야겠어요. 삼촌, 이거 허가랑 전송 좀 해줘요.”

 “명령조냐. 네 녀석은 어째 날이 갈수록 얄미운데다가 속을 알 수가 없어지냐. 쪼끄만 게.”

 삼촌이 내 의도를 알아채고 평소대로 받아쳐줘서 대화는 깨지지 않고 이어졌다.

 “제가요? 저 얼굴에 다 티가 나는 성격인데.”

 “하이고, 퍽이나. 손목이나 내놔. 후딱 해버리고 네 녀석 보내버리게.”

 “삼촌, 저요! 제가 할 거예요!”

 티아도 분위기에 휩쓸리는 척 하며 자신의 왼쪽 손목을 척하니 내밀었다. 더 툭툭대려던 삼촌은 티아한테는 그러지 못하고 손목의 허가증을 확인하고는 바로 전송을 시켜주기 위해 패드를 꺼냈다. 정말 차별이 심한 삼촌이다.

 관리자인 삼촌이 패드를 오렌지에 가까이 대자 스캔하는 부위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송이 끝나고서 나와 티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덜었는데. 삼촌이 1층 오렌지 농장으로 이동식 큐브를 부른 덕택이었다. 이것도 관리자 권한이라 가능한 일이다. 큐브를 예약하는 건 일반인에게는 불가능이었다. 고로 내가 불러도 이동식 큐브는 절대 안 왔을 것이다.

 한편으로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빨리 보내고 싶은가. 더 놀려줄까 보다.

 “그 표정은 뭐냐. 빨리 가라고 해서 기분 나쁘냐?”

 “네. 사실 기분 나쁜 건 아니고 좀 섭섭하긴 해요.”

 “허. 이럴 때는 또 솔직해요. 쯧, 어서 후딱 일 보고 집에나 가.”

 혀를 차고서 삼촌은 쑥스러운지 내 시선을 대놓고 피했다.

 “네. 그럼 가볼게요!”

 “삼촌, 다음에 또 봬요!”

 “그래. 참, 크리스!”

 이동식 큐브를 타려는 나를 삼촌이 다급한 손길로 잡아당겼다.

 “네?”

 “잠깐만.”

 왜 그러지. 급하게 떠오른 생각이라도 있나. 장난감아 버팅기려다가 그의 팔에 목이 갇힌 나는 그대로 구석으로 끌려갔다. 아니 구석이라기보다는 오렌지 나무 뒤로 끌려갔다는 게 맞을 것이다. 진짜 한대 패려고 이러시나. 나는 속으로 당황하며 삼촌의 눈치를 봤다.

 “뭐에요.”

 “오늘 조심하도록 해.”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주위를 둘러본 삼촌이 목소리를 잔뜩 죽이고서 속삭였다. 또다.

 “뭐에요 대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왜 다들 나보고 조심하래?”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갔다. 오늘 조심하라는 말만 3번을 듣다보니 이제는 무서울 지경이었다.

 “쉿! 목소리 죽여. 오늘 WC-S에 갔을 때······. 뭐, 이상한 일 없었어?”

 이상한 일? 무슨 의미지.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간다. 불쑥 떠오르는 건 한가지뿐이라 나는 휘청거리려는 다리를 다잡고서 흔들리는 눈빛으로 삼촌을 응시했다. 그리고 삼촌이 하려는 이야기가 절대로, 좋은 말이 아닐 거라는 예감이 받았다. 침을 한번 삼키고서 나는 말했다.

 “30분 이상 광장에 있는 이동 수족관이 운행을 안했어요. 진짜로. 무슨 일인데요?”

 내 목소리는 긴장과 걱정으로 톤이 더 내려가 나이에 맞지 않게 굵고 어두운 음색이었다.

 “오늘 지진이 발생할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어. 되도록이면 나중에 다시 오고, 오늘은 집에 바로 가도록 해.”

 손이 떨렸다.

 “지진, 이요?”

 순간 오늘 꾸었던 꿈이 떠올라 가슴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불안감이란 뱀이 스멀스멀 발을 감고서 몸을 타고 올라왔다. 안 돼, 그건 안 돼. 지금 당장 그 일이 현실이 되는 것 마냥 내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꿈속과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절대 두 손 놓고 보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이 긴장으로 굳자 지켜보던 삼촌이 그 불안을 털어내듯 어깨를 툭툭 가볍게 쳤다.

 “진정해.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죠.”

 나는 가까스로 패닉에 빠지려는 것을 겨우 면하며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은 여전히 갈비뼈 밖을 뚫고 나올 것처럼 뛰고 있었다.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한결 편해지고 나서 나는 더 자세히, 알아낼 수 있을 만큼 삼촌에게서 알아내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노력한다. 쓰러지지 않게 나무 기둥에 손을 집었다.

 “삼촌은 어떻게 알았어요? 아니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랬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고 다음으로 미뤘을 것이다.

 “미안하다. 우리한테도 연락이 내려오지 않았어.”

 고개를 푹 숙이며 삼촌이 대꾸했다. 어두워 보이는 얼굴.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일부러 숨겼다는 말이에요?”

 개새끼들.

 “글쎄. 그건 아닐 거야.”

 삼촌의 말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확실해요?”

 나는 삼촌을 추궁했다. 삼촌은 잘못이 없다는 걸 알지만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눈에 독기가 올랐다.

 “사실 확실치는 않아. 하지만 사람들을 속일 수 없다는 걸 그들도 알아. 뉴라로 연결되어있다고는 해도 진동은 전해지니까. 나중에 후폭풍을 감당하기 싫어서라도 방송을 내보냈을 거야.”

 나와 같은 의문을 삼촌도 품고 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투덜이 스머프같은 면이 있기는 해도 머리가 좋은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라고 소리치려는 내 말을 굳은 얼굴을 한 삼촌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집중해서 잘 들으라는 듯 내 한쪽 어깨를 꽉 쥐고서 소리를 죽여 말을 이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의심은 해봐야 돼. 실제로 수족관은 멈췄어. 그런데 토큰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는 게 더 수상쩍더라고. 운행을 잠시 멈출 정도라면 그에 대한 안내는 필수적으로 나갔어야 해. 쓸데없는 것까지 국민들에게 떠벌리기 좋아하던 토큰에서 미적댄다? 그건 절대 평범한 문제가 아닐 거야. 플램 쪽에서도 별 안내 없었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삼촌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뭘 걱정하는 지 안다, 진.”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니까요, 삼촌.”

 미들 네임은 좋아하지 않아서 입을 삐죽인다. 덕분에 좀 차분해졌다. 삼촌 말을 맹목적으로 믿겠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따라 만났던 이들이 전부 내게 조심하라는 말을 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삼촌의 말이 와 닿고 있었다. 혹시 이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또 무슨 일을 감추는 건지, 젠장.”

 못마땅하게 혀를 찬 삼촌의 욕 타깃은 어느새 토큰에서 플램으로 바뀌었다. 삼촌은 계속해서 능구렁이 같다던가. 밉살맞은 놈들이라며 투덜댔다.

 “삼촌은요?”

 하지만 나는 우릴 걱정해주는 삼촌이 걱정되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저 태연함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나한테는 삼촌도 살펴봐야할 사람이 중 하나였다. 도통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하질 않으니 속마음을 알기 힘든 사람이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 하냐. 이래봬도 나, 플램 소속이다. 플램에서 얼마나 직원들을 아끼는데. 고급인력이잖아?”

 자랑스레 가슴을 툭툭 치며 삼촌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플램을 수상하다고 한 사람이······. 필시 내 걱정을 덜어 주려고 한 말일 것이다. 코끝이 찡해져 잠시 숨을 멈춰야했다.

 “고마워요, 삼촌.”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그에게 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삼촌을 꼭 껴안자, 그가 진저리를 치며 내 어깨를 잡고 멀찍이 떨어뜨렸다.

 “징그러운 짓하지 말고, 빨리 가기나 해. 티아 기다린다.”

 삼촌에게서 아프지 않게 꿀밤을 맞은 나는 씩 웃어보였다. 그런 내 미소를 본 삼촌은 썩은 감을 먹은 사람처럼 구겨졌다. 아, 진짜. 덕분에 살랑살랑하던 감정이 팍 식어버렸다. 내 어깨를 다시 잡은 삼촌은 토라진 내가 협조를 해주지 않자 범죄자를 끌고 가는 것 마냥 힘을 줘 나를 이동식 큐브 안에 집어 던졌다.

 “좀 살살해줘요, 삼촌. 나도 연약하거든요!”

 서운함에 버럭 소리치자 삼촌이 “미친, 연약함이 다 죽었네.” 라는 말로 나를 구타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줄곧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티아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고, 나와 삼촌은 짠 듯이 동시에 고개를 저였다.

 “별로. 아무 것도 아니었어.”

 “그냥 동생 좀 잘 챙기라고 한 소리 했다.”

 삼촌이 옆에서 지원을 해주었다. 우린 같은 마음으로 티아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오늘도. 언제 나와 다름없는 하루가 되어야하니까.

 이후로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척 가끔 고개를 끄덕여 표현할 뿐, 속으로는 다른 생각했다.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아마도 겉으로는 태연해보일 것이다. 두 사람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좋을까. 의심을 심어주지 않고 티아를 설득하는 것, 그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사실대로 설명하기에는 두려웠고,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되도록 티아가 모르고 지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또 다른 비밀을 만들 생각부터 하는 내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지라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집중한 상태였다. 어느 정도는 나를 위해 삼촌이 티아와 대화를 하며 시간을 끌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티아의 “다음에 또 놀러 와도 돼요, 삼촌?” 하는 물음과 더불어 볼을 붉히며 기뻐하는 표정을 직통으로 당한 탓에 5분 만에 삼촌의 노력은 끝나고 말았다. 오랜만에 만난 삼촌은 티아에게 면역력이 없었으니까. 그런 반응은 불가항력인데다가 아직 심장이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라 직방으로 먹히고 있었다. 결국 쑥스러움에 빨리 가라고 재촉하기 시작한 삼촌이 재빨리 이동식 큐브에서 거리를 두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동식 큐브의 문이 사라지며 자동적으로 콜드 호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

 

 

 ***

 간혹 그런 날이 있다. 하려고 하는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날. 그런 느낌은 때때로 높은 확률로 타이밍이 거지같은 때 유독 적중하곤 했다.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껌 대용으로 잘근잘근 씹고 싶은 걸 참으면서 도착하길 기다린 밀가루 시장은 주요 음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야채시장처럼 바글거리진 않았지만. 과연 저들 중 몇 명이나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엄청 넓다.”

 “그러게.”

 “왜 그래?”

 “뭐가?”

 “평소 같으면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을 거잖아. 왜 그렇게 조용해?”

 “너 피곤할까봐 그런 거지.”

 차마 다른 걸 생각하느라 그랬다고는 말 못하고 돌려 말했다. 티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들키겠어. 나는 티아가 의심을 하지 않게 설명을 줄줄 늘어놓았다. 밀가루 시장은 '공장'이란 역할을 맡은 큐브가 하나 더 이어져있고, 공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기계가 대신한다는 것. 밀가루 시장은 특이하게도 무인 전송기가 아닌 사람의 노동을 이용한다는 것 등.

 “그때 봤던 전송자라는 사람?”

 “응? 응. 맞아.”

 사실 굳이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토큰은 사람들에게 유희만이 아닌 무언가 맡고 있다는 책임감과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존감을 심어주어야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저 이 삶을 견뎌내게 한다면 더욱 바이러스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가정한 것이다. 지금 인구는 옛 과거보다도 절반 이상이 줄어든 상태였고, 그 인구수조차도 유지하기가 어려웠으니까.

 결국 토큰은 한 가지 법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최소 주 20시간 최대 25시간으로 노동 시간을 정하는 것이 그 법 중 하나였다. 노동은 간단했고, 그 시간마저도 짧았다.

 “그때 그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질문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플램이 나쁘게는 안했을 거야.”

 ‘나쁘다’는 기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플램 입장에서는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행복한 왕자’라고 암암리에 부르고 있었다. 규칙을 어긴 사람이나 F점수를 여러 번 받은 사람들(*성인이 된 이후로는 매달 일정표를 받게 되며, 첫 달을 제외하고는 결과표도 같이 받게 된다. 일정표에는 근무일정으로 시간과 장소가, 결과표에는 근무 결과 및 특이사항이 적힌다. 모든 결과표는 A~F까지로 기재된다.)은 플램의 초대를 받았다.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플램은 공표했고, 예상외로 이 시도는 나름 환영을 받고 있었다. 초반에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나 F점수를 받는 사람보다도 특이사항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난동을 부리거나 근무자를 포함하여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해를 입히는 자들이 이 항목에 기재가 된다. 그리고 플램에 다녀오면 모두 ‘행복한 왕자’가 되었다.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 되어버린 그들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다. 그 장면을 직접 보았든, 아니면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든 결과는 다 같았다. 착한 사람들은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특이사항에 기재되는 일이 없었고, 그렇게 되기 위해 엄청난 애를 쓰고 있었다. 과할 정도로.

 나는 말이 없는 티아를 내려다본다. 티아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무서워?”

 숨기고 있던 과자를 들킨 것 마냥 놀란 티아가 나를 보고는 이내 대답했다.

 “응. 무서워. 알려지지 않았다는 건.”

 순간 할 말을 잃는다. 가끔 티아는 나보다도 어른스럽게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나도 그래. 아, 우리 차례다.”

 때마침 전송할 수 있는 차례가 되었다. 나는 얼른 티아의 등을 밀었다.

 “전송 부탁드립니다.”

 “허가증 확인 해드릴게요.”

 정해진 대화가 오간다. 소리가 지워지고 나는 티아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도 무서워, 티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모르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어쩌면 이곳에도 광장에 잠시 동안 갇혀 있었던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알 수 없어.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운 그림자 한편 보이지 않으니까. 너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런 죄책감이 한쪽 구석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합리화시켰다. 만에 하나 내가 알린다고 해도 그 증거를 댈 방법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핑계거리를 주었다. 삼촌의 이름을 꺼내기에는 그가 겪게 될 일이 걱정이 되기 때문에 그 방법은 쓸 수 없다는 핑계도. 나는 비겁하기까지 했다. 나는······. 나와 친한 사람들을 더 우선순위로 세운다. 그리고 너에게는.

 전송이 완료되고 우리는 다시 이동식 큐브에 올랐다.

 “오빠”

 “응.”

 “솔직히 말해. 아까부터 이상하게 굴고 있는데 혹시 떠나기 전에 삼촌이 걱정해야할 만한 이야기라도 한 거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훅 들어온 티아의 허를 찌르는 질문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태도는 티아에게 확신을 줄 것이다.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시치미를 떼는 내 손을 티아가 잡아챘다. 따듯한 손이 내 손을 덮었다.

 “손도 차갑고, 삼촌이랑 헤어진 뒤로 계속 웃고 있잖아.”

 “손은 좀 추워서 그래. 그리고 난 원래 잘 웃잖아?”

 “아니야.”

 무척이나 단호했다. 잔뜩 찌푸려진 표정은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너에게는. 아무것도 모르는 걸 무서워하는 너에게만은 알려줘야겠지.

 “더는 못 속이겠네.”

 일부러 티아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패드를 조작하면서 말했다.

 “오늘은 이만 집에 가자. 고기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으니까, 나머지는 한 달 안에만 수령하면 돼.”

 패드에서 시선을 떼 티아와 눈을 마주친다. 티아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져 있었다.

 “……. 무슨 일이야?”

 이상함을 눈치 챈 티아를 보았다. 손끝이 떨렸다. 티아로 인해 따듯해졌던 손이 다시 차가워졌다. 진정하자.

 “소파.”

 입술만 움직여 명령을 내린다. 떡국 먹다 골로 간다 호는 기존의 입력을 확인하고는 별도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소파를 정중앙에 비치한다.

 “일단 앉자. 안전벨트도 매고.”

 조용하게 이야기하며 나는 티아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티아는 내 손을 격하게 뿌리치며 소리쳤다.

 “설명해줘. 오빠는 왜! 나한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 아빠 이야기도. 삼촌이 한 이야기도! 나, 어린애 아니야. 그리고 우린 가족이잖아! 어째서, 말을 안 해주는 거야?”

 격렬하게 외치는 티아를 보며 뿌리쳐진 내 손은 허공에서 어설프게 멈춰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적막한 공간에서 이미 WC-S3으로의 이동명령이 입력된 떡국 먹다 골로 간다 호는 움직였다. 큐브는 무인 정거장으로는 공간이동으로만 가능했기 때문에 Winter 보급소의 끝자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난 동상처럼 멍하니 티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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