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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사라진 가족
작가 : 장군12
작품등록일 : 2019.8.7

14년 전 발생한 일가족 실종 사건을 한 주간지 기자가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다룬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
서로를 파괴하며 처참하게 무너진 가족의 사연과 경찰이 숨긴 진실의 조각.
사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모든 일을 백일하에 드러내려는 이들의 숨막히는 대결로 치닫는데……

 
15. 2016년 3월 25일①
작성일 : 19-08-29 18:15     조회 : 228     추천 : 0     분량 : 8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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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2016년 3월 25일①

 

  경북 김천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중간에 휴게소에 세 번 들렀는데 그 때마다 강 차장은 휴대전화를 꺼내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했다.

  "형님, 저번에 꼭 신세 갚겠다고 하지 않았소."

  "박 형사, 자네가 정말 이러긴가. 이번만 좀 도와주게나."

  휴게소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오래도록 통화하는 강 차장을 보면서 재우는 운전을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강 차장은 두 번째 휴게소에서 통화를 마친 후 재우에게 메모지를 한 장 건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전문가 세 명의 이름과 연락처였다. 강 차장이 운전하는 동안 재우가 차례로 전화를 돌렸지만 한밤중이라서인지 아무도 받지 않았다.

  재우는 마지막 휴게소에서 튀김우동을 먹으며 궁금했던 걸 조심스레 물었다.

  "한정우의 소재를 어떻게 알아내신 건가요?"

  강 차장은 대답 대신 턱을 긁었다. 그리고 반문했다.

  "경찰이 언제 자신들의 치부를 스스로 밝히는 줄 알아?"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 차장은 뜨끈한 국물을 마시고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조직 내 라이벌을 넘어뜨릴 때야. 생각해 보게. 전국에 경찰이 11만 명이야. 그 중 ‘경찰의 별’로 불리는 경무관은 60명도 안 되지. 지방청장인 치안감은 다시 그 절반도 안 되고. 경찰청장 문턱인 치안정감은 전국에 6명뿐이야. 올라갈수록 무한 경쟁이란 말이지. 인사 때마다 여기저기서 투서가 난무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재우는 강 차장이 하려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성남 실종사건 담당 서장이 누구였는지 알아? 지금 서울청장 이정근이야. 차기 경찰청장 1순위. 그런 만큼 적도 많지."

  강 차장은 젓가락으로 남은 면을 집었다. 재우는 그제야 강 차장이 특종기자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조직 내 역학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때와 장소에 맞춰 필요한 정보를 원하는 상대에게 공급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경찰 내부를 경찰보다 더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일. 지금의 재우로선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경지였다.

 

  승용차는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를 탄 후 김천IC로 빠져 나갔다.

  한정우가 산다는 주공아파트는 김천IC에서 10km 가량 떨어져 있었다. 신시가지에 십여 개 동으로 조성된 단지였다.

  강 차장의 정보에 따르면 한정우의 집은 102동 305호였다. 입구의 배치도를 보니 가장 안쪽에 있는 동이었다. 강 차장은 단지 안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이제 모퉁이를 돌면 보이겠구나 하는데 갑자기 헤드라이트를 껐다.

  "차는 여기 대 놓을 테니 한 번만 둘러보고 와 주게."

  재우는 강 차장의 용의주도함에 감탄하며 조수석 문을 열고 내렸다. 밤안개가 축축했다.

  건물 왼쪽으로 돌아 몇 걸음 걸으니 103동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진행 방향으로 조금 더 가자 한정우가 사는 102동이 나타났다. 건물 측면에서 302호 위치가 어디쯤일지 가늠하기 위해 걸음을 멈췄다. 그 때 귀에 낮은 엔진소리가 들어왔다.

  오른편을 보니 아파트 입구 건너편에 시동이 켜진 차가 한 대 멈춰 있었다. 헤드라이트와 안개등을 모두 끈 채였다. 중형차였고 서울 번호판이었다. 부자연스러운 모습에 위화감이 들었다.

  재우는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 방향을 바꿨다. 마침 쪽문이 보였다. 중형차에서 안 보이는 각도임을 확인한 후 잠긴 쪽문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그리고 강 차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상한 차가 한 대 있네요. 잠깐 지켜보겠습니다.

  재우는 쪽문에 몸을 기대고 숨을 죽였다. 10분 가량 지나자 운전석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왔다. 네이비색 양복을 입은 그는 기지개를 편 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라이터 불에 비친 얼굴이 낯익었다. 안양서에서 만났던 정우현 팀장이었다.

  재우는 강 차장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대가 담배를 끄고 차로 돌아가는 걸 확인한 재우는 단지 외곽을 따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강 차장은 이미 헤드라이트를 끄고 차를 돌린 채였다. 사정을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청장 쪽이 눈치를 챈 모양이군."

  강 차장은 말을 이었다.

  "당시 성남 실종사건 수사팀에 이정근 청장 고향 후배가 한 명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어. 당시 서장이었던 이정근이 그 후배를 통해 진행상황을 체크하고 수사를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정 팀장이라는 자가 그 후배일수도 있을 것 같구만. 우리가 한정우에게 접근하는 걸 알고 급하게 내려왔겠지."

  재우는 삼주 전 만났을 때 동반자살 가능성을 슬쩍 흘리던 정 팀장의 얼굴을 떠 올렸다. 14년 전 이정근이 그에게 사건을 확대하지 말라고 지시한 걸까. 그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걸까. 재우는 이를 악물었다.

  "한정우는 지금 어디 있을까."

  강 차장은 이정근 청장 반대 세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정우를 설득했다. 그리고 서울로 와서 모든 걸 설명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한정우는 김천터미널에서 오후 6시에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김천에서 떠나는 서울행 버스는 하루 3편, 그리고 저녁 6시가 막차였다. 정 팀장이 집 앞에서 기다리는 걸 보면 두 가지는 분명했다. 한정우가 지금 집에 없다는 것과 상대편도 아직 한정우의 소재를 파악하지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직 김천 어딘가에 있을 수 있겠네요"

  강 차장은 휴대전화로 받은 한정우의 사진을 재우에게 보여줬다. 경찰 내부행사에서 제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었다. 재우는 네모난 얼굴과 작은 눈을 뇌리에 새겼다.

 

  둘은 먼저 김천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매표소와 개찰구는 썰렁했다. 눈에 들어온 사람은 커다란 보따리를 든 중년 여성 하나 뿐이었다. 몸빼바지를 입은 채 의자에 길게 누워 자고 있었다. 건물 주변을 뒤졌지만 한정우로 보이는 인물은 없었다.

  다음은 김천역으로 향했다. 1층 대합실에는 새벽임에도 십여 명 이상이 앉아 있었다. 시간표를 보니 서울행과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밤새 있는 모양이었다. 이미 서울행 기차를 탄 건 아닐까. 구역을 나눠 주의 깊게 한 명씩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비슷한 인상을 가진 사람조차 없었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재우는 낙심한 강 차장을 뒤로 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소변을 보며 세 칸 중 한 칸이 잠겨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밖에서 기다렸지만 한참 지나도록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재우는 다시 화장실에 들어갔다. 귀를 기울였지만 안에서는 인기척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한정우 씨, 계신가요."

  큰 목소리로 몇 번이나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재우는 얼굴을 바닥에 대고 안을 살폈다. 낡은 갈색 구두와 늘어진 손이 보였다.

  "한정우 씨, 한정우 씨."

  재우는 급히 이름을 부르며 옆 칸으로 이동해 변기를 밟고 올라갔다. 머리를 내밀자 양변기에 앉은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을 젖히고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베이지색 바지에 회색 파카를 입은 그는 분명 한정우였다.

  핏기가 사라진 얼굴을 보며 재우는 최악의 상황을 각오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어 119를 눌렀다.

 

  한정우는 즉시 지역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수면제 과다 복용이었다. 의료진은 위세척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한정우는 날이 완연히 밝은 후에야 의식을 찾았다. 그나마 강 차장과 재우가 발견 직후 등을 두드리며 토하게 해서 정신을 빨리 차렸다는 설명이었다.

  "제가… 제가 어떻게 된 건가요."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어눌한 말투였다.

  강 차장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경찰이었던 분이 수면제로 자살하기 힘든 것도 모르시나요, 참 나."

  상대는 피곤한 듯 다시 눈을 감았다.

  강 차장은 재우와 함께 한정우를 부축해 병원 로비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은 후엔 캔 커피를 내밀며 붙임성 있는 말투로 본인과 재우를 소개했다. 강 차장이 주의를 끄는 사이 재우는 몰래 녹음기를 켰다.

  "2002년에 발생한 성남 일가족 실종 사건을 취재 중인데 당시 수사를 담당하셨던 선생님께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저를 찾았습니까."

  "집에 안 계시길래 무작정 여기저기 다니며 찾았습니다. 그러다 박 기자가 우연히 화장실에서 선생님을 발견했습니다."

  환자복 차림의 한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본의 아니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네요. 죄송합니다."

  강 차장은 재우를 보며 왼쪽 손목의 시계를 두드렸다. 시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재우는 지금까지 취재한 내용을 간략히 설명했다. 한정우는 몇몇 대목에서 낮은 신음소리를 냈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본론에 들어갈 차례였다. 재우는 크게 숨을 쉬었다.

  "그 동안 취재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팀이 핵심 증거를 감췄다는 겁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전혀 모르겠네요."

  한정우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요."

  재우는 가방에서 승합차 사진을 꺼냈다.

  "이 사진을 한 번 봐 주세요. 최석우와 강희정이 아이들과 타고 나갔다가 실종된 것과 같은 모델의 스타렉스 차량입니다. 맞죠?"

  한정우는 눈을 찡그리며 한참 동안 바라봤다.

  "오래 된 탓인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럴 리가요. 한 형사님은 사건 후에도 강희정의 언니를 자주 찾아가셨죠. 차량 발견자를 만나러 강원도까지도 여러 번 가셧고요. 그토록 각별히 신경 쓰셨던 사건인데 기억을 못하신다니 좀 이상하네요."

  재우는 슬쩍 ‘선생님’에서 ‘형사님’으로 호칭을 바꿨다. 상대는 한숨을 쉬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승합차와 다른 점이 눈에 띄지 않습니까?"

  "글쎄요."

  슬슬 상대를 몰아붙일 타이밍이었다.

  "스타렉스를 처음 발견한 분을 강릉에서 만났습니다. 뒷좌석에 핏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핏자국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여기라고 했습니다."

  재우는 사진 속 차량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혈흔이 여기서 발견된 게 맞습니까."

  한정우는 묵묵부답이었다.

  "당시 경찰 보도자료에도 뒷자리에서 혈흔이 발견됐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요."

  재우는 한정우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취재 중 안양서 정우현 팀장을 만났습니다. 당시 한 형사님 밑에 있던 막내 형사 말입니다. 혈흔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육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고 희미했다’고요.

  그런데 차를 발견한 조광범 씨는 ‘작은 얼룩이 확실히 보였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조 씨가 본 핏자국은 크기는 작았지만 희미하진 않았던 겁니다. 전화로 조 씨와 당시 출동했던 강릉서 담당자에게 다시 확인했습니다. 둘 다 육안으로 충분히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으더군요.

  정 팀장은 ‘소량이고 오래돼 감식이 어려웠다’고도 했죠. 하지만 육안으로 보인다면 감식이 어려울 정도로 소량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정 팀장은 자기 멋대로 ‘희미하다’, ‘육안으로 보기 어렵다’는 표현을 끼워 넣은 걸까요."

  한정우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우는 상대가 상당히 긴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차량 발견자가 말하는 ‘뒷좌석’과 보도자료에 있는 ‘뒷자리’가 같은 곳인지 확인해 봤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더군요. 즉 혈흔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던 겁니다."

  상대의 닫힌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차량 발견자는 차량의 오른쪽 뒷좌석, 즉 두 번째 열 바닥에 깔린 매트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강릉서 경찰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재우는 서류봉투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꺼냈다.

  "사실 조금 전 보여드린 사진은 같은 차종이 아니라, 바로 그 스타렉스입니다. 강은정 씨는 사건 반년 후 차량을 돌려받고 내부 사진을 꼼꼼하게 찍었습니다. 덕분에 차량이 폐차된 지금도 당시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두 번째 열 매트에는 눈을 씻고 봐도 혈흔 비슷한 게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저는 가설을 하나 세웠습니다. 한정우 형사님,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재우는 상대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이름을 불렀다. 한정우는 이제 숨조차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성남 중원서 수사팀은 일가족 실종을 사건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일 월드컵이 얼마 안 남았는데 치안이 불안한 것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는 이정근 당시 서장의 특별 지시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스타렉스 바닥 매트에서 혈흔이 발견됐을 때 몹시 당황했을 겁니다. 만약 아이들의 것으로 확인되면 여론 때문에라도 대대적인 수사가 불가피했습니다. 부부의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사건화 되는 건 피할 수 없었죠.

  수사팀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차량을 넘겨받은 후 매트를 깨끗하게 만들어 국과수에 넘겼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경찰이 핵심 단서를 고의로 없애고 은폐까지 한 거죠. 그것도 조직적으로 말입니다.

  들통날 리 없다고 생각했겠죠. 국과수에서 혈흔이 없다는 회신을 받은 후 강은정 씨에게 차를 돌려주면 끝이었으니까요. 차량 발견자에게는 얼룩을 조사해봤는데 혈흔이 아니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었고요.

  그런데 예상외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국과수에서 두 번째 열 매트가 아닌 다른 곳에 있던 희미한 혈흔을 찾아낸 겁니다. 경찰 내부에선 비상이 걸렸고, 경기지방청 주도로 전담 수사팀까지 꾸려지면서 사태가 커졌습니다.

  중원서 수사팀은 몹시 당황했을 겁니다. 혈흔이 안 나왔다면 아무 문제없이 끝날 일이었는데, 이제는 차량이 주요 증거물이 돼 버렸죠. 언론의 관심도 스타렉스 차량에 집중됐습니다.

  매트 얼룩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먼저 증거물 보전에 실패한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일부러 증거물을 훼손한 사실까지 드러난다면 단체로 경찰 옷을 벗어야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었죠. 그렇다고 국과수 조사까지 마쳤는데 다시 혈흔을 만들 수도 없었습니다. 진퇴양난이었죠.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건 국과수에서 혈흔이 누구 것인지 못 알아냈다는 점이었습니다."

  상대는 필사적으로 진정하려는 듯 양손을 잡았다. 하지만 손의 떨림은 감출 수 없었다

  "차량 발견자는 스타렉스가 공사 차량 같았다고 했습니다. 안에 소형 발전기하고 사다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승합차에 발전기와 사다리를 어떻게 싣고 다녔을까요. 스타렉스의 경우 공사일을 다닐 때 상당수는 세 번째 열 좌석을 떼 놓는다고 하더군요.

  최석우 씨도 그렇게 했다는 걸 사진에서 확인했습니다. 여기 보이시죠? 저는 다시 가설을 세웠습니다. 뒷좌석’이 아니라 ‘뒷자리’라는 모호한 표현을 쓴 건 국과수에서 세 번째 열에서 추가 혈흔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좌석을 떼어 놓은 다음이니 ‘좌석’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었던 거죠. 그렇다고 ‘바닥’이라고 하면 기자들이 ‘어디냐’고 물어볼 게 뻔했습니다. 구체적인 것 같으면서도 애매한 표현을 찾아 필사적으로 머리를 짜냈을 겁니다.

  그리고 강릉서와 차량 발견자, 국과수와 수사팀이 각자 편리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차량 뒷자리’라는 애매한 표현을 생각해 낸 겁니다."

  한정우는 몇 번 입술을 달싹거리다 입을 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증거도 없이…."

  더듬는 그에게 재우가 뒤이어 결정타를 날렸다.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어제 밤부터 당시 차량을 조사했던 국과수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아침에 간신히 한 명과 통화가 됐습니다. 담당자는 오랜 시간이 지나 혈흔의 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자가 떼어진 바닥에서 발견한 것만은 확실하다고 하더군요.

  서울에 돌아가면 방금 보여드린 사진을 들고 그 분을 찾아갈 생각입니다. 필요하다면 차량 발견자를 불러 함께 갈 겁니다. 그러면 결론이 나겠죠. 처음에 있었던 핏자국과 국과수에서 찾은 혈흔이 같은 위치에 있었는지 아닌지 말입니다."

  한정우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떨궜다. 빙고.

  "모든 게 생각대로였을 겁니다. 보도자료를 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언론은 월드컵 모드에 들어갔고 사건에 대한 관심도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여론이 조용해지고 나서 수사팀은 강은정 씨에게 차를 돌려줬죠. 두 번째 열 매트가 깨끗한 채로 말입니다.

  하지만 형사님 마음 한 구석엔 증거를 은폐한 사실이 언젠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남았을 겁니다. 수사를 핑계로 강 씨와 차량 발견자를 자주 찾아갔던 것도 동향을 감시하면서 마음 속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였겠죠."

 

 
작가의 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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