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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사라진 가족
작가 : 장군12
작품등록일 : 2019.8.7

14년 전 발생한 일가족 실종 사건을 한 주간지 기자가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다룬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
서로를 파괴하며 처참하게 무너진 가족의 사연과 경찰이 숨긴 진실의 조각.
사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모든 일을 백일하에 드러내려는 이들의 숨막히는 대결로 치닫는데……

 
13. 2016년 3월 23일
작성일 : 19-08-27 18:08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8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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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2016년 3월 23일

 

  재우는 오전 8시 반 사무실에 들어섰다. 예상대로 그가 첫 번째 출근자였다. 주간지 기자에게 수요일은 폭풍전야 같았다. 목요일부터 밀려올 마감 스트레스를 앞두고 막판 취재에 열을 올리거나, 이미 취재를 마친 경우 원고를 정리하는 날이었다.

  재우는 강 차장을 기다리며 지금까지 알아낸 걸 하나씩 정리했다. 그가 취재를 통해 알아낸 건 적지 않았다. 최석우의 가정폭력 사실, 경찰이 뭔가를 숨긴 정황, 한정우의 이상한 행적 등.

  하지만 기사로 쓰기에는 확실치 않거나, 사건과의 관련성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지금 상태로는 커버스토리를 달라고 유 편집장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재우는 내심 경찰 쪽 취재를 맡은 강 차장에게 기대를 걸었다.

  오전 9시가 되자 유 편집장이 사무실에 나왔다. 강 차장은 1시간 반이 더 지난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도 늦게까지 술을 마셨는지 후줄근한 회색 양복에서 담배와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회의실에 마주 앉아 말할 때마다 입에서 술냄새가 났다. 강 차장은 수첩 메모를 보며 두서없이 말을 이었다.

  "한정우는 3년 전 정년퇴직하고 고향인 김천으로 내려갔어. 김천이 어딘지는 알지? 그런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결이 안 되네. 예전 동료들 몇 명에게 물어봤는데 그들도 연락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하여튼 한정우를 만나야 일이 풀릴 거 같아서, 여러 경로로 계속 접촉을 시도하는 중이야."

  재우는 약간 실망한 채 전날 강은정을 취재한 내용을 설명했다. 강 차장은 가정폭력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낮게 신음했다.

  "아직 취재할 곳이 남았습니다. 지금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저녁까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강 차장은 재우의 눈을 보며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그리고 재우를 데리고 유 편집장 방으로 향했다.

 

  유 편집장은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다듬는 중이었다. 비서 역할을 하는 행정팀에 따르면 점심 때 주요 광고주와 식사 약속이 있다고 했다. 유 편집장이 강 차장에게 물었다.

  "취재는 진전이 좀 된 건가."

  강 차장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닫고 있어 간접 증언 밖에 확보를 못 했습니다. 그럼에도 실종사건을 축소한 정황은 여러 곳에서 포착됩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경찰들은 옆에서 보기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는데 수사팀이 어떻게든 단순 가출로 몰아가려 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인데 유감스럽지만 그건 아직 모릅니다. 수사 관련 내용은 수사팀 내부에서만 공유하며 엄격하게 보안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수사 자료도 최소한만 남기고 오래 전에 다 폐기됐습니다. 수사팀 소속이었다가 은퇴한 경찰 한 명을 추적하고 있는데, 오늘 내일 중 접촉을 시도하는 중입니다."

  재우는 유 편집장에게 최석우가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행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다만 사건과의 관련성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유 편집장은 잠깐 생각하다 마음을 정했다.

  "경찰이 뭘 숨겼는지 알아내거나, 가족 실종과 직접 관련된 새 팩트가 없으면 커버스토리는 어렵네. 대신 페이지를 충분히 줄 테니 현장 취재한 내용을 섞어서 생생하게 써 봅시다."

  강 차장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늘까지라고 하셨으니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결정적인 내용이 나오면 즉각 알려드릴 테니 지면 조정 부탁드립니다."

  유 편집장은 물론이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기사가 된다면야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다만 너무 늦지는 말게. 마감시간 엄수는 기자의 기본 중 기본 아닌가."

 

  오후 9시. 재우와 승미는 중원여고 교문 건너편에 서 있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학생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자동차로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분주해졌다.

  둘은 오후 5시부터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다리는 학생이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다. 저녁은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때웠다. 쌀쌀한 날씨에 교대로 자리를 지키며 몇 시간이나 서 있다보니 처량한 기분은 둘째 치고 몸이 점점 굳어졌다.

  재우는 조금 전 받은 강 차장의 문자 메시지를 떠 올렸다. 내용은 짤막했다.

  "한정우는 아직 연락 안 됨. 오늘까지 새 팩트 없으면 커버스토리 불가. 편집장은 네 페이지 주겠다고 함. 막판 건투 기원."

  편집장과 지면을 협의한 후 보낸 것이었다. 네 페이지면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었다. 주간지가 100페이지에 육박한다고 해도 목차와 광고를 빼고 원고로 메우는 지면은 절반 남짓이었다.

  그렇더라도 주간지의 얼굴인 커버스토리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평소 지면 욕심을 부리지 않는 재우였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막판까지 실마리를 잡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생각이었다.

  열하루 전 사건이 발생한 집 앞에서 잠깐 스쳤던 여학생을 떠 올렸다. 체크무늬 치마에 흰 블라우스, 진홍색 재킷과 흰색 나이키 운동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까.

  학생들은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날이 저문 뒤라 가까운 거리가 아니면 식별이 힘들었다.

 

  재우는 승미에게 부탁한 게 잘한 일인지 몇 번이나 자문했다. 그 때마다 ‘알 수 없다’가 결론이었다. 마감 전 진실을 파해 칠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승미로서는 다른 서 관할 지역에서 사적인 이유로 행동한 게 발각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둘이 온 건 탁월한 판단이었다. 경찰제복 차림의 승미와 같이 있으니 학교 경비원, 학부모, 학생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고 정문 앞의 여경은 그만큼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누가 질문하면 순찰 중이라거나 치한 감시 중이라고 둘러댈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우는 가급적 조용히 일을 끝내고 싶었다. 본의 아니게 학생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승미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학생들의 물결이 조금씩 줄어들 무렵 여학생 세 명이 팔짱을 끼고 나왔다. 왼쪽 단발머리 여학생이 낯익었다. 승미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다가오길 기다렸다.

  지나칠 때 슬쩍 보니 이수연, 이라는 이름표가 보였다. 빙고. 고개를 끄덕이자 승미가 높은 톤으로 말을 걸었다.

  "안녕, 얘들아."

  학생들이 발을 멈췄다. 승미는 신분증을 슬쩍 보였다. 사진과 서울지방경찰청이라는 문구만 보이고 직위와 이름은 가린 채였다.

  "언니는 경찰인데, 성남 여학교 주변 치안 상황을 파악 중이야. 어떤 점을 개선하면 좋을지 잠깐 물어보려는데 다들 괜찮을까? 바쁘겠지만 5분 안에 끝날 테니, 안전한 학교를 위해 부탁 좀 할게."

  여학생들은 잠깐 망설이다 승낙했다. 더 안전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명분이 먹힌 모양이었다. 승미는 학교 앞 가로등 밑으로 일행을 데려왔다. 학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정문이 보이는 곳으로 미리 골라놓은 장소였다.

  승미는 먼저 재우를 소개했다.

  "이 분은 기자님인데 이 지역 치안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언니랑 같이 왔어. 그렇다고 너네 이름이나 사진이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 일은 없으니 걱정 말고…."

  소개를 받은 재우는 고개를 숙이며 이수연을 슬쩍 봤다.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동네도 예전에는 여러 사건이 있었거든. 그 중 일부를 취재 중이야. 지금 치안 상황과 동네 분위기에 대해서도 기사에 담아볼까 해."

  재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최대한 모호하게 설명했다.

  "너네들이 밤에 집에 갈 때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도로나 장소가 있는지 얘기해 줄래? 참, 이렇게 하면 어떨까. 빨리 끝내려면 나눠서 이야기를 듣는 게 좋을 거 같아. 우리가 나중에 공유하면 되니까."

  승미가 붙임성 있게 말을 이었다. 재우는 틈을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어디 보자, 그럼 이수연 학생은 나한테 얘기를 해줄래?"

  예전 만남을 기억해낸 듯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재우가 재빨리 명함을 건네는 사이, 승미는 미리 약속한 대로 나머지 학생을 데리고 두어 걸음 떨어진 곳으로 갔다.

  재우는 수첩을 꺼내고 목소리를 낮춰 첫 질문을 던졌다.

  "등교나 하교할 때 혹시 위험하다고 느끼는 곳은 없어?"

  이수연은 잠깐 생각하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특별히 없는데요."

  재우는 목소리를 낮췄다.

  "예전 일이긴 한데 근처에서 일가족 실종 사건이 있었어. 혹시 알고 있니?"

  상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재우는 달래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도 현장에 가 봤는데 정말 귀신 나올 것 같은 분위기더라. 그런데 주민들한테 물어보니 그 주변에 자주 오는 여학생이 있다고 하더라.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부모님한테도 알리지 않고 말이야.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건 알고 있지? 자꾸 현장에 가는 건 위험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드네."

  사건에 대해 알고 있지 않느냐는 대목을 슬쩍 끼워 넣어 봤지만 여학생은 묵묵부답이었다. 재우는 이제 본론에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목소리를 더 낮췄다.

  "이미 짐작하겠지만 지금 나는 너희 어머니 제보를 받고 이모 가족 실종사건을 취재 중이야. 취재하면서 사건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이것저것 알게 됐어. 어떤 가족이었는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왜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이수연은 가만히 듣고 있기만 했다. 하지만 점차 흥미를 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아직 결정적인 부분은 몰라. 그래서 아는 경찰에게 부탁해 오게 된 거야. 친구들 앞에 불쑥 나타나 난처하게 했다면 사과할게. 하지만 걱정하지 마. 같이 온 경찰도 사건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몰라. 친구들이 알게 될 일도 절대 없을 거야."

  승미가 모른다는 부분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래도 재우는 승미를 보호하고 이수연을 안심시키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설득을 이어갔다.

  "수연 학생이 아는 게 있다면 내가 파악한 것들과 같이 맞춰보면 어떨까. 벌써 14년이 지났어. 이번에 진상을 밝히지 않으면 사건은 영원히 안 풀릴지도 몰라. 난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야. 수연 학생이 공개하기 싫은 내용은 기사로 절대 안 쓴다고 약속할게."

  이수연의 표정에 망설임이 역력했지만 마지막까지 입은 열리지 않았다. 이제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재우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나도 가족을 잃는 게 어떤 건지 알아. 아버지가 8년 전에 실종됐거든. 아직도 못 찾았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사건을 이대로 끝내는 게 마음에 몹시 걸려. 이렇게 부탁할게. 미용실 앞에서 30분 후에 기다릴 테니 꼭 와 줬으면 좋겠어."

  재우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승미를 보며 살짝 손을 올려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재우는 이수연을 친구들 쪽으로 안내했고, 승미는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치며 대화를 끝냈다.

  "어쩜, 그렇구나. 다들 너무 고맙다. 밤길 조심하고 잘 들어가렴."

  승미는 민중의 지팡이다운 모습으로 학생들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재우는 구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수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해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었다.

  재우는 승미를 돌려보내고 미용실로 향했다. 학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였다.

 

  도착했을 때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방을 잘 볼 수 있도록 모퉁이 전봇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기자들 사이에선 누군가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걸 ‘뻗치기’라고 불렀다. 재우는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야 취재의 절반이 기다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취재가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재우는 이수연이 올 확률이 반반이라고 판단했다. 30분 내로 안 오더라도 지하철이 끊기기 전까지는 기다려 볼 생각이었다.

  이수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건 45분 가량 기다린 후였다. 집에서 옷을 갈아입은 듯 자주색 추리닝 바지에 검은색 패딩 점퍼 차림이었다. 오른손에는 쇼핑백, 왼손에는 열쇠를 들고 있었다.

  이수연은 아무 말 없이 미용실로 다가가 잽싸게 문을 열었다. 재우는 아무도 안 보는 걸 확인하고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은 이수연은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친구에게 참고서를 빌린다면서 나왔어요. 30분 안에 돌어가야 해요."

  재우는 다그치는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저번에 사건 현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지? 그 집에 여러 번 갔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이수연은 잠깐 생각하다 확인해보고 싶어서요, 라고 짧게 답했다. 재우가 추가로 물을 겨를도 없이 말을 이었다.

  "기자님도 사건에 대해 아는 게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걸 먼저 얘기해 주시면 그 다음에 제가 아는 걸 얘기할게요."

  재우는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취재를 통해 알게 된 걸 요령 있게 압축해 설명했다. 최석우의 성장 환경, 사업 실패, 가정 폭력, 사건 후 경찰의 미진한 대응 등. 가급적 노골적인 표현은 피하려 노력했다.

  "내가 아는 건 이게 다야. 이제 학생이 아는 걸 얘기해 줄 차례고."

  상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어머니와 우리 가족에게 절대 피해가 안 가게 한다고 약속해 주세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약속할게."

  이번만은 재우도 진심이었다. 중요한 건 진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어디까지 기사로 쓸지 여부는 그 다음에 판단할 문제고, 충분히 협의할 수 있는 이슈였다.

  한참 더 망설이던 수연은 쇼핑백에서 참고서를 꺼냈다. 알리바이를 위해 일부러 참고서를 가져온 모양이었다. 책 중간에서 메모지 같은 종이를 하나 꺼내 건넸다.

  오래된 기차표였다. 날짜는 2002년 3월 31일. 새벽 6시 15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목포행 새마을호 표였다. 성인 1명. 출발일은 사건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음 날이었다.

  가벼운 흥분이 재우의 몸을 감쌌다.

  "이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

  "저도 그게 궁금해요."

  수연은 짧고 애매하게 답했다.

  표를 뒤집자 뒷면 귀퉁이에 볼펜 글씨가 보였다. 네 글자였다. 새벽 4시. 여자 글씨로 보였다.

  "그럼 이걸 어디서 찾았는지는 말해줄 수 있을까."

  수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건 후 엄마는 계속 혼이 나간 사람처럼 이모 가족을 찾으러 다녔어요. 저는 항상 뒷전이었죠. 집에 이모 가족이 남기고 간 물품이 담긴 상자가 몇 개 있어요. 초등학생 때 호기심 반, 질투심 반으로 처음 상자를 열었어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제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죠.

  그런데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이모와 사촌들 사진을 보게 됐어요. 그 중에는 엄마와 제가 같이 나온 사진도 있었죠. 묘한 기분이었어요. 친밀감이 조금씩 생기면서 피가 이어져 있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에도 부모님이 안 계실 때 몇 번이나 상자를 열어 봤어요. 특히 나이가 같은 연희를 보면서는 서로 가정이 바뀌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수연의 눈에 물이 조금씩 차올랐다.

  "기차표는 지난해 말에 발견했어요. 상자에는 어머니와 이모 둘이서 찍은 사진이 들어간 작은 액자가 있었어요. 혹시 다른 사진이 뒤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액자를 열었더니 기차표가 있었어요."

  재우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기차표가 강희정의 것이라면 사건 다음 날 새벽에 혼자 목포에 가려 했다는 얘기가 된다. 아니 혼자가 아닐지도 몰랐다. 딸과 아들 모두 표를 안 끊어도 되는 나이였다. 분명한 건 남편하고 같이 갈 생각은 없었다는 점이었다.

  강희정은 집을 나가려 했던 걸까. 더 이상 최석우와 같이 살 수 없다고 판단한 걸까. 그런데 왜 목포일까. 강은정의 말에 따르면 자매는 충남 보령에서 자랐다고 했으니 고향에 가려던 건 아니었다.

  재우는 문득 한 가지 가능성에 생각이 미쳤다.

  "혹시 액자 뒤에서 표하고 같이 나온 건 없니."

  이수연은 약간 놀라는 표정이었다.

  "만 원짜리가 3장 있었어요."

  재우는 서울역으로 갈 택시비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어요. 왜 이모는 기차표를 남긴 채 사라졌을까. 그리고 이 돈은 뭘까. 이 사건에는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올 들어 이모가 살았던 곳을 몇 번이나 찾아갔죠."

  "그래서 알게 된 게 있어?"

  이수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집에는 젊은 맞벌이 부부가 살아요. 둘 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죠. 주말에는 자주 등산을 가고요. 아이는 없어요. 옆집에는 중년 여성이 혼자 살아요. 어디서 일하는지는 몰라도 매일 술 마시고 새벽에나 들어오죠."

  "탐정이 따로 없구나. 나보다 낫네."

  재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기차표에 대해 어머니에게 물어본 적은 있어?"

  이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제가 사건에 관심을 갖는 걸 안 좋아하세요. 물어봐도 제대로 답을 안 해주거나 말을 다른 곳으로 돌리시죠."

  재우의 머리 속에는 아직 의문이 남아 있었다. 표 뒷면의 글씨였다. 새벽 4시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올 생각이었다고 쳐도, 굳이 그걸 써 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재우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어머니 글씨가 표 뒷면의 글씨와 비슷하니?"

  이수연은 눈을 돌린 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걸로 답변은 충분했다. 재우는 날이 밝는 대로 강은정을 다시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작가의 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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