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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잃어버린 자들
작가 : 라하비
작품등록일 : 2019.7.15


'록 바이러스(Lock Virus)'라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1부 시계 도시 中>

“오빠.”

잠시 침묵한 티아가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응?”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티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혹여나 안가겠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불안했다.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드러난 것일까. 티아가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 내일 갈 거야.”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부탁? 뭔데?”

티아가 싱긋 웃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안심이 들기는커녕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빼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행하기도 전에 티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게 먼저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거야. 내일 추첨 용지 넣을 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안 돼.”

나는 다급하게 티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싫어. 공포와 경악으로 몸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물며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악바리처럼 악쓰고 티아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나는 티아의 손 안에 갇혀있던 내 손을 빼고 어두운 눈빛으로 티아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안 돼”

널 잃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티아를 노려보았다.

“알아.”

무엇을 아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티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록 바이러스에 걸린 걸 토큰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나 알아, 오빠.”

티아의 눈에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
.
<중략>
.
.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 혹시라도”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른 티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가야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나로 살고 나로 죽고 싶어.”


 
16화 전조(2)
작성일 : 19-08-27 12:19     조회 : 217     추천 : 0     분량 : 9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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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 삐!>

 희고 푹신하고 차가운 게 느낌이 눈을 뭉친 눈덩이와 비슷한 감촉이었다. 무엇보다도 소리가 귀여웠다. 나와 티아는 이 신기한 물건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

 “야야, 얘가 싫어하잖아. 그만 놔.”

 삼촌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정도로. 본의 아니게 괴롭힌 게 되어버려 미안했다. 니스는 눈덩이같이 둥근 몸을 좌우로 흔들며 울고 있었다.

 “아······.”

 “아······.”

 나와 티아는 동시에 아쉬워했다. 우리가 대놓고 아쉬워하자 삼촌의 얼굴에는 자신이 못 할 짓이라도 한 것처럼 죄책감이 어린다.

 “얘는 내 2,000번째 자식이라고. 괴롭히지 말고 빨리 놔줘.”

 그래도 그는 꿋꿋이 우리에게 놓아주라고 엄하게 말한다. 그의 자식이라는 말은 즉, 니스가 그의 손에 만들어졌으며, 그의 2,000번째 발명품이라는 뜻이었다. 연구자에게 자신이 만든 발명품은 정말 손으로 낳은 자식과 다름없었기에 나와 티아는 더는 떼쓰지 않고 바로 손을 놓았다. 그러자 니스는 기다리고 있었던 듯 우리를 피해서 삼촌의 뒤로 날아가 숨어버렸다. 좀 더 만져보고 싶었는데, 쩝.

 “정말 삼촌이 만든 거 맞아요?”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하자 삼촌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언짢은 감정을 들어냈다.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삼촌한테서 저런 깜찍한 발명품이 탄생하다니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 봐! 여기 내 표식이 있지?”

 삼촌은 바로 반박하며 뒤에 숨어있던 니스를 손으로 잡아 어느 한 곳을 콕 집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V-L3' 이라는 그만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삼촌의 이니셜은 아닌데. 궁금했지만 삼촌은 몇 번을 물어봐도 절대 뜻만은 알려주지 않았다. 나중에 티아한테 슬쩍 물어보라고 할까? 가능성이 있을지도. 눈을 빛내며 티아와 삼촌을 번갈아 보자 삼촌이 인상을 팍 찡그리고는 엄포를 놓았다.

 “이제 됐지? 빨리 오렌지나 골라. 늦장부리면 국물도 없어.”

 단호히 경고한 삼촌이 손을 놓자 니스는 다시 멀리 날아가 버렸다. 꼭 우리를 피해 달아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 나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는, 다시금 재촉하는 해운 삼촌 때문에 힘없이 오렌지를 찾으러 나무들 사이로 다시 들어갔다. 한번 본 걸로는 만족을 하지 못했나보다. 나는 오렌지를 고르면서도 니스의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걸 멈추지 못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니스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은 니스들이 오렌지 나무 사이들을 돌아다니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그들 하나하나가 이름만 같은 다른 존재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결국 구경 한 번, 오렌지 한번 살펴보는 걸 반복하다가 다시 구경을 하기위해 니스를 살피던 나는 뭔가를 발견하고는 니스가 같은 행동을 하길 기다렸다. 니스들이 그들의 몸체처럼 하얀 집게를 꺼내 뭔가를 집어 몸 안에 넣고 있었다. 뭐지. 자세히 관찰하니 일부는 싱싱한 오렌지를, 일부는 애벌레나 지렁이 같은 벌레들을 안에 넣었다. 마치 샘플을 재취해 보관하려는 것처럼.

 “삼촌.”

 “또 왜! 입을 움직이지 말고 손을 움직이라고!”

 아, 당신이란 사람, 히스테릭한 사람. 삼촌한테 마음에 맞는 여자 혹은 남자라도 찾아 줘야하는 걸까. 나날이 늘어가는 그의 짜증에 진지하게 또 다시 그런 고민이 생기려고 했다. 하지만 연구에 미친 삼촌은 다른 사람한테는 새끼손톱만큼도 관심이 없어서 그냥 재빨리 묻고 덜 혼나기로 마음을 바꾼다.

 “지금 니스가 흙에서 뭔가 집어 먹었는데, 괜찮은 거예요? 기계가 생물을 먹는다는 걸 들어본 적도 없지만 그게……, 벌레를 먹었는데?”

 “저기서 다른 니스는 나비도 먹었어요!”

 나와 티아의 눈이 잠시 마주치고 동시에 답을 요청하는 표정으로 삼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의 행동을 보던 삼촌은 골이 아픈지 엄지로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있었다.

 “식물이 크는데 필요해서 수집한 거지 절대 먹은 거 아니거든! 너희들은 생각도 어쩜 그리 똑같아?”

 “누가 남매 아니랄까봐.”라고 삼촌이 오늘로 두 번째로 뒷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장을 놓치지 않고 들었지만, 이번엔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왜요?”

 “저희가 왜요?”

 그리고 우연히도 서로 짠 것처럼 같은 말을 동시에 하고는 놀란 듯 서로를 쳐다보다가 삼촌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 이런 거 티아한테 가르쳐주면 안 되는데. 흘끗 삼촌을 살핀 나는 삼촌의 붉어진 얼굴을 확인하고는 여기서 좀만 더 하면 삼촌이 폭발하기 직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바로 그의 대답을 듣는 걸 포기하고 더 구경하라며 티아의 등을 재빨리 떠밀었다. 그리고 나도 빠르게 오렌지를 고르기 시작했다. 뒤에서 “약삭빠른 녀석”이라며 투덜거리는 삼촌의 목소리에는 신경을 끄고서 말이다.

 누구의 눈총 때문에 옆이 따끔거렸다. 나는 누가 보기에도 연기 같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고심해서 오렌지들을 살피는 척 했다. 오렌지가 참 맛있게 생겼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이곳에 관리자가 누군지 헷갈릴 정도로 나는 오렌지를 고르는 일에 열의를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5분이 더 지나고서야 마침내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오렌지 두 개를 양 손에 들고서 삼촌에게 가지고 갔다.

 “이렇게 두 개만 가져갈게요. 고맙습니다.”

 미리 인사를 건네자 삼촌이 삐딱하게 대꾸했다.

 “아직 가져가도 된다고 말 안했다.”

 잔뜩 골이 난 삼촌은 팔짱을 끼고서 불만이 붙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안 줄 것처럼 구는 삼촌의 이마에 생긴 골 모양이 당사자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처럼 깊고 고집스럽게 패여 있었다.

 “우리를 여기 들였을 때부터 허락한 거나 다름없잖아요. 관리자 이외에는 들어오면 안 되는 곳 아니에요?”

 주려고 불렀으면서, 괜히 저런다. 걱정은 안하지만 나는 겉으로는 잔뜩 침울한 얼굴로 삼촌에게 투덜거렸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한숨을 아주 깊게 내쉬었다. 사람 무안하게끔.

 “어째 넌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냐. 말도 한 마디도 안지고 말이야.”

 삼촌에 푸념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요. 삼촌이랑 저희 오빠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에요? 한 번도 삼촌이 보급소에 있다는 거 오빠한테 못 들었거든요.”

 마지막 문장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못들을 정도로 작았다. 아니 못들은 척 하고 싶은 걸지도.

 “이 녀석은 지 얘기를 잘 안하니까, 네가 고생이 많겠네. 음······. 우리가 만난 건 네 아빠 ‘빅터’ 때문이었지. 너도 있었는데, 그때가 4살 때라 기억이 잘 안날거야.”

 이마를 긁적이며 삼촌이 대답했다.

 “저도 삼촌을 만난 적이 있어요?”

 티아가 놀라 되묻고, 삼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대답과 동시에 어딘가 아련한 표정으로 “그때부터가 악연이었어.”하고 읊조리는 삼촌과 눈이 마주쳤다. 장난스러운 표정이 사라진 삼촌이 눈으로 묻고 있었다. 이야기를 해도 되겠냐고. 어쩌면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삼촌과 티아를 서로 만나게 해줄 생각을 했을 때,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쓰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와 삼촌을 만나게 하는 건 나에겐 보급소에 티아를 데리고 오는 것보다도 어려운 결정이었다. 평생토록 감출 수 있었다면 언제까지고 미뤄두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없겠지. 비밀이 비밀로 있는 건 아주 어렵다는 걸 깨달은 건 어릴 때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실수를 할 때면 혼나는 게 무섭고 미움 받을 게 두려워 안절부절 못하는 꼬맹이였다. 그리고 최악의 선택으로 그 실수들을 덮으려 급급했다. 하지만 어린 내가 한 노력은 굉장히 어설퍼서 아빠에게 들킬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아빠는 혼내는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 진실이란 없단다. 언젠가는 감추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고, 그 땐 더 큰 파장을 부르게 되니 신중히 생각해야만 해. 알겠니?'

 그때 난 혼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며 질문했었다.

 ‘왜요? 몰라서 좋은 결과도 있잖아요.’

 내 질문에 아빠는 곤란한 듯 웃었다.

 ‘그 좋다는 기준이 누구냐에 달렸지.’

 어느 때와는 다르게 아빠는 부드러움 속에 단호함이 깃든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 아빠는 조금 혼란스럽고 생소했지만 그만큼 더 뇌리에 남았다. 오늘따라 생각나는 아빠와의 추억에 괜스레 마음 한 구석이 시리다. 티아가 너무 놀라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때때로 아빠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하곤 한다. 정말 티아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가.

 

 

 ***

 아빠를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지만 그 감정은 안타까움에 더 가까웠다. 아빠는 순수하게 연구를 좋아했고,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보다도 장난스럽고, 티아보다도 용기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한때는 아빠가 연구하는 모습을 보고 꿈을 연구자로 할 만큼 아빠가 연구를 하는 모습은 멋있고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그 뒤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난 그 일이 정말 싫어졌다. 왜냐하면 아빠가 연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플램에서 직접 스카우트하기 위해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을 테니까.

 아직도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나는 10살이었고 아빠는 플램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기쁜 마음하나로 우리들의 곁을 떠났다. 그래도 초반에는 연락도 자주하고, 비록 1년에 3-4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만날 수도 있었다. 플램은 꽤나 폐쇄적이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우리는 아빠의 소식을 간간히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13살이 되던 해이자 아빠가 떠난 지 약 1년 반 만에 그것마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날은 아빠와 함께 하지 못한 3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내 생일 날. 나는 우울해하기보다는 티아와 함께 파티를 열어 즐겼고, 밤에는 졸려하는 티아를 위해 책을 읽어주었다. 티아가 잠드는 걸 확인하고 거실로 나오자 거짓말처럼 아빠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둠속에 숨어있는 아빠를 보고 너무 놀라 소리 지를 뻔했었다. 자고 있는 티아 때문에 비명을 속으로 삼키면서 아빠한테 가까이 다가간 나는 다른 의미로 또 당황했다. 아빠는 어딘가 변해 있었다. 얼굴은 초췌했고 어딘지 모르게 주변을 의식하는 듯 작은 소리에도 민감했으며,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조금 더 어른이었다면 아빠를 말릴 수 있었을까. 아빠가 그리워질 때면 그런 후회가 들었다.

 하루라고도 보기 힘든 짧고 짧은 시간동안만 아빠는 집에 머무르고서 다시 플램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연락은 오지 않았고 연락할 방도도 없었다. 몇 번이고 삼촌을 통해서 알아보려고 했지만, 그가 가지고 온 답변은 그나마 존재하던 내 세상을 나락으로 밀어 넣었을 만큼 끔찍한 것이었다. 그러니, 티아에게도 분명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어쩌면, 아니 나보다도 더 힘들어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었다.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희망이라면 티아는 아빠와의 기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날 아빠와 만난 사람도 나뿐이었고. 여하튼 티아는 어렸으니까.

 조용히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 어깨를 무심한 척 토닥이는 손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삼촌이다.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닌 티아에게 향해있었다. 이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티아의 시선은 입을 떼는 삼촌에게 가 있었다. 다행이도 내 침울한 얼굴을 티아는 보지 못한 것 같다.

 “많이 크기는 했네. 그때는 내 허리께도 안 왔는데. 그러고 보니, 만날 때마다 크리스 옷자락만 꼭 붙들고 떨어질 생각을 안했었지.”

 손으로 허리 부근을 가리키던 삼촌의 말투는 섭섭함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음, 쑥스럽게도 그건 사실이다. 티아는 나를 더 좋아했다.

 “전 그런 어린애 같은 짓 안했어요.”

 기억에는 없었지만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 티아는 일단 우겼다.

 “4살이면 애지. 뭐, 그건 됐고. 네가 하도 크리스한테만 붙어있으니까, 그때마다 질투심에 빅터가 입을 댓 발은 내밀었었지.”

 그 상황이 떠올라 삼촌은 재미있다는 듯 낄낄댔다. 창피하지만 그것도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가끔 아빠가 나보다도 더 어린애처럼 행동 할 때도 있었다.

 “네? 진짜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티아가 저 깊이 잠들어 있는 기억을 꺼내보려 이마를 찌푸려보지만 실패하고는 다시 삼촌의 말에 집중했다.

 “어, 진짜. 못 믿겠지만, 한번은 삐져서 운적도 있어. 근데 네가 안아주니까 금방 풀리더라니까.”

 “풋.”

 티아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웃음을 막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 보니 나도 그 날의 일들이 자연스럽게 수면 아래에서 떠올라 웃음이 터진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자면, 일단 티아가 왜 그렇게 나를 따랐는지부터 시작해야한다.

 나와 티아의 못난 아빠란 사람은 뼛속까지 연구자였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혼자서 잘 걷고 말도 잘 할 수 있게 되자 연구에 집중하느라 나를 방치할 정도라서 그때쯤에는 혼자 있는 일이 많았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사실 흐릿하다. 가장 처음 기억이라고 해봐야 나 혼자 거실에서 놀던 기억밖에는······. 그리고 세월이 흐른 지금은 엄마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거라고는 몇 년도에 찍었는지도 모를 낡은 사진 한 장뿐이었다. 사진 속 엄마는 나와 더 비슷했다. 아니, 내가 엄마를 닮은 거다. 티아가 아빠를 닮았다면, 나는 엄마를 닮았다. 사진 속의 엄마는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어깨를 조금 덮었고, 아름다운 해를 담은 금발에 저 푸른 하늘보다도 맑고 깨끗한 눈을 가진 분이었다.

 그 외에는 기억나는 건 티아가 태어날 때······, 인 것 같다. 언젠가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엄마의 얼굴은 흐릿하지만 사진보다 더 머리가 길었고, 아이를 출산한지 하루밖에 안되어서 많이 마르셨던 것 같다,고 기억한다. 사실 천국에 계신 엄마한테는 죄송하지만 당시 내 기억을 가득 채우는 환한 기억은 엄마에게서 티아를 받아 안았을 때다. 쭈글쭈글하고 붉은 기가 남아있던 피부의 작은 아이. 그 아이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 그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악몽을 꾸게 되었다. 첫 악몽 후 티아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어디 나갔다 온다던 아빠는 티아만을 데리고 돌아왔고 나는 안도 그리고 기쁨과 동시에 슬프게도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야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점점 그 사실을 깨달기 시작했을 때는 슬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다시금 연구에 몰두한 아빠를 대신해서 티아를 내가 돌보아야 했으니까. 참, 못난 아빠였다. 미친 사람처럼 연구에만 몰두했고, 그건 아마 아빠 나름대로 우리들을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티아는 쑥쑥 자랐다. 손 안에 꼭 들어오던 손이 해를 지날수록 커져갔고 제 몸 조차 가두지 못하던 아이가 어느 날은 뒤집기를 성공했다. 또 어느 날은 나에게로 뒤뚱뒤뚱 걸어와 품에 안겼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육아의 달인이 되었고, 티아는 오빠 바라기가 되어 있었다. 필연적이랄까. 자업자득이랄까. 대신에 티아에게 아빠란 존재는 거의 없는 사람이나 다름이 없어서 웬만해서는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고, 아빠가 삐져있을 때 아니면 우울해 할 때에만 위로해주기위해 안아주는 격이었다. 그리고 티아가 4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해운 삼촌이 우리 집에 왔다. 그 날은 내가 생각해도 꽤 잘 기억하고 있는데, 집에 돌아온 아빠는 활짝 웃으며 우리를 보면서 약간 몸을 틀어 삼촌을 소개시켜주었다.

 ‘크리스, 티아. 이쪽은 아빠 조수인 '이 해운'이라고 한단다. 해운, 여긴 내 아이들이야. 완전 귀엽고 사랑스럽지? 막 뽀뽀하고 싶을 만큼? 그대로 안 돼. 그건 나만 할 수 있거든!’

 촐랑대며 아빠가 말했다.

 ‘안녕. 아저씨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삼촌은 아빠를 무시하며 우리에게 인사했다.

 ‘하하. 농담을 참 잘하는 친구야.’

 아빠는 바보처럼 웃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낯가림이 있었던 티아는 귀엽게도 내 뒤에 몸을 숨기고, 얼굴만 빠끔히 내놓고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삼촌을 나는 신기한 듯 보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아빠의 조수라니······. 솔직히 아빠보다 더 연구에 미친 사람인가. 잠깐 오해했었다. 그리고 그때의 삼촌은 지금과 같은 검은 머리가 아니라 카키색과 비슷한 녹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삼촌과 우리와의 관계는 티아와는 좀 덜 어색한 정도였고, 나와는 처음에만 어색했을 뿐 지금과 똑같이 한 사람은 놀리고 한 사람은 짜증을 내는 그런 관계였다. 그리고 삼촌은 플램에 가기 전까지 우리 집에 있었고, 그 것은 겨우 몇 개월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삼촌이 말한 그 날은 그가 오고 나서 세달 정도 지났을 때 일어난 일이다.

 가끔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그 이유는 티아가 지금보다 어리광을 실컷 부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빠는 본인이 하루 종일 연구를 하더라도 삼촌에게는 반드시 쉬는 시간을 주었는데, 무슨 변덕인지 그 날은 삼촌과 같이 작업실에서 나왔다. 마침 우리는 초콜릿과 견과류가 들어간 갓 만든 따끈한 쿠키를 먹으려 하고 있었다.

 ‘애들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빠가 우리를 처량하게 불렀다.

 ‘웬일이세요, 박사님. 오늘도 안 나오겠다고 고집 부리시더니.’

 삼촌이 옆에서 아빠에게 잔소리했다.

 ‘다들 쿠키 좀 드세요. 특히 이거! 우리 티아가 만든 거예요! 아직 4살인데도 잘 만들지 않았어요?’

 부끄럽지만 나는 지금보다도 더 티아를 천재라고 생각하는 ‘팔불출’이란 타이틀을 가진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접시에 담아진 쿠키 중에서 못난 모양의, 크기는 작은 대신 장식용 과자들이 듬뿍 뿌려져 있는 쿠키를 잘 보이게끔 손으로 들어 보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한껏 얼굴에 드러낸 채 그들에게 자랑했다.

 ‘오! 모양이 꼭 사람 같구나.’

 핏기 없던 아빠 얼굴이 환해지며 티아를 껴안아 흔들었지만, 정작 티아는 불편한지 볼을 부풀렸다.

 ‘새삼스레 뭘 당연한 걸 물어요? 당연히 크리스를 만든 걸 텐데. 티아는 크리스밖에 모르잖아요.’

 확신을 가지고 삼촌이 불쌍하다는 눈으로 아빠를 쳐다봤다. 그새 친해진 티아는 삼촌에게 낯을 가리지 않았고, 수줍게 미소 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때부터 아빠의 표정이 좋지 않았지. 다시 그때를 생각해봐도 코미디 한 편이나 다름없었다.

 아빠는 몇 번이고 티아에게 전부 나를 보고 만들었는지 확인했고 그때마다 티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뿌듯한 표정으로. 결국 아빠는 좌절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우는 시늉이 아닌 정말로 눈물을 빼며 울기 시작했다. 동시에 우리는 황당함과 난처함을 표했다. 아빠는 금방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결국 그 상황이 종료된 것은 티아가 포옹과 함께 아빠 볼에 뽀뽀를 해주고 나서였다.

 “그대로 두면 흘린 눈물이 큐브 안을 가득 채웠을 걸.”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코웃음 친 삼촌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아빠가요? 상상이 안가요.”

 티아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고 있었다. 티아의 기억 속에서 아빠는 흐릿한 이미지겠지만 짧다면 짧은 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사랑을 받았음을 알아가는 중일 것이다. 말해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티아는 아빠를 냉정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로 오히려 외로움을 잘 타고 귀여운 면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삼촌.”

 웃음을 멈춘 티아가 조심스럽게 삼촌을 불렀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티아를 보았고 티아는 내 시선을 피했다. 설마.

 “왜?”

 여전히 과거에 빠져있던 삼촌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웃으며 물었다.

 “삼촌은 우리 아빠랑 같은 플램에서 일하시죠?”

 “뭐, 불행이도 그렇지.”

 “그럼 아시겠네요? 아빠는 왜……. 우리를 만나러 안 오시는 거예요? 꽤 오랫동안 우리들 곁을 떠나있었는데 우리가 보고 싶지 않대요?”

 아빠와 같이 콘에서 살았던 과거와 현실을 비교하며 침울한 표정으로 티아가 우물거렸다. 그리고 그 속에는 원망과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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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전조(3) 2019 / 8 / 30 226 0 9609   
16 16화 전조(2) 2019 / 8 / 27 218 0 9616   
15 15화 전조(1) 2019 / 8 / 27 215 0 10484   
14 14화 깜짝 만남 2019 / 8 / 27 231 0 9443   
13 13화 다시 만난 모디스 2019 / 8 / 27 218 0 12518   
12 12화 르 레브 2019 / 8 / 27 222 0 9832   
11 11화 가이드 모디스 2019 / 8 / 12 211 0 10817   
10 10화 Aquarium 2019 / 8 / 12 234 0 11394   
9 9화 우연한 만남(2) 2019 / 8 / 5 215 0 9010   
8 8화 우연한 만남(1) 2019 / 8 / 5 204 0 6197   
7 7화 무인 정거장(2) 2019 / 8 / 1 223 0 7461   
6 6화 무인 정거장(1) 2019 / 7 / 29 211 0 6226   
5 5화 Winter 보급소(2) 2019 / 7 / 26 232 0 11203   
4 4화 Winter 보급소(1) 2019 / 7 / 26 201 0 8742   
3 3화 하루의 시작 2019 / 7 / 22 255 0 11925   
2 2화 Konpam 2019 / 7 / 19 225 0 9719   
1 1화 지독한 악몽 2019 / 7 / 15 365 0 12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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