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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잃어버린 자들
작가 : 라하비
작품등록일 : 2019.7.15


'록 바이러스(Lock Virus)'라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1부 시계 도시 中>

“오빠.”

잠시 침묵한 티아가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응?”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티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혹여나 안가겠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불안했다.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드러난 것일까. 티아가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 내일 갈 거야.”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부탁? 뭔데?”

티아가 싱긋 웃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안심이 들기는커녕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빼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행하기도 전에 티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게 먼저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거야. 내일 추첨 용지 넣을 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안 돼.”

나는 다급하게 티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싫어. 공포와 경악으로 몸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물며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악바리처럼 악쓰고 티아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나는 티아의 손 안에 갇혀있던 내 손을 빼고 어두운 눈빛으로 티아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안 돼”

널 잃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티아를 노려보았다.

“알아.”

무엇을 아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티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록 바이러스에 걸린 걸 토큰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나 알아, 오빠.”

티아의 눈에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
.
<중략>
.
.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 혹시라도”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른 티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가야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나로 살고 나로 죽고 싶어.”


 
14화 깜짝 만남
작성일 : 19-08-27 12:19     조회 : 228     추천 : 0     분량 : 9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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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잖아, 티아.”

 히죽히죽 웃으며 티아를 부르려는데 소란이 일어났다. 전송기 쪽인가?

 “차례를 지켜주세요.”

 자세히 보니 로봇들 사이로 전송자도 같이 섞여 있었다. 사람이 많은 날이라 긴급히 배치된 모양이다. 참고로 전송자는 사람이다.

 “지나라고 했나? 자꾸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말고! 나 오늘 바쁘니까 내꺼 먼저 전송해줘!”

 순서대로 전송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줄이 있음에도 남자는 뻔뻔스럽게 주장했다. 그는 뻣뻣해 보이는 20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새것처럼 보였다. 지나라고 불린 전송자는 잠시 남성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어 거부를 표했다.

 “죄송하지만, 다른 분들처럼 줄을 서주시겠어요? 전송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곧 차례가 올 거예요.”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말에도 남자는 콧방귀만 끼며 무작정 해달라고 떼를 썼다. 이런 경우는 최근에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만 들어봤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궁금함에 시선이 갔다.

 “잘 됐네. 어차피 빨리 끝나는 거면 그냥 지금 해줘. 응?”

 막무가내로 남자가 말했고, 순순히 기다릴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남자는 음흉하게 웃으며 지나에게 치근대기까지 했다. 저러면 안 될 텐데. 슬슬 걱정이 되려는 찰나에 날카롭고 긴 경고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침을 삼켰다. 경고 동시에 남자가 있던 곳을 중심으로 반경 100m 주위로 벽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투명해서 보이지 않던 벽은 남자의 머리 즈음에 다가왔을 때 불투명해졌고, 이상한 막이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자가 비명과 욕이 섞인 말을 내뱉으며 달려들었을 때에는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맙소사.

 비밀스럽고 갑작스럽게 생긴 막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지나는 남자에게 일어난 일이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이런 경우는 또 오랜만이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그리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해 꽃처럼 화사한 미소와 인사를 남기고는 교대하러온 다른 전송자에게 자리를 넘긴 후 경쾌한 구두 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어느새 벽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플램은 무서운 곳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나와 마찬가지로 멍한 표정에 티아가 내게 질문했다. 나는 사라져가던 여성을 보다가 티아의 질문에 조금 멍하게 입을 열었다.

 “별일 아닐 거야. 최대한 피해 없이 해결하려고 그런 거겠지. 아마 지금쯤 설교를 듣고 있을 걸?”

 과연 어떤 식의 설교일지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기에는 티아가 무서워할 것 같아서 말할 수 없었다.

 “조금 무서웠어.”

 옆에 있던 내 손을 잡으며 티아가 중얼거렸다. 역시나. 나는 티아에게 더욱 말해줄 수 없었다.

 “나도. 오늘 처음 겪는 거야.”

 왠지 심장이 따끔따끔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니 영 거짓말은 아니었다.

 “오빠도? 그렇구나.”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티아는 눈에 띄게 안도하고 있었다. 나는 티아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해.

 “티아, 너한테 또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어.”

 “누군데?”

 “직접 보여줄게.”

 그리고서 나는 당근에게 티아를 데리고 다가갔다.

 <다른 층으로 가시겠습니까?>

 나와 티아의 손에 물건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당근은 쓸데없는 말 대신에 필요한 질문을 했다.

 “과일 시장. 아니, 오렌지 농장으로.”

 정신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깜빡하고 다른 곳을 이야기할 뻔 했다.

 “여기에 오렌지 농장도 있어?”

 “응. 보급소 내부에서는 각각의 큐브 안에서 최적의 온도와 가까스로 얻은 토양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일도 하고 있거든. 아마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농장이 있을 거야.”

 “우리도 갈 수 있는 거야?”

 “으음, 글쎄.”

 나는 대답을 일부러 얼버무렸다. 사실대로 말해주면 깜짝 선물이라는 목적이 희미해질 테니까. 게다가 농작물이나 필수 용품을 생산하는 곳은 관계자만이 출입이 가능하므로 일반인은 관람조차도 불가한 곳이었다. 그래서 좀 전에 아는 사람에게 미리 연락을 취해둔 것이다. 비록 상대방은 나 때문이 아닌 티아 때문에 허락을 해준 거겠지만. 음, 그건 내 탓이려나. 그동안 해온 행동들이 있어 나는 입맛을 쩝 다셨다.

 <요청하신 '오렌지 농장'은 관계자만이 출입이 가능합니다. 허가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당근은 뚱한 표정으로 당연히도 내게 허가증을 요구했다. 척보아도 나와 티아는 일반인이었으니까.

 농장이란 농부, 토큰 관계자, 플램 관계자, 영양사 등과 관련된 허가증을 제출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 중 하나였다. 그만큼 중요한 곳이란 의미다. 비록 많은 가짓수는 아니더라도 딸기와 블루베리, 사과 같은 추후 잼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는, 즉 2차적으로 다르게 먹을 수 있는 과일들의 생산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믿는 구석이 있는 나는 여유롭고 당당하게 당근에게 더 가까이 갔다. 이런 일을 대비해 마련해 놓은 비장에 수가 있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당근에게 씩 웃어 보인 나는 허가증을 제출하는 대신에 통신을 요청했다. 바로 오렌지 농장을 관리하는 최고 관리자인 '이 해운'과의 통화를.

 그렇다. ‘그’가 바로 내가 티아 몰래 전화를 건 상대였다. 그리고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당근에게 당당히 요청할 수 있었다. 개인 폰은 구매도 힘들고 느린 반면 보급소 내에서는 요청하기만 하면 10초 내로 거리에 상관없이 연결이 가능했다. 그리고 오늘처럼 상대방이 한가할 때 건다면 금상첨화다. 곧이어 당근의 얼굴 부분에 네모난 화면이 생성되었다. 아까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거 같은데. 혹시 화났나? 연결되자마자 욕하는 건 아니겠지. 삼촌한테 미리 연락을 한지 시간이 꽤 흘렀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진짜로 날 싫어하는 건 아닌데, 좀 툴툴대는 게 심하고 말도 험해 약간 걱정되었다. 티아도 왔다고 말해줄 걸. 후회가 되었다.

 물론, 삼촌의 성격이 더럽기는 하지만 우릴 좋아하는 건 틀림없었다. 그냥 귀여워 어쩔 줄 모르면서도 그걸 표현하는 게 서툴 뿐이었다. 걱정이라면 티아는 삼촌의 얼굴을 봐도 기억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삼촌이 말만 험악하다는 걸 알기에는 서로 알아갈 시간이 없었으니까. 제발 자제해줘요, 삼촌. 나는 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그러다 상처받는 건 삼촌일 테니까. 삼촌도 좀, 티아를 애정 하는 마음이 남달라서. 티아가 3살 때부터 삼촌은 티아를 만나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 스치듯 삼촌의 이름을 꺼내본 적이 있었지만 티아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 티아는 ‘이 해운’ 이라는 사람과 ‘나’에 대한 관계가 무척 궁금할 것이다. 실제로 삼촌을 만나게 되면 아주 눈이 달만해질지도 몰라. 너무 흥분해서 기절하는 거 아닐까. 이런 저런 티아의 반응을 다양하게 상상해본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두 사람의 사이는 절대 나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집에 돌아가게 되면 끝없는 질문과 대답이라는 뫼비우스의 띠 속에 갇히게 되겠지. 왜냐고? 지금 내 눈에는 티아가 궁금증을 아주 간신히, 꾹! 참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이 해운'님과 연결되었습니다. 5초 후 통화 하실 수 있습니다. 5.4.3.2.1······. 또 너냐?>

 연결된 화면 속에서 해운은 대놓고 짜증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욕이 튀어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야.

 “오랜만이에요, 형!”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갑게 해운 삼촌을 삼촌이 아닌 형이라고 불렀다. 매번 당하는 건데도 삼촌은 또 당할 것이다. 먼저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는 내 나름의 시도였다.

 <누가 형이야! 누가!>

 빽 소리를 지르는 삼촌 때문에 잠시 귀를 막았다.

 “아, 죄송해요. 형이라기엔 나이가 좀 있으셨네요. 삼촌, 잘 지내셨어요?”

 나는 해운의 태도에 장난스럽게 형이라고 부른 걸 바로 삼촌으로 정정했다. 그것도 더욱 예의를 차리면서. 그리고 그건 이 세상에 물이 귀한 것만큼이나 삼촌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티아한테 하는 건 양반처럼 보일 정도로 나는 삼촌 앞에서만큼은 장난꾸러기나 다름없었다. 혹은 심술꾸러기. 삼촌 앞에서 만큼은 매번 긴장하고 의심하고 경계하던 마음을 어느 정도 놓게 되니까. 어쩔 수 없었다. 마치 내 또래 아이들처럼 행동하게 되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삼촌과는 나이차는 좀 나지만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아빠가 없는 지금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라 더 그랬다.

 무려 삼촌과 만난 후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그도 먹었고, 올해로 아마 29세가 되었을 것이다. 삼촌과는 자주 싸우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연구를 방해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의 내가 티아에게 져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삼촌 역시 우리와의 관계에선 항상 지는 쪽이었다. 나는 그런 삼촌이 항상 편했고, 그를 의지했다. 덕분에 삼촌의 스트레스는 매번 간당간당한 상태였지만. 나와 삼촌의 관계는 늘 그런 편이니까. 아마도 삼촌도 반쯤은 포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삼촌도 매번 투덜대고 화를 내니까 내가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건 또 아니었다.

 <누가 삼촌이야! 누가!!>

 그의 외침은 야채 시장 내부까지 울릴 정도로 컸다.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티아의 양 귀를 두 손으로 막았다.

 “여전하시네요.”

 변함없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 속으로 한다는 게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소리가 나와 버렸다. 이런, 더 시끄러워지겠다.

 <너, 이 자식! 웃어? 확 전화 끊어 버릴까보다! 아니지! 허가 안내려준다!?>

 옆에 티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삼촌이 네게 협박했다.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최대한 매우 상처받은 목소리로 나는 티아의 이름을 언급하며 연기했다.

 “아, 정말요? 티아한테 오랜만에 오렌지를 먹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리고 삼촌도 소개시켜주려 했는데 아쉽네요.”

 동생인 티아조차 나를 걱정할 정도로 내 연기는 둘에게는 완벽하게 먹히고 있었다. 하지만 티아마저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아서 동생만 볼 수 있게 괜찮다는 뜻으로 한쪽 눈을 찡긋해 신호를 보내는 걸 잊지 않았다. 반면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삼촌은 잠시 침묵을 택했다. 보나마나였다. 잔소리 많고 툴툴대고 짜증을 많이 내기는 해도 그는 마음이 여린 편이었으니까. 분명 고민하고 자책하고 있을게 표정에는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삼촌이 충분히 고민하게끔 만들고서 나는 다시 말문을 열어 어색한 침묵을 깨뜨렸다. 너무 괴롭히면 추후 아빠를 만났을 때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니까. 것도 아니면 모든 사실을 안 티아한테 듣던가.

 “사실 오늘은 티아도 함께 왔어요, 삼촌. 정말 안 될까요?”

 일부러 티아를 내 앞에 내세우며 삼촌에게 호소했다.

 <함께 왔다고? 왜?>

 흠칫. 왜 왔냐는 삼촌의 물음에 오해를 한 티아의 어깨가 움츠러드는 게, 티아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타고 느껴졌다. 하아. 이 사람은 진짜 말투부터 고쳐야 돼. 고개를 흔든 나는 티아가 더 침울해지지 않도록 재빨리 삼촌이 한 말을 자체 해석해서 거의 설명조로 말했다.

 “걱정하신 만큼 약하지는 않아요. 구경도 시켜주고 싶고, 무엇보다도 삼촌도 보고 싶어 했잖아요.”

 <뭐? 뭐, 뭐! 내가 언제?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오기나 해!>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들 하죠.”

 <시끄러!>

 아무래도 내가 삼촌의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곧이어 웅- 하는 기계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어느새 우리가 있던 오른편에 이동식 큐브가 나타났다. 삼촌이 직접 보내준 모양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당근을 바라보자, 이미 통신은 끊겨 있었다. 삼촌이 말도 없이 또 먼저 끊어버린 것이다. 티아도 있으니 안 그럴까 했는데. 뭐, 얼굴이라도 빨개졌나? 보통에도 다급하게 끊는 편이긴 했지만.

 왠지 화면이 끊기기 전에 삼촌이 다급하게 얼굴을 가리는 걸 본 것도 같았다.

 “쑥스러워서 그래. 절대 널 싫어해서 그런 거 아니야.”

 혹시 아직도 오해하고 있나 싶어 삼촌을 대신해서 해명의 말을 꺼냈다.

 “응, 알고 있어. 좀 귀여우신 거 같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티아는 이미 해운의 성격을 대충이나마 파악을 끝낸 것처럼 말했다. 근데 귀엽다고?

 “아니 그건 아니야.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마, 절대!”

 뜨끔 없이 안 된다는 내 말에 티아가 영문을 몰라 눈을 깜박이다가 내 기세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한다. 나는 지금 오버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보자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아닌 듯해서 창피하지만 마음은 놓였다. 이미 티아는 눈썹 웨이브를 보여주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절대 말해줄 수는 없었다. 내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말한 건지 알면 아주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었으니까.

 “큼! 그 눈빛 부담스럽다. 어서 가자. 아마 지금쯤 똥줄 타면서 이제나 저제나 네가 오길 기다리고 있을 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삼촌을 들먹이며 말하자 티아가 순순히 불순한 눈빛을 지웠다. 티아도 삼촌을 보고 싶어 하는 게 느껴져 내가 다 기대가 되었다. 또 삼촌이 티아를 만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는 건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만큼은 이곳이 야채 시장이라는 것만큼이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 사람은 알고 보면 어린애도 좋아하고, 정도 많고, 무엇보다도 말은 안했지만 내가 만나러 갈 때마다 내 뒤를 살펴보는 게 버릇이 된 사람이니까. 단정 지을 수 있었다. 삼촌은 지금쯤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면서도 우리와 만나기를 굉장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애타고 있을 삼촌을 위해 나는 제법 빠른 걸음으로 티아를 데리고 이동식 큐브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갔다. 불투명한 상태에서 사람들의 입장을 거부하고 있던 이동식 큐브는 우리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한쪽 벽면이 사라지며 입구를 드러냈고, 나와 티아가 타자마자 다시 불투명해지며 모든 입구를 막았다.

 “사람들이 우릴 째려보는데?”

 내 뒤로 몸을 약간 가린 티아가 겁을 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를 보니 가족 단위로 보이는 5명의 인원이 우리가 탄 이동식 큐브를 사나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뭐, 저 사람들이 먼저 기다리긴 했지. 바보처럼.”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 대답해주면서 나는 겨울 솜옷 호를 탔을 때처럼 벽면 구석에 있는 패드를 조작해 소파를 꺼낸다.

 “신경 쓰지 마. 이 이동식 큐브는 삼촌이 우리를 위해 보내준 거니까. 아마 저 사람들도 알고 있는데 무시한 걸 거야. 어차피 자기들은 탈 수가 없는데도 기다린 걸 보면 말이야.”

 “삼촌이?”

 “내가 말했잖아. 지금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거라니까?”

 “왜?”

 “오랜만이니까.”

 그렇게만 이야기해주고 나서 나는 티아를 데리고 설치된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녹색의 인조 가죽 소파는 나쁘지 않았다.

 출발 전에 안전벨트를 맸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미리 오렌지 농장으로 경로가 지정되어 있었기에 따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구경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만큼 아무것도 없는 내부 구조 때문에 눈알을 굴리며 살피던 나는 이동식 큐브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걸 좀 전에 본 패드를 통해 기억해냈다. 얼마 안 걸리겠네. 자동으로 지정되도록 설정되어 있는 명칭이 정해지지 않은 이유는 고장으로 인한 걸 수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깝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마음이 편해진 나는 집에서처럼 편하게 소파에 등을 기대고 건너편 큐브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하지만 작은 브라운관에서 무성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 금세 실증이 나버렸다. 티아는 그것조차도 흥미로워했지만. 할 게 없는 나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동식 큐브가 가는 방향을 넋을 놓고 보다가 허리를 곧추세웠다. 널찍했던 통로에 좁아지는 구간이 보였다. 사람으로 치자면 마치 기도가 부은 것처럼 그 사이는 좁디좁았다. 양 옆에 비켜주어야 할 큐브들이 심술이라도 난 것 마냥 길을 막고 있었다.

 승인 구간이네. 곧 도착하겠는 걸.

 “위험한 거 아니야?”

 큐브들 사이에 박혀 있는 못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큐브 때문에 티아가 당황스럽게 나를 올려다봤다.

 “괜찮아. 보안 때문에 그런 거야. 우리가 승인을 받은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지. 우린 무사히 통과할 거야.”

 이미 삼촌에게 허락은 맡아 놓은 상태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만에 하나라도 오류가 나서 승인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침입자로 간주되어 그대로 부딪혀버리겠지만. 삼촌이 티아를 만나는데 허술하게 했을 리가 없었다.

 “그럼, 지금 확인하는 중 인거야?”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어서 티아는 계속 앞을 힐끔거리며 내게 질문했다.

 “곧 시작할 거야. 아마 몇 초 정도면 끝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처럼 말했다. 계속되는 내 태연한 태도에 티아가 표정을 풀었지만 점점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티아의 소리 없는 비명이 들려오는 듯해서 입술이 휘어졌다. 허리에 안전장치를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해도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과 같은 거랄까? 하지만 티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질리기 시작하는 건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티아가 겁을 먹을수록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뭔가 조치를 취하려고 할 때서야 큐브는 아슬아슬하게 코앞에서 멈췄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좁은 틈 사이로 끝이 둥근 선 하나가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좀 귀엽게 생겼다.”

 “얼씨구. 방금 전까지 기절할 것처럼 하얗게 질리더니 머리에 이상이라도 생긴 거 아니야?”

 “오빠는 좀 닥쳐. 깜찍하기만 한데 왜 그래?”

 “진짜…… 가끔은 널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티아를 어이없는 얼굴로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귀엽고 똑똑한 동생이지만 시력이랑 미적 감각은 별로…….

 “혹시 이것도 이름이 있어?”

 “음. 아마도 ‘메’ 일거야.”

 “어쩜! 이름도 양이 울 때 내는 소리랑 똑같네.”

 “그건 아닌데. 그냥 선 끝에 달린 둥근 스캐너가 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아무렴 어때. 잘 어울리면 됐지.”

 “그래.”

 내가 널 이겨서 뭐하겠냐. 투닥투닥하는 시간이 끝나자 뱀처럼 생긴 하얗고 매끈한 선에 열매처럼 달린 ‘메’가 나와 티아를 모두 담아낼 수 있을 정도로 커져있었다. 마치 눈을 뜨듯이 중앙에 선이 갈라지며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빨간 빛이 우리를 순식간에 덮쳤다. 나는 쏟아져 오는 밝고 강렬한 불빛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눈꺼풀 위로도 붉은 빛이 느껴졌다. 빛은 몇 초간 지속되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메는 눈을 감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상품이라도 된 것 같네."

 설마하니 눈동자가 바코드로 되어 있을 줄이야. 헛웃음을 짓는 내 눈 앞에 짧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승인 완료. 감사합니다.>

 메시지가 송출되고 나서야 메는 눈을 감춘 채, 처음 내려왔던 곳으로 스르륵 움직이며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길목을 문지기처럼 막고 있던 양쪽의 큐브가 움직이며 아주 좁은 틈이었던 공간을 충분히 지나갈 수 있도록 벌려준다.

 순조롭게 넓어진 공간을 통과하고 한 큐브를 더 지나고 나자 맑은 벨소리와 함께 불투명했던 벽면이 없어진다. 각자의 설렘과 기대를 안고서 우리는 정식 명칭인 '오렌지 농장'에 도착했다. 열린 문 앞에는 통화가 종료된 후부터 기다리고 있었을 게 분명한 삼촌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물어뜯으며 한 자리를 뱅뱅 돌고 있었다.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후각을 잃은 벌처럼 모양새가 좋아 보지는 않았다. 티아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첫 만남이나 다름없는데 좀. 속으로 혀를 차며 나는 티아의 귓가에 삼촌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것 봐, 내 말이 맞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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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다시 만난 모디스 2019 / 8 / 27 217 0 12518   
12 12화 르 레브 2019 / 8 / 27 220 0 9832   
11 11화 가이드 모디스 2019 / 8 / 12 211 0 10817   
10 10화 Aquarium 2019 / 8 / 12 231 0 11394   
9 9화 우연한 만남(2) 2019 / 8 / 5 214 0 9010   
8 8화 우연한 만남(1) 2019 / 8 / 5 203 0 6197   
7 7화 무인 정거장(2) 2019 / 8 / 1 223 0 7461   
6 6화 무인 정거장(1) 2019 / 7 / 29 211 0 6226   
5 5화 Winter 보급소(2) 2019 / 7 / 26 231 0 11203   
4 4화 Winter 보급소(1) 2019 / 7 / 26 200 0 8742   
3 3화 하루의 시작 2019 / 7 / 22 254 0 11925   
2 2화 Konpam 2019 / 7 / 19 223 0 9719   
1 1화 지독한 악몽 2019 / 7 / 15 363 0 12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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