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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잃어버린 자들
작가 : 라하비
작품등록일 : 2019.7.15


'록 바이러스(Lock Virus)'라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1부 시계 도시 中>

“오빠.”

잠시 침묵한 티아가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응?”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티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혹여나 안가겠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불안했다.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드러난 것일까. 티아가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 내일 갈 거야.”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부탁? 뭔데?”

티아가 싱긋 웃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안심이 들기는커녕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빼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행하기도 전에 티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게 먼저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거야. 내일 추첨 용지 넣을 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안 돼.”

나는 다급하게 티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싫어. 공포와 경악으로 몸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물며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악바리처럼 악쓰고 티아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나는 티아의 손 안에 갇혀있던 내 손을 빼고 어두운 눈빛으로 티아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안 돼”

널 잃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티아를 노려보았다.

“알아.”

무엇을 아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티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록 바이러스에 걸린 걸 토큰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나 알아, 오빠.”

티아의 눈에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
.
<중략>
.
.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 혹시라도”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른 티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가야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나로 살고 나로 죽고 싶어.”


 
12화 르 레브
작성일 : 19-08-27 12:18     조회 : 220     추천 : 0     분량 : 9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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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차렸을 땐 토할 것처럼 어지러웠다. 마치 거인이 내 몸을 잡고 인형놀이라도 한 기분이었다. 똑바로 서 있는 건지도 확실치 않았다. 가만히 서 있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몇 초? 몇 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서야 손끝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감각이 느껴졌다. 감은 눈 위로도 확연히 느껴지는 밝은 빛은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눈을 감은 상태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여러 가지 소리가 겹쳐서 그저 시끄럽게만 들리는 소리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자리에 주저앉아 좀 쉬었다가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오늘따라 유독 힘드네. 처음해본 이동이 아닌데도 부작용이 다른 때보다 심했다. 티아랑 윤은 만났을까? 두 사람은 괜찮나? 결국 나는 두 아이의 안부가 궁금해 눈을 떴다. 잠깐의 현기증 때문에 몸이 휘청했지만 심각한 건 아니었다. 만약 넘어졌다고 해도 다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주변은 전부 푹신한 소재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심호흡을 한 나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르 레브에서 가장 처음 본 광경은 내가 그렇게나 싫어하는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모습이었다. 눈을 감고 있을 걸 그랬네. 그래도 도착했구나. Winter 보급소에.

 

 “형, 여기에요!”

 

 “오빠, 이쪽이야!”

 

 멀지 않은 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자 윤과 티아가 척 보기에도 무척 들뜬 표정으로 나를 향해 두 팔을 마구 휘젓고 있었다. 푹신한 구간을 벗어나 나는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는 두 사람에게 걸어가면서 점점 기분이 저조해지고 있었다. 세 명 중 한 명꼴로 헐레벌떡 뛰어가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과 어깨를 부딪칠 때마다 나는 닿은 곳에 먼지를 신경질적으로 툭툭 털어냈다. 짜증으로 표정을 굳히고 있던 나는 윤과 티아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바로 굳은 얼굴을 언제 그랬냐는 듯 풀었다. 두 사람은 공간 이동의 경험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티아는 처음으로 공간 이동을 한 경험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내가 오자마자 다음에 또 타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들으며 간간히 질문에 대답해주거나 고개를 끄덕여 듣고 있다는 표시를 했고, 대부분의 집중을 주위를 둘러보는데 썼다.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들처럼 이곳에 처음 와본 사람들도 더러 있어 보였다. 르 레브는 엄연히 정의내리자면 카지노 센터라는 이름이 더 알맞은 곳이었고, 특이하게도 물 위에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건물은 정중앙에 세워져 있었는데, 가는 방법은 오로지 네 개의 다리로만 가능했다. 다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도착 및 이동 지점과 이어져 있었고, 다리와 다리 사이에는 호수가 흘렀었다. 신기한 건 모든 구조가 대칭이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건너가던 그 앞에 보이는 건물의 형태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시야를 다 채우고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건물은 높이가 약 12m는 되어 보이는 돌로 된 담이 세워져있었고 다리에 연결되어 있는 건물 입구는 말굽형 아치 형태로 꾸며져 있었다.

 

 사실상 우리는 자격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저 안으로 들어가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또 있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빛의 호수 혹은 등불 호수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이유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빛을 뿜어내는 등불들이 물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기 때문이다. 다리 위에 있던 티아와 윤도 짜기라도 한 듯 건물이 아닌 등불 호수에서 새어나오는 미미한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우 등불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호수 아래만 보는 두 사람을 향해 나는 웃으며 물었다.

 

 “르 레브에 왔으니, 그 이름만이라도 보러 가볼래?”

 

 “그래도 돼?”

 

 티아가 머뭇대며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그동안 티아를 너무 강제했던 걸까? 눈치를 보는 티아의 모습이 좀 충격이었다. 이제 와서 보지 말라고 할리가 없잖아. 울적해지는 마음을 뒤로 하고서 나는 티아에게 흔쾌히 허락했다.

 

 “응. 돼.”

 

 “웬일이야? 오빠 철들었어?”

 

 “까분다. 넌 또 왜 웃어?”

 

 “보기 좋아서요.”

 

 훈훈해지는 분위기가 껄끄러워진 나는 윤의 말에 대꾸 없이 먼저 건물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는 윤의 웃음소리에 전염이라도 된 것인지 티아의 맑은 웃음소리까지 겹쳐서 들려왔다. 낙엽이 바람에 이리저리 뒹구는 것만 봐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두 녀석들은 분명 분위기에 취한 상태였다. 그리고 어느새 전염이 된 나 역시 결국에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적이 많지 않아서 이제는 나도 즐기고 싶어졌다.

 

 입가에 미소를 단 채 천천히 르 레브의 다리는 걸으면서 나는 의외로 거리가 짧다고 생각했다. 하긴 너무 길게 해놓으면 그건 또 문제일 것이다. 끝과 끝을 한 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르 레브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먹고 있었으니까. 아니면 먹고 토해내는 중이거나.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다리 길이가 조금만 더 길었다면 귀찮아서, 또는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나오기 싫다는 생각을 가질게 분명했다. 왜 그렇게 여길 좋아하는 거지. 삶이 무료해서 그런가.

 

 “사람이 어마하게 많은 걸 보니 오늘이 날은 날이었네.”

 

 나는 르 레브가 가진 스케일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휘파람 불었다.여전히 왜 하필 오늘! 이란 불만은 들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기다 가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활기차 보이네요, 다들.”

 

 윤이 약간은 부럽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꼭 성에서 열리서 파티에 참석하는 거 같지 않아?”

 

 아무래도 공주가 나오는 영화는 자제해할 듯싶었다. 이런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뒀다가 어른 운운하면 틀어줘야 하는데. 실현하지 못할 계략을 생각하며 환상에 젖은 흐릿한 눈동자와 신부처럼 볼을 발그레하게 붉힌 티아를 보았다. 이럴 때일수록 현실적으로 말해주는 게 좋겠지. 나는 단박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의 뜻을 나타냈지만 윤이 나를 배신하고서는 티아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내 의미는 1도 전해지지 못한 채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신이 나서 아기 새처럼 조잘거리는 두 녀석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여긴 겉만 번지르르하다니까. 부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 되는 건 기본이었다. 그리고 부가적인 현상으로 나는 또 가슴이 답답해졌다. 괜히 데리고 와서 헛된 기대감만 심어준건 아닌지 모르겠네. 또한 나에 대한 불안감도 존재했다. 과연 오늘 보고 나서 다음에 또 가자고 할 때 내가 거절할 수 있을까? 솔직히 스스로에게 한 물음에도 확언하기가 어려웠다. 그 전 같았으면 얄짤없이 거절했을 테지만 나는 이미 티아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젠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빠, 콘 시동해서 영상으로 남겨도 돼? 돼지? 응? 응??”

 

 복잡한 내 마음도 모르고 티아가 내 소매를 잡고 흔들며 흔치않게 애교를 부리며 대답을 재촉했다.

 

 “그렇게 좋냐. 알았어, 그렇게 해.”

 

 영상이라도 남겨놓으면 덜 하겠지. 그런 마음으로 흔쾌히 티아의 요구를 들어줬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티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콘을 시동시키고는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달라고 말했다. 티아의 요청이 끝나자 목걸이 형태였던 콘의 모습은 또 변신을 시작했다. 줄과 푸른빛의 실선이 사라지고, 크기가 조금 커진. 평범한 네모형태의 가운데에는 둥근 렌즈가 설치되었다. 변형이 끝난 콘은 티아의 목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왔다. 지탱할 게 없어 바닥으로 떨어지던 콘은 꼭대기로 추정되는 곳에 회전 날개가 생기며 다시 허공에 둥둥 떠올랐고, 위치를 바꿔가며 우리들을 따라오기 시작했다. 꼬마 헬리콥터 같네.

 

 “저렇게 둬도 괜찮아요?”

 

 속으로 귀엽다고 생각하던 나는 윤의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 걱정할 필요 없어. 너도 해보면 알겠지만 시스템은 사용자와 일정거리 이상 떨어질 수 없게 설정되어 있으니까.”

 

 때문에 잃어버릴 걱정은 전혀 없었다. 집을 훔쳐갈 정도로 간 큰 녀석은 없을 뿐더러 티아와 나에게 심어진 칩과 콘(BChouse69)은 서로 연동되어 있었다. 게다가 훔친다고 해도 절대 연결된 사용자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구조기도 했다. 도난방지 시스템하나는 기가 막히긴 하지.

 

 “콘! 저것도 찍어줘!”

 

 잔뜩 신이 난 티아는 콘에게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영상으로 남기길 원했다. 그리고 지금 티아가 가리킨 곳은 내가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 눈꺼풀 위로 느꼈던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조명들이었다. 빛은 7가지 무지개 색깔로, 마치 누가 더 찬란하게 뽐내고 있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건물 아래쪽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치되어 스스로를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선명한 색색의 빛들은 일직선이 아닌 다양한 각도로 건물과 다리를 비추고 있어서 거대한 건물을 더 화려하고 돋보이게 만들었고, 이윽고 하늘에도 그 빛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입구를 기준으로 구경을 하던 우리들의 얼굴위에도 색색의 빛들이 지나갔다. 그건 유혹의 손짓이었다. 누구라도 르 레브에 가까워지고 싶을 것이다. 우리들 역시 나이 제한에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누가 알겠는가. 처음 와보는 광경에 신이 나서 가능한 모든 걸 찍어대던 티아와 어른스러운 척 하지만 실은 티아에게 몰래 영상을 보내달라고 이야기하던 윤 역시 얼마가지 않아 르 레브 안을 궁금해 하기 시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얘들이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일찍 깨닫지 못했다. 불빛에 시선을 빼앗긴 내 뇌는 뭔가를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서 결국은 내가 한 눈을 판 사이에 문제는 벌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벌어질 뻔했다. 내 눈치를 살피던 티아가 넘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막혀 있지도 않고, 경비병조차 없는 입구를 얕본 것이다. 티아는 고개만 빠끔히 넣어 살짝 안을 들여다보려 한 모양이었지만 허술해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건물 입구에는 보이지 않는 스캐너가 설치되어 있었다. 당연히 대놓고 침입하는 티아를 건물의 보안 시스템이 놓칠 리가 없었다. 시스템은 티아의 방문을 조건 불 충족으로 무단 침입으로 결론을 내렸다.

 

 1차 경고는 미성년자 출입금지 팻말이 뜬다. 그나마 1차 경고는 가벼운 축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2차 경고가 나오기 전에 뒷목에 느껴지는 싸한 기분에 고개를 돌린 내가 티아의 수상쩍은 행동을 발견했다.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뭐 하는 거야?!”

 

 식겁한 나는 후다닥 뛰어가서 티아를 안아 바로 뒷걸음질을 쳤다. 고요한 문을 보며 2차 경고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티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만약 조금만 늦었더라면, 필시 경보가 울렸을 것이다. 그리고 안전을 이유로 쫓겨나던가, 설교를 잔뜩 듣고 오늘 하루를 끝냈을 것이다. 그 정도면 다행이었다. 아니 오히려 오늘의 나에게는 벌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 일어난 일이 플램 귀에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정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정말, 정말로 간발에 차였으므로 팔뚝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있었다. 어느 정도 고동치는 맥박이 진정이 되고나자 화가 솟구쳤다. 내가 누누이 조심하라고 말했는데! 그걸 홀라당 잊어버리고 호기심이란 불에 가까이 다가가다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따끔하게 말해두지 않으면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지도 몰랐으니까. 끔찍했다. 내가 더 잘 살폈어야 했는데 안일했던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다시는! 그러지마.”

 

 끝에 가서는 소리를 죽였다. 규칙1번이 떠오른 탓이다. 화도 내 마음대로 못 내겠네. 휴. 일단 티아의 손을 잡고 문에서 멀리 끌고 나왔다. 이렇게 화가 난 건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티아의 위험한 호기심은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화를 참는 나를 보며 티아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죄 없는 윤마저 무거워진 분위기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윤에게는 미안했지만 지금은 티아를 잃을지도 몰랐던 상황에 대해 화가 난 상태였다. 아무리 호기심이 많아도 그렇지 위험한 줄도 모르고! 만약 최악에 상황이 닥쳤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나쁜 결과가 생겼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여기는 플램이 직접 관리하는 곳이다. 방심할 수 없었다.

 

 “내 말 듣고 있어? 티아. 오빠가 매번 말했잖아. 이런 식이면 다음번에는”

 

 작은 소리로 말하지만 누적된 화는 오히려 듣는 이로 하여금 더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게 만들었다. 말을 이어가던 나는 티아의 반응에 입술을 깨물며 뒷말을 삼켰다. 젠장. 화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문지르며 난 티아의 눈을 피했다.

 

 “미안해.”

 

 티아의 기죽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티아는 입고 있던 옷자락을 두 손으로 꼭 쥐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물기가 어려 있는 눈을 보자 착잡해졌다. 네가 뭐가 미안해. 나도 모르게 또 티아를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을 때잖아. 잘못은 나한테 있었다. 그리고 피해를 볼 뻔했던 윤에게는 미안하게도 더 이상 티아에게 더 쓴 소리를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물렁하다고 해도 난 그렇게 프로그램이 되어 있었다. 입술을 잘근 씹으며 나는 화를 삭였다. 한눈을 판 내 잘못이다. 땅이 꺼질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쉬자 티아의 어깨가 움찔 했다. 얘한테 지금 못할 짓을 하고 있잖아, 크리스. 이러려던 게 아닌데. 무섭고 속상해서 티아의 얼굴을 보지 못하겠다.

 

 그래도 계속 이러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여전히 내 마음은 불안과 공포로 술렁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티아에게 말을 건네기 전에 언성이 높아지지 않게 신경 써야했다. 흥분을 완전히 감추긴 역부족이겠지만 그건 티아를 잃을 뻔해서 그런 것뿐이다. 나는 티아의 어깨를 살짝 잡고 무릎을 낮춰 간신히 눈을 맞췄다. 티아의 눈에 나를 두려워하는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나는 안도했다.

 

 “운이 나빴으면 경비대가 출동할 수도 있는 일이었어. 티아, 내가 보호자 신분이라고 해도 그들은······. 아니다. 궁금해도 입구 가까이에는 가지마. 알았지?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티아는 이해하지 못할 간절함을 담아 나는 설명했다. 티아는 자신의 잘못을 알기에 울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눈에 맺힌 눈물이 마음을 아프게 찔러왔다.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해 일어난 일인 것만 같아 마음이 더 무거웠다. 제대로 설명을 해줬어야 하는 건데. 티아를 끌어안아 토닥이자 내 팔에 떨고 있는 티아의 손이 닿았다. “미안해, 오빠. 잘 못했어.” 사과와 함께 작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티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면서 당황해하고 있을 윤에게 입 모양으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건네었다. 다행히 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설픈 사과를 받아주었다.

 

 작은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다. 티아는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우리는 조금 전 상황이 없었던 일인 것 마냥 아무렇지 않게 구경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나한테 혼난 이후 티아는 건물 주변에는 되도록 가까이 가지 않으려 했다. 그건 윤도 마찬가지였다. 건물을 한 바퀴 돌 계획이었던 나는 아이들의 반응에 다리로 다시 올라갔다. 기분 전환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얌전히 내 뒤를 따라오는 티아와 윤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중간 정도까지 걸어왔음에도 티아뿐만 아니라 윤 역시 죄지은 사람마냥 호수를 보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바닥만 보고 있었다. 티아는 그렇다 치고 윤은 왜 그러지? 혹시 내 얼굴이 아직도 굳어있나? 괜스레 손으로 볼을 문지르며 근육을 푼 나는 밝은 목소리처럼 들리길 바라며 톤을 높였다.

 

 “땅만 보지 말고 다리 아래를 좀 봐, 봐.”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얘들 모르게 한숨을 내쉰 나는 더는 걸어가지 않고 멈춰서 다리 난간에 등을 기댔다. 문득 아래를 바라보니 왜 등불 호수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호수 위에는 3-4m 간격으로 등불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가장 큰 등불이 한 2m정도 될까 싶었다. 후우, 한 번 보면 엄청 좋아할 텐데. 힐끗 양 옆에 서 있는 티아와 윤을 확인해봤지만 둘은 여전히 침울한 상태였다. 어쩌지. 고민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하게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와!”

 

 “이번엔 연주회 콘셉트인가 봐요, 엄마!”

 

 아이들의 감탄사와 등불마다 흘러나온 잔잔한 선율들이 허공에서 만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졌다.

 

 “꽤 멋진 걸.”

 

 몸을 돌려 난간 아래를 보며 말하자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기분 전환이 되기를 바라서이기도 했지만 볼만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등불은 일정 간격마다 주제를 두고 다양하게 변화했다. 지금은 어린 소년의 감탄처럼 노래하는 여인,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인어가 연주하는 첼로 등 연주회를 주제로 하여 다른 형태였던 등불들이 하나 둘씩 바뀌었다.

 

 “와.”

 

 “예쁘다······.”

 

 익숙한 음성에 뒤를 돌아보자 윤과 티아도 고개를 내밀고 등불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얼굴에 떠오른 흥분과 설렘으로 인한 홍조를 보고서야 나도 제대로 된 미소가 떠오른다. 우리들은 조금 전 일은 잊고 편안한 마음으로 등불을 구경했고, 귀를 즐겁게 하는 클래식 연주를 음미했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소리들은 보급소에 와서 처음으로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시간에 쫒기지 않는 안식. 안도. 그리고 티아와 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이 시간이 순수하게 기뻤다. 다른 머리 아픈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평온한 시간이었다. 이윽고 연주회에서 동물원으로 주제가 변하고, 우리는 아름답게 변하며 빛나는 등불의 모습을 눈과 귀로 한없이 쫒아갔다.

 

 그러다 문득 든 걱정에 나는 즐기고 있는 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여러모로 시간이 지체 됐네. 음, 윤아? 너 괜찮은 거야?”

 

 “네?”

 

 뭔가를 깨달은 듯 윤의 얼굴이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아쿠아리움 광장이랑 르 레브에서 시간을 너무 끈 탓에 원래라면 돌아갈 시간임에도 우리는 물건을 하나도 전송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건 즉, 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는 의미였고, 그의 보호자는 틀림없이 걱정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나라도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윤의 반응에 나는 괜히 그의 시간을 뺏은 듯해 미안해졌다.

 

 “괜, 괜찮아요.”

 

 나를 위해 하는 말인 게 너무 티가 나서 속아줄 수가 없었다.

 

 “그런 것치고는 말을 더듬고 있는데 윤아. 안색도 창백해졌고”

 

 내 걱정스런 말에 윤의 어깨가 축 쳐졌다.

 

 “형······. 저 이제 죽었어요. 오늘은 먼저 갈게요! 다음에 또 봬요!”

 

 죽을상을 짓던 윤이 급하게 인사를 끝내고 가려고 몸을 돌렸다.

 

 “같이 가면 안 돼?”

 

 다급하게 윤의 소매를 잡은 티아가 아쉬움을 그대로 드러내며 말했다. 윤도 같은 마음인 듯 입매를 늘어뜨리며 속상한 얼굴을 지었지만 이내 티아의 손을 떼어내 잡은 다음 위아래로 힘차게 흔들며 밝은 톤으로 말했다.

 

 “미안. 다음에 또 보자, 티아! 오늘 즐거웠어!”

 

 그리곤 시간에 쫒기는 시계 토끼처럼 빠른 걸음으로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다른 의미로 이번에도 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도 그만 가볼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나 서야 나는 티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응. 근데, 어디를 먼저 갈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진 티아가 다시 밝은 얼굴로 돌아와 질문해왔다. 나는 티아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애초에 계획한 일정이 이미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과일류를 제외한 나머지를 먼저 가지러 갈 생각이었는데. 뭐 어떻게든 잘 되겠지. 이미 계획이 틀어지기도 했고, 솔직히 누군가와의 만남을 아쉬워하는 티아를 보고 있자니 신경이 쓰이기도 해서 그냥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티아에게 큰 기쁨을 줄만한 그런 계획.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몰래 숨기는 부모들처럼 들뜬 기색을 숨기지 않고서 티아에게 오렌지를 가지러 가자고 말했다.

 

 “오렌지? 시간이 많이 지나서 품절 되지 않았을까?”

 

 티아는 걱정스러워보였다. 걱정 마. 믿는 구석이 있거든. 티아가 알게 될 즐거움을 위해서 나는 말해주지 않고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음- 그럼 다른 것도 품절되기 전에 야채 시장에 먼저 가보자. 그 다음에 오렌지 시장, 괜찮지?”

 

 “응!”

 

 그렇게 우리들의 첫 번째 장보기는 야채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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