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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고사리, 콩나물, 고추장, 참기름. 아까 식혀 둔 적당히 고슬한 밥 위에 올려진 재료들은 반질반질했다. 슥슥 소리를 내며 질지 않게 비벼져서 다행이다. 배는 고팠지만 입맛이 당기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두 알맞게 비벼진 덕분에 다른 반찬도 없이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릇과 수저는 곧장 설거지하고 행주에 손을 닦았다. 조용히 일어나고자 애쓰던 상황에서 구메구메가 예민하지 않음을 확인시켜준 별은 없다. 침대에서 벗어나 커튼을 걷자마자 밖으로 나가는 뒷모습만 보였다. 이미 밥을 먹은 후였을지도 모르지만 아까 씻어둔 그릇과 수저 외에는 물에 젖은 게 없다.
아 멍하니 있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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얹혀사는 입장으로서 곧장 청소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먼지 털기가 끝났으니 간단한 걸레질을 해야겠다. 부엌 찬장에 행주 같은 것들이 보이긴 했지만 과연 써도 되는 걸까. 손을 닦은 것과 같은 걸로 보였는데 함부로 쓰면 실례 같다. 안방의 다른 곳을 뒤져볼까도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예의가 아니다. 가족이라고 했지만 남이니까. 남이 마음대로 손대는 건 절대로 기분 나쁜 일이다. 별이 옷을 꺼내다 준 창고방으로 가봐야겠다. 많이 어지러워 보였지만 잘 뒤져보면 작은 천조각 하나는 나올만하다. 옷이 더러워질 것 같은데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입어야겠다. 아는 사람도 없을 브랜드의 값싼 중간정장. 이상한 주름이 여기저기 많다. 대충 화장실에서 갈아입으면 되겠다. 똑똑똑
“안에 사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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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키는 아니었지만 홀쭉한 몸에 얇은 얼굴 선 때문인지 길쭉한 인상의 손님이다. 두꺼운 안경태가 눈에 띄는 점 말고는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움직임이 없는 인상이다. 안방에서 거실로 통하는 문을 열자 바로 맞은편의 현관문이 열렸다. 엉겁결에 보게 된 아침 손님은 조금 이른 시간부터 문을 두드린 사람 치고는 급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별은 어제처럼 빠르고 당연하게 거실 중앙의 큰 식탁으로 손님을 안내했다. 손님은 아까부터 계속 눈을 굴리며 답을 기다리는 표정만 짓고 있다. 식탁 위에서 왼쪽 손바닥만 긁고 있는 오른쪽 엄지와 검지는 안타까울 지경이다.
“손님 여기는 다다리고 고민이 뭔지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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