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별의 여행자
작가 : 아쿠아맨
작품등록일 : 2019.8.16

많은 상처를 품고 공화국의 기사가 된 엘 나이트리버.
임무를 수행하던 중 뜻하지 않게 기사단 내부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세력을 직감한다.
그들의 음모를 추적하는 엘은 여태껏 몰랐던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는데...

 
겨울 행성 2
작성일 : 19-08-16 15:46     조회 : 186     추천 : 0     분량 : 478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제대로 된 선착장에 착륙하는 건 일찌감치 무리였다고 판단한 엘은 그나마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지역으로 우주선을 움직였다. 과연 대기권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후 시스템은 완전히 멈춰버렸다. 완전 수동 조작으로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우주선은 추락하다시피 착륙했다. 그나마 설원이었기 때문에 흔들림은 적었다. 우주선은 50미터는 넘게 눈 위를 미끄러지다가 커다란 전나무 앞에서 멈췄다.

 

 엘은 몇 번 더 계기판을 조작해 보았다. 이제 완전히 먹통이 되어버린 우주선은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정비소에 가면 어떨지 몰랐지만, 옮길 방법이 없으니 별 의미는 없었다. 엘은 포기하고 우주선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가 추운 세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우주선 밖으로 나온 엘이 느낀 최초의 감상이었다.

 

 대비를 하고 왔더라도 이 정도의 살인적인 추위에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아무런 대비도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주선에 여분의 옷이 몇 벌 있어서 껴입을 순 있었지만 그걸로는 턱도 없었다. 그나마도 거의 제니에게 주어 입혔고 엘은 외투 하나뿐이었다. 제니의 상태가 너무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간신히 전투기를 따돌린 후, 제니는 줄이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힘을 잃고 늘어졌다. 얄미운 녀석이었지만 그런 걸 못 본 채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은 언제 그렇게 시끄러웠었냐는 듯 지친 채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도 오르고 있었다.

 

 폭신한 케이크처럼 눈 속으로 발이 쑥 들어갔다. 설상화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근처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우주선 안에서 방향은 제대로 확인해 뒀지만, 역시 얼어 죽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그리고 제니가 걱정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걷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하얬다.

 

 발밑부터 지평선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하얗기만 했다. 몇 시간 걷다 보니 종아리까지 감각이 없어졌다. 그러자니 눈 속을 걷고 있다는 현실감마저 희미해져버리고 말았다. 어떤 동물의 흰 털 같았다. 예를 들면 북극곰이라든지. 그래, 거대한 북극곰의 등 위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엘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냈다. 부축중인 제니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자신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제니를 지킬 사람은 엘뿐이었다.

 

 그때였다. 엘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뭔가가 빠르게 둘에게 접근해오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한 무리의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제니. 정신 차려.”

 

 “네?”

 

 “맹수한테 둘러싸인 것 같아.”

 

 엔지비크의 토착 생물 눈표범이었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몸집은 크지 않았지만 빠르고 소리 없이 움직이는데다 무엇보다 무리를 이루어 하는 사냥 실력이 비슷한 크기의 어떤 맹수보다 뛰어났다. 흰 털 탓에 가까이 올 때까지 눈치조차 챌 수 없었다.

 

 엘은 제니를 정신 차리게 한 후 재빨리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언뜻 봐도 열 마리는 넘어 보이는 저 많은 눈표범들을 검 두 자루만으로 전부 베어 넘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제니, 혹시 네 염동력으로 저 녀석들을 처리할 순 없어?”

 

 제니가 엘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지치고 아픈 제니가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의사 전달은 충분히 되었다. ‘이 몸 상태로 그게 될 것 같냐, 이 도움 안 되는 머저리야’

 

 “...그래. 바라선 안 될 걸 바랐구나.”

 

 눈표범 한 마리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엘은 뒤로 몸을 한껏 젖히며 눈표범의 배를 갈랐다. 정확히 급소를 베인 눈표범은 그대로 내동댕이쳐져 숨이 끊어졌다. 곧장 다른 눈표범이 등 뒤로 접근했다. 엘은 왼손에 들린 검을 거꾸로 들고 힘껏 올려쳤다. 눈표범의 턱이 그대로 꿰뚫렸지만 죽으면서 엘의 손을 마구 물어뜯는 바람에 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 사이 한 놈이 제니에게 달라붙었다. 엘은 펄쩍 뛰어 검으로 눈표범의 머리를 내려쳤다. 단번에 절명시키진 못했지만 치명상이었다. 머리가 절반이 날아간 눈표범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제니에게서 떨어졌다. 엘은 제니를 자기 등 뒤에 숨기며 한 자루밖에 남지 않은 검을 크게 휘둘렀다. 하지만 맹수들에게 그런 위협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쨌건 세 마리나 단숨에 죽어버리자 눈표범들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엘과 제니를 사이에 둔 채 빙빙 맴돌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은 지능도 꽤 좋았다.

 

 엘은 숨을 가다듬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들 검 한 자루 만으로 맹수 한 무리를 상대할 순 없었다. 이대로 잡아먹히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주변은 탁 트인 설원일 뿐이라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순순히 잡아먹히는 건 더더욱 안 될 말이었다. 엘은 짧은 검을 양손으로 꽉 쥐었다. 그러자마자 눈표범들은 일제히 달려들었다. 엘은 제니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며 마구 검을 휘둘렀다. 몇 마리의 눈표범들이 죽어나갔지만 한참 부족했다. 점차 엘의 검놀림이 둔해졌다. 반면 눈표범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어깨를 물려는 눈표범을 간신히 떼어내고 입에 검을 쑤셔 박았다. 그때 다른 방향에서 습격한 두 마리가 제니의 다리를 물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제니가 비명을 지르고 엘은 필사적으로 몸을 던졌다.

 

 “안 돼!”

 

 짐승의 이빨과 발톱이 몸 이곳저곳을 파고들었다. 엘은 이를 악물며 제니를 힘껏 감싸 안았다.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공격이 잦아든다 싶더니 멈춰버렸다. 어리둥절한 엘이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눈표범들은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엘은 떨고 있는 제니를 진정시키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리고 이제껏 없었던 존재를 발견했다. 은색에 가까운 흰 털을 가진 늑대였다. 하지만 엘이 알고 있는 보통 늑대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몸집이 눈표범 다섯을 합친 것만큼이나 컸던 것이다.

 

 눈표범들은 저 늑대에 겁을 먹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늑대가 나지막이 으르렁거리자 주춤대며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포효하자 눈표범들은 혼비백산하며 엘과 제니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라졌다.

 

 엘은 제니를 부축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저 늑대는 눈표범 수십 마리보다도 더 골칫거리가 될 것 같았다. 저 덩치라면 손쓸 틈도 없이 목이 달아날 것이다. 그나마 눈표범은 죽일 수라도 있었지만 저 늑대는 상대할 수나 있을까?

 

 하지만 어째선지 늑대는 공격할 의사가 없는 모양이었다. 조금 전 눈표범들을 위협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얌전히 눈 위에 앉더니 엘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황금색 눈. 엘은 그 눈에서 지성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늑대는 슬퍼보였다. 마치 옛 친구가 돌이킬 수 없는 악독한 선택을 한 것을 보기라도 한 듯.

 

 하지만 엘 역시 홀린 것처럼 늑대와 마주보고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몰랐다. 늑대가 하늘을 쳐다보는가 싶더니 길게 울었다. 슬픈 노래 같은 하울링이었다.

 

 우우우우... 우...

 

 그리고 늑대는 스르륵 일어나 몸을 돌려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엘을 흘낏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흰 늑대는 나타났을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달라진 건 없었다. 엘과 제니는 여전히 걸어야 했다. 아니, 달라진 것이 없진 않았다. 대부분 나쁜 쪽으로 달라져서 문제긴 했지만.

 

 다행히 깊진 않았지만, 둘 모두 몸 여기저기에 찢긴 상처가 생겨 피가 흘렀다. 제니보다도 엘이 더 심했다. 설상가상으로 눈표범들과 싸우다 방향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주선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둘 모두 설원에서 길을 찾는 법은 전혀 몰랐으므로 결국 방향도 모른 채 둘은 하염없이 걸을 수밖에 없었다.

 

 엘은 제니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낭패였다. 어서 마을을 찾아 치료받아야 했지만 아무리 걸어도 불빛 비슷한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엘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높고 눈이 적은, 하룻밤은 지낼 만한 지대가 있을 것이다. 내일까지 마을을 찾지 못한다면 위험하겠지만 오늘밤은 넘길 수 있었다. 제니도 엘도 살 방도가 있었다.

 

 그때 제니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겨?”

 

 “우스워서요. 사실 평생 바위섬을 벗어날 거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데. 며칠도 안 돼서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겪는 건가 싶어서. 당신이 절 찾아온 게 어제였어요? 세상에. 일주일은 넘은 것 같네.”

 

 “그렇게 날 잡아먹으려고 하더니 이젠 담담하군.”

 

 “글쎄요. 죽을 때가 다가와서 그런가.”

 

 엘은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치뜨며 말했다.

 

 “그것 봐. 역시 난 네가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잖아. 내기는 내가 이긴 거야.”

 

 “누가 아나요. 얼어 죽는 운명을 위해 태어났을지.”

 

 엘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게 진짜면 이런 한심한 최후가 몇 백 년부터 예언된 내가 불쌍한 거냐, 그런 날 기다린 너희 일족이 불쌍한 거냐?”

 

 오히려 그 때문일까,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에서 나누는 대화치고는 너무 한가했다. 제니도 그럴 테지만 엘 역시 따지고 보면 이 꼴이 너무 우스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사단 막사에서 하릴없이 누워 있던 엘이 수십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이게 정말로 끝인 걸까. 이렇게 죽게 되면 누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누나... 나를 맞아 줄까?

 

 “엘!”

 

 제니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엘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바닥이 사라졌다.

 

 엘은 간신히 균형을 잡고 버텼지만 제니는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비탈을 따라 미끄러졌다. 크레바스였다. 그것도 꽤 큰 규모였다.

 

 “제니!”

 

 엘은 앞뒤 생각하지 않고 제니를 향해 몸을 던졌다. 안 그래도 경사가 심한 비탈이었지만 마구 달려 내려갔다. 금세 제니와 가까워질 수 있었지만 벼랑이 코앞이었다. 제니가 떨어지기까지 몇 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손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자마자 엘은 제니를 덮쳐 안았다. 그리고 온 힘을 짜내 제니를 반대쪽 벼랑이 없는 평지로 내던졌다. 그리고 자신은 끝갈 데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렸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1 겨울눈 1 2019 / 8 / 16 181 0 3192   
20 흰 늑대의 마을 2 2019 / 8 / 16 177 0 3767   
19 흰 늑대의 마을 1 2019 / 8 / 16 199 0 3795   
18 고대의 목소리 2 2019 / 8 / 16 211 0 4266   
17 고대의 목소리 1 2019 / 8 / 16 186 0 4669   
16 망령 2019 / 8 / 16 203 0 5779   
15 겨울 행성 2 2019 / 8 / 16 187 0 4787   
14 겨울 행성 1 2019 / 8 / 16 183 0 4576   
13 예언자들의 섬 2 2019 / 8 / 16 192 0 4441   
12 예언자들의 섬 1 2019 / 8 / 16 174 0 5198   
11 배신 3 2019 / 8 / 16 199 0 4142   
10 배신 2 2019 / 8 / 16 189 0 4238   
9 배신 1 2019 / 8 / 16 165 0 4082   
8 첫 번째 살인 4 2019 / 8 / 16 192 0 4847   
7 첫 번째 살인 3 2019 / 8 / 16 198 0 3699   
6 첫 번째 살인 2 2019 / 8 / 16 214 0 4721   
5 첫 번째 살인 1 2019 / 8 / 16 201 0 5973   
4 모든 것을 가진 소녀 3 2019 / 8 / 16 186 0 3638   
3 모든 것을 가진 소녀 2 2019 / 8 / 16 179 0 4593   
2 모든 것을 가진 소녀 1 2019 / 8 / 16 190 0 4396   
1 1. 천 년 전 죽은 별에 새겨진 이름 2019 / 8 / 16 312 0 1156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