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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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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21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1)
작성일 : 19-08-12 22:57     조회 : 321     추천 : 0     분량 : 4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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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련은 모두 끝났지만, 성소의 분위기는 그저 가라앉을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만날 때 사제들은 평소처럼 밝은 모습으로 그들을 맞이했지만, 마을 사람들도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정도였으니까.

 

  그날 이후로 그렉은 오르간 연주를 연습하는 시간보다 혼자 방에서 기도를 올리는 시간이 더 늘었다. 기도마저 손에서 내려놓고 사제의 자격을 내던지는 것보다야 나았지만, 그게 다른 사제들에게 위안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그렉은 기도를 하다가 쉬이 감정이 격해졌다. 눈물을 보이는가 싶으면 어느새 소리 내어 울면서 제 가슴을 치고 있었다. 다른 사제들이 달려와 말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렉의 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달랠 길은 오직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조지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깨닫는 기적 말이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정신없는 하루가 이어졌고, 그렉의 슬픔은 마르지 않았다. 보름이 금방 지나갔듯이, 어느새 초하루가 되었다. 중앙과 지방의 성소들이 서신을 교환하는 그 날이.

 

  캐서린은 중앙에서 올라온 서류들을 확인하다가, 씁쓸한 미소를 드러냈다. 그렉의 사제 서품을 요청한 서신의 답장이 흰 밀랍으로 봉해져 있었다. 그녀는 날이 서지 않은 단검으로 봉인을 뜯고 그 안의 내용을 읽었다.

 

  스무날의 오랜 검토 끝에, 그렉은 정식으로 사제가 되었다. 또 중앙에서는 영원한 빛들을 통해 듣게 된 그렉의 깊은 슬픔에 유감을 표했다. 그들은 그렉의 서품식을 그렉의 슬픔이 모두 끝날 때까지 연기해도 좋다고 선언했다. 캐서린은 그들의 이해에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식을 그렉에게 알려주는 것은 좋은 판단이 아닐 거라고 캐서린은 생각했다. 자신의 슬픔을 사사로운 것으로 취급해 서품식을 무리하게 앞당기려 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그렉이 눈물로 지새우며 기도하다가 지쳐 잠든 뒤에야 다른 사제들을 조용히 불러 모았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서신을 보여주며 사제들이 돌려보게 했다. 사제들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위안은 위안이지만, 현 상황이 나아지는 게 아니니까. 그들은 둘러앉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조지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지 고민했다.

 

  “조지가 자신을 흡혈귀로 인식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였죠?”

  “네. 그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겁니다.”

 

  체칠리아는 그 전제를 곰곰이 살피다가 중얼거리듯이 답했다.

 

  “만약 흡혈귀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영원한 빛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한다면….”

  “예를 들자면 어떤 것 말입니까?”

 

  던스턴은 그녀의 중얼거림이 큰 힌트가 될 수 있다고 본 모양이었다. 흡혈귀는 할 수 없고, 영원한 빛은 가능한 일. 체칠리아는 자신의 방에서 흡혈귀에 관한 책을 한 권 들고 왔다. 여기에 분명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영원한 빛과 흡혈귀의 차이점을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까?”

  “조지와는 경우가 다르지만, 영원한 빛 중 몇몇은 흡혈귀 무리를 일소하기 위해 그들의 깊숙한 곳까지 숨어들곤 해요. 사제들을 그렇게 흡혈귀인 척 자신을 숨긴 빛들을 곧바로 알아봐야 하죠.”

 

  파수꾼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흡혈귀의 모습을 취하는 쪽이 더 나았다. 에어드부르가도 어쩌면 비슷한 경우라고 그녀는 답했다. 여기 있네. 그녀는 책을 계속 넘기다가 어느 한 페이지에서 손가락을 멈추었다. 흡혈귀의 모습을 취한 영원한 빛과 진짜 흡혈귀의 차이.

 

  “영혼의 상태, 육체의 상태, 행동의 특징….”

 

  체칠리아는 주요한 대목들을 중얼거리며 빠르게 읽어 내렸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다.

 

  “흡혈귀의 모습을 취한 영원한 빛이 살아있는 생명의 피를 얻을 경우.”

 

  그녀가 읽은 구절에 다른 사제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자신을 흡혈귀로 받아들인 조지가 그렉의 피를 탐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

 

  흡혈귀가 생명의 피를 빨게 되면, 흡혈귀의 영혼에 깃든 저주가 피해자가 흘린 피의 양만큼 흘러가게 된다. 흡혈귀는 보통 피해자의 혈관 중 가장 신선하고 많은 피가 흐르는 곳을 탐하는 본능을 가지기에 피해자에게 유입되는 저주의 양은 상당하다.

 

  저주에 의한 육체의 침식에 의한 것이든, 과다한 혈액손실에 의한 것이든 피해자는 사망한다. 사망한 피해자의 영혼은 정상적으로 육체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흡혈귀의 저주가 이를 방해하여 영혼을 육체에 가두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뒤트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흡혈귀의 형체를 취한 영원한 빛은 이러한 작용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적절한 조치가 없는 한, 피해자는 혈액손실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영원한 빛은 생명을 함부로 해칠 수 없기에 본능적으로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치유의 힘을 쓰게 되면 흡혈귀로서의 형태가 무너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흡혈귀의 모습으로 숨어든 영원한 빛이 다른 생명의 피를 취한다면 피를 잃은 생명은 죽지도 않고, 흡혈귀로 변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조지는 어떨까. 자신이 흡혈귀라고 강하게 믿고 있는 그가 과연 영원한 빛의 본능을 깨울 수 있을까. 확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이를 시험해보기 위해 누군가 나설 수도 없고.

 

  “이 방법은 아닌 것 같군요.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일어나서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캐서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사제들을 돌려보내고 남은 서류들을 들여다보았다. 두 주 사이에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진 동네인지라 교단에서도 꽤 신경을 쓰고 있었다. 부쩍 늘어난 서류를 가능하면 자기 전에 모두 끝내고 싶어 그녀는 따뜻한 차와 잠깐 눈을 붙이는 일에 의지한 채 집무실을 떠나지 않았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뗀 것인데, 벌써 지평선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캐서린은 앉아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어깨에서 모포가 흘러내렸다. 그녀의 것은 아니다. 녹색 빛이 도는 짙은 갈색의 모포는 그렉의 것이었다. 그렉이 잠깐 새벽에 일어나 그녀를 찾았다가, 그녀가 자고 있기에 모포를 덮어주고 나왔음이 분명했다.

 

  캐서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포를 가지런히 개었다. 집무실에서 나오니 아직 그렉의 방 문틈 사이로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 문을 두드리려다 그렉의 나지막한 기도 소리에 가만히 손을 내렸다. 그녀는 빈 의자를 하나 꺼내 그렉의 문 옆에 두고, 그 위에 그의 모포를 올려두고 나왔다.

 

  다들 이미 일어난 뒤인 줄 알았더니, 아직 일어나야 할 시간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는 잠을 완전히 떨칠 생각으로 성소 밖에 나왔다. 차가운 아침 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확 깨어났다. 나온 김에 산책이라도 할까. 그녀는 숲을 향해 조금 걸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냐.”

 

  숲으로 이어지는 입구에 에어드부르가가 서 있었다. 그녀는 바위 위에 앉아 있었고, 그 밑에 새끼돼지 몇 마리가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보아하니 어미와 떨어진 것 같기에 간밤에 그녀가 보살핀 모양이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렇구나.”

 

  아무 일도 없지. 이미 내 눈에 보이니, 그 외에는 다른 일은 없겠지. 에어드부르가는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질책은 아니었다. 그래도 좀 조언을 하자면, 에어드부르가는 중얼거리다가 캐서린에게 말했다.

 

  “그대, 너무 잠이 없는 게 아니더냐.”

  “이 나이가 되면 다들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걱정되는구나.”

 

  본당 사제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성소 전체가 잘못된 결정을 피할 수 있다. 그러려면 충분히 잠도 자야지 않겠느냐. 캐서린은 그녀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경고였다. 에어드부르가가 본 미래의 가능성 중에 캐서린의 어떤 선택이 큰 위험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경고. 그 예방법이 시간을 들여 잠을 충분히 자는 정도라면 값은 싼 편이다.

 

  캐서린은 에어드부르가라면 이 문제의 해결책을 알고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그녀도 이 사태를 깊게 이해하고 있을 터이니.

 

  “혹 알고 계신 것은 없는지요.”

  “그 아이는 아주 오랫동안 피에 대한 갈증을 참아왔지.”

 

  물론 진짜 흡혈귀는 아니니까, 그 갈증 역시 거짓이다. 하지만 진짜 흡혈귀라도 그믐달의 왕에게서 이어진 숲의 저주를 몸에 두르면 갈증 정도는 의지로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저주도 이제는 모두 거두어 체칠리아의 은상자에 봉했다. 그러니 그가 정말로 흡혈귀의 충동을 느끼고 있다면, 그런 착각을 아직도 하고 있다면.

 

  “너희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 방법이 정답이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하게 됩니다.”

  “그건 제가 하면 됩니다, 캐서린 사제님.”

 

  조지를 위해서라면, 그렉이 말했다.

 

  “평생을 기도만 하며 살겠다고 했습니다. 이 목숨은 이미 빛과 조지를 위해 바쳤습니다.”

  “하지만, 그렉.”

  “무턱대고 가서 목을 들이밀 수는 없지. 내가 조금 도와주마.”

  “에어드부르가, 잠시 기다려주세요.”

 

  캐서린은 방금 자신에게 정신이 온전할 때 판단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에어드부르가는 답했다.

 

  “그게 지금의 판단이라고 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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