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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잃어버린 자들
작가 : 라하비
작품등록일 : 2019.7.15


'록 바이러스(Lock Virus)'라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1부 시계 도시 中>

“오빠.”

잠시 침묵한 티아가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응?”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티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혹여나 안가겠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불안했다.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드러난 것일까. 티아가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 내일 갈 거야.”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부탁? 뭔데?”

티아가 싱긋 웃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안심이 들기는커녕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빼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행하기도 전에 티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게 먼저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거야. 내일 추첨 용지 넣을 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안 돼.”

나는 다급하게 티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싫어. 공포와 경악으로 몸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물며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악바리처럼 악쓰고 티아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나는 티아의 손 안에 갇혀있던 내 손을 빼고 어두운 눈빛으로 티아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안 돼”

널 잃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티아를 노려보았다.

“알아.”

무엇을 아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티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록 바이러스에 걸린 걸 토큰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나 알아, 오빠.”

티아의 눈에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
.
<중략>
.
.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 혹시라도”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른 티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가야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나로 살고 나로 죽고 싶어.”


 
11화 가이드 모디스
작성일 : 19-08-12 12:46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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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무인 정거장의 탑승장은 어느 구역에 위치해 있는가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가 있었다. 보통 4구역 탑승장은 홀 형태로 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대리석으로 이루어져있는 편이었다. 당연히 여기도 똑같을 줄 알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WC-S19는 만들 때 비용이 남아돌기라도 했나. 처음 와 본 WC-S19 탑승장은 비싼 금 대신에 황금색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홀은 마치 왕실의 무도 회장처럼 화려했고, 사치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또, 반대로 공허해보이기도 했다. 넓은 홀에는 가구라고 불릴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때문에 공간자체는 굉장히 넓어 보였고, 홀을 둘러싼 둥근 벽면에는 한 눈에 파악하기도 힘든 많은 수의 문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으며, 복잡한 무늬가 각 문마다 수놓아져 있었다. 화려했지만 허무했다. 번쩍거리는 공간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아름답다고 느껴진 것은 정중앙에 있는 아프로디테 호수뿐이었다. 천장을 덮고 있는 청량한 색깔의 맑은 하늘조차도 홀로그램이었으니까.

 

 아프로디테 호수는 멀리서도 뚜렷이 보일 정도로 거대해서 그곳만 꽉 차 보이는 효과를 주었다. 날개 달린 하얀색 블록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그리스의 신 중 하나인 아프로디테 여신을 본떠 만든 황금색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호수 쪽으로 걸어가자 날개달린 블록들이 서로 붙었다 떨어지며 동상 주위를 돌고 있는 장면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티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내 등장에 윤과 티아는 화들짝 놀라하며 동그래진 눈으로 똑같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기에 이렇게 놀라지? 그 반응에 도리어 놀란 내가 빤히 쳐다보자 티아가 찔린 게 있다는 표정으로 황급히 입을 여는 모습이 더 수상해 보였다.

 

 “윤이 보급소로 가는 방법을 설명해줬어.”

 

 "그래?"

 

 내 걱정과는 다르게 방법을 알았음에도 티아는 담담해 보였다. 어찌 보면 티아의 반응은 놀라운 게 아니었다. 티아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으니까. 이제 다정하게 윤이라고 부르는 거냐고 놀리거나 다른 이야기라도 해야 하는데 입이 딱 붙은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다른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게 혹시 내가 이야기 해주려고 한 것을 윤이 했기 때문인가? 그런 거면 언제부터 내가 속이 좁아진 거지? 스스로에게 충격이었다. 별 것 아닌 일이잖아. 윤과 만나고서 계속 드는 이상한 생각에 괜히 헛기침을 했다. 내가 갑자기 기침을 하자 두 사람이 나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어디 먼저 가보고 싶어?”

 

 그 시선을 피하고자 티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게.”

 

 답지 않게 티아가 머뭇거렸다.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하는 게 어렵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티아를 보니 뭔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흐음. 설마 그건가?

 

 “뭔데? 이야기해봐."

 

 “그게······. 거기 가보면 안 돼?”

 

 우물쭈물하며 내 의견을 묻는 걸 보아하니, 내가 찬성하지 않는 곳 중 하나군.

 

 “어디?”

 

 “치유의 섬에 가보고 싶어!”

 

 제법 결의에 찬 표정으로 외쳤다.

 

 “흠······. 우리가 갈 수 있는지 나도 확신하지 못하겠는데 어쩌지?”

 

 머리를 긁적이며 나는 거절하지는 않았다. 바로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기보단 안 되는 이유를 먼저 말하는 게 좋겠지. 여기는 내가 가자고 해서 갈 수 있는 곳도, 가지 말라고 해서 못가는 곳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치유의 섬 안에서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고, 어떤 장소는 나 역시 잘 모르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도 그랬다. 하지만 티아가 관심 있어 할 만한 종류로 치자면 오늘 아침에 이야기 나온 그곳일 가능성이 컸다.

 

 “치유의 섬에서도 특히 르 레브에 가보고 싶은 거지?”

 

 나는 티아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응!”

 

 내가 들어줄 것처럼 굴자 티아의 얼굴이 만개하는 꽃처럼 환하게 피었다. 너무 성급한 판단이야, 티아야. 어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티아의 희망을 부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 되는 걸 되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는 티아 옆에 서 있는 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도 가보고 싶어?”

 

 혹시 두 사람이서 아까 전까지 이야기하던 게 이것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왠지 윤의 의견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저도 한 번도 못 가봤거든요. 형은 가보셨죠?”

 

 윤이 자신의 뒷머리를 쓸며 어색하게 대꾸했다. 왜 내가 가봤다고 생각하는 걸까? 티아도 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르 레브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길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좀 억울해지는데.

 

 “나도 없는데.”

 

 아무렇지 않게 대구하자 윤과 티아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뜬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는지. 나도 아직 갈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은 걸 참고서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가능 여부를 확인해봐야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지만 그것보다 애들이 납득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럼 가는 거야, 우리? 정말?”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찢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로 함박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맞잡은 채 티아가 환호했다. 아직 좋아하긴 이른데. 하지만 굳이 말리진 않았다.

 

 “형도 잘 모르신다면서요?”

 

 어리긴. 검지만 핀 채 좌우로 흔들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단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Le Reve in Healing Island'라는 핑크색 팻말이 걸려있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굳이 직접 가보거나 설명하지 않고도 좋은 방법이 있었다. 어차피 불러야했고 말이지. 일석이조랄까.

 

 “이 버튼은 뭐야?”

 

 티아가 문 앞에 있는 작은 핑크색 버튼을 가리켰다.

 

 “가이드 소환 장치야.”

 

 “가이드 불러서 물어보려는 거죠?"

 

 “정답. 눌러볼까?”

 

 내가 제안하자마자 티아는 양 갈래로 묶은 머리를 흩날리며 냉큼 버튼을 눌러버렸다. 기대감과 설렘으로 볼이 만개한 벚꽃 나무마냥 핑크빛으로 물든 티아를 보면서 나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적막하기만 했던 공간에 클래식 선율이 흘렀다. 참 취미도 고상하네. 이 공간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왠지 우리가 기다리는 가이드 또한 예사롭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데. 여기서 멈춰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궁금한 마음에 나는 버튼으로 가져가려던 손을 멈칫했다. 그 순간 노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빛이 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흡사.

 

 “미러볼?”

 

 “설마 저거 미러볼이에요?”

 

 윤과 나는 같은 단어를 내뱉었다. 윤의 어이없는 목소리가 무슨 뜻인지 백번 이해가 되었다. 비슷한 게 아니라 그냥 파티에서 쓰이는 미러볼이었다. 샹들리에가 어울릴만한 천장 한 가운데에 만월 같이 둥근 미러볼이 정신없이 색들을 주변에 뿌려대고 있으니······. 어울리지 않는 이물질이 낀 것 같았다. 나와 윤의 마음과는 다르게 티아는 연신 와아, 하고 즐거워할 뿐이지만 말이다. 티아는 아직 순수한 편이었다.

 

 <무슨 일이지? 하암. 아직 잠을 덜 잤는데.>

 

 낯선 남자의 목소리. 나는 황급히 티아를 내 뒤로 당겨 숨기고는 고개를 돌려 달팽이 같이 느린 말투에다가, 가이드답지 않게 생동감이 있어 보이는 남자를 경계심 어린 눈으로 응시했다. 남자는 그냥 보기에도 아주 나른해 보였다. 그는 내가 알고 보아왔던 정장을 입은 딱딱한 가이드가 아닌 자신만의 개성으로 똘똘 뭉쳐 있는 가이드였다. 남자의 인중에는 양쪽 끝이 뾰족하게 올라간 콧수염이 있었고, 어깨까지 내려온 파마머리 위에는 작은 통 같이 생긴 탑 형태의 모자와 비슷한, 프릴이 많이 달린 보라색깔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옷 자체는 연미복으로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색깔이 아주 진한, 모자와 같은 보라색이었다.

 

 튀고 개성 있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 남자처럼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거기다가 남자는 왼쪽은 보라색, 오른쪽은 적색으로 오드아이였다. 맙소사, 대체 누가 이 가이드를 설정한 거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티아는 처음에는 경계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눈앞의 가이드를 재미있는 사람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연신 바보처럼 방실거리고 있었으니까. 반면 윤은 다른 의미로 입까지 벌린 채 경악 중이었다. 참, 제각각인 반응들이다.

 

 끄응. 나는 정황상(사람이 갑자기 나타날 리는 없으니까) 이 사람이 가이드라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했다. 버튼을 누르기 전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혹시 몰라 버튼을 다시 눌러봤지만 가이드는 여전히 하품을 크게 하며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나도 빨리 돌아가고 싶지만······. 그래서 뭐가 궁금하지? 가는 방법이라면 간단해. 첫째 문을 연다. 둘째 그냥 걷는다. 쉽지?>

 

 듣는 사람마저도 지루하게 만드는 느릿한 음성으로 가이드는 아주 가볍게 말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직 그가 가이드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닌가보네······. 모디스라고 불러도 돼.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가이드한테도 이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제껏 이름을 본인이 말해준 적도 처음이었지만. 그리고 이런 성격을 가진 가이드가 있다는 것 또한. 그의 느린 말투를 계속 듣다가는 나도 모르게 모디스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될까봐 먼저 선수를 쳐서 질문을 던졌다. 얼른 질문할 것만 하고 다시 재우자.

 

 “음, 모디스? 저희가 치료의 섬에 있는 르 레브에 갈 수 있나요?”

 

 내 질문에 각각 달랐던 동공 색이 주황색으로 물들며, 모디스는 나와 티아 그리고 윤을 차례대로 스캔하듯이 확인했다. 두 다리를 딱 붙인 상태에서 상체를 60도 가까이 기울인 채로 우리를 보는 모디스는 조금 섬뜩하고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한참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우리를 관찰하던 모디스가 내 질문에 대답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치료의 섬에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이 있지. 그 중에서도 ‘르 레브(Le Reve)’라. 너희들 이 WC-S가 언제 세워진지 알고 있나? 80년도 더 된 일이지. 그때는 살 수가 없는 세상이었어. 10분마다 태풍이 우리가 가진 걸 쉽게 빼앗아가고, 해일이 손쉽게 두 곳 이상의 도시를 삼켜버렸지.>

 

 거기까지 듣고서 난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이 가이드는 고장이 난 게 분명해. 게다가 딴 소리를 하기 시작한 모디스는 갑자기 아득한 눈을 하더니, 할머니가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모드가 되어 조곤조곤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모디스의 눈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갑작스러운 모디스의 모습에 나를 포함한 우리 셋은 똑같이 눈만 껌벅이며 이 상황에 대해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분위기상 티아와 윤에게 기대하기는 힘들 듯 싶었다. 결국 내가 총대를 메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계속 이어지는 모디스의 말을 끊었다.

 

 “잠시 만요. 과거 이야기는 검색만 해도 알 수 있어요. 우리는 갈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 알면 돼요.”

 

 <아, 그랬지······. 갈 수는 있지만 없어.>

 

 말을 끊어서 대놓고 시무룩해진 모디스의 말투는 이제는 달팽이보다도 더 느려진 것 같았다. 그리고 대답에 성의가 없어졌다. 삐진 건가? 가이드가 그런 감정을 가진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지만 만약 들었다고 해도 모디스란 가이드가 삐지는 상황만큼이나 귀찮은 건 없을 거라는 데 한 달 치 식량을 다 걸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저 알쏭달쏭한 대답은 너무 심하잖아.

 

 “네?”

 

 “뭐라고요?”

 

 "……."

 

 모디스의 대답을 들은 후 티아, 윤, 나 순으로 보인 반응이었다. 나는 모디스가 나타났을 때부터 이상하게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검지와 중지로 문질렀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모디스의 말투가 많이 거슬리기는 해도 그가 우리들을 놀리려고 한 말은 아닐 거야.

 

 “왜요? 왜 갈 수는 있지만 없다는 거죠?”

 

 한 가지 가정을 세우고 모디스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우리한테 흥미를 잃은 모양인지 전신 거울을 꺼내놓고는 자신의 몸을 치장하기에 바빴다. 데이터로 이루어진 모디스는 마음껏 자신이 원하는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어 보였다. 덕분의 모디스의 형색은 1초마다 바뀌고 있었다.

 

 <말 그대로지. 너희는 거기까지 갈 수는 있어. 그렇지만 갈 수는 없지.>

 

 더불어 그의 대답 또한 점점 수수께끼로 변질되고 있었다.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에요?”

 

 어쩔 수 없이 하나하나 가정을 세워 물어봐야할 것 같았다. 스무고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지. 그럼 의문은 풀렸나?>

 

 거울을 없앤 모디스는 이제는 우리들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왜 못 들어가요?”

 

 내 옷 소매를 접으려는 그의 손을 피하며 묻자 콧수염을 부르르 떨며 삐진 모디스가 곧바로 사라지려는 태도를 보였다. 아 진짜! 발끝부터 희미해져가는 게 심상치 않았다. 진짜 가이드 맞아? 아니면 연령이 뭐 10세 미만으로 설정되어 있기라도 한 거야? 황당해서 멍해있는 나 대신에 윤이 재빠르게 모디스를 막았다.

 

 “잠깐만요!”

 

 간발에 차로 윤이 모디스의 팔을 통과했다. 도중에 방해를 받아서인지. 아니면 윤까지 휘말릴까봐 걱정이 되서 인지 모르겠지만 희미해지던 모디스의 형체가 다시 뚜렷해졌다. 도망가려다가 다시 잡힌 모디스는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무슨 가이드가 저래. 말투도 그렇고 엉뚱한 말을 하는 점도 그렇고 시스템 오류가 분명해. 그렇게 믿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성인이 아니니까! 오……. 가여운 것.>

 

 폭발할 것처럼 얼굴을 붉히며 버럭 화를 내던 모디스가 갑자기 돌변하여 눈썹을 늘어뜨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모디스가 소리를 질렀을 때 내가 속으로 한 욕을 안 건가 싶어서 움찔했다. 우리 셋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를 보았다. 그러다 모디스의 시선이 내 쪽으로 고정이 되었다.

 

 <가엽기도 하지.>

 

 나는 눈을 찌푸렸다. 모디스에겐 뭐가 보인 걸까? 하지만 나는 내가 가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디스는 다른 말은 없이 계속해서 나를 보며 가엽다고 말했다. 기분이 이상해지려고 한다. 모디스는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왜 저러지. 영문을 몰라 모디스를 향해 경계심을 더 높였다. 코앞까지 다가온 모디스가 손을 들었다. 나는 내 바지 주머니 속으로 쑥 들어오는 그의 손을 느끼고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야했다. 뭐야!? 펄쩍 뛰며 모디스를 밀쳐내려고 했으나 모디스가 더 빨랐다. 어느새 내 주머니에서 손을 뺀 모디스가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손바닥을 위로 했다. 주먹을 날리려던 걸 멈추고 시선을 내려 쫙 펴진 손바닥을 보자, 모디스의 손에는 새끼손가락만큼 작고, 빨갛고 하얀색이 섞인, 윤기 나는 비닐을 가진 붕어가 숨을 쉬지 못해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왜 내 주머니에…….

 

 당황한 나를 포함한 윤과 티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모디스의 행동에 눈을 굴렸다. 그러다 모디스가 붕어를 올려두고 있는 손을 꽉 쥐었을 때는 그를 말리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다시 그가 손을 폈을 때는 신기하게도 붕어는 사라지고 없었다.

 

 “뭐 한 거예요? 붕어는 어디 갔어요?”

 

 그리고 티아가 붕어를 잡고 있던 모디스의 왼쪽 팔을 잡으며 질문을 퍼부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모디스는 손가락들을 마찰시켜 딱 소리를 내더니 우리들이 볼 수 있도록 커다란 화면을 띄우는 것으로 대신했다. 화면은 바닥 속 안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머리 위에 의문을 띄운 채 조용히 화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모디스가 두 주먹을 쥐었다 살며시 넓게 펴자, 그의 손짓에 따라 화면은 점점 어느 지점을 목표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물고기가 유유히 움직이는 모습일 뿐이라 고개를 갸웃하던 우리는 동시에 모디스가 한 행동을 이해했다. 화면에는 방금 전 그 붕어가 활기차게 헤엄치고 있었으니까.

 

 “신기해요!”

 

 “어떻게 한 거예요?”

 

 윤과 티아가 앞 다퉈 모디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직 어린애인 두 아이는 이런 깜짝 쇼에 홀랑 넘어가 이제 완전히 경계심이 사라진 상태였다. 콘도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얘들을 꿰다니! 못마땅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모디스를 본 나는 조금 흔들렸다. 무뚝뚝한 모디스의 표정이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자상해서. 그는 윤과 티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싶어 했지만 실체가 없는 그의 손은 두 아이의 머리를 통과할 뿐이었다. 모디스는 잠깐 슬퍼하는 듯했으나 상관하지 않고 계속 허공을 쓰다듬었다. 나는 그 곳에 낄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의 모습이 너무도 잘 어울려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너희들이 이제부터 탈 공간이동을 활용한 거 뿐······. 그래서 ‘Le Reve in Healing Island’로 이동할건가?>

 

 쑥스러워하며 묻는 모디스의 말에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티아와 윤의 대답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애초에 권유한 것이 그 녀석들이었기에 뻔했지만 말이다. 가고 싶다는 두 쌍의 사슴 같은 눈망울들은 아주 악독한 살인마라도 멈칫하게 만드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어쩌겠어.

 

 “네.”

 

 일행을 대표해 내가 대답했다.

 

 <그렇군.>

 

 느릿느릿한 말투로 모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해당 팻말이 걸려 있는 문을 활짝 열었다. 열린 문을 통해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이마를 간질였다. 티아와 윤의 머리와 옷도 바람에 영향을 받은 듯 거세게 움직였지만 모디스만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평온하기만 했다. 실체가 아니니까 흔들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모디스가 가이드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당연한 사실인데도. 나는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속은 느낌이었다.

 

 “시원하다! 여기서 어떻게 이동하나요?”

 

 나와는 다르게 티아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마치 이 앞에 보이는 광경이 바닥이 뻥 뚫린 절벽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밭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티아의 태도는 차분했고 조금은 흥분해 있었다. 적어도 잠깐이라도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현재 상황에 혼돈에 빠진 나를 제외하고 세 사람은 이야기꽃을 피워갔다.

 

 <말했다시피······. 그냥 뛰어내려.>

 

 그리고 여전히 모디스는 단호하고 핵심적이었다.

 

 “모디스, 티아는 처음이라고요.”

 

 내 대신에 윤이 모디스를 타박했다. 나는 티아가 작게 “난 괜찮은데”하고 말하는 걸 들었다.

 

 “모디스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음, 티아. 걱정하지 않아도 이 앞에는 보이지 않는 바닥이 마련되어 있어. 그래서 뛰어내린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아. 무서우면 눈을 감고해도 돼.”

 

 티아의 모습을 오해한 윤이 친절하게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티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의 걱정을 받는 건 티아를 수줍게 만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티아의 앞으로 모디스가 다가섰다.

 

 <음, 이 중에서 제일 용감한 아이인데······. 사랑 받고 있구나.>

 

 쭈그려 앉은 모디스는 티아와 시선을 맞추며 흘리듯이 말했다.

 

 “칭찬 고맙습니다.”

 

 티아의 감사 인사에 모디스가 살짝 눈꼬리를 접는다. 그 행동마저 느긋해보였다. 마치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여 나는 또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 사이 윤이 한발 앞서 나갔다.

 

 “제가 먼저 이동할게요! 모두 미스터리 르 레브에서 만나요!”

 

 씩씩하게 외친 윤은 출입증을 모디스에게 보여주고는 그대로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모디스의 말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윤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문 밖으로 거침없이 두 발을 내딛고 있었다. 투명한 타일을 걷는 윤의 얼굴에는 두려움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보급소에서 봐, 윤아!”

 

 윤을 향해 티아가 손을 흔들자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린 윤 역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마주 흔들었다. 이제는 오래 사귄 친한 친구 같네.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적당한 지점에서 멈춘 윤의 주위로 푸른빛이 소용돌이처럼 돌기 시작하더니, 윤을 빛으로 완전히 뒤덮었다. 몇 초 후, 윤과 빛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너희들도······. 출입증 줘. 난 이제 자야해.>

 

 모든 기력을 다 소진한 듯 지친 태도로 모디스는 다시 길게 하품을 해댔다. 한 게 뭐가 있다고. 불만스러운 나와 다르게 티아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모디스를 보다가 그에게 뛰어들었다.

 

 “나중에 또 부를게요! 오늘 고마웠어요, 모디스. 전 티아라고 해요!”

 

 모디스를 껴안으려는 시도는 당연히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티아는 밝은 인사와 함께 이름까지 모디스에게 알려주었다. 어차피 이름쯤이야 모디스에게는 눈을 깜박이는 것보다도 빠르게 알아볼 수 있을 테지만. 왠지 나 역시도 그러고 싶어졌다.

 

 “고마웠어요. 전 크리스예요.”

 

 나와 티아의 진심어린 인사에 모디스는 마치 자랑스럽다는 묘한 표정으로 우릴 보다가 다시 졸린 눈으로 돌아와서는 느릿한 말투로 출입증을 요구했다. 그의 눈은 시종일관 삼분의 일정도가 잠겨 있었다. 그런 모디스를 보며 작게 웃은 티아가 먼저 출입증이 등록된 왼쪽 손목을 보여주었고, 모디스는 살며시 티아의 손목을 잡았다. 손과 손 사이에 빈공간이 눈으로 보였다. 곧 모디스의 입에서 처음으로 <허가되었습니다.> 라고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히.>

 

 모디스가 우아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잘 지내세요, 모디스!”

 

 상큼하게 모디스에게 손을 흔든 티아도 곧 윤처럼 하얀 빛 무리의 휩싸였다. 하늘을 수놓는 빛의 잔해를 향해 나는 허공에 발을 내딛었다. 바깥에서 본 하늘은 더욱 푸르렀고, 나의 푸른 눈동자에도 구름처럼 흰색 빛 무리가 비춰진다. 전송이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름답고 시원하고 또 찬란하다. 그게 내가 이 하늘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였다.

 

 <조심해······. 또 ……자.>

 

 완전히 빛 무리의 갇혀 사라지기 전에 나는 모디스가 작게 속삭이는 말을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모디스의 말은 도중에 삭제된 것처럼 비어있었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눈이 흔들렸다. 오늘 그 말을 두 번이나 들었어요, 뭐를 조심하라는 거죠? 묻고 싶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게도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약간의 어지러움을 동반한 상태로 머리가 흔들리는 건지, 시야가 흔들리는 건지 알 수 없어졌다. 동시에 모디스의 형체 또한 여러 가지 색의 물감을 물에 푼 것처럼 뒤섞였다. 오늘 하루 종일 운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았다. 덕분에 변비에 걸린 것 마냥 기분은 아주 무겁고 찜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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