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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잃어버린 자들
작가 : 라하비
작품등록일 : 2019.7.15


'록 바이러스(Lock Virus)'라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1부 시계 도시 中>

“오빠.”

잠시 침묵한 티아가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응?”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티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혹여나 안가겠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불안했다.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드러난 것일까. 티아가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 내일 갈 거야.”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부탁? 뭔데?”

티아가 싱긋 웃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안심이 들기는커녕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빼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행하기도 전에 티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게 먼저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거야. 내일 추첨 용지 넣을 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안 돼.”

나는 다급하게 티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싫어. 공포와 경악으로 몸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물며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악바리처럼 악쓰고 티아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나는 티아의 손 안에 갇혀있던 내 손을 빼고 어두운 눈빛으로 티아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안 돼”

널 잃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티아를 노려보았다.

“알아.”

무엇을 아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티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록 바이러스에 걸린 걸 토큰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나 알아, 오빠.”

티아의 눈에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
.
<중략>
.
.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 혹시라도”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른 티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가야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나로 살고 나로 죽고 싶어.”


 
10화 Aquarium
작성일 : 19-08-12 12:45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1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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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이동 수족관)

 

 

 모든 광장은 탑승과 귀환으로 분리되며 서로 이동 수족관에 흐르는 물의 이동 방향은 정반대였다. 여기서 반대쪽은 보이지 않고 보급소에서 돌아올 때에야 볼 수 있을 테지만 차이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동 수족관을 올려다보았다. 오염한 점 없는 바닷물로 채워진 수족관은 그 자체로도 빛을 받아 아름다웠지만······.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수서생물들의 화려함 또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눈과 발을 묶는 중요 요소였다. 이동 수족관의 크기 또한 어마어마했다. 일단 무인 정거장을 이루는 중심축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길이가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통로 구조로 되어 있는 이동 수족관의 둘레는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성인 10명이 나란히 손을 잡고 서 있어도 넉넉할 정도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안에 있는 물고기들, 죽은 거 아니지?”

 “음?"

 멍하니 하나의 미술품을 감상하듯 넋을 놓고 있다가 갑작스레 현실로 돌아왔다. 티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껌벅이며 티아가 바라보고 있는 수족관 안을 자세히 보려 눈에 힘을 주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나서야 티아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나와는 다르게 티아에게는 모든 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기에 생기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티아의 질문에 빠르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했다. 왜 놀랐는지, 무서워하는지 그럴만하다고 생각해버리니까.

 수족관 안에는 꽤 다양한 수서생물이 살고 있었다. 물개, 돌고래 등의 수서포유류와 거북, 뱀 등의 파충류부터 시작해서 양서류, 갑각류, 해삼 등의 극피동물까지 그 범위가 실로 광범위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딘가 모르게 조화를 생각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잡아넣은 듯 인위적인 느낌도 들었다. 티아의 의문도 아마 거기에서부터 시작했을 거다. 이곳의 수족관은 같은 곳에서 살지 못하는 종들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 중에서는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 종도 분명 있었다. 예를 들면 상어 같은······. 만약 상어를 사람들이 건드린다면? 티아는 떠올렸을 것이다. 나와 함께 봤던 상어가 주인공인 영화 시리즈를.

 내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똑똑한 티아라면 영화들과 다른 점을 눈치 챘겠지. 오래 걸리지도 않았을 거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호기심에 건드리거나 만져도, 위협 생물은 마치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얌전하기만 한 걸 봤을 테니까. 그리고 이 점이 바로 티아로 하여금 무서운 상상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대답을 해주려고 하다가 티아의 귓불이 빨개진 것을 발견했다. 아, 그러고 보니 방금 말 놨네? 지금껏 대화를 할 때마다 윤을 의식한 탓에 존댓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방금은 아니었다. 말하고 나서 자신의 말투가 편해진 것을 티아가 깨달았기에 귀가 빨개진 게 틀림없었다. 어휴, 어쩔 수 없다니까. 뭐, 이렇게 친해지는 거겠지.

 나는 큰 일(?)을 해낸 티아에게 잘 했다는 의미로 머리를 토닥였다. 그러자 티아의 왼쪽 눈썹이 위로 쓱 올라가며 표정으로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쑥스러워하기는. 그리고 둔한 윤은 아직 못 알아 챈 건지 별 변화가 없어 보였다. 흠,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굳이 티아가 한 행동에 대한 힌트를 윤에게 주지는 않았다. 별 의미는 없었다.

 “죽은 건 아니야.”

 “형 말이 맞아. 관상용이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아예 그 가능성을 없애버린 거야.”

 내가 할 설명을 가로챈 윤을 나는 대견하게 쳐다보았다. 제법인데. 윤도 알아챈 듯 말투를 놓기 위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노력하고 있었다. 그냥 친해지고 싶으면 그렇다고 하면 좋을 텐데. 둘 다 너무 쑥스러움이 많았다. 그런데 귀여운 감정만 들어야 하는데 나는 왜 동시에 이중적인 감정이 고개를 드는 걸까. 두 애들이 수줍어하면서도 친해지려는 모습은 흡족했다. 하지만 동시에 윤을 경계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정말 중증이다. 순수하게 바라보자고 마음을 다잡지만 이게 꽤 쉽지가 않았다. 오버해서 말하자면······. 지금 내 심정은 딸을 빼앗기는 것 같은 아빠의 쓰라린 심경 상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우리 몸에 한 것처럼 칩을 심은 거야. 그리고 조종하는 거지.”

 나는 윤이 두루뭉술하게 설명한 것을 더 자세하게 말해주다가 이야기도중에 윤과 시선이 마주쳤다. 윤의 눈빛은 마치, 나를 책망하고 있는 거 같이 보였다.

 “잔인해. 그럼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는 거야?”

 굳은 얼굴로 침을 삼킨 티아가 말을 더듬었다. 아, 이건 예상 못했는데. 왜 윤이 나를 그렇게 봤는지 이해했다. 티아의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거다. 윤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이런,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라 나는 당황했다. 티아의 얼굴이 급속도로 창백해져갔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어. 나와 윤의 태도가 티아에게 하여금 또 어떤 상상을 불러일으켰을지 두려워졌다. 아직은 아니야. 그런 생각에 나는 화급히 대꾸했다.

 “그럴 일은 없어, 티아. 플램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절대 그러지 않아.”

 “정말?”

 아직도 무서운 얼굴이었다. 나는 티아가 더 험한 상상을 하기 전에 품에 넣고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어깨너머로 보이는 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빨리 너도 뭔가 말해! 내 말이 옳다고 말하라고! 입이 바싹 말라갔다. 둔한 윤이 내 신호를 알아채지 못해서 더 초조해졌다. 둔탱아! 나는 티아의 어깨를 토닥여 달래면서 계속해서 윤에게 눈치를 주었다. 2번 더 신호를 주었을 때, 드디어 윤이 알아듣고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휴, 드디어 알아채줘서 고맙다. 빠릿빠릿한 것 같다가도 이럴 땐 또 곰 같다니깐.

 “정말이야. 나도 한때 우리 누나한테 물어봤었는데, 크리스 형이랑 똑같이 말해줬어.”

 어? 누나가 있었단 말이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절로 고개가 윤에게로 돌아갔다.

 “그렇구나. 응! 고마워.”

 티아의 떨림이 서서히 멈추는 게 느껴졌다. 작은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이 조금 전보다 한결 나아 보였다. 반대로 이번에는 내가 멍해질 차례였다. 윤에게 누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안 게 충격이었다. 가급적 서로 본인의 사생활을 말하는 편이 아니라 당연한 건데도. 내 무심함에 놀랐다. 그동안 서로에 대해 너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왠지 그동안의 윤의 행동으로 보아 나와 비슷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동변상련을 느끼다니. 언젠가 한번 만나보고 싶다. 궁금하기도 하고. 윤 또한 티아처럼 두 사람이서 살고 있는 건 분명했으니까. 육아(?)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랑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윤을 보급소로 혼자 보내기로 결심했을 때, 괜찮았는지 묻고 싶기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언제 기회를 봐서 다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내 품에 안겨있던 티아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가볍게 떼어내고 얼굴을 살폈다.

 “응. 미안, 나 때문에 시간 더 늦어졌지.”

 고개를 숙인 티아의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사람도 없고 괜찮아. 그렇죠, 형?”

 내가 티아를 안심을 시켜줄 행동을 하기도 전에 윤이 내 말을 또 가로챘다.

 “응? 응. 윤 말이 맞아.”

 달래줄 타이밍을 놓친 나는 분위기상 윤에 말에 반사적으로 동의했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니었고, 동의한 거에 대해서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윤이 티아를 너무 챙기는데······. 다만 시도 때도 없이 아빠의 심정에 동화되는 것 때문에 불편해졌을 뿐이다. 잡생각을 지우기 위해 눈을 감았다 떴다. 의심을 품을 만큼 오래 감고 있지는 않았기에 두 사람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나는 티아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럼 이동 수족관을 타기 전에 방법부터 알려줄게. 광장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탑승과 귀환으로 나뉘어져 있어. 우리는 지금 탑승 아쿠아리움 편에 있고. 여기까지는 알고 있지?”

 방법을 설명하기 전에 기초부터 다시 설명하자 티아가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탑승 방법은 제자리에서 이동 수족관으로 이동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좌표와 함께 이동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돼.”

 또 티아를 놀리려는 의도가 살짝 들어가 버렸다.

 “말도 안 돼.”

 1초의 망설임 없이 바로 부정하는 말을 내뱉는 티아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그럴 줄 알았어.

 “우리 누나랑 똑같네요, 형. 너무 동생을 놀리면 티아가 화낼지도 몰라요.”

 웃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눌리고 말았다.

 “음, 알았어.”

 “역시. 오빠 그러다 양치기 소년이 되도 난 몰라.”

 “아니.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데.”

 “그건 형 말이 맞아.”

 “그래?”

 왠지 윤이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거 같은데. 알고 보면 제일 강적은 윤일지도 몰라.

 “이제 장난은 그만하고, 윤아 네가 시범 좀 보여줄래?”

 말로하기보다는 행동이지.

 “상관없어요. 제가 먼저 출발할게요.”

 어깨를 으쓱이며 윤은 흔쾌히 내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래줄래? 아무래도 티아는 직접 보여줘야 믿을 것 같네. 아야! 왜?”

 티아가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격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갔다. 얼마나 힘껏 찔렀는지 옆구리가 아픔을 넘어 욱신거리기까지 했다. 도저히 멀쩡한 척하기엔 무리라 찔린 옆구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눈으로 이유를 추중하자 티아가 불만스럽게 나를 흘겨보기까지 했다. 어라?

 “입 좀 다물어주지? 하는 거 직접 봐야 된다며?”

 게다가 속삭이며 한 말은 윤에게는 안 들릴 정도로 작고 작았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 반, 배신감 반을 느끼며 티아를 내려다봤다. 지금 윤 앞에서 체면 구기게 만들었다고 하나뿐인 오빠를 친 건 아니겠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티아의 얼굴을 보자 그 믿음은 처절하게 깨져버렸다. 슬픈 예감은 꼭 틀리지 않더라니. 티아의 얼굴은 분노와 창피함으로 조금 붉어져 있었다.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못마땅한 마음에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유치하다는 건 알지만 기분이 상한 걸 어쩌라고.

 내가 누구 때문에 마음이 상한지도 모르고 윤은 지금 나랑 티아가 보이는 행동들이 우애 좋은 남매라고 여기는 듯 해맑기만 했다. 물론 좋은 놈이기는 하지만……. 소개 시켜 주는 게 아니었어.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 쪼잔 해 보여. 내 스스로 하는 생각이 민망해 손에 고개를 묻었다. 게다가 그들은 내 상태는 무시한 채 윤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고, 티아의 시선은 그런 윤을 쫒고 있었다. 서럽네, 정말.

 여전히 나를 무시하고서 윤은 수족관 아래에 있는 여러 개의 문 중 한 곳 앞에 가 섰다. 그리곤 문 위에 써져있는 숫자와 이름을 읊었다.

 “WC-S19 21,567번째 돌핀에서의 이동 요청.”

 윤이 부른 명칭들이 사라지며 그 대신에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어떤 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은색의 선은 둥글게 휘어지기도 하고 날카롭게 각지기도 하면서 하나의 문양을 만들어 냈다. ‘생명’과 ‘보호’를 의미하는 토큰의 문양. 완벽하게 하나의 문양이 완성되자 서서히 약해진 빛과 함께 문이 투명해지더니 사라졌다.

 “형! 그럼 탑승장에서 봐요. 티아! 너도!”

 그가 웃으며 제법 친근하게 티아에게도 말을 걸었다.

 “그래, 너도 조심히 가고. 얼른 가.”

 빨리 가. 나는 손에 힘을 실어 윤의 어깨를 두드렸다. 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나는 다정함을 가정하여 “어서가” 라고 한마디 더 덧붙일 뿐이었다. 내 말에 윤은 어설프게 웃어 보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사라졌던 문이 다시 생겨나며 <운행 중> 표시로 바뀌었고, 윤은 어느새 수족관속에서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말까지 더듬는 걸 보며 속으로 웃음을 삼킨 나는 티아의 머리 위에 내 손을 턱하고 얹었다.

 “저 안에서 수족관까지는 1초도 안 걸릴걸.”

 대충 설명을 해주는 걸로는 티아를 이해시키지 못한 듯 티아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난 숨 참는 거 못하는데.”

 결국 웃음이 터진 나는 티아에게 윤의 머리를 보라고 말했다.

 “뭘 보라는 거야? 윤은 숨을 잘 참나봐!”

 순진한 동생이 걱정되기도 하고 이 상황이 재미있기도 한 나는 나쁜 오빠인가.

 “쿡. 티아, 내가 알기로 윤은 잘 못해. 게다가 탑승장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30분은 족히 걸릴 텐데. 그 정도로 숨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윤의 옷은 물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지만 머리카락은 어때? 잘 봐봐.”

 투명한 수족관 너머의 윤을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 티아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산소통 같은 거야. 나는 에어 헬멧이라고 불러. 어찌됐든 우리가 물고기가 아닌 이상에야 물속에서 숨을 쉬는 건 불가능하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오늘 하루 티아한테 너무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데······. 약간 기분이 울적해진다.

 “콘을 투명모드로 했을 때를 생각해봐.”

 “으음.”

 “아니면 어차피 곧 너도 해볼 테니까. 그때 가서 확인해보던가.”

 오빠 말이 틀렸는지 아닌지. 입을 삐죽이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티를 냈음에도 티아의 시선은 여전히 윤에게 박혀있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주고, 말해줘도 걱정을 풀지 않을 모양새라 윤이 뭔가 행동으로 보여주길 기다렸다. 마침내 걱정 말라는 듯 밝게 웃고만 있는 윤을 보고 마음이 놓인 티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응. 그런 모양이야. 그리고 어떻게 돼?”

 이동 수족관을 타는 것조차도 온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는 티아를 보며 내가 더 걱정이 되었다. 자세히 이야기해주면 좀 괜찮을까?

 “그대로 물에 흐름에 따라 이동하게 돼. 탑승장까지는 일직선으로 가니까 위험한 것도 없어.”

 더 설명을 해야 할까? 나는 티아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그렇구나.”

 덤덤히 말하는 티아의 눈을 보고서야 나는 걱정을 내려놓았다. 이제 티아의 마음에는 호기심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래야 내 동생이지. 안전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윤아, 고맙다. 나는 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함을 전했다. 그리고 티아를 위해 담담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설명을 이어갔다. 티아는 윤이 이동 수족관의 물살에 따라 옆으로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설명에 간간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제 두려움과 불신감이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 하게 될 경험들이 그 불안을 완전히 잠재워 줄 터였다.

 얼마 안 있어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던 윤은 시야 밖으로 사라져갔다. 끝까지 그 모습을 응시하던 나는 티아에게 말했다.

 “우리 가기 전에 한 가지만 약속하자.”

 그러고 나서 티아 앞에 양 손을 모두 펴 내밀었다.

 “뭔데?”

 티아가 활짝 펴진 내 두 손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물고기, 조개, 돌고래, 불가사리······.”

 나는 펼친 손가락을 접었다 펴는 걸 반복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안전한 것들을 나열했다.

 “해초, 오징어는 만져도 되지만 절대 이빨이 무시무시한 상어나 전기를 내뿜는 뱀장어 그리고 해파리 같이 위험한 건 만지지 마. 약속할 수 있지?”

 모든 종류들을 더듬지 않고 다 나열한 나는 티아에게 새끼손가락만을 접지 않고 내밀었다. 올 때마다 궁금해서 찾아본다는 게 이미 외어버리는 수준까지 와버렸구나. 솔직히 말하면서도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수십 종의 이름들을 줄줄이 들은 티아는 일단 고개는 끄덕였으나 분명 자기가 들은 삼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근데, 왜?”

 질문 쟁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알았다고 해놓고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 티아에게 나는 너그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만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물론 해가 되지 않게 설정되어있고, 한 번도 뭔 일이 생긴 적은 없지만 혹시 모르잖아. 조금 전 상황도 그렇고.”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첫 출발부터 삐걱거리는 걸 봤으니까.

 “알겠어. 오빠가 위험하다고 한건 안 만질게.”

 안심하려는 찰나 티아의 혼잣말이 들렸다.

 “근데 뭐였지?”

 결국 나는 티아에게서 두 번의 다짐을 더 듣고,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나서야 티아를 보낼 수 있었다. 위에는 윤이 무사히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위에서 봐!”

 두 손을 입에 모아 입가에 대곤 소리쳤다. 소리가 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컸으나 눈치 빠른 티아는 용케 알아채고서 나를 향해 두 손을 열렬히 흔들었다. 티아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도 나는 티아의 머리 쪽을 유심히 살폈다. 에어 헬멧이 잘 씌워진 모양이야. 그제야 몸에 들어간 힘이 완전히 빠졌다. 내게서 멀어져 가는 티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티아는 신이 난 상태였다. 지나가는 물고기들을 잡으려 시도하다가 실패하기도 했고, 앞에 있는 새끼 돌고래에게 다가가 매끄러운 피부를 만져보기도 하면서 이동하고 있었다. 가면서도 물살이 너무 빠르다며 아쉬워할게 눈에 선했다. 잔뜩 아쉬운 표정을 지을 티아를 떠올렸다.

 “나도 이제 올라가 봐야겠다.”

 나 역시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자, 그럼 즐겨볼까? 티아는 곧 있으면 윤을 만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WC-S19 21,567번째 돌핀에서의 이동 요청.”

 윤과 티아때처럼 정해진 문구를 말하자 문에서 빛이란 형태의 붓이 문양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은색 빛으로만 만들어지는 토큰의 상징은 은은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왜 티아가 바로 안 들어가고 한참 서있었는지 알겠네. 빛과 함께 타일의 두께 역시 희미해지며 완전히 사라졌다.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다시 생겨났다. 내 앞에는 철로 된 문으로 막혀 있었고 누가도면 갇혀 있는 모양새일 것이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들어가기 전에 한번 크게 숨을 쉬는 게 버릇이었다.

 <곧 이동이 시작됩니다. 안전을 위해 수족관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보호 큐브 안에 들어가게 되며 움직일 수 없습니다. 당황하지 마시고 10초 정도만 참아주세요.>

 안내 방송이 나오고 나는 손을 늘어뜨리고 최대한 몸에 힘을 뺐다. 곧이어 안마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압박이 느껴졌다. 붕어빵을 만드는 틀처럼 크리스 로만이라는 사람을 이루는 틀 안에 갇힌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도 익숙해지면 나름 편하다.

 <문이 열립니다. 약간의 충격이 있으므로 주의해주세요.>

 움직일 수도 없는데 주위를 줘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와 씨. 깜짝이야.”

 어느새 나는 수족관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익숙해졌다고 방금 생각한 게 무색하게도 이것만큼은……. 매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라 오늘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안쪽에 하나 더 마련되어 있던 문과 철문이 동시에 열린다 싶더니 내 온몸을 꽉 잡고 당기는데, 롤러코스터를 타고 맨 꼭대기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상한 부분은 없고. 정상 작동 된 거 같네.”

 턱 바로 밑에서 느껴지는 압박과 보이지는 않지만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에어 헬멧은 투명 모드나 다름없어서 수족관을 구경하는데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눈앞의 풍경에 매료되고 있었다. 생물이 살아있다는 증거로 가득한 바다 속은 신비로웠고 다채로운 색들은 어색하지 않게 주변에 어우러져 있었다. 문득 냄새를 맡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가 욕조 물을 실수로 마셨을 때 느꼈던 그 따끔한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아서 금방 포기했다. 냄새는 맡지도 못하고 고통만 겪는 일은 사양이었다.

 “아.”

 내 피부를 스쳐지나가는 생물의 매끄러운 감촉에 한순간 마음을 빼앗긴다. 팔뚝만한, 등이 푸르른 고등어가 내 왼쪽 옆구리를 여유롭게 스쳐지나갔고, 짙푸른 색의 해초는 물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하늘의 색처럼 영롱하게 빛을 내뿜으며 하늘하늘 움직이는 해파리를 보고는 생각하는 것마저도 멈추고 바라보았다. 오로지 감각에 모든 걸 집중했다. 보이는 생물들과 그 움직임들이 나를 바보처럼 만들었고 그들에게 빠져들게 했다. 이 속은 하나의 미술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티아한테 뭐라고 할 자격이 없네. 나도 똑같잖아. 이것저것 만져보던 동생의 모습과 현재 내 모습을 매칭 시키며 작게 웃었다. 동생과 똑같이 지나치던 돌고래의 유선형 몸매를 따라 매끈한 피부를 만지고, 손으로 아프지 않게 껴안았다. 돌고래에 매달려 이동하면서 멀리서 다가오던 돌고래가 수족관 밖으로 빠져나가 물을 내뿜으며 숨을 쉬는 것을 지켜보았다. 실수로 보지 못한 해파리와 팔뚝이 닿지만 아프지 않았다. 이런 것도 조종할 수 있는 건가. 작게 든 의문은 거품처럼 분해되어 사라진다. 깊이 들어가면 위험해. 여기서 살면서 생각하면 안 되는 그런, 불순한 어떤 것들 중 하나니까.

 떠올리지 않기 위해 나는 떠다니는 해파리를 손 안에 살짝 가두고, 내 손 안에 작은 빛을 품었다. 역시나 아프지 않다. 오빠가 되서 티아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다짐했던 마음이 흔들릴 만큼 이곳은 매혹적이었다. 때마침 시험처럼 회색 등과 흰색 배를 가진, 원뿔형의 주둥이를 가진 백상아리가 나를 지나쳐 앞으로 이동했다. 상어는 주위에 잡아먹을 수 있는 물고기가 많았음에도 입을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로 물고기들을 취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무 깊게 생각하면 안 돼. 유혹에 삼켜지기 전에 의문이 먼저 나를 잡았다. 고개를 저어 단호히 생각을 멈추었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황홀감은 반으로 줄었다. 나는 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수족관을 즐기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재미있는 시간은 눈 한번 깜박이는 속도로 지나가버리고,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서 오징어와 먹물을 뿜어내는 문어가 서로 기 싸움을 하며 빨판 달린 다리들을 서로 엉키며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거대한 문이 있는 것이 보였으니까. 벌써? 거대한 이동 수족관이 벌써 아쉬워졌다. 저 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목적지에 도착한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안타깝게도 탑승자가 원한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구조가 아니므로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생물들이 지나가지 못하는 문을 막힘없이 통과해 지나쳤다. 그곳은 최종 구간이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구간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장난처럼 건조기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곳은 정말로 하는 역할이 건조시키는 일이었다. 때문에 나는 천천히 젖어 있던 내 머리카락과 옷 등에서 물방울이 생겨나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바닷물이 스스로 분리되며 방울진 형태가 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에게서 벗어난 물방울은 허공에서 시간을 빼앗겨 멈춰버렸다. 나는 손가락으로 물방울 하나를 들어 입술에 대고 혀로 맛을 보았다. 당연하게도 짰다.

 건조기 안에는 비가 멈춰있는 것처럼 수많은 물방울들이 허공에 퍼져 있었고 나는 물방울 감옥에 갇혔다. 모두 내 옷과 피부에 스며들어있던 수분이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제외하고서 모든 수분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또한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춘 물방울들은 ‘나’라는 존재와 닿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내가 들어왔던 첫 번째 문으로 소나기처럼 후두둑 떨어졌고 곧바로 흡수되어버렸다. 쥐어 짜이는 방식이 아니라 수분을 분리해내는 간단한 건조 기능이 끝나자 다시 내 몸은 무언가에 떠밀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문 역시 물의 거울을 통과하는 것처럼 매끄럽게 지나쳤다. 이 반대편은 WC-S19 최고층인 탑승장일 것이다. 나는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온 것 마냥 천연덕스럽게 바닥에 서 있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태연하게, 의례하는 절차처럼 몸을 더듬으며 상태를 확인했다. 건조기를 거쳐서 그런지 내 행색은 물 한방을 젖어있지 않은 뽀송뽀송한 상태였다. 방금 전까지 바닷물에 푹 잠겨있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하게.

 

 

 
작가의 말
 

 해당편은 금요일 분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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