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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사라진 가족
작가 : 장군12
작품등록일 : 2019.8.7

14년 전 발생한 일가족 실종 사건을 한 주간지 기자가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다룬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
서로를 파괴하며 처참하게 무너진 가족의 사연과 경찰이 숨긴 진실의 조각.
사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모든 일을 백일하에 드러내려는 이들의 숨막히는 대결로 치닫는데……

 
3. 2016년 3월 7일
작성일 : 19-08-08 18:08     조회 : 255     추천 : 1     분량 : 9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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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6년 3월 7일

 

  재우는 심호흡을 했다.

  "2002년 봄, 성남에서 일가족이 사라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며칠 전 사라진 부인의 언니가 찾아왔습니다. 언니의 제보를 토대로 실종 14년이 되는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기사를 썼으면 합니다."

  회의 자료를 넘기던 강정훈 차장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사건 5년, 10년 됐을 때 여러 군데서 기사 썼잖아. 방송에도 몇 번 나왔고. 그 때보다 상황이 진전된 게 있나?"

  편집회의에서 의견을 내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입사 21년차인 강 차장은 후배가 발제한 아이디어에 딴지를 거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웠지만 필요한 일이긴 했다. 이번 질문은 다행히 예상 범위에 있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사건 자체에는 별 진전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한꺼번에 사라져 이렇게 오래 생사확인도 안 된 건 아주 드문 일입니다. 예전 개구리 소년 사건 때는 11년 만에 유골이라도 나왔죠. 하지만 이 건은 생사 자체가 불분명합니다. 당시 상황과 수사 내용, 주변의 증언을 취재해 기사화하면 읽을거리는 충분히 될 겁니다."

  재우는 잠깐 멈췄다가 강 차장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건 당시 첫 보도를 주간시사에서 했습니다. 언니는 지금까지도 그 사실을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한 번 더 기사를 통해 공론화시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반론은 없었다. 다들 그만 회의를 빨리 끝냈으면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평소 과묵한 유 편집장이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만약 사건이라고 해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거 아닌가. 기사를 쓴다고 경찰이 움직이겠냐는 말이야."

  이번에는 강 차장이 재우 편을 들었다.

  "작년에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됐잖아요. 2000년 이후 일어난 사건이 대상이니 이 건에도 적용됩니다. 문제는 단서죠. 범죄 혐의가 있으면 경찰도 움직일 겁니다."

  유 편집장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잘 취재해 봐. 제대로 만들어 오면 지면 충분히 줄게."

  재우는 일단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안도 반 걱정 반이었다. 일단 기사를 쓸 수 있게 된 건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범죄 혐의를 밝혀낼 새로운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까. 다른 업무를 면제해 준다는 말도 없었다. 기존에 취재하던 아이템과 외부 원고 정리 등을 병행하면서 취재할 수밖에 없었다.

  회의실에서 나온 재우는 강 차장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 감사합니다. 공소시효는 미처 생각 못 했거든요."

  강 차장은 느긋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그래, 필요하면 도와줄 테니 잘 취재해 봐."

  평범한 말이지만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사실 회의시간에 말하지 않았지만 2002년에 이 사건을 처음 기사화한 기자가 강 차장이었다. 이후에도 두 번 후속 기사를 썼다. 강은정이 재우를 찾아온 것도 강 차장이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진행 중인 취재가 있어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 그럼 잘 부탁할게." 재우에게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왜 회의시간에 그런 질문을 하며 딴청을 부린 걸까. 재우는 물어보고 싶은 말을 삼키고 책상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으려 나가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머니였다.

  "재우니, 밥은 먹었니?"

  어머니의 전화 첫 인사는 매번 같았다.

  "이제 회사 사람들하고 먹으러 가려고요."

  "그렇구나."

  미적거리던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어제 형이 왔다. 굳이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한 달 정도 있을 모양이야. 시간 나면 한 번 들러라."

  "그럴게요. 나중에 전화드릴게요."

  "그래, 건강 잘 챙겨라."

  재우는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머니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먼저 의례적인 인사를 한 다음 어머니가 한두 마디 본론을 얘기하고 어색하게 끝났다. 재우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가도 망설이고 주저하다 타이밍을 놓치곤 했다. 그건 어머니가 재우와의 대화가 조금만 길어지면 불편한 기색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재우보다 세 살 많은 형은 전국을 떠돌며 일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재우도 정확히 몰랐다. 언젠가는 양계장에서 일했다고 했고, 한 번은 배를 탔다고 했다. 자동차 부품공장에서도 일했고, 보수공사 일도 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오래가지 않았다.

  집에는 일년에 두어 번 왔다. 명절과 관계없이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갔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생활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제멋대로인 삶이었다.

  집에 오면 점심 무렵까지 실컷 자고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어머니가 일하러 가기 전 차려놓은 밥을 먹었다. 저녁에는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났다. 술을 마시고 집에 와 다음 날 늦게까지 잤다. 시간이 남으면 사우나에 가거나 컴퓨터로 만화나 무협지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그렇게 보름이고 한 달이고 죽치고 있다 다시 집을 떠났다.

  올해 서른 셋.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정착할 생각은 전혀 없는 듯 했다.

  "이제 슬슬 자리 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 재우가 에둘러 물어도 응, 그러게 하고 말았다.

 재우는 지난해 가을 집에 들렀던 형의 모습을 떠 올렸다. 삐쩍 마른 체구에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낯설었다. 재우가 알던 형이 아닌 것 같았다. 외모만 그런 게 아니었다. 형은 언젠가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버렸다.

 

  어린시절 형은 공부를 잘했고, 스포츠에도 재능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학교 대표로 달리기 대회에 나갔다. 1600m 계주였다. 선수 한 명이 갑자기 펑크를 내자 육상부 코치가 부모님에게 매달렸다. 결국 형은 육상부도 아니면서 이례적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지역예선에서 떨어져 전국대회까진 못 갔지만, 형의 기록은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 동안 술만 마시면 그 얘기를 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형에게 운동을 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반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었다. 학급 반장도 도맡았다. 6학년 때는 전교회장 선거에 나갔다. 아쉽게 떨어졌지만 당선자를 위협할 정도의 표를 얻었다.

  재우는 형과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처음 입학했을 때 4학년이던 형은 그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언젠가부터 손은 놨지만 등교는 늘 함께였다. 옆에서 성큼성큼 걸으며 발길을 재촉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선명했다. 형이 고학년이 되자 조숙한 여자아이들은 ‘재석 오빠에게 전해달라’며 사탕 같은 걸 주곤 했다. 남자아이들은 재우가 구석에서 책만 읽어도 귀찮게 하지 않았다.

  형은 중학교 배치고사에서 전교 20등 안에 들었다. 한 학년이 500명 이상이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입학 직후 형을 특목고 대비 학원에 보냈다. 외국어고나 과학고에 보내 앞으로 판사나 의사를 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통신 공기업 지사에서 부장으로 일하던 아버지로서는 나름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런데 형이 중학교에 입학한 해 겨울에 외환위기 사태가 터졌다. 아버지가 일하던 공기업은 민영화 대상으로 거론됐다. 아버지는 식탁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형과 재우는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결혼 후 줄곧 주부로 살던 어머니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희는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명예퇴직 압력을 받던 아버지는 형이 중3에 올라가기 직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나왔다. 아버지는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투자해 대학 동창과 무역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집에 가져오는 돈은 거의 없었다. 집안은 급격히 어려워졌다. 형과 재우의 용돈도 끊겼다.

  형은 더 이상 특목고 대비 학원을 다닐 수 없게 됐다. 처음에는 단과 학원을 다니면서 어떻게든 목표를 붙잡고 있으려 했다. 하지만 특목고 수업료가 대학 등록금만큼 비싸다는 걸 알고 나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성적은 점차 하향곡선을 그렸다.

  형은 성적 얘기가 나오면 신경질을 냈다.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잖아. 참견 마세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그늘진 표정으로 자리를 피했다. 이듬해 형은 일반고에 들어갔고, 재우는 형이 졸업한 중학교에 입학했다.

  어머니는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러 식당에 나갔다. 주방 일을 마치고 매일 밤늦게 귀가했다. 집에 오면 퉁퉁 부은 다리에 직접 침을 놓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 역시 집에 일찍 오는 날이 거의 없었다. 매일 같이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다.

  재우는 냉장고를 뒤져 혼자 저녁을 해 먹었다. 식사 후엔 책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했다. 형은 친구들과 만난다며 밖으로 돌았다. 집에는 열 시가 넘어서야 왔다.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지 않는 날이 이어졌다. 형의 성적은 중간 이하로 떨어졌다.

  오랜만에 일찍 들어온 아버지가 잔소리를 한 날 형은 집을 나갔다. 이틀 만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매를 들었다. 회초리가 부러질 때까지 때렸지만 형은 끝내 어디에 있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악다구니를 썼다.

  "왜 나한테 그러는데! 나만 잘못했고, 나만 문제냐고!"

  어머니는 아직 식당에서 돌아오기 전이었다. 재우는 숨죽인 채 아버지와 형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그날 밤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아슬아슬 이어지던 아버지의 사업은 삼년 만에 막을 내렸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대학동창은 남은 돈을 갖고 해외로 도피했다. 아버지는 나이 쉰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신용카드 한 장 마음대로 못 만드는 처지였다.

  고3이었던 형은 대학에 안 가고 돈을 벌겠다고 선언했다. 집안 사정은 누가 봐도 그럴 만했다. 서울시내 아파트에 살던 재우네 가족은 두 번의 이사를 거쳐 외곽도시 빌라 반지하에 살았다. 좌변기도 없어 쪼그려 앉아 볼일을 봐야 하는 오래된 집. 비가 오면 바닥이 잠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버지는 형의 말을 듣고 한 마디 뿐이었다. 그렇구나. 예상 외로 어머니가 강하게 반대했다. "한국에서 대학은 나와야 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등록금은 걱정마라." 어머니는 숨겨놨던 통장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고졸이었다. 자식만은 대졸을 만들겠다는 고집에 형도 손을 들었다. 결국 중간 이하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수도권 대학에 원서를 썼다.

  입학 후엔 친구와 학교 근처에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몇 개나 했다. 방학 때는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재우도 대학에 가야지." 형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곤 했다. 그러게, 고등학생이 된 재우는 대학생 두 명분의 등록금을 생각하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문제는 아버지였다.

  "사업이 생각대로 안 돼 너희들에게 면목이 없구나. 그래도 인맥이 남아 있으니 끝난 건 아니란다. 어떻게든 다시 해볼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신용불량의 중년 남자가 뭔가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일자리 찾기에 실패한 아버지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출근하면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며 세상을 원망했다.

  재우는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집에 있는 대신 제일 싼 독서실에 처박혔다. 학원을 안 가는 시간에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라도 현실을 벗어나야 버틸 수 있었다. 이사를 거듭한 터라 친구도 없었다. 학교 성적은 중간 이상은 됐다. 그 이상 욕심낼 생각도 없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기 위해 몇 번이나 어머니 지갑에 손을 댔다. 어머니가 퇴근할 때 술집에 있던 아버지를 데려오는 일이 잦아졌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며 새 출발을 약속했다.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근무 시간에 술을 마신 게 문제였다. 두 번 적발된 후 반년을 못 채우고 그만뒀다. 이후 공장 경비, 나라시 택시, 대리운전 등을 전전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오래 가지 못했다.

  재우는 서울시내 대학에 진학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중증 알코올 중독자가 돼 있었다. 형은 군대에 있어 상황의 심각성을 몰랐다. 반면 재우와 어머니는 옆에서 아버지가 나락으로 빠지는 걸 보면서도 어쩌지 못했다. 각자 자신의 삶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버지는 재우의 고교 졸업식과 대학 입학식에 오지 않았다. 대신 동생 입학식에 맞춰 휴가를 나온 형에게 비굴한 표정으로 술값을 요구했다.

  "오랜만에 만난 애비에게 용돈 좀 주려무나."

  형은 진저리치는 표정으로 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넸다.

 

  어머니는 친척들과 상의해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 아버지는 격렬히 저항했다. 두 번은 입원에 성공했다. 하지만 조금 좋아진 것 같아 집에 데려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그냥 이렇게 살다 죽게 해 주면 안 되겠니."

  아버지는 치료를 설득하는 재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 지갑에 손이나 대지 마세요."

  재우는 언제 이 지긋지긋한 대결이 끝날지 궁금했다.

  아버지의 손버릇은 점점 나빠졌다. 재우의 지갑에 슬쩍 손을 대는 일도 잦았다. 문을 잠궈도 소용없었다. 돈이 생기면 1박2일, 2박3일 동안 모텔을 잡고 술을 마셨다. 몸을 알코올에 푹 절인 후에야 휘청거리며 돌아왔다. 그러면 며칠 동안 변기통을 부여잡고 구역질을 했다. 밤새 그 소리를 듣는 건 고문에 가까웠다. 재우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 볼륨을 높였다. 그래도 구역질 소리는 계속 귀에 맴돌았다.

  재우의 대학 첫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아버지는 어머니의 패물을 들고 집을 나갔다. 보름 동안 술을 마시다 급성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한밤에 연락을 받고 어머니와 병원으로 향하며 결심했다. 빨리 군대에 가자. 어머니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그래도 형이 가을에 제대하니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일년 후, 재우가 상병휴가를 나왔을 때 집에는 어머니뿐이었다. 한 달 전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고 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찾고 싶지도 않구나."

  어머니의 망연한 표정을 보며 재우는 더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왜 나갔는지, 어디에 갔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도 없었다. 차라리 무슨 일이 생기길 바라는 쪽이었다.

  제대한 후에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소식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재우는 끝까지 어머니에게 아버지 소식을 묻지 않았다.

  재우가 제대할 때 형은 졸업반이었다. 취업 준비로 바쁜지 동생 제대 소식을 들고서도 한참 후에야 집에 들렀다. 수도권 대학이라고 해도 결국은 지방대였다. 취직이 될까 했는데 학교 선배 소개로 중소기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재우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형은 반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원래 역마살이 있었던 거야, 재우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마음 한구석엔 언젠가 정착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일곱 해가 지났다.

 

  재우는 원룸에 돌아와 전등을 켰다.

  8평짜리 원룸은 그가 처음 마련한 보금자리였다. 취직하고 2년 만에 은행 대출까지 받아 회사 근처에 방을 얻었다. 어머니에겐 멀리서 다니기 힘들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긋지긋한 집에서 나가고 싶어서였다. 어머니는 순순히 그러라고 했다.

  사실 어머니는 재우가 공무원이 되길 원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노골적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종용했다. 법에 의해 신분 보장을 받는 공무원. 아버지처럼 힘없는 공기업 직원은 안 된다고도 했다.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리였다. 졸업하면 당장 취직해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했다. 고시촌에 들어갈 여유는 없었다.

  재우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원서를 썼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상관없었다. 월급을 제대로 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일단 들어가야 했다. 그러다 막판에 주간지 입사에 성공했다.

  입시성적에 맞춰 적당히 골랐던 대학 전공이 언론학이었다. 언론인이 될 생각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그런데 엉겁결에 기자가 됐다. 물론 몰락해가는 주간지였지만. 그 해 재우네 대학에서 기자가 된 건 그를 포함해 둘 뿐이었다. 교수의 축하 인사를 들으며 재우는 인생이 블랙유머 같다고 생각했다.

  주간지에선 매주 아이디어를 내고 취재를 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소소한 보람도 생겼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 사연을 기사로 쓰자 해당 대학은 장학금을 주겠다고 나섰다. 남자친구 아이를 지운 뒤 자살한 여성을 취재한 적도 있었다. 코빼기도 안 비치던 남자친구는 기자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한 걸음에 달려왔다. 재우는 한 마디 해줄까 하다 충혈된 눈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드러누운 재우의 눈에 천장 형광등이 들어왔다. 길쭉한 직관형이었다. 은은한 원형 조명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볼 때마다 했다. 하지만 선뜻 손을 대지 못했다. 어차피 내년 초에는 계약을 연장하든가 이사를 가야 했다.

  이미 지난해 계약을 갱신하면서 월세를 10만 원 더 올려준 터였다. 현재 급여의 3할이 주거비로 들어가고 있었다. 학자금 대출 상환액에 원룸 보증금을 빌린 은행 신용대출 이자도 있었다. 다 합치면 소득의 절반가량이 통장에서 매달 빠져나갔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상황은 도돌이표를 그렸다. 학자금 대출만 해도 다 갚으려면 오 년은 더 있어야 했다. 주간지 급여는 일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최저임금을 약간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연봉제여서 매년 급여 인상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동결되거나, 물가만큼 오르는 게 고작이었다. 월급을 모아 삶의 질을 개선하는 건 무리였다.

  지금 하는 일이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기자정신이나 사명감 같은 것이 자리 잡기에는 상황이 너무 열악했다. 재우는 그저 주어진 지면을 메울 뿐이었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일을 하고 한 주를 무사히 넘기는 것에 만족했다.

  취미는 쉬는 날 영화를 다운받아 컴퓨터로 보는 정도였다. 승미와는 두세 달에 한 번 술을 마셨다. 승미는 ‘여자 사람친구’였을 뿐 ‘여자친구’는 아니었다.

  사실 지금의 그에게는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도 사치였다. 승미와의 관계가 진전되지 않은 원인도 재우에게 있었다. 그는 대학 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승미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미적거리다 결국 연인으로 발전할 타이밍을 놓쳤다.

  현실을 바꾸고 싶은 생각도 그다지 들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 자신이 낳은 아들과도 소통을 거부하는 어머니, 그리고 방황하는 형. 누굴 봐도 자신이 정상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재우네 가족들은 다들 어딘가 부품이 망가진 채로 삐거덕거리며 살고 있었다. 재우는 자신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재우는 주말에 형을 만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 재우는 가끔 어머니와 형도 언젠가 모습을 감출 거란 불안에 시달렸다. 결국에는 가족 모두가 세상에 터를 잡지 못하고 미세먼지처럼 부유하게 되는 건 아닐까. 답을 얻기 위해서라도 형을 만나 어떤 몰골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재우는 성남에서 사라진 부부를 떠 올렸다. 부인은 실종 당시 지금의 재우와 같은 나이였다. 하지만 이미 네 살짜리 딸과 두 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든 덕분이리라. 그들의 결혼생활은 어떤 것이었을까.

  재우는 문득 궁금해졌다. 사라진 부부는 자신의 삶이 궤도를 잘못 들었다는 걸 언제 알게 됐을까. 그들에게 행복은 얼마나 주어졌을까. 그리고 후회의 시간은 언제 찾아왔을까.

 

 

 
작가의 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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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2016년 3월 7일 2019 / 8 / 8 256 1 9403   
2 2. 2016년 3월 5일 2019 / 8 / 7 271 0 7961   
1 1. 2016년 2월 29일 2019 / 8 / 7 450 0 6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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