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사라진 가족
작가 : 장군12
작품등록일 : 2019.8.7

14년 전 발생한 일가족 실종 사건을 한 주간지 기자가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다룬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
서로를 파괴하며 처참하게 무너진 가족의 사연과 경찰이 숨긴 진실의 조각.
사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모든 일을 백일하에 드러내려는 이들의 숨막히는 대결로 치닫는데……

 
2. 2016년 3월 5일
작성일 : 19-08-07 20:42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796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2. 2016년 3월 5일

 

  주간지 기자의 생활은 일정했다.

  월요일 오전에는 편집회의를 했다. 편집장을 포함해 열두 명의 기자가 회의실에 모였다. 이번 주에 어떤 기사를 쓸까. 커버스토리는 무엇으로 할까. 고정코너는 어떻게 메울까. 외부 원고는 누구에게서 받기로 했나. 회의가 끝나면 다들 점심을 함께 먹고 오후에는 취재를 위해 흩어졌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출근을 안 했다. 차장급 이상은 그나마 행정업무 때문에 사무실에 나왔다. 하지만 평기자는 집이나 카페에서 일했다. 전화취재를 하고,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났다. 재우가 생각하는 주간지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것.

  대신 목요일부터는 마감 압박이 다가왔다. 외부원고는 가급적 목요일에 받아 마감을 끝내야 했다. 자체 원고는 금요일이 마감이었다. 하지만 막판에 원고를 들이밀면 편집자와 데스크의 험한 눈초리를 각오해야 했다. 나중에 실수를 발견해도 바로잡을 수 없었다.

  기사에 따라 데스크의 보완취재 지시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가급적 미리 원고를 쓰는 게 안전했다. 원고와 별도로 기사에 어울리는 사진과 그래픽도 준비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목요일 밤엔 다들 눈이 벌건 채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회사에서 밤을 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늦어도 금요일 오전에는 기사를 넘겨야 했다. 기사는 데스크의 수정을 거쳐 오후에 인쇄소에 넘어갔다. 저녁에는 회사 근처에서 삼삼오오 술잔을 기울였다.

  회사의 분위기는 대체로 가라앉아 있었다. 주간지의 전성시대는 이미 20년 전에 지났다. 그리고 모두 그걸 알았다. 재우가 입사할 때부터 그랬다. 캠프파이어가 끝난 후 잔불을 쬐는 분위기였다. 그나마 언제 불이 꺼질지 몰라 마음을 졸이면서였다.

  발행부수는 전성기의 4분의 1로 떨어졌다. 기자 수도 줄고, 광고단가도 내렸다. 그대로인 것은 페이지 수뿐이었다. 매주 사하라 사막처럼 넓은 지면을 메우느라 다들 허우적거렸다.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특종이라 부를 만한 기사는 일 년에 두세 건 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들 한숨을 쉬며 매주 우직하게 지면을 메웠다. 같이 고생하는 동료에 대한 예의이자, 월급만큼은 일하겠다는 소박한 의무감이었다.

  편집회의에선 중장기 아이템도 발제했다. 사안이 중요하면 일상 업무에서 빠져 삼사 주 동안 집중 취재를 했다. 이 경우 해당 기자의 일상 업무는 동료 기자에게 넘어갔다. 그런 만큼 정말 주목도가 높은 아이템이 아니면 눈총을 받았다.

  재우는 다음 주 편집회의에 성남 실종 사건을 내놓을 생각이었다. 사건은 그 동안 지상파 시사 다큐멘터리 등에서 여러 번 다뤄졌다. 그런 만큼 취재를 통해 새로운 단서를 발견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그래도 발품을 팔면 현장감을 살린 생생한 기사는 쓸 수 있으리라.

 

  토요일 낮의 경찰서는 한가했다. 재우는 서에 들어가기 전 주머니 속 보이스레코더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최근에는 휴대전화로 녹음하는 기자도 많았다. 하지만 재우는 보이스레코더를 선호했다.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휴대전화는 취재 중 전화가 걸려오면 녹음이 중단됐다. 녹음 사실을 들키거나, 녹취 파일이 유출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로비의 커피 자판기 앞에서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간시사 기자님이신가요."

  덩치가 크고 얼굴은 직사각형이었다. 군청색 오리털 파카에 체크무니 남방, 짙은 청바지 차림. 탄탄한 체격과 검은 피부는 고교 체육교사를 연상케 했다. 한 손에는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고 있었다. 남자는 악수를 청했다.

  "안양서 형사1팀장 정우현입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시 성남 중원경찰서에서 막내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였다. 이후 두 번의 이동을 거쳐 지금은 안양서에 있었다. 승미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자 심드렁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자신도 언론에 나온 것 이상은 모른다고 했다. 몇 번이고 부탁해 간신히 취재 약속을 잡았다.

  빈 회의실에 앉은 재우는 가방에서 음료수를 두 개 꺼냈다. 경찰들이 자주 마시는 비타민 음료였다. 의외로 소소한 먹거리가 취재원의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정 팀장은 약간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는 만큼은 말씀을 드리죠. 그런데 너무 오래된 일이라…."

  은근히 한 자락을 깔았다. 경찰로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사건이리라. 일가족이 사라졌는데 14년 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범죄 정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어딘가에서 시체가 나오면 부실수사 논란에 시달릴 처지였다.

  "전화로 말씀드린 대로 얼마 전에 강은정 씨로부터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상대는 못마땅한 듯 턱을 긁었다. 그녀에게 적잖게 시달린 기억이 나는 모양이었다. 머뭇거리던 정 팀장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희도 수사를 해서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이렇다 할 단서가 안 나왔습니다."

  그의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경찰이 사건을 인지한 것은 2002년 4월 2일 화요일 오전이었다. 동생 가족과 연락이 안 된다며 강은정이 경찰서를 찾아왔다. 하지만 즉각 수사에 착수하진 않았다. 가족이 사나흘 집을 비운 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또 당시엔 지방에 휴대전화 전파가 안 잡히는 곳이 드물지 않았다. 말단 강력계 형사였던 정 팀장의 머리 속엔 산이나 섬으로 여행을 갔을 가능성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도 일단 지구대 경관과 둘이서 현장을 찾았다. 경찰차는 폭이 아슬아슬한 골목을 지나 다세대 주택 앞에 멈췄다. 창문만 지상으로 올라온 반지하집. 옆집과 윗집에 물어봤지만 최근 며칠 간 안 보였다는 정도였다. 사흘 전인 토요일 밤에 자동차 소리가 났다는 증언도 있었다. 하지만 사라진 가족의 차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런데도 강은정은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며 고집을 피웠다. 이상할 정도로 집요했다. 불안해진 정 팀장은 상대의 신원을 재차 확인한 후 열쇠업자를 불러 문을 열었다. 철문이 아니라 알루미늄 섀시와 반투명 유리로 된 간이문이었다. 업자가 손을 대자 기다렸다는 듯 활짝 열렸다.

  집은 거실이 없고 방 두개가 이어진 구조였다. 좁지만 차분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불은 옷장에 들어 있었다. 쓰레기통도 비워진 채였다. 안쪽에는 부엌이 있었다. 찬장을 여니 그릇이 단정하게 배열된 게 눈에 들어왔다. 핏자국 등 물리적 충돌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냉장고 안에 음식물이 거의 없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가족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었다.

  강은정은 어린이집 얘기를 꺼냈다. 자신의 딸이 동생의 첫째 딸과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이번 주 들어 안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 팀장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채로 함께 어린이집에 갔다. 강은정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린이집 원장도 아이의 무단결석이 이상하다고 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에 돌아와 보고한 후 실종 사건으로 공식 접수했다. 하지만 당장 수사에 착수하진 않았다. 어디서부터 할지도 막막했고,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며칠 후 아무 일 없이 돌아올 거란 희망도 있었다.

 

  정 팀장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대응엔 문제가 없었습니다. 외환위기와 IT(정보기술) 버블 붕괴 후 자살이 드물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사전에 신호를 보냅니다. 주변에 죽고 싶다고 말하거나, 신변 정리를 하거나, 자살 방법을 고민하고 유서를 쓰죠.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그런 정황이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신변 정리를 한 흔적도 없고 유서도 없었죠. 그냥 한 순간 휙 하고 사라진 겁니다."

  정 팀장은 서류 뭉치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한 해 실종신고가 몇 건이나 들어오는지 아십니까. 작년에는 성인만 6만3500건이었습니다. 하루에 174건 꼴입니다. 특별히 혐의점이 없는 한 일일이 수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가출입니다. 실종자의 95%는 며칠 있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옵니다."

  재우는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자동차에서 혈흔이 나왔죠."

  정 팀장은 혀를 찼다.

  "그건 나중 얘깁니다."

  그리고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물론 차를 좀 더 빨리 찾았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은 합니다."

  재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 차가 어디서 발견됐는지 아십니까."

  정 팀장의 어조가 은근해졌다.

  "인적이 드문 산기슭 지방도로입니다. 그것도 나뭇가지가 드리운 그늘 아래였죠. 마을 사람들은 누가 잠깐 차를 세웠나보다 하고 신경을 안 썼다더군요. 누가 왜 굳이 그런 곳에 차를 놓아뒀을까요."

  "빨리 눈에 띄길 원치 않았던 거겠죠."

  정 팀장은 갑자기 남편 얘길 꺼냈다.

  "강은정 씨가 최석우 씨 얘기도 하던가요?"

  재우는 솔직히 털어놨다.

  "안 그래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동생 남편 얘기는 전혀 안 하더군요."

  정 팀장은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개인적인 내용인데…. 기사에 안 쓰시고 참고만 한다고 약속하시면 말씀드리죠."

  이럴 때 얘기를 마다하는 기자는 지구상 어디도 없었다. 재우 역시 목소리를 낮췄다.

  "약속하겠습니다."

  정 팀장은 씨익 웃었다. 너희 기자들이야 뻔하지, 하는 표정이었다. 정보를 위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건 기자의 숙명이었다.

  정 팀장은 서류 더미에서 다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최석우 씨는 어렸을 때부터 강원도 원주의 한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당시 조사한 걸 보면 보육원에서 초중고를 모두 다녔다고 나와 있습니다. 고교 졸업 후에는 군대에 갔습니다. 공병이었다고 하더군요.

  제대하고 서울에 와서 택배 일을 했습니다. 담당 구역에 어린이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강희정 씨를 만났죠. 사귀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겨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그 때가 1998년 말입니다. 배도 부르고 해서 결혼식은 따로 안 했던 모양입니다. 강은정 씨가 그것 때문에 제부를 상당히 못마땅해 했다고 하더군요.

  결혼 후에는 택배 일을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모은 돈에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더해 휴대전화 대리점을 열었죠. 외환위기 직후 헐값에 나온 가게를 인수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꾸려갔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곧 위기가 닥쳤죠. 직장에서 잘린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리점을 차린 겁니다.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습니다. 최 씨는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꼼꼼하지도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사업이 적성에 안 맞았던 거죠.

  최 씨는 본사에서 받은 할당량을 거의 못 채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고가 남았고, 본사에선 최신기종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가게 운영은 더 어려워지고.…. 악순환이었죠. 최 씨는 고민하다 잘못된 길을 택했습니다. 자신의 명의로 여러 대의 번호를 개통한 겁니다. 한 명이 너무 많이 하면 걸릴까봐 꼼수도 부렸습니다. 부인과 지인들의 명의를 이용한 거였죠.

  명의도용은 점차 범위가 커졌습니다. 부인을 통해 주민번호를 구해 강은정 씨 부부 명의로도 여러 대를 개통했습니다. 최 씨는 매달 수백 만 원의 통신요금과 할부금을 냈습니다.

  한 마디로 개미지옥이죠. 신규 고객을 확보해야 명의를 넘길 수 있는데, 그건 마음대로 안 됐습니다. 개통한 휴대전화 수는 점점 늘었죠. 결국 저축은행, 나중엔 대부업체. 그렇게 돈을 빌려 통신요금을 냈습니다. 부인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우고 말입니다."

  정 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최 씨는 2001년 4월에 더 이상 못 버티고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부인이 둘째를 낳기 직전이었습니다. 권리금은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남은 건 업무에 쓰던 스타렉스 승합차 한 대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빚은 2억 원 가까이나 됐죠.

  최 씨는 이후 승합차로 전국을 돌았습니다. 농장과 공사판을 돌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하더군요. 숙식은 승합차에서 해결하면서 말입니다. 그래도 빚과 이자를 갚느라 집에는 거의 돈을 못 보냈습니다.

  생활비가 떨어진 희정 씨는 무슨 일이든 해야 했습니다. 둘째를 낳고 얼마 후부터 아이를 언니에게 맡기고 인근 어린이집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그런데 대부업체에서 가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집에 수시로 전화를 걸어 괴롭혔고, 몇 번이나 찾아왔습니다. 결국 두 달도 안 돼 그만둬야 했다더군요. 수금원들은 남편이 없는 집에도 여러 차례 찾아왔다고 합니다.

  당시 주민 중에는 희정 씨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골목길에서 사방을 살피며 걷는 모습이었습니다. 첫 째 딸의 손을 잡고 둘째 아들을 업은 채로 말이죠. 누군가 말을 걸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 같았다고 합니다."

  말을 계속 듣기가 조금씩 힘들어졌다.

  "다른 주민의 증언도 있습니다. 수금원만 만나면 벌벌 떨던 희정 씨가 딱 한 번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울면서 애들한테 손대지 말라고 했다더군요.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경찰에 신고하려 했는데 직후에 수금원이 돌아가 그만뒀다는 얘기였습니다.

  기자님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직업 상 돈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어떻게든 이번 고비만 넘기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죠. 어느 순간 돌아보면 빚이 자신을 집어삼키기 직전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앞을 봐도 더 이상 길이 없습니다. 막다른 곳이죠."

  재우는 정 팀장의 장광설을 멈추기 위해 끼어들었다.

  "부부가 빚에 시달리다 도망갔다는 말인가요."

  정 팀장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전후 사정을 아셔야 정확한 기사를 쓰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참고만 하시고, 말씀드린 대로 기사에는 쓰지 마세요. 특히 제 이름은 절대 나오면 안 됩니다."

  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 팀장의 행동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약속만큼은 지킬 생각이었다. 정 팀장은 머리를 긁적이다 지금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습니다만, 이라며 말을 이었다.

  "기자님이 아까 혈흔 얘기를 하셨죠? 말씀하신 대로 혈흔이 나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작고 희미해 육안으로는 찾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일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가져갔습니다. 역시 국과수에서도 너무 소량이고 오래돼 언제,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누구 건지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어떤지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재우는 어느 순간부터 정 팀장이 특정한 가설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서 제법 비중 있게 다뤄졌습니다. 납치설이나 보험살인설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사팀 내부에선 사건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납치라면 몸값을 요구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었습니다. 또 가족 누구도 보험에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부부가 사라져 이득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얘깁니다.

  또 승합차에선 부부와 남매의 지문만 나왔습니다. 영동고속도로 CCTV에는 최 씨가 승합차를 운전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고요. 일부 주민이 자동차 소리를 들었다고 한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가족 실종에 제삼자가 개입한 걸로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럼 야반도주라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도망가는 사람이 차를 외딴 곳에 버리고 갈까요? 아이들도 있는데 말입니다."

  재우는 머리 속에 맴돌던 단어를 혀에 올렸다.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정 팀장은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유서도 없었고, 시신도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동반자살이라고 말할 근거는 사실 없습니다. 어쩌면 승합차를 세워놓고 가족들이 어디론가 떠났는지 모릅니다. 지금쯤 어디선가 다들 유유자적하면서 잘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죠.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형사입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얼마나 엉터린지 잘 알죠. 세월이 이만큼 지나도록 가족 누구의 흔적도 못 찾았습니다. 다른 형사에게 한 번 물어보세요. 열이면 열 더 이상 찾지 말라고 할 겁니다. 어떻게 죽었는진 몰라도 이미 세상을 떠난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하겠죠."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9 19. 2017년 3월 ② (完) 2019 / 9 / 5 232 0 6301   
18 18. 2017년 3월 ① 2019 / 9 / 4 230 0 6284   
17 17. 2016년 3월 26일 2019 / 9 / 3 234 0 3845   
16 16. 2016년 3월 25일② 2019 / 8 / 30 252 0 9184   
15 15. 2016년 3월 25일① 2019 / 8 / 29 230 0 8083   
14 14. 2016년 3월 24일 2019 / 8 / 28 245 0 9871   
13 13. 2016년 3월 23일 2019 / 8 / 27 264 0 8514   
12 12. 2016년 3월 22일 2019 / 8 / 23 255 0 7196   
11 11. 2016년 3월 21일 2019 / 8 / 22 245 0 6901   
10 10. 2016년 3월 20일② 2019 / 8 / 21 239 0 6070   
9 9. 2016년 3월 20일① 2019 / 8 / 20 251 0 7785   
8 8. 2016년 3월 18일 2019 / 8 / 16 233 0 9050   
7 7. 2016년 3월 15일 2019 / 8 / 15 227 0 11486   
6 6. 2016년 3월 13일 2019 / 8 / 14 233 0 5827   
5 5. 2016년 3월 12일 ② 2019 / 8 / 13 256 0 7370   
4 4. 2016년 3월 12일 ① 2019 / 8 / 9 221 1 9865   
3 3. 2016년 3월 7일 2019 / 8 / 8 257 1 9403   
2 2. 2016년 3월 5일 2019 / 8 / 7 273 0 7961   
1 1. 2016년 2월 29일 2019 / 8 / 7 452 0 626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