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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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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19 기억 속의 그 아이 (4)
작성일 : 19-08-05 23:12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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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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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 년 전, 체칠리아가 중앙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아르티제로 돌아왔다. 그녀의 마음에는 불꽃이 일었다. 비극을 눈앞에서 목도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력했던 때와는 달랐다. 하지만 캐서린은 그녀가 에어드부르가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 대신 외부의 흡혈귀 사냥에 나가는 일은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그날도 어떤 흡혈귀의 영혼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아르티제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체칠리아가 아르티제로 들어오는 언덕을 건널 즈음에는 이미 저녁노을이 길게 그림자를 뻗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쉬었다가 성소로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등에 진 짐이 너무 많았다.

 

  그루터기에 앉아 짐을 내려놓은 그녀는 아르티제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며칠 만에 보는 고향의 풍경은 그새 또 조금 바뀌었다. 가을 추수가 끝나 텅 빈 농장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바뀌었다. 비극이 지나간 자리에도 넘치는 생명력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논다. 체칠리아는 그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쌀쌀한 가을바람에 등에 맺힌 땀이 마르자, 그녀는 다시 짐을 메고 일어섰다. 아르티제를 가로지르는 개울은 농장을 지나 큰 물줄기까지 이어진다. 그녀는 개울을 지나가다 수풀에서 두 소년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던스턴과 주고받던 편지에 나왔던 두 아이였다.

 

  그녀와 던스턴은 주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둘은 같은 것을 잃어버린 처지였기에, 서로의 슬픔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가 잃어버린 부분을 메우려고 둘이 있을 때는 부모와 자식처럼 서로를 불렀다.

 

  그녀는 그들의 뒤를 조심히 지나갔다. 괜히 그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엿듣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청각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라, 그녀는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아주 조금 듣게 되었다.

 

  “형, 그러니까.”

  “응. 괜찮아.”

 

  그 어조, 그 떨림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체칠리아는 발걸음을 좀 전보다 더 재촉했다. 저건 정말로 남이 들으면 안 될 이야기니까. 제대로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어쩐지 대답은 서글픈 감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잘 되기를 그녀는 조용히 빌었다.

 

  체칠리아는 그녀가 빌었던 대로는 잘되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만약 그들이 그대로 서로의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하지만 체칠리아는 거기에 이상함을 느꼈다. 불안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에는 서로를 향한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분명 담겨 있었다.

 

  “마음만으로 되는 일만 있다면 그렇겠지.”

 

  체칠리아의 앞에서 찻잔을 내려놓은 이는 에어드부르가였다. 고성이 있던 자리에 난 거목의 옆, 두 사람은 의자와 탁자를 놓고 차를 마셨다. 장미와 레몬, 그리고 꿀을 섞은 차였다.

 

  “그러게요. 마음만으로 될 일이었다면, 저는 벌써 당신을 세상에서 지워버렸겠죠.”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게 후회되거나 죄스럽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체칠리아는 차 한 모금을 마시고 미소를 보였다.

 

  “전혀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제가 믿는 대로 행동했으니까요.”

  “그게 너답다면, 너다운 일이구나.”

  “그래서 당신에게 아쉬운 마음이 남은 거지만요.”

 

  그건 미안하구나. 에어드부르가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녀는 오 년이라는 세월 동안 체칠리아를 속였다. 사실은 영원한 빛이 되었다고 말할 시간은 차고 넘쳤는데도,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늘 지금의 일이죠.”

  “그래. 그러면 내가 너를 속였다는 것을 용서하는 게냐?”

  “어찌 일개 사제가, 영원한 빛을 사사로이 미워하고 용서하겠어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다. 이리 말해도 될지 모르겠구나.”

 

  체칠리아는 다시 한 모금을 들이켰다. 돼지가 새끼들을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겨운 모습이네요. 살면서 절대로 아르티제에서는 이런 광경은 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체칠리아의 말에 에어드부르가도 답했다. 나 역시 흡혈귀가 된 이후로는 그렇게 생각했지.

 

  “그건 그렇고, 조지는 어디에 있나요?”

  “조지는 그믐달 왕의 무덤으로 보냈다. 이 숲 깊숙이 들어올 일은 없을 거다.”

  “그렉의 시련에 조지가 꼭 필요하다는 건 아시죠?”

  “알고 있지. 하지만 조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영원한 빛이 된 나의 권역인 이 숲에서 그곳만이 그 아이를 위한 땅이니까.”

  “그렇다면 언젠가는 그렉을 그곳으로 보내야겠네요.”

 

  에어드부르가는 찻잔을 다시 들었다. 그렉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으로 조지 역시 거짓된 족쇄에서 해방된다면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에어드부르가가 본 미래는 불안하기만 했다. 그래서 그것을 체칠리아에게 맡긴 거지만.

 

  “은상자는 받았느냐?”

  “일단은요. 왜 주셨는지 모르겠지만요.”

  “쓸 때가 있을 것이다.”

  “더 물어보지는 않을게요.”

 

  에어드부르가와 체칠리아는 그 뒤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다과를 즐겼다. 체칠리아는 성소로 돌아와 저녁 기도를 올린 다음 자신의 작업실에 들어갔다. 그녀가 쓰던 이야기의 큰 흐름이 바뀌었다.

 

  원래 그녀가 쓰려던 「아르티제의 승리」는 아르티제의 사람들과 영원한 빛들이 하나 되어 흡혈귀를 몰아내고, 저주받은 숲을 불태우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다. 그 이야기는 이제 오랜 인내와 올바른 덕 속에서 자신에게 숨겨진 빛으로 숲을 가꾸는 것으로 끝난다.

 

  그녀는 완성한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 이상한 구석은 없는지 천천히 살폈다. 결말을 급하게 바꾸느라 의미가 달라진 장면들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았다. 나중에 천천히 읽으면 고칠 곳이 보이겠지. 그녀는 마을의 이야기를 서랍에 넣어놓고 낡은 양피지를 꺼냈다. 이미 여러 번 잉크를 긁어내 얼룩덜룩했다.

 

  “이 양피지도 이번이 마지막인가.”

 

  양피지는 귀하다. 체칠리아는 집필 때마다 양피지를 쓰지만, 사제가 쓴 작품의 원본은 양피지로 남겨야 하는 교단의 규율 때문이다. 본래 책의 보급은 파피루스나 다른 값싼 직물을 이용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그녀는 작품의 원본을 남기는 용도가 아닌 한, 양피지 한 장을 붙잡고 늘어졌다.

 

  체칠리아는 더는 잉크를 긁어낼 수도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지고, 꿰매는 것으로는 수습할 수 없을 만큼 큰 구멍이 나야 양피지를 버렸다. 그마저도 그냥 버린 게 아니라 다른 용도로 썼지만. 이건 또 어디에 쓰지. 체칠리아는 양피지의 양면을 살피고는 펜을 들었다.

 

  그렉과 조지를 중심으로 그들에게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적어 내렸다. 양피지의 양면에 다 채울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지만, 체칠리아는 가능한 핵심만 추렸다. 그렉에게 어떤 실타래를 던져줘야, 미궁에서 보물을 찾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체칠리아는 고민 끝에 자신이 쓴 어느 부분 아래에 얇은 선을 그었다.

 

  다음 날 아침, 체칠리아는 아침 기도를 끝내고 그렉을 찾았다. 마침 오르간 연습을 위해 계단을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그렉은 자신을 부르는 체칠리아를 뒤돌아보았다. 체칠리아는 작은 파피루스 쪽지를 주었다.

 

  모든 기도와 그 대답은 믿은 만큼 이루어지리라. 교단은 오랜 격언이었다.

 

  그렉이 쪽지를 열어보고 다시 뒤를 돌았지만 체칠리아는 이미 지하로 내려간 뒤였다. 그렉은 그 파피루스를 오르간 옆에 놓아두고 연습을 시작했다. 그의 연주와 노래는 곧 그의 기도. 영원한 빛이 대답이 들리는 듯했다.

 

  세상이 잊은 자들을 기억 속에서 끌어올려 주소서. 눈앞의 길 잃은 자들을 구할 힘을 내려주소서. 그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영원한 빛들도 속삭였다. 네가 원한다면, 네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너의 기도대로 움직이리라.

 

  그렉은 오전의 연습을 끝내고 악보를 정리하다가 오르간에서 떨어진 아까 그 쪽지를 다시 주었다. 모든 기도와 그 대답은 믿은 만큼 이루어지리라. 영원한 빛들은 아주 사소한 소망도 그것이 저주와 악을 부르지 않는 한 들어준다. 단순히 들어주기만 할지, 세상에 실제로 일어나게 될지는 오직 기도하는 자의 믿음에 달렸다.

 

  그렉의 소망은 단 하나다. 그는 조지를 다시 보고 싶었다. 흡혈귀라는 슬픔에 갇히지 않은, 옛날의 순수한 미소를 지닌 바로 그 조지를. 그는 두 손바닥 사이에 쪽지를 포개어 쥔 채 기도했다.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를 구해주소서.”

 

  아, 흡혈귀가 된 조지를 보았던 그 날이 다시 떠올랐다. 그 기도에 영원한 빛들은 이렇게 답했다.

 

  그대의 기도가 구원에 닿으리라. 하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면 언제 구원이 온다는 것인가. 그렉은 자신이 그 구원을 목도할 수 있을지 영원한 빛들의 대답에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쪽지는 믿으라 했다. 그렉은 그 구원의 때가 언제 올지 정하는 것도 자신이 믿기 나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의 사사로운 욕심으로 감히 청합니다. 그 아이를 구해주소서. 그 아이의 순수한 미소를 너무 늦지 않은 때에 보게 해주소서.”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린 그렉이 눈을 뜨자, 그 주변은 온통 빛으로 가득했다. 갑자기 영원한 빛을 보는 눈이라도 떠진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그 빛으로 가득한 공간은 샛노란 풍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저녁노을, 개울가, 수풀,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는 두 사람.

 

  아, 이건. 그렉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이건 그날의 풍경이다.

 
작가의 말
 

 #6 비밀스러운 대화들 (1)의 일부 내용에 오타가 있어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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