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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잃어버린 자들
작가 : 라하비
작품등록일 : 2019.7.15


'록 바이러스(Lock Virus)'라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1부 시계 도시 中>

“오빠.”

잠시 침묵한 티아가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응?”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티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혹여나 안가겠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불안했다.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드러난 것일까. 티아가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 내일 갈 거야.”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부탁? 뭔데?”

티아가 싱긋 웃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안심이 들기는커녕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빼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행하기도 전에 티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게 먼저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거야. 내일 추첨 용지 넣을 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안 돼.”

나는 다급하게 티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싫어. 공포와 경악으로 몸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물며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악바리처럼 악쓰고 티아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나는 티아의 손 안에 갇혀있던 내 손을 빼고 어두운 눈빛으로 티아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안 돼”

널 잃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티아를 노려보았다.

“알아.”

무엇을 아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티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록 바이러스에 걸린 걸 토큰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나 알아, 오빠.”

티아의 눈에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
.
<중략>
.
.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 혹시라도”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른 티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가야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나로 살고 나로 죽고 싶어.”


 
9화 우연한 만남(2)
작성일 : 19-08-05 19:31     조회 : 213     추천 : 0     분량 : 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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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몰라 나는 지금의 상황을 콘에게 설명해주고는 그와 관련된 소식지가 10년 이내에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했다. 결과는, 지금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단어다. 0건.

 그래. 콘이 뭔가를 찾아냈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했을 거야. 이건 의도적으로 없앴다고 밖에 볼 수 없겠는데. 토큰이든 플램이든 현 상황을 해명 없이 유지시킨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쁜 쪽으로밖에 결론이 안나. 입술을 껌처럼 잘근잘근 씹으면서 눈으로는 광장 안을 훑었다.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거나 안절부절 못하며 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몇은 무작정 기다리기로 한 듯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로그아웃.”

 망설임 없이 콘을 로그아웃 시켰다.

 “아.”

 “형?”

 윤과 티아가 내는 아쉬운 소리를 들으면서도 내 신경은 한 남자에게로 쏠려 있었다. 남자는 어떤 무리를 이루고 있지 않았고,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뭔가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저 홀로 벽에 등을 기대고서 수족관을 담담한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자꾸만 눈이 갔다. 알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그저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삶의 모토가 여유롭게 살자는 것일 수도 있지.

 그럼에도 나를 포함해 광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사람만이 다르다고 느꼈다. 홀로 다른 세계에 속해있는 것 마냥 차분하고,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더 시선이 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티아와 윤의 어리둥절한 시선을 무시한 채 한동안 그 남자를 유심히 관찰했다. 아직 알아낸 거 하나 없이 심증만 있는데, 두 사람에게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일단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남자의 모습은 곱슬곱슬한 머리와 특이하게도 검은 뿔 떼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와는 옷차림이 달랐다. 그는 같은 디자인이지만 색깔이 짙은 회색에 가까운 셔츠를 검은 청바지 안에 넣고, 앞코가 둥글고 저부가 워커스타일로 처리된, 약간의 굽이 있는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의 옷차림에서 나는 남자의 나이가 20대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결정을 내렸다.

 “저 남자한테 물어보자.”

 두 사람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나는 독단적으로 티아와 윤을 데리고 남자가 서 있던 벽으로 향했다. 그는 키도 큰 것 같았다. 180cm 후반은 되는 거 같은데,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고개가 점점 위로 올라갔다. 꽤 크네. 나도 내 나이에 비해서는 키가 큰 편이지만 그보다는 조금(?) 작았다. 내가 착각한 걸지도 모르지만, 만약 정말로 뭔가를 알고 있다면 정보를 캐내야 했으므로 나는 최대한 순진하고 해맑은 미소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아저씨.”

 “······.”

 잠시 그의 고동색 눈동자와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걸 그랬나. 옛날에는 아저씨여도 아저씨라고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잠깐 후회가 지나갔다. 그 단어를 싫어하는 아저씨도 있었다고 언뜻 들었던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불쾌감보다는 난감한 빛에 가까웠고, 아주 짧은 순간에 사라졌다. 다시 여유 있는 미소로 돌아온 그가 나에게 말했다.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묻고, 아니면 가라. 애들은 딱 질색이니까.”

 입은 웃고 있었지만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 정도에 물러날 수는 없었다.

 “당신은 뭔가 알고 있나요?”

 웃는 얼굴의 침 못 뱉는다는 속담처럼 나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갑자기 치고 들어가면 작은 반응이라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상은.

 “글쎄. 네가 묻는 게 무슨 내용인지에 따라 알고 있을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

 알쏭달쏭한 대답이었다. 강적이네 이 아저씨. 돌려 말하면 요리조리 피할 뉘앙스였다. 그렇다면 나도 직설적으로 나가는 수밖에.

 “수족관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혹시 고장 때문인가요?”

 “흐음, 아니. 그건 아닐 거야.”

 면도를 하지 않아 까슬까슬한 턱을 쓰다듬으며 뜸을 들이는 남자는 묘하게 낯이 익고 얄미웠다. 자기가 밥솥도 아니고! 좀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좀 좋나?

 “그럼 뭔데요?”

 윤이 답답해하는 나를 대신해 재촉하듯 질문했다. 남자는 윤을 잠시 응시했다. 뭔가 묻고 싶은 게 있어 보였다. 윤에게? 처음 만난 사이일 텐데 그럴 리 없었다.

 “궁금해?”

 안경을 추켜올리며 묻는 남자의 태도는 시종일관 애매했다.

 “궁금하니까 묻고 있고 있는 거겠죠? 아저씨.”

 입매가 바들바들 떨렸다.

 “내가 알고 있다고는 어떻게 확신해?”

 “그건.”

 당황하다가, 나는 얘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잠시 남자를 남겨두고서 티아와 윤을 불렀다.

 “혹시 지금 상황에 대해 모르는 게 아닐까요?”

 티아가 먼저 의견을 말했다. 윤도 어느 정도 티아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수긍하기 싫었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남자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쪽으로 자꾸만 생각이 기울어졌다. 남자의 태도로 보아 정말로 아는 게 없다면 귀찮다고 바로 우리들을 쫒아냈을 테니까. 본론만 빨리 말하고 꺼지라는 태도를 보이는 남자는 애들을 싫어한다고 당당히 말했던 사람이었다. 질 나쁘게도 초조해하는 우리들을 놀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뭐든 속 시원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 된다.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한 가지 정해져 있는 패턴이 있다면 질문을 해봤자 조금 전처럼 애매하게 이야기할 게 뻔하다는 것. 그와 동시에 우리가 저 남자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듣는 건 아주 힘겨운 여정이 될 거란 점이었다.

 “단정 짓기는 일러.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저 아저씨의 페이스에 계속 말려들겠지.”

 나는 티아와 윤의 팔을 잡고 더욱 가까이 오게 한 다음 속삭이는 말투로 내 생각을 전했다.

 “그럼 어쩌죠, 형? 그냥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윤이 불편한 티를 냈다. 그 마음 이해하지. 당장 나만해도 대화를 길게 나누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니면 관심 없는 척 해볼까……요?”

 티아가 의견을 제시하지만 나와 윤은 동시에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면 저 남자는 더 좋아할 거예요.”

 윤이 나 대신에 이유를 덧붙였다.

 “근데······. 그전에 너희 서로 말을 좀 편하게 하는 게 어때?”

 듣는 내가 다 불편해. 내 제안에 두 사람이 멈칫했다. 오늘 안에 말 트기는 힘들겠군. 머리 위가 무거워지는 느낌에 그 진위를 확인한 나는 어이가 없어서 큰소리를 쳤다.

 “뭐예요!"

 울리는 소리에 입을 바로 다물었다. 대신에 남자를 쳐다보는 눈빛으로 내 심정을 대변했다. 가만히 우리를 보던 남자의 커다란 손은 여전히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내 머리 위에 있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는 그를 노려보았다.

 “생각보다 하는 짓이 귀여워서?”

 지금 이 아저씨가 누구 보고 귀엽다고 하는 거야? 노망났나! 비밀 담화는 남자 때문에 흐지부지 무산되었다. 재수 없어. 애초에 남자에게 내 가식적인 표정은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계속해서 거짓으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 봤자 씨알도 먹힐 뿐더러 오히려 그걸 핑계 삼아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알 수 없었다. 삐딱한 시선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고서 남자를 째려보던 나는 짜증나지만 인정했다. 남자가 스스로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말을 꺼내게 만들기에는 내공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이 위로 가지 못하는 이유, 뭐든 알고 있는 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순진한 역할은 벗어버렸으니 남자를 향한 짜증을 숨기지는 못했지만 말투만큼은 정중했다. 화내고 떼를 쓰는 방법은 애초에 단 1%도 성공가능성이 없어 보였으니까. 이 남자는 내 태도가 어떻든 콧방귀도 안 낄 사람이었다. 따라서 방방 뛰며 어린애처럼 화를 내봤자 바로 남자한테 무시를 당하던가 아니면 내 이미지만 나쁘게 만드는 길이 될 거다. 최악이면 규칙1번을 어기게 될지도 모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먼 허공을 바라보며 그가 중얼거리듯 질문했다. 제법 진지해진 얼굴에 나는 멈칫한다. 어디한번 나를 설득해봐, 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래서 아는 걸 전부 말했다. 약간 두서는 없게 들리겠지만.

 “도착해서 탑승장으로 이동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저 수족관을 꽉 채울 만큼 사람들이 많으면 운행을 못하겠지만······. 광장의 반이 탑승 아쿠아리움이라 굉장히 넓고 크잖아요? 그런 일은 발생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지금 윤, 아 이쪽의 검은 머리 남자아이 이름이 윤이에요. 이 아이 말로는 30분 이상 사람들이 이동 수족관을 타지 못했다고 했어요. 그 시간 동안 아무런 안내 방송도 없었고요. 혹시나 싶어 말하지만 사람들은 보시다시피 저 이동 수족관을 꽉 채울 정도는 아니죠. 이 정도면 바보도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하는 의문이 들 거예요. 그리고 그게 뭘까 찾던 중에 아저씨를 발견한 거죠. 왜 아저씨냐고요? 아저씨만 태평하게 서 있었잖아요. 그리고 한동안 아저씨를 지켜봤는데, 시계조차 확인하지 않았어요. 맞죠? 그건 고장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게 아니란 뜻이죠.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이면 고쳐졌을 테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올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나는 쉬지 않고 다다다 쏟아낸 탓에 숨을 고르며 남자를 주시했다. 남자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다가 얼굴이 사과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어디한번 해보자고. 이번에도 구렁이 담 넘듯 대답을 피하면 정강이를 차 줄 예정이었다. 잡혀간다고 해도 삼촌이 꺼내주겠지.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푸하하하!"

 갑자기 허리를 숙이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미간을 찡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윤과 티아에게 이 사람 미쳤나보다고 말하려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조금 전 내 모습이 낯설었던지 멍청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이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도 다 쏟아내고 나니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하. 진작 이럴 걸 그랬네. 자 이제 그만 쳐 웃고, 뭘 좀 말해 보시지? 눈썹을 삐뚜름하게 올리며 속으로는 의기양양한 채로 그에게 눈빛으로 대답을 종용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반응과 반대로 남자는 내 표정을 보더니 더욱 크게 웃을 뿐이었다. 진짜로 미쳤나. 남자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니 화도 거의 가라앉았고, 솔직히 아이들의 시선도 신경이 좀 쓰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계속해서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남자가 더 신경 쓰였다. 이젠 너무 웃어 아픈 배를 움켜쥐고서 헐떡이고 있었다. 신고를 해야 되는 걸까. 고민되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나는 아이들을 남자와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게 조치를 취했다. 내 뒤로. 그리고 남자가 더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뛰어서 도망칠 생각을 하며 그를 주시했다.

 서서히 웃음이 잦아든다 싶을 때쯤 남자가 과도한 웃음으로 인해 흘러나온 눈물을 닦으며 허리를 펴고는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의외야. 너 꽤 재미있구나. 그 노력이 가상해 말해주지. 고장은 아니야. 정확히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곧 있으면 정상 운행이 될 거다.”

 왠지 그의 정확히 모른다는 말이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모른다면서, 곧 정상운행이 될지 말지 어떻게 확신하세요?”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있는 폼 없는 폼 다 재더니 겨우 꺼낸 대답이 모른다야? 농락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남자에게 말하는 내 목소리는 자연스레 못마땅함이 가득 묻어났다. 하지만 그는 어디서 개가 짓고 있냐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럼 내가 개인거야? 이름 모를 이 남자에게 지금의 내 태도는 신경 쓸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느껴져 막 남자의 옷을 잡으려던 찰나, 그가 말했다.

 “어른의 감이야. 못 믿겠으면 뒤를 돌아봐.”

 일부러 남자는 고개 짓으로 한 번 더 뒤를 가리키는 수고를 보였다.

 “뒤?”

 남자의 턱이 가리키는 쪽으로 우리 모두 뒤를 돌아보고는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타이밍 딱 맞게도 이동 수족관을 타고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뭐야, 이 사람······. 어떻게 지금 이 순간에 운행이 되는 걸 알고 있는 거지? 누군가 타는 걸 본 건가? 그럼 조금만 기다렸으면 해결될 일이었다는 뜻? 돌아다니며 초조하게 상황을 파악했던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남자를 돌아보았다.

 “내 말이 맞지? 이제 귀찮으니 빨리 가라.”

 똥파리를 쫒아내는 것처럼 손을 내젓는 남자는 끝까지 노골적이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상관하지 말자. 해결도 되었고. 더는 신경을 쓰고 싶지도 않아.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벌서 피곤했다. 게다가 뭔가 덜 싼 것처럼 기분도 찝찝했다. 휴. 위험한 일이었다면 방송이나 콘에게 설정 된 피신 알람이 울렸겠지.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애쓰며 남자를 보자 그는 내가 말을 걸기 전까지 보고 있던 이동 수족관 쪽으로 시선 고정한 채 우리를 완전히 투명 인간 취급하고 있었다. 한산해 질 때까지 기다리려는 걸까? 궁금했지만 남자는 내 시선을 느끼고는 눈동자만을 돌려 무척 거만하게, 빨리 가라고 눈짓으로 나를 재촉했다. 이 아저씨가 끝까지 저러네. 기분이 상했지만 일단 궁금증은 해결되었고, 아쿠아리움도 정상 작동되었기에 굳이 남자에게 말을 걸고 싶지 않아서 참았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떨떠름하지만 감사 인사를 잊지는 않았다.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 나이니까. 나를 따라 윤과 티아도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티아는 시공일관 밝은 표정으로 남자를 대했다. 역시 내 동생. 그렇게 인사를 다 끝내고 내가 티아와 윤을 데리고 남자와 떨어진 곳으로 가려고 할 때, 누군가 내 오른쪽 어깨를 잡아채 발걸음을 막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어깨 위에 있는 손을 따라 올라갔다. 우리를 개 무시하던 그 남자였다. 조금 전까지 재수 없게 굴면서 상관없다고 했으면서 왜? 왜 나를 잡았지? 불쾌함보다도 의문이 가장 먼저 고개를 들었다. 오만하고 냉소를 담고 있던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당황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건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우리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건 절대 아닐 것이다. 그는 입을 꽉 다문 채로 나와 티아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뭔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무척이나 수상쩍었다. 갑자기 남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게 뭐지?

 “뭡니까?”

 정말로 궁금해서 나는 몸을 돌려 남자에게 질문했다.

 “이름이?”

 놀란 얼굴로 남자는 내가 아닌 티아를 보며 되물었다. 아니, 이 사람이.

 “제 동생 이름은 티아인데요?”

 내가 티아 대신에 대답했다. 그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입만 벙긋거리며 계속해서 우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옆에서 윤이 안절부절 못하는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남자가 말을 할 때까지 계속 기다려줄 수는 없었다. 윤도 걱정하고 있었고. 나는 일단, 아직까지도 내 어깨를 잡고 있는 남자의 팔을 떼어내었다.

 “저기요.”

 “오늘은 그만 집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드디어 입을 여시는군. 그것도 아주 의미심장한 문장을 말이지. 남자가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 이유가 뭘까. 나는 남자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대답을 듣기위해서 기다렸지만 그는 또 다시 중요한 말을 할 수 없는 병이라도 있는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남자와 실랑이를 하고, 또 지금은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주변은 제법 한산해졌다. 모두가 하나 둘 떠나는 동안 우리를 기다리게 만든 장본인이 우리에게 한 대답은 억지스럽기 그지없었는데, 그는 광장 안을 힐끔거리기 시작하더니 “날씨도 안 좋고, 알고 보니 고장이 난 걸 수도 있잖아? 솔직히 처음 본 사람이 안전하다고 한 말을 믿어?” 라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말을 해댔다. 말을 한 본인도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며 시선까지 피했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던데.

 “아저씨야 말로 집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더 이상 상종하지 말자. 남자에게 말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서 길을 가려고 했다.

 “잠깐!”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이번에는 내 팔뚝을 잡아챘다.

 “아 진짜, 왜요!”

 기어코 짜증이 폭발해 소리쳤다. 규칙이니 뭐니 생각도 안 들었다. 체격 차이가 너무 나서 위협도 되지 않을 테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는 남자를 피해 이동 수족관을 타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너······.”

 남자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왜요?”

 심하게 동요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당황한 내 태도는 금방 수그러졌다. 남자는 수차례 입을 열었다 닫는 운동을 하다가 결국 입술을 깨물더니 한숨을 푹 내쉬기만 할 뿐이었다. 명백히 망설이고 있는 태도다. 무엇을?

 “왜 그러시는데요?”

 평온해보이던 남자가 당황하고 망설이는 모습에 오히려 침착해졌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태도가 불량했지만, 바뀐 태도로 하여금 왠지 우리를 걱정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티아, 라고 했나?”

 남자는 내 질문을 무시하고는 이번에도 티아를 보며 물었다.

 “네.”

 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순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탑승장에서 보급소로 이동해 본 적 없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저 녀석은 동생을 끔찍이 아끼니까. 도착하면 가이드를 부르도록 해.”

 뭐야. 나를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래? 남자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별로였다.

 “가이드는 왜요?”

 티아의 입을 막고 내가 대신 대답했다.

 “처음 타보니까. 너 아직 이동 방법 이야기 안 해줬지? 거봐, 어른 말 듣고 꼭 가이드 불러서 설명 듣게 해."

 내가 아무런 말도 못하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이드를 부르라고 못을 박았다. 고집을 부릴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떨떠름하지만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아. 이제 그만 가 봐.”

 남자는 눈가를 엄지와 검지로 피곤한 듯 짓누르며 홀로 이야기를 끝맺고는 새를 쫒아내듯이 손을 휘저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티아가 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씩씩하게 말했다.

 “조심해라.”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입을 다물고는 눈을 감아 시야를 차단했다. 더는 건들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한 나는 뻘쭘했지만 두 번째로 인사를 건네고서 티아와 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신경질이 났고 마지막은 너무 맥락 없는 대화였지만 이상하게 싫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 남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던 중이었을까? 문득 든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남자를 확인했다. 언제부터일까. 남자는 기대어있던 벽에서 몸을 떼고 똑바로 서서 우리들을 보고 있다가 어디론가 걸어 가버렸다. 순간,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그는 사라진 뒤였다.

 왠지 모를 아쉬움을 뒤로 하고서 나는 광장을 살폈다. 이름 모를 남자와의 짧은 만남을 보내고 나니, 광장에는 오로지 우리들뿐인 듯 보였다. 위에 이동 수족관을 보니 사람들은 내부를 구경하며 유유히 왼쪽-실제로는 위쪽-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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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화 하루의 시작 2019 / 7 / 22 254 0 11925   
2 2화 Konpam 2019 / 7 / 19 223 0 9719   
1 1화 지독한 악몽 2019 / 7 / 15 363 0 12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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