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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잃어버린 자들
작가 : 라하비
작품등록일 : 2019.7.15


'록 바이러스(Lock Virus)'라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1부 시계 도시 中>

“오빠.”

잠시 침묵한 티아가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응?”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티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혹여나 안가겠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불안했다.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드러난 것일까. 티아가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 내일 갈 거야.”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부탁? 뭔데?”

티아가 싱긋 웃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안심이 들기는커녕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빼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행하기도 전에 티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게 먼저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거야. 내일 추첨 용지 넣을 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안 돼.”

나는 다급하게 티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싫어. 공포와 경악으로 몸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물며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악바리처럼 악쓰고 티아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나는 티아의 손 안에 갇혀있던 내 손을 빼고 어두운 눈빛으로 티아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안 돼”

널 잃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티아를 노려보았다.

“알아.”

무엇을 아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티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록 바이러스에 걸린 걸 토큰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나 알아, 오빠.”

티아의 눈에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
.
<중략>
.
.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 혹시라도”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른 티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가야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나로 살고 나로 죽고 싶어.”


 
4화 Winter 보급소(1)
작성일 : 19-07-26 11:20     조회 : 207     추천 : 0     분량 : 8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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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중으로 'Winter 보급소' 로 가는 허가장이 올 거야.”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말투로 내가 말했다.

 “나도 데리고 갈 거지?!”

 저 배경처럼 검은 눈동자에 한가득 별을 담은 채 나에게 확인하는 티아가 오늘따라 미웠다.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 되지는 않네. 이런 건 잊어버려도 좋을 텐데······. 하여간 쓸데없는 약속은 잘 기억한다니까. 몇 번이고 기대를 무너뜨렸던 지난날은 기억 못하고 나는 티아의 기억력을 탓하며 입을 삐죽인다. 별일은 없겠지. 없을 거야. 불안으로 빨라지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나는 우울한 표정을 짓지 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또 약속을 거품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도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티아는 볼을 햄스터마냥 부풀이고는 세모꼴의 눈으로 나에게 무언의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숨을 참고 있는 모양인지 티아의 얼굴은 빨간 토마토 같았다. 그동안 많이 참긴 했지.

 “풋.”

 확언의 말을 애타게 기다리는 티아에게 대답대신 웃음이 터져나와버렸다. 아, 웃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감추기에는 많이, 아주 많이 늦은 감이 있었다. 나는 재빨리 두 손으로 입을 막고서 미안하다는 제스처와 함께 웃음을 참기 위해 헛기침을 연달에 해댔다. 살짝 티아쪽을 확인해보니 굳은 얼굴이 보였다. 안 먹히네. 결국 나는 마지못해 티아가 가장 원하는 대답을 들려줘야했다.

 “좋아. 대신에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이 오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약속할 수 있겠어?”

 "약속할게!”

 내 마음도 모르고 우렁차게 대꾸하는 티아의 눈이 아직도 위험스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놀리려고 뜸을 들인 건 아니지만 이미 그렇게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조만간 실수를 가장한 폭력이 행해지겠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토큰 A본부에서 발송된 건입니다. 지금 확인하시겠습니까?>

 도끼눈을 한 티아가 슬슬 무서워질 무렵 타이밍 좋게도 메시지가 도착했다. 풀어졌던 얼굴 근육이 다시 굳어지며 눈앞에 생성된 하늘빛의 불투명한 창을 괜스레 노려보았다. 창에 가려져 있지만 티아의 표정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라서 금방 표정을 풀고는 기대감으로 환해진 티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른 열어보라는 무언의 재촉에 나는 티 나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열람”이라고 대꾸했다. 그리고 콘이 보여준 메시지의 내용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토큰 A본부입니다. 플램 시스템을 통한 확인 결과 필요한 물품이 확인되어 연락드립니다. 되도록 7일 이내에 받으러 와주시길 바라며, BChouse69는 이번 보급소에서…….’ 주절주절 적혀있는 건 그냥 넘겼다. 짤막한 내용과 함께 짐작했던 데로 Winter 보급소로 갈 수 있는 통행권과 허가증이 포함되어 있었다.

 <1. 출력 2. 전송 3. 저장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주세요.>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나는 ‘2.전송’을 선택했다. 창이 변형되며 <이곳에 칩이 이식되어 있는 팔을 넣어 주세요.> 라는 문구와 함께 팔꿈치에서 손까지 넣을 수 있는, 파란색의 데이터로 이루어진 공간이 만들어졌다. 처음해보는 것도 아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칩이 심어져있는 왼쪽 손을 인식공간에 쭉 넣었다. 딱히 느껴지는 감각은 없었다. 굳이 찾자면, 약간 찌릿 하는 정전기 정도의 짜릿함이랄까.

 팔꿈치까지 들어간 내 손은 마치 파란색의 장갑을 끼고 있는 모양새였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데이터는 균열을 일으키며 이번엔 띠 형태로 변형되었고, 팔이 다친 사람마냥 보이게 하던 붕대는 손끝에서부터 천천히 풀리며 손목의 심어진 칩으로 빨려 들어갔다. 겨우 15~30초 사이에 손을 감싸고 있던 모든 데이터들이 칩 속으로 사라졌고, 화면의 문구는 <전송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동맥 쪽에서 느껴지는 후끈한 느낌에 잠시 검지로 그 부근을 문질렀다. 여전히 아프지는 않았다.

 고개를 들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가 하는 모양을 지켜보고 있던 티아와 눈이 마주쳤다. 필시 자신도 해보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 진짜 어쩔 수가 없네. 애초에 내가 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같이 가는 걸 물릴 수 없다면 더 이상의 고민은 무의미했으니까. 내가 더 조심하면 돼.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나자 복잡하던 머리가 조금은 맑아졌다. 그리고 허용범위 좀 넓혀 나는 흔쾌히 해보라는 뜻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오버 좀 하지 마.”

 그런 내 모습이 불만인 듯 티아가 볼멘소리로 타박했다.

 “안 할 거야?”

 난 웃으며 유치하게 되받아쳐다.

 “치사해!”

 “응?”

 똑똑히 들었지만 티아의 반응이 궁금해 못들인 척 했다. 절대 앙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 할거야.”

 빨개진 얼굴로 티아가 작게 대꾸했고 나는 억지로 받은 항복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

 ***

 Winter 보급소. 과거의 대형 쇼핑몰 혹은 백화점과 비슷한 곳이지만 돈을 내고 산다는 개념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화폐의 필요성이 없어졌으니까. 우린 땅에서 수확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고, 개인이 직접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이제는 구휼 제도처럼 필요한 물품을 토큰(정부)의 허가 하에 받아가는 신세였다. 모든, 아주 사소한 사물조차도 시스템이 관리했으며, 정부는 시스템을 통해서 우리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통제했다. 각 BChouse에 심어진 인공지능 시스템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기 때문에 적시적기에 허가증과 품목을 발송한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아니 이미 우리는 감시당하고 있었다. 안전이라는 명분하에.

 하여튼 말하고 싶은 건 보급소는 플램에서 직접 관리를 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시계 도시에는 총 4개의 보급소를 설치했는데, 사라져버린 사계절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Spring(봄)' 'Summer(여름)' 'Fall(가을)' 'Winter(겨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중 우리가 갈 곳은 Winter 보급소였다.

 보급소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먹을 것과 의복 등의 한계 수량이 존재하는 것들은 허가증을 발송해 필요한 사람만이 가져갈 수 있게 제안을 걸어두었다. 출입증의 경우에는 요청하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었다. 또한, 한정적인 물품의 성격상 보급소에서 가져갈 수 있는 품목과 수량마저도 그들이 지정하여 허가증에 같이 새겨 넣는다. 내가 받은 허가증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출발하기 전에 손목에 전송된 허가증을 열어 품목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채소의 양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럼 그렇지.”

 기대를 하지 말아야지. 그저 훑어보기만 해도 답은 보였다. 두 사람이 먹기에는 충분한 양이긴 했지만, 내 바람대로는 아니었다. 허가증에 표시된 품목은 이러하다.

 

 

 * 정화 필터 15개.

 * 5가지 종의 과일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 하나.

 * 상추를 비롯한 채소 10종.

 * 밀 20kg 한 포대.

 * 종류에 상관없이 고기 12인분.

 

 ​

 이렇게 다섯 품목이 끝이었다. 정화 필터(*물을 청량하게 바꿔주는 15cm 정도의 둥근 통)는 콘 내부에 설치하는 것으로 그나마 우리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한, 차선책으로 개발한 방법이었다. 구할 수 있는 물은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거나, 가뭄으로 인해 물 자체가 귀했다. 그러므로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물의 오염도를 낮춰주는 정화 필터가 반드시 필수적이었다.

 허가증이 날아올 때마다 과거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은 했다. 지금보다 얼마나 살기 편했을까.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재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종류의 맛있는 요리가 있었겠지. 더욱이 적어도 밤마다 두 다리 쭉 뻗고는 잤을 거야. 먼 훗날 타임머신이 개발되면 나는 당장 티아를 데리고 음식점으로 달려 갈 것이다.

 싱싱한 야채가 가득 들어있는 샐러드, 한국에서 나온다는 김치와 함께 먹는 돼지고기, 해산물 파스타, 리코타 치즈와 샐러드로 토핑 된 피자에 파인애플이 들어간 햄버거 등등! 음식 냄새를 가상현실을 통해 맡아본 적이 있었기에 단순 상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였다. 역사를 배울 때마다 지금과는 다른 과거에 대한 동경심, 궁금증, 그리고 부러움? 같은 마음이 들었다. 또 내 국적이 무엇일까 추리해보는 재미도 있다. 공부의 시간은 4시간으로 정해져있지만, 어떻게 공부할지는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여러 나라 중에 그날그날에 따라 내 마음에 드는 지식을 골라 주입하는 걸 좋아했다. 이름이 다르더라도 비슷한 점을 찾고 알아가는 재미가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알아낸 것 중 놀랐던 사실 중에 하나는. 옛 사람들은 이미 물을 사마시고 있었다는 점이다.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느꼈던 허무함이란······. 지금은 깨끗한 물을 아주 소량으로 구할 수 있기에 농작물을 키우는 데만 쓰이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는 필터를 갈아주지 않으면 물을 마실 수도 없는데. 또 토큰에서 허가증을 내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굶어죽게 될 것이다.

 불만을 가질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세상이었다. 모두가 같은 상황이고, 동변상련의 감정이라 더 그랬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양, 같은 품목, 같은 근무시간들을 갖기에 평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스운 건 평등하다고 말하는 세상은 온전한 평등이 아니란 점이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혜택을 받고 있으니까. 사실 불만을 터뜨릴 처지는 아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지금 유일하게 마음에 든 부분이 있다면 허가증에 적힌 품목이 많지 않다는 거였다. Winter 보급소에서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 그렇다고 없던 자신감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내가 고민하는 건 이제는 다른 쪽이다. 이미 데리고 가기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그건 더 이상 고민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저. 티아를 데리고 가서 다른 곳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 역시 정해진 곳 외에 다른 곳에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점이 확신하기가 어려울 뿐이었다.

 이제껏 티아를 집에 두고 나 혼자서 보급소로 향했고, 항상 최단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외에는 강박적일정도로 밖에 나가는 일을 꺼렸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을 만날 일도 없었다. 티아보단 나을지도 모르지만 결론은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세상은 얄팍하고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아마 오늘 티아를 데려간다면, 동생은 아주 기뻐할 것이다. 지금도 봄을 맞은 요정처럼 따스한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티아에게 나는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그런 마음을 먹게 될까봐. 그래서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꿈에서처럼 구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꼭 재난이 아니더라도 Winter 보급소 내부에는 허가증이 없더라도 갈 수 있는 곳이 꽤 있었으니까······.

 백화점과 비슷하다고 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보급소라고 칭하고 있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그곳에서 행해졌다. 중요한 몇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물건의 생산일 것이다. 토큰은 재난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서 땅 위에는 건물을 짓지 않기로 무언의 합의를 보았다. 모든 건물은 허공에 떠 있도록 설정되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두 가지를 들 수 있었다. 큐브들을 연결하고 있는 뉴라와 컨트롤 큐브다.

 뉴라는 블랙 큐브를 이루고 있는 것과 동일한 니그라는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졌으며, 강도가 높고 유연성이 있었다. 거대한 전류가 흐르는 선이라고 보면 쉬울 것이다. 단 한 가지 완벽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일부 뉴라들은 땅 속 깊이 박혀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들을 통제할 컨트롤 큐브가 따로 존재하는데, 컨트롤 큐브는 보급소 4군데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으며, 중간에서 시계 도시와 다른 건물들 사이의 연계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컨트롤 큐브는 온전히 뉴라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허공에 존재하며, 모든 보급소는 겉으로 보기에는 커다란 하나의 블랙 큐브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작은 크기의 블록과 큐브들이 수백에서 몇 억 개가 모여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BChouse의 규모보다도 몇 십 배 이상 큰 규모라고 볼 수 있었다.

 또한 보급소는 식물을 키우기 위한 유일한 장소이다. 하지만 재배되는 양이 많지 않아서 과일과 야채, 그리고 밀은 한 달 동안 버틸 수 있는 보급품 중에서 겨우 23%정도만 차지했다. 그 외에는 애석하게도 전부 고기류다. 이제는 역으로 고기보다는 채소가 희귀해진 세상이 되었다. 사람의 신체 일부 및 장기조차도 만들어내는 플램의 기술력을 가축에도 적극 활용한 결과였다. 오죽하면 ‘뇌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뜬소문까지 돌 정도였으니까. 이 말이 그저 소문이나 속담인지는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제 가축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대량생산 할 수 있는 품목이 되었다는 점 말이다.

 그리고 보급소의 두 번째 역할은 ‘치유의 섬(Healing Island)’라 불리는 장소다. 치유의 섬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름이 주는 이미지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장소는 아니었다. 이곳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갈 수 있는 대형 오락장이었으니까. 특히 토큰과 플램에서는 미스터리 센터로 통하는 ‘르 레브(Le Reve)'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곤 했다. 그들은 록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떠들어댔다. 거짓말쟁이들. 그곳은 영락없는 카지노였고, 사람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불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그 유혹을 끊어내지 못할 뿐이었다. 심지어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하지만 다행이도 나와 티아는 성인이 아니다. 티아가 가고 싶어 한다고 해도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의미다.

 “말도 안 돼! 아직 저번에 받은 고기도 남아있는데, 12인분이라니!”

 귓가에 바로 들려오는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내 어깨 너머로 티아의 불만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티아는 내 목에 팔을 둘러 더 편하게 몸을 기대왔다.

 “무거워. 너 살쪘지?”

 일부러 더 끙끙대는 척 했다. 티아는 깔끔하게 내 말을 무시했다.

 “우리가 대식가인줄 아나봐! 통계가 잘못된 거 아닐까? 우린 아직 어리고, 많이 먹어봐야 1.5인분이라고!”

 그리곤 당최 줄어들지 않는 고기 양에 대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음식들과 같이 먹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내 말이 무시당했다는 건 잊은 지 오래다.

 “차라리 다른 품목을 더 가져갈 수 있게 해주지······.”

 턱을 내 정수리에 올려두고 있는 티아가 말을 하는 족족 머리가 울렸지만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오늘가면 피망도 조금 가져올까? 저녁에는 피망햄버그 해줄게.”

 티아의 기분을 풀어주려 자주 먹지 못하는 요리를 먼저 제안했다.

 “진짜? 응응! 좋아!”

 약속된 대화처럼 내 제안에 티아는 기뻐했고, 흥분한 티아로 인해 팔이 더 내 목을 조여 왔지만 견딜만했다. 어차피 채소는 오랫동안 보관할 수 없으니 빨리 먹는 편이 좋으니까. 팔을 풀기위해 잡자 티아가 얌전히 힘을 뺀다. 내 목의 자유를 찾고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대신에 그곳에 티아를 앉혔다. 그리곤 풍성함과 곱슬머리라는 두 가지 조건으로 인해 부푼 풍선처럼 보이는 동생의 머리카락을 다시 빗어 가르마를 탄 다음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땋아 나비가 달린 고무줄을 이용해 양쪽으로 묶었다. 한두 번 해본 게 아닌지라 내 손놀림은 내가 보기에도 깔끔하고 빨라서 만족스러웠다.

 “마음에 들어! 오빠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느는데?”

 양 손으로 머리를 잡고 흔들며 티아가 즐거운 태도로 말했다.

 “고마워. 다음엔 새로운 머리 스타일에 도전해볼까?”

 티아가 어느 때보다도 밝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내가 다 들뜨는 기분이다. 긴 머리는 관리도 힘들고 다양한 패턴의 머리모양을 알아야만 만들 수 있었지만 까짓것 콘을 통해서 배우면 되었다.

 “너무 촌스럽지만 않다면! 오빠에게 내 머리카락을 꾸밀 권리를 하사할게!”

 공주님처럼 턱을 치켜들고 말하는 모습이 꼬집어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우면서도 귀여웠다.

 “그래. 그래. 대단한 영광이네요.”

 장단에 맞추어 주자 더 활짝 웃는다. 보급소에 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모든 게 좋은 모양이었다. 나는 티아의 머리가 망가지지 않게 토닥여준 후 다시 한 번 허가증에 새겨진 품목을 확인했다. 티아의 말처럼 채소의 양이 저번보다 적어. 분명 고기가 남아있다는 것을 콘을 통해 알고 있을게 분명한데도 채소를 줄이고 고기만 잔뜩 주다니. 어릴수록 더 골고루 먹어야하는데. 불만이 삐죽 튀어나오는 건 당연했다. 가능하다면 이 품목을 작성했을 토큰에게 항의문이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럴 수 있다면 진작 했을 것이다.

 시계 도시이자 A 도시를 관리하는 토큰은 일방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갈 수 없을 뿐더러 민원이 분명한 내용으로는 메일을 보내도 도착이나 하는지 확인할 길도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싶은 걸 참았다. 오늘만큼은 날아간 복도 잡아와야할 판이니까.

 하지만 불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적은 품목만으로 요리를 하는 건 언제나 나고, 그건 빈말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티아의 건강도 생각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단연코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불만을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오늘 하루 종일 해보라고 하면 할 수 있을 정도로. 어차피 나 혼자 속으로 투덜대는 거고, 해 떨어지기 전에 돌아오려면 슬슬 준비해야했다.

 빨리 끝내고 와야지. 오래 있을 생각은 토끼 똥만큼도 없으므로 나는 부랴부랴 움직였다. 먼저 아침식사 때 쓴 그릇들을 잘 정리해 세척기에 넣어두고서 나는 들떠있는 티아를 재촉해 우선적으로 아직도 깔끔하지 못할 방을 치우게 했다.

 “자동 청소 기능을 사용하면 되잖아!”

 바로 티아가 반박했다. 내가 말이 없자 바로 콘에게 시키려는 티아의 말을 가차 없이 거절해버렸다. 사소한 방 정리 정도는 스스로 할 줄 알아야하니까. 특히나 이렇게 어지럽혔을 땐 더욱 콘에게 기대게 해서는 안 되었다.

 “콘, 내가 허락할 때까지 티아의 요청은 무시해.”

 꽤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콘은 내 말을 우선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티아는 경악했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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