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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잃어버린 자들
작가 : 라하비
작품등록일 : 2019.7.15


'록 바이러스(Lock Virus)'라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1부 시계 도시 中>

“오빠.”

잠시 침묵한 티아가 나직하게 나를 불렀다.

“응?”

대답을 하면서도 지금 티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혹여나 안가겠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불안했다.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드러난 것일까. 티아가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올려져있던 내 손을 잡는다.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걱정하지 마. 내일 갈 거야.”

“그래.”

“대신에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부탁? 뭔데?”

티아가 싱긋 웃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안심이 들기는커녕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빼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행하기도 전에 티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게 먼저였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내린 거야. 내일 추첨 용지 넣을 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안 돼.”

나는 다급하게 티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싫어. 공포와 경악으로 몸의 모든 장기들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악물며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악바리처럼 악쓰고 티아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나는 티아의 손 안에 갇혀있던 내 손을 빼고 어두운 눈빛으로 티아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안 돼”

널 잃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나는 티아를 노려보았다.

“알아.”

무엇을 아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티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록 바이러스에 걸린 걸 토큰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나 알아, 오빠.”

티아의 눈에서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
.
<중략>
.
.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 혹시라도”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른 티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가야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나로 살고 나로 죽고 싶어.”


 
2화 Konpam
작성일 : 19-07-19 09:12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9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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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척임도 없이 눈이 떠지며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이불이 내 생명줄인 것 마냥 두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이 느껴지고, 그 다음으로 물속에 잠겨 있다 나온 사람처럼 급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아. 하아.”

 눈을 깜박일 때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로 인해 축축해진 베개가 느껴졌다. 꿈이야. 진짜로 일어난 일이 아니야. 어둠의 잠식되어 있던 정신을 다시 끌어당겨 다시 가라앉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였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평소와 같은 호흡으로 돌아왔다.

 “이런 미친!”

 욕이 튀어나오고 미간은 땔감으로 쓰이는 종이마냥 구겨졌다. 지겹고도 무서운 악몽. 이 말 외에는 불쑥 찾아오는 꿈을 설명할 길이 없어서 더 짜증이 났고, 이젠 화가 날 지경이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선명히 기억하는 것들만 따져도 이 악몽은 16년 동안 3번이나 내 꿈에 찾아왔고, 시작은 무서운 영화도 못 보던 어린 시절이었다.

 “씨발. 또 무슨 일이 생기려고 빌어먹을.”

 다시금 떠오른 기억은 분노란 감정도 같이 불러왔다. 그때는 더 어린 나이였다. 어렴풋이 존재하는 느낌은 꿈임에도, 깊숙이 박혀 어린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비명을 지를 정도로 가슴을 찢어 놓고는 그 속에 오로지 공포심만을 강렬하게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꿈을 꾸는 내내 발작하는 사람처럼 온몸을 떨어대며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던 나를, 끔찍한 소리에 놀라 뛰어온 아빠가 현실로 돌아오게 하지 않았다면 쇼크사로 죽었을지도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나는 왜 그러냐고 묻는 질문에도 대꾸하지 못한 채 한참을 아빠 옷깃을 부여잡고 울었다. 어렸던 만큼 그 충격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젠장. 왜 또 꾸고 지랄이야.”

 얼마나 주먹을 쥐고 있었던지 손바닥이 따끔거리고 손마디가 아파왔다. 단순한 악몽이었다면 이렇지는 않았을 거다. 오로지 공포였다면 이렇게까지 가슴이 울렁거리고 두려움에 손이 벌벌 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꿈을 꾸고 나면 일어나는 ‘끔찍한 일’에 있었다.

 첫 꿈을 꿨던 당시 나는 4살이었고, 막 동생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된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얼굴도 보지 못했던지라 그 소식에 나는 약간의 얼떨떨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악몽을 꾸고 나자 나는 연인보다도 더 절절하게 그 아이를 그리워했고,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극도로 불안해했다. 마치 영영 못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상태는 이틀정도 지속되었다. 티아를 보고 아빠의 도움으로 품에 안았을 때까지. 티아를 본 순간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안도감이 나를 지배했다. 머릿속에는 고장 난 레코드처럼 온통 ‘다행이다.’ ‘살아있었어.’ 두 가지 단어만 반복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나는 이 거지같은 꿈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걸 알았다. 그날.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티아의 얼굴을 보고 나는 비로소 웃음을 되찾았지만 바로 다음 날 건강했던 엄마를 병으로 잃어야했다. 내 불안은 티아를 향했지만 만나지 못하게 된 건 엄마였다. 두 번째 꿈은 6년 전이다. 다행이도 누가 죽거나 다치진 않았다. 그저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아빠를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함을 느꼈다. 주기 없이 찾아오는 악몽 때문에 나는 피를 흘리거나 신체의 일부분이 잘리는 영화보다도 이 꿈이 더 두려웠다.

 깨어날 때마다 선명하게 각인된다는 건 섬뜩하고 분리불안에 걸린 강아지마냥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여러 차례 반복된 일은 그게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고, 나는 남들보다 더 과보호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언제까지나 통할지……. 게다가.

 “타이밍도 참 거지같네.”

 문뜩 떠오른 일로 한숨이 나왔다. 너무 절묘해서. 하필이면 오늘 99%의 확률로 식료품이 떨어질 예정이었고, 그로 인해서 반드시 보급소에 가야만하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티아와 함께 말이지.”

 매번 거지같은 결말로 끝나지만 않았더라도 결정을 내리는 게 손쉬웠을 텐데. 내가 세상에 불만이 많았나? 아니면 전생에 아주 못돼먹고 나라를 팔아먹기라도 했던 걸까? 그럼 내가 죽어야지 왜 항상…… 티아냐고. 막막함에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아, 어떡하지.”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고뇌해봤지만 좋은 대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데리고 가지 않을 방법을 강구해야하나. 소용없겠지만. 한 번 더 숨을 푹 내쉰 채 거칠게 얼굴을 비볐다. 마구 문질러진 피부가 따가웠다.

 “일단 아침부터 준비하자.”

 굳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지금쯤 일어나야 티아에게 아침을 먹일 수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벗어나 가지런히 놓여있는 슬리퍼를 무시한 채 그대로 바닥에 발을 디뎠다. 항상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콘’이지만 그가 잠들어 있을 때만큼은 자동시스템으로 돌려놓기도 했다. 곧 타일의 온도는 땀으로 인한 끈적끈적함과 뜨거운 체온을 식혀주기 위해 가을처럼 시원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발바닥을 타고서 차가움이 올라온다. 그건 기분을 조금 나아지게 했고, 반대로 내 옷은 좋아졌던 기분을 확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

 “찝찝해. 누가 보면 쫄쫄이를 입고 자는 걸로 오해하겠네."

 검지와 엄지로 윗옷 끝자락을 잡아당겼다. 옷이 몸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뚱뚱해보일정도로 펑퍼짐한 잠옷이 지금은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실크와 비슷한 재질로 만들어진 잠옷은 피부에 닿는 감촉은 면과 비슷하게 부드러웠고, 통풍도 잘되었다. 당연히 땀 흡수도 웬만큼은 해주었는데, 식은땀을 꽤나 흘린 모양이었다. 이게 옷인지 몸인지 구별을 못할 정도였으니까.

 몸의 선이 다 드러나는 민망한 상태에 혀를 찼다. 시선을 돌리자 내 상태와 똑같은 침대가 보여 이마를 짚었다. 빌어먹을 꿈 같으니라고. 이 불쾌한 상태와 피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따듯한 물이 담긴 욕조가 간절했다. 티아를 깨우기 전에 ‘콘’부터 깨워야겠는데. 집 안의 시스템을 총괄하는 녀석도 충전을 위해 잠을 자긴 했다.

 콘으로 부르지만 실제 명칭은 콘팜(Konpam)인 시스템을 깨우기 위해 방문 앞으로 가는 동안, 쩍-하는 소리가 발바닥이 타일에서 떨어질 때마다 들려와 얼굴에 짜증만 남게 했다. 윽. 완전 싫어. 조용한 공간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크게 들리는 소리에 나는 바닥 청소를 다짐했다. 그러려면 얼른 콘을 깨워야지. 집사처럼 모든 일을 해결해줄 콘의 알람을 자처한 나는 문도 창문도 없이 감옥마냥 황량한 벽으로 걸어갔다. 문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검은색과는 대조되는 하얀색으로 칠해진 곳이 있었다. 타일처럼 매끈한 벽면의 중간지점-손을 가슴 앞에서 뻗었을 때 닿는 곳-오른쪽에서 세 번째 위치한 곳에 왼손을 올려두고 읊조리듯 시동어를 말했다.

 “BChouse69 시스템, 콘팜(Konpam). 시동”

 단지 세 단어로 이루어지는 아주 간단한 절차로 콘이 깨어나는 순간은 언제나 조용하고 빨랐다. 눈을 두어 번 깜박이는 동안 타일에 대고 있던 손이 점점 밖으로 밀려났다. 내 손 아래에는 배경으로 내가 좋아하는 솜사탕 모양의 구름이 떠있는 직사각형 패드가 불룩하게 튀어 나와 있었다. 곧이어 집을 관리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인 ‘콘’이 딱딱한 음성으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크리스님.>

 말투는 딱딱했지만 억양은 실제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응. 좋은 아침, 콘.”

 어느새 굳어져버린 애칭으로 불러도 콘은 예전처럼 자신의 이름이 콘팜이라고 정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괜찮으십니까? 심장 박동 수가 평소보다 1.2배 빠르게 뛰고 있습니다만. 보고 할까요?>

 내 상태를 먼저 알아채고는 물었다. 관심을 받고 있는 느낌은 좋았지만 보고까지는 원하지 않아서 “아니. 괜찮아.” 단호할 정도로 빠르게 콘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으니까. 콘은 결국 토큰 산하의 거대 의료 및 연구 조직인 플램의 인공지능 시스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플램이란 곳이 아빠가 일하는 곳이기도 했다. 어차피 아빠에게 전해질 일은 없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또한 언제부턴가 차라리 이쪽의 정보를 주지 않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머릿속에서 외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이면 나와 티아의 평소와 다른 정보를 넘기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인공지능 시스템은 각 집마다 존재하고 그로 인해 편리함을 얻었지만 또한 반대로 아주 짜증나는 일도 겪어야 한다는 거다.

 플램은 시설의 모든 사람들의 데이터를 모으길 원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건 유쾌하지 않은 일 중 하나였고, 나 또한 그랬다.

 <알겠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한 번에 내 뜻을 받아들인 콘의 대답을 듣고서야 나는 마음을 놓았다. 콘은 우리들의 건강을 너무 신경 쓰곤 했다.

 “미안하지만 침구 정리랑 세탁 좀 부탁할게.”

 나는 재빨리 이야기의 화제를 바꿨다. 콘에게 있어 견딜 수 없는 또 다른 한 가지는 우리들이 평온하고 불편 없는 생활을 하는 거였으니까. 역시나 콘은 별말 하지 않았지만 나는 긴장했다. 내 목소리는 심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콘이 질문을 할까봐 나는 보이지도 않는 시스템의 눈치를 봤다. 대체 왜 그딴 꿈을 꿔서는. 콘은 이번에도 침묵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침울했다. 실제로 콘이 하는 일은 아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으니까.인공지능이라고 해도 콘은 우리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실체가 없기에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우린 내가 기억이란 걸 할 때부터 같이 살았고, 콘이라는 애칭도 아빠가 설정해준 것이라 더 애틋했다. 물론 규칙에 따라서 플램에서 정해준 이름으로 부르거나, 아예 이름을 설정하지 않는 방법도 있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콘의 이름은 아주 긴 이름이 되었을 것이다. 이름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큐브의 이름을 설정하는 요소는 색깔과 활용용도, 그리고 번지수인데, 이름을 정하지 않으면 정말 단순하게도 ‘시스템’ 이라는 단어만 뒤에 붙는다. 가령 우리 집을 예로 들면 집 ‘BChouse69’뒤에 시스템만 붙어, 간단한 것을 요청할 때라도 BChouse69 시스템으로 불러야 하는 참사가 일어난다는 의미다.

 콘으로 불러도 대답을 해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대부분의 인공지능처럼 유두리가 없는 시스템이었다면 턱도 없었을 거였다. 혹시 아빠가 손을 본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콘은 상황에 따라 다른 대처를 종종 보여주곤 했다. 오늘처럼. 사실 플램에서 시스템을 업데이트한 걸 수도 있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을 뿐더러, 아까처럼 지정된 규칙을 따르지 않고 나를 위한 결정을 내려주기도 했기에 아빠 쪽이 더 신빙성이 있었다. 콘이 우리에게 해가 될 결정을 내리는 걸 보지 못한 것 또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게다가 콘은 무척 유능했다.

 고개를 돌려 침대가 있던 곳을 확인하자, 침대와 침구가 침몰하는 배처럼 빠른 속도로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옛날에 있었다던 마술사들이 사용하는 공간 혹은 손 안에 물건을 넣고 사라지게 하는 그런 류는 단연코 아니지만, 그에 착안한 방법이기는 했다. 그저 공간 활용과 발달한 기술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 정확한 이유를 알고 있는 발명자는 아쉽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원리는 친절하게 토큰 또는 플램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그 원리란 마법이 아닌, 선택된 부분의 블록(*블랙 큐브*100개의 집합이자 사물의 방. 그리고 2개 이상의 블록의 집합을 사람의 공간이자 큐브 혹은 방이라고 한다.)이 빈 공간의 블록으로 교체된 것일 뿐이고, 실제로 교체 되는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마법 혹은 신기루처럼 보이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하도 익숙해져서 처음 느꼈던 감동은 사라진지 오래다.

 “음, 저녁쯤이면 완전히 마르겠지?”

 <앞으로 5시간 후면 완전 건조 될 예정입니다.>

 “그래? 다행이다.”

 잘하면 오늘은 소파를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소파도 나름 나쁘지는 않다. 침대로 쓸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은데다가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폭신함까지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침대만큼은 편하지 않지만. 물론 정말로 싫으면 다시 침대를 요청해서 받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절차라는 게 귀찮을 정도로 까다로웠다. 필요한 이유와 경위를 신청서에 세줄 이상 길게 적어야했고, 토큰(*현재 유일정부의 명칭)에 허락을 받아야했으며, 그런 다음에야 플램에 보낼 요청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요청서에는 빌어먹게도 많은 질문지가 나열되어 있었고, 맨 마지막장에는 영상까지 제출해야했다. 번거롭기도 하지만 시간 낭비였다. 영상을 제출하라니.

 “그럴 바엔 365일 내내 소파에서 자고 말지.”

 죽어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플램에서는 내가 자는 사이에 무단으로 뇌파를 측정하고 내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할 테니까. 그런고로 정말 다행이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안심하고 나자 아침마다 해야 할 일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제 좀 씻어야겠어. 할 일이 태산인데. 지금 이불을 걱정할 때가 아니야. 특히 아침에는 더욱 바빴다. 챙겨야할 애들이 많다니까. 콘은 얌전하기라도 하지 티아를 깨우는 건……. 플램에 요청서를 보내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왜 이렇게 우리 집에는 손이 가는 얘들이 많은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알람 기능은 고장 나지 않았다. 잠귀가 어두운 동생은 잠도 많아서 웬만해서는 아침 먹을 시간에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첫 번째는 아침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티아를 깨우는 일이 되었다.

 “욕조 좀 준비해줘.”

 <온도는 평소처럼 준비할까요?>

 그동안에 데이터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음에도 콘은 오늘은 내 의견을 물었다. 솔직히 갈등 중이다. 악몽을 꾼 날은 몸이 찌뿌둥해서 뜨거운 물에 푹 담그는 게 최고였으니까. 오늘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는 결국 평소처럼 해달라고 주문했다.

 “응, 부탁해.”

 뜨거운 것보다는 적당히 따듯한 온도가 좋을 것 같았다. 사람의 체온보다 2도 높은 정도.

 나는 콘이 욕조를 꺼내고 그 안으로 콸콸 물이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했다. 어릴 적에 보았던 국민체조 영상이 꽤 인상 깊게 남아 있어서 어딘가 뻐근하다 싶으면 체조부터 하는 버릇이 들었다. 여하튼 준비가 되면 바로 들어갈 생각으로 발가벗었다. 약간 추운지 팔에 소름이 돋았지만 콘이 미리 틀어둔 온풍이 퍼지면서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국민체조를 하면서 시간을 때우던 나는 쏟아지던 물소리가 멈춘 걸 깨달았다. 뒤를 돌아보자 방 한가운데 설치된 욕조가 따듯한 김을 모락모락 피어 올리며 어서 들어오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욕조 주위 1m 반경에는 블랙 계열이 아닌 하얀 계열의 미끄럽지 않은 욕조 타일로 바뀌었다. 타일은 새것마냥 깨끗했고, 닿자마자 따스한 기운까지 느껴져 벌써부터 노곤해질 정도였다. 기분 좋은 미소가 입가에 지어졌다. 기다리지 않고 나는 욕조에 발을 넣었다. 금방이라도 넘칠 듯 일렁이던 물의 높이는 내가 들어가도 변함없이 잔 일렁임뿐이라 신경 쓰지 않고 몸을 푹 담갔다.

 따듯함에 몸이 풀어지며 노곤해진다. 후우. 그 기분 좋은 느낌에 아침의 피로를 담아 숨을 내뱉었다. 여기서 좀만 더 하면, 내 나이에 맞지 않는 소리가 나올 것만 같아서 언제나 하는 것처럼 욕조 안으로 완전히 머리까지 푹 넣었다. 꾹 감고 있던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빛을 받아 밝은 금색 빛을 띠는 내 머리카락이었다. 물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양새가 바다에 있다던 해초를 닮았다.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 다시 붙었다하는 머리카락 사이로 천장에 달린 주황색 형광등이 보였다.

 나는 몸에 힘을 빼고 그 불빛을 뚫어져라 보았다. 본적도 없는 햇빛을 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는 기분이 들어 묘했다. 현실에서는 바다에 가는 것도, 태양을 보는 것도 불가능했으니까. 때때로 이렇게라도 간접적으로 상상해보곤 했다. 가끔은. 어릴 때 아빠가 애정을 담아 해줬던 말처럼 내 눈을 통해 바다의 색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혹은 비가 개인 후 보이는 하늘을 상상했다.

 우리가 보는 하늘은 정교하게 그려진 가짜라서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하늘을 보는 것도. 따가운 빛을 뿜어내는 태양 때문에 눈을 찌푸리는 것도. 해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세상은 한번 끝이 났으므로······.

 이제는 집에서 얼마든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며, 학교란 시설자체가 없어졌다. 공부 역시 나이, 내용 이런 것 따위는 상관없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궁금했다. 왜 우린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는 거지? 이미 오래전부터 환경에 대한 경고는 꾸준히 있었고, 우린 한 가지 희망을 가졌다. 언젠가는 우주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그곳에서는 태양을 볼 수 있을까? 태양은 지구와 대략 1억 5천만km 라는 거리가 있음에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고 했다. 정말로 그럴까? 나와 불빛 사이에 내가 만든 기포가 뽀글뽀글 만들어지며 시야를 가렸다. 모아둔 숨이 부족해졌다는 걸 깨닫고 바로 고개를 물 밖으로 빼내자, 그로 인해 물방울이 바깥으로 조금 튀어 얼룩을 만들었다.

 모자란 숨을 채워 넣는 데 집중하던 나는 밖에서 다시금 불빛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가상현실을 통해 느꼈던 뜨거움을 기억해내자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 떨렸다. 그건 실제 태양의 1000억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온도일 테지만 살이 타는 통증을 느끼게 했고, 한동안은 샤워할 때마다 아픔이 찾아올 정도는 되었다. 상념이 길어지자 그 감각이 전이된 것처럼 물에 닿는 살결이 따끔거렸다. 분명 착각이겠지만.

 “쓸데없는 상상은 그만해야지. 으아, 좋다.”

 욕조 턱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피식 웃고는 욕조를 벗어난다. 철벅. 물에 젖은 발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욕조로 된 공간 밖으로 나가자 수건과 함께 입을 옷과 속옷이 허리까지 오는 탁자 위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우리 콘은 센스도 있다니까. 물기가 뚝뚝 타일에 떨어지며 흔적을 남기는 동시에 곧바로 흡수되어버리는 걸 보면서 탁자 앞까지 간 나는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고는 외출복을 집어 들었다.

 옷은 보통 잠옷과 외출복 두 가지로 나뉘는데, 대량 생산 되는 옷 중에서 외출복의 경우는 10대, 20대와 같이 나이대별로 정해져있었다. 스타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편했지만 반대로 실제 나이 대를 추정하기 어렵다는 점과 함께 개성이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물론 나는 큰 불만은 없다. 단지, 색깔은 좀 다양했으면 싶은 마음이 간혹 들기는 했다. 너무 구별이 안가서.

 당연히도 내게 주어진 옷은 10대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하얀 셔츠와 회색 바지와 가죽 워커. 셔츠 왼쪽 심장근처에 달린 주머니에는 토큰의 문양(*누워있는 ‘C' 모양은 땅을 상징하며 위협을 의미하는 가시넝쿨이 둘러져있다. 그 안에는 작고 약한 새싹이 피어나 있으며, 보호를 의미하는 손 혹은 날개가 전체를 감싸고 있는 형태로 ‘생명’과 ‘보호’를 의미한다.)이 수놓아져 있고, 회색 바지는 잘 다려져 가운데 선이 있었으며, 가죽워커는 하얀색의 밑창을 제외하고는 전부 검은색으로 되어 있었다. 계절자체가 없으니 20대로 넘어가지 않는 한 계속 이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음. 그건 좀 싫을 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옷을 다 갈아입고 탁자가 있는 곳을 바라보자 이미 나타났을 때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빠르다니까. 그나마 방을 채우고 있던 욕조마저 깔끔하게 사라지자 그저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상자 같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검은 구멍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어차피 꿈이야.”

 머리를 작게 흔들어 악몽을 털어냈다.

 <괜찮으신가요?>

 흘리듯 뱉어낸 말인데 콘은 놓치질 않았다.

 “별거 아니야. 소등해줘.”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불빛마저 없앴다. 출구 없는 까만 블록들에 갇혀 어쩔 줄 모르는 미아처럼 그 자리에서 어두운 공간을 잠시 훑어보다가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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