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
 1  2  3  4  5  >>
 
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이 작품 더보기 첫회보기

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13 순록을 탄 여인의 승리 (3)
작성일 : 19-07-15 23:10     조회 : 126     추천 : 0     분량 : 481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에어드부르가가 그곳의 이름을 시인의 숲이라 바꾸기 전에, 그 숲의 이름은 그믐달 숲이었다. 숲의 모양이 그믐달처럼 생긴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지만, 숲 안이 꼭 그믐달이 뜬 밤처럼 어두워서 그런 것도 있었다.

 

  수많은 인간과 흡혈귀가 죽은 전장에 뿌리내린 숲은 그곳에서 죽은 모든 이들의 저주를 양분으로 삼았다. 저주를 먹고 기이한 어둠을 드리우는 그 숲은 흡혈귀들에게 성지였다. 그믐달 숲의 특별한 힘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해 고성의 주춧돌을 파내고 심은 숲은 환한 대낮에도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그늘을 만들었다. 그 그늘과 숲의 깊은 곳에서 아직도 마르지 않은 죽은 이들의 핏물은 흡혈귀들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타인의 생명을 앗아 저주를 흩뿌리려는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르티제는 물론 그 주변의 많은 지역에서 그믐달 숲에 군림한 흡혈귀들의 폭거를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흡혈귀의 폭거를 끝낸 것은 인간이 아닌 흡혈귀였다. 아르티제의 인간이었던 에어드부르가가 흡혈귀이면서도 비천한 노예의 삶을 살다가 사제들과 힘을 합쳤다. 그녀는 왕관을 땅에 떨어뜨려 짓밟고, 자신을 흡혈귀로 만든 그믐달의 왕을 죽였다.

 

  그날부터 그곳은 시인의 숲이 되었다. 하지만 그곳의 저주와 특별한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아직도 흡혈귀의 성지였고, 많은 흡혈귀가 그곳과 에어드부르가가 차지한 고성의 옥좌를 노렸다.

 

  오 년 전, 에어드부르가가 영원한 빛이 되면서 그 옥좌를 차지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직도 흡혈귀인 것처럼 행동하여 한동안 지배를 이어갔지만, 이내 흡혈귀의 통제를 받는 인간들이 그녀가 이제 그곳을 지배할 권리가 없음을 알아내고 말았다.

 

  에어드부르가는 캐서린의 현명함을 높게 샀다. 자신과 맺은 계약에 다른 흡혈귀를 숙청할 권리를 무기한으로 유지해주었으니까. 흡혈귀의 성지를 흡혈귀로부터 지키는 파수꾼을 사제가 아닌 흡혈귀로 둠으로써, 에어드부르가는 지배할 권리가 없어도 다가오는 위협을 배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달했다. 얼마 전, 영원한 빛으로도 한눈에 다 아우를 수 없는 숲의 어둠 속으로 외지의 흡혈귀가 숨어들었다. 창백한 백발에 붉은 눈을 가진 사내의 모습이 산에 맞닿은 시인의 숲 경계에 나타났다는 것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가 직접 숲의 주인이 사는 고성으로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믐달 숲을 거짓된 이름으로 부르는 자여. 자격이 없음에도 숲을 다스리는 자여. 옥좌를 내놓을 때가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 에어드부르가는 없었다. 옥좌의 옆에서 자리를 지키는 조지만 있을 뿐. 에어드부르가는 며칠 전부터 조지에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대신해 숲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려둔 채로.

 

  조지는 무례한 침입자의 등장에 얼굴을 찡그렸다. 침입자의 발이 닿은 곳에서는 메마른 장미 덩굴이 자라고 있었다. 저것은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다. 조지는 바싹 긴장했다. 언젠가 그의 주인이 흡혈귀의 종류에 관해서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본래 흡혈귀는 모두 같은 저주를 공유하는 존재들이었노라.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저주들과 서로 먹고 먹히면서 흡혈귀도 종류가 다양해지기 시작했지. 랴논시도 마찬가지다.”

 

  그중에는 흡혈귀의 상식을 벗어나, 특별한 힘을 가진 종류도 있었다. 그들을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라뮤로스.”

  “아아, 그 말대로다. 나는 장미 덩굴의 흡혈귀, 라뮤로스 드무스다.”

 

  장미는 흡혈귀를 물리치는 힘을 가진 식물 중 가장 강력한 것.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장미를 피워내 자유자재로 다루는 흡혈귀라니. 조지는 허리춤에 찬 칼집에 손을 대었다. 에어드부르가가 숲을 지키라는 명령과 함께 내려준 검이었다. 코등이에서 내려와 자루를 감싸는 모양으로 치장된 순록의 뿔이 독특한 형태의 검이었다.

 

  “너는 에어드부르가의 권속인가? 에어드부르가는 어디에 있지?”

  “너에게 알려줄 것 같은가. 침입자.”

  “그래? 사실 상관없다. 그녀가 지금 이곳에 없다면, 이 숲을 차지하는 일은 더 쉬워지지.”

 

  드무스가 장미 덩굴을 피워낼수록, 숲은 망가지고 있었다. 칼날보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린 숲의 나무들과 동물들이 피를 흘렸다. 조지는 숲을 망가뜨려서라도 차지할 속셈인 침입자를 빨리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멈춰라. 너는 이 숲을 차지할 수 없다.”

  “나는 이 숲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죽더라도 이곳에서 저주를 더 깊게 만들겠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여기서 죽어라!”

 

  조지는 검을 빼 들어 드무스에게 달려들었다. 드무스는 이를 드러내 웃으면서 조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장미 덩굴이 조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지는 덩굴을 자르며 침입자에게 다가갔다. 드무스는 계속 덩굴을 일으켰다. 결국 그의 덩굴이 조지의 팔을 스쳤다.

 

  장미 덩굴의 날 선 가시가 스친 상처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흡혈귀와 만난 장미가 일으키는 정화작용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조지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검을 떨어뜨리고 주저앉았다.

 

  드무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조지의 몸통을 꿰뚫을 생각으로 장미 덩굴을 피워냈다. 조지는 고통을 피하려는 본능대로 몸을 움직였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치명적인 상처가 생기는 것을 겨우 막을 뿐이었다. 온몸에 정화하는 불꽃이 붙었다.

 

  “이걸로 끝이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네 주인을 원망해라.”

 

  드무스의 목소리에 조지가 그를 노려보았다.

 

  “내 주인을 모욕하지 마라. 너 같은 것은 손짓 한 번에 없애실 분이시다!”

  “하, 고작해야 쾌락을 주는 척이나 할 뿐인 랴논시가 말이냐.”

 

  조지는 이를 갈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대항할 힘이 사라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드무스가 다시 장미 덩굴을 조종해 그의 사방팔방에서 겨누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고개를 숙였다. 멀어지는 드무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은, 그의 주인 에어드부르가와 사랑하는 그렉의 미소였다.

 

  조지는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이 여기서 쓰러지면 에어드부르가가 드무스를 이길 수 있을까. 이미 그가 숲을 장악한 뒤라면, 에어드부르가라도 승산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무스가 숲을 장악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마을과 성소에 손을 뻗는다면.

 

  그렉이 위험하다.

 

  조지를 감쌌던 불꽃이 부풀더니 터져나갔다. 그를 노리던 장미 덩굴이 모두 타들어 사라지자, 드무스는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에어드부르가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그의 시선은 다시 조지에게로 향했다.

 

  장미 덩굴의 가시에 스치고 흡혈귀를 정화하는 불을 뒤집어썼는데, 어느새 그 모든 상처가 아물었다. 조지는 떨어뜨린 검을 다시 잡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여기서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드무스는 장미 덩굴을 휘둘렀다. 조지는 검으로 덩굴을 쳐냈다. 그를 다른 방향에서 노리는 장미 덩굴에 상처가 났지만, 그 상처에서 일어난 불꽃은 금세 사그라지고 상처도 사라졌다. 침입자가 외쳤다.

 

  “너도 라뮤로스로 각성한 건가. 그렇다면 나와 함께하라! 내가 너의 피를 취해 에어드부르가와의 계약을 끊어주겠다!”

  “필요 없다. 나는 랴논시 에어드부르가의 권속, 흡혈귀 조지. 시인의 숲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마음에 품은 소중한 이의 미소를 위해 지키려는 자다.”

  “소중한 이의 미소? 그런가, 그런 거였어!”

 

  드무스는 고성의 밖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장미 덩굴이 시인의 숲을 벗어나 아르티제 전체에 뻗을 속셈이었다.

 

  “네가 지키는 모든 것을 망가뜨리겠다. 막고 싶다면 너의 피를 나에게 바쳐라. 아니라면, 네가 마음에 품은 모든 것을 네 눈앞에서 죽이겠다.”

 

  그 말에 조지는 검을 더 세게 쥐었다. 그 창백한 얼굴이 살의로 어두워졌다. 드무스는 조지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죄를 짓기로 한 이들의 감정은 그에게 늘 자극적인 달콤함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올 지키지 못했다는 절망에서 느껴지는 씁쓸함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후식이었다.

 

  드무스는 장미 덩굴 두 줄기를 키워냈다. 그가 그것들을 움켜쥐자 덩굴은 쌍창으로 변했다. 드무스는 재빠르게 뛰어올라 조지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조지의 움직임은 조잡했다. 검을 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한 어린아이의 움직임이었다.

 

  조지는 드무스의 두 창과 사방에서 날아오는 덩굴을 막는 데에만 급급했다. 몸에 불이 붙지 않고 상처도 바로 아문다고 하지만,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치고 들어오는 가시덩굴에 난 생채기들로 그는 속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드무스는 조지를 상대하면서도 여유롭게 그의 장미 덩굴로 시인의 숲과 그 너머를 지배하고 있다. 만약 장미 덩굴이 그렉을 덮쳐 상처를 입힌다면. 조지는 이를 악물고 드무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드무스의 쌍창이 가볍게 그의 검을 막아섰다.

 

  “정말로 이상하군. 아무리 라뮤로스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을 텐데.”

  “뭐가 말이냐.”

 

  드무스는 팔에 힘을 실어 쌍창으로 조지를 밀어 넘어뜨렸다. 조지는 중심을 잃고 쓰러져 앉았다. 드무스는 두 창을 그에게 겨누지 않았다.

 

  “너는 정말로 에어드부르가의 권속인가?”

  “당연한 것을.”

  “하지만 왜 너의 주인은 너를 구하러 오지 않지? 권속에게 일어난 일을 주인은 모두 알 수 있다.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네가 나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모를 수가 없어.”

 

  아니면. 드무스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영원한 빛이 되면서 그 연결고리가 끊긴 건가?”

 

  조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무슨 소리냐. 나의 주인 에어드부르가는 흡혈귀시다. 영원한 빛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네 주인이 너에게 진실을 가르쳐주지 않았나?”

 

  무얼, 아무래도 좋다. 드무스는 조지에게 쌍창을 겨눴다.

 

  “영원한 빛이 된 그녀를 이긴다면, 나는 흡혈귀를 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극복하게 된다. 그 극점에 다다르는 나의 숭고한 여정 앞에 제물이 되도록 해라.”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완결 후기 2020 / 8 / 16 556 0 -
공지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중간고사 … 2019 / 10 / 12 662 0 -
공지 8월 28일 <너무 밝은 곳의 그대> 휴… 2019 / 8 / 28 699 0 -
공지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연재주기 … 2019 / 8 / 16 682 0 -
44 에필로그 2020 / 8 / 16 305 0 1007   
43 #42 밝은 곳의 그대와 함께 (2) 2020 / 8 / 16 267 0 3654   
42 #41 밝은 곳의 그대와 함께 (1) 2020 / 5 / 24 292 0 3705   
41 #40 정해진 운명대로 (3) 2020 / 4 / 5 278 0 4110   
40 #39 정해진 운명대로 (2) 2020 / 3 / 26 297 0 4234   
39 #38 정해진 운명대로 (1) 2020 / 3 / 5 287 0 4483   
38 #37 원초의 파편 (3) 2020 / 2 / 19 294 0 4114   
37 #36 원초의 파편 (2) 2020 / 2 / 12 284 0 4250   
36 #35 원초의 파편 (1) 2020 / 2 / 6 300 0 4699   
35 #34 이단의 빛 (4) 2020 / 1 / 8 307 0 4018   
34 #33 이단의 빛 (3) 2020 / 1 / 1 321 0 4223   
33 #32 이단의 빛 (2) 2019 / 11 / 24 313 0 4125   
32 #31 이단의 빛 (1) 2019 / 11 / 14 308 0 4353   
31 #30 언약과 고요 (5) 2019 / 11 / 2 302 0 3782   
30 #29 언약과 고요 (4) 2019 / 10 / 3 309 0 4039   
29 #28 언약과 고요 (3) 2019 / 9 / 26 311 0 4592   
28 #27 언약과 고요 (2) 2019 / 9 / 19 308 0 3999   
27 #26 언약과 고요 (1) 2019 / 9 / 12 320 0 5031   
26 #25 재탄의 날 2019 / 9 / 4 315 0 4454   
25 #24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4) 2019 / 9 / 4 311 0 3972   
24 #23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3) 2019 / 8 / 21 289 0 4157   
23 #22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2) 2019 / 8 / 15 312 0 4144   
22 #21 너를 위한 미끼가 되어 (1) 2019 / 8 / 12 332 0 4362   
21 #20 기억 속의 그 아이 (5) 2019 / 8 / 8 314 0 4372   
20 #19 기억 속의 그 아이 (4) 2019 / 8 / 5 319 0 4444   
19 #18 기억 속의 그 아이 (3) 2019 / 8 / 1 311 0 4067   
18 #17 기억 속의 그 아이 (2) 2019 / 8 / 1 322 0 5110   
17 #16 기억 속의 그 아이 (1) 2019 / 7 / 25 301 0 4257   
16 #15 순록을 탄 여인의 승리 (5) 2019 / 7 / 22 329 0 4643   
15 #14 순록을 탄 여인의 승리 (4) 2019 / 7 / 18 331 0 4996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