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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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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1 생각지 못한 재회 (1)
작성일 : 19-05-20 23:00     조회 : 92     추천 : 2     분량 : 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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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있었나요, 그렉.”

  “아, 던스턴 사제님.”

 

  그렉은 발코니 아래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대답했다. 그렉에게 사제의 길을 가르친 스승, 던스턴이었다.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는 성소의 구석진 곳에 난 작은 계단을 걸어왔다. 스승은 제자가 이 시간까지 연습했다는 것이 기특한 모양이었다.

 

  “잘했어요.”

 

  던스턴은 의자에 앉은 그렉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락거리는 소리 사이로 그렉의 손보다 두꺼운 굳은살이 느껴졌다. 세월의 무게와 제자를 향한 애틋함이 있었다. 옛날에 잃은 외아들에게 전부 바치지 못한 사랑도.

 

  “줄 것이 있어요.”

 

  던스턴은 제 허리춤에 묶인 편지를 그렉에게 보여주었다. 양피지에 적힌 글을 읽은 그렉의 눈동자가 천천히 커지고 입가가 올라갔다.

 

  “편지의 원본은 살루티스 중앙 대성소로 지금 달려가고 있답니다. 아마 다음 달이면 답신이 올 거예요.”

  “잘 되겠지요?”

  “그대는 열심히 수련해왔잖아요. 오 년간 그대를 살핀 제 판단이 틀릴 일은 없으리라 믿어요.”

 

  수행 사제로 있으면서 그렉이 해온 일의 기록, 그에 따라 정식으로 사제직 서품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서였다. 중앙에서 이 편지를 받아들인다면 그렉은 이곳 아르티제 성소의 사제가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교단의 음악을 책임지는 성찬(聲燦) 사제, 아름답고 올바른 음악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직이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답니다.”

  “알고 있어요.”

 

  던스턴은 발코니의 반대편에 있는 제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렉이 살았던 아르티제 마을의 사람들, 아르티제 성소의 사제들, 그리고 이곳에 머무는 영원한 빛들. 던스턴이 입에 올린 모두는, 그 전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던스턴 본인도, 이번 대의 성찬 사제로서 그에게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오르간을 정리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아직 잠이 오지 않으니 저는 여기서 공부를 더 하겠습니다.”

  “알아서 잘 조절하리라 믿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안녕히 주무세요. 던스턴 사제님.”

 

  지하로 내려가는 던스턴의 뒷모습을 지켜본 그렉은 제단 바로 앞의 의자에 앉았다. 악보를 들여다보는 그는 천천히 콧노래를 불렀다. 성소 곳곳의 촛불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양초의 나무 심지가 타면서 내는 소리가 화롯가에 앉은 듯 편안하게 들렸다.

 

  악보를 다 들여다본 그렉은 악보를 가지런히 정리해 옆에 내려두고 책을 펼쳤다. 새벽녘 교단의 기도서였다. 사제가 되면 사람들을 이끌고 의식을 주재할 의무가 있어 적어도 기도서는 다 외워야 했다. 이미 다 외웠지만, 그는 마음을 가라앉힐 겸 기도를 올렸다.

 

  “세계 그 자체이신 원초의 빛, 원초의 빛과 함께하시는 아홉 선지자. 그리고 선지자들의 뜻을 받들어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영원한 빛들께 아뢰오니. 우리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이에게 예정된 구원의 날이 더 가까이 오도록,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나아가옵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이에게 예정된 구원의 날. 그렉은 자신보다 조지의 구원을 먼저 생각하며 기도를 올렸다. 생사도 알 수 없는 그 아이의 구원을. 만약 그가 명을 달리했다면, 필멸자의 굴레에 따라 다시 태어나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환생의 구원이라도, 부디 올바른 삶을 살아 영원한 빛이 되는 구원을 빌어주자. 그것이 지금 그렉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렉, 자신보다도 더 소중한 이를 마음에 품은 사제여, 그대의 기도가 구원에 닿으리라.”

 

  영원한 빛들이 그의 기도를 듣고 화답했다. 부디 그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렉은 중얼거리며 감사를 표했다. 그렉은 계속해서 기도를 올렸다. 그리운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짧지 않은 시간의 기도를 끝내고, 그는 노래를 불렀다.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를 구해주소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악보와 기도서를 챙겼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졌다.

 

  “루카스 사제님이십니까.”

 

  그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저 누군가의 그림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 시선의 끝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렉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오르간이 있는 발코니 위로 사람의 형체가 있었다.

 

  초하루의 밤보다도 더 어두운 그림자. 성소를 지키는 영원한 빛들도 알지 못하게 그림자는 이미 성소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렉은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그 형체에 말을 건넸다.

 

  “거기, 누구 계십니까.”

 

  그러나 그림자는 말이 없었다. 그렉은 천천히 그림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림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림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렉은 그 그림자가 어째서인지 친숙하다고 느꼈다. 제단으로 향하도록 나 있는 중앙의 복도를 걷는 그렉의 발소리가 울리고, 그렉은 그림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더 높이 들었다. 그제야 그림자가 조용히 소리를 내었다.

 

  “멋진 연주였어.”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앳되었다. 그렉의 눈은 놀라 크게 떠졌다. 페리도트의 빛을 내는 그의 눈동자에 그림자가 비쳤다. 그 목소리가, 시간을 거슬러 찾아왔다. 살아 있었어. 그는 순간 그림자의 이름을 입에 올리려고 했다.

 

  “우리의 아름다운 그렉, 흔들리지 말지어다. 저 그림자는 이미 인간이 아니다.”

 

  제단의 촛불들이 거세게 불타며 경고했다. 그렉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 그림자의 모습을 다시 살폈다.

 

  아득하게 먼 옛날, 질투의 죄로 형제를 죽이고 그 피로 목을 축인 죄인이 있었다. 그 죄인이 받은 저주는 피에 대한 갈증을 불렀다. 해소되지 않는 갈증에 잠시 목을 축여줄 수 있는 것은 타인의 피뿐이다. 피는 대지에 떨어지는 소중한 생명, 피를 잃은 자로서 찾아야 할 안식을 빼앗기고 혼은 더럽혀진다.

 

  그렇게 저주에 물들어 끝없는 갈증에 갇힌 존재를 무어라 부르는지 그렉은 알고 있었다.

 

  “흡혈귀.”

  “너무하네, 이름으로 불러줘. 그렉 형.”

 

  아무리 빛으로 가득한 성소라 해도 어두운 곳은 있다. 흡혈귀의 그림자는 성소의 돌기둥이 만들어낸 옅은 명암을 향해 연기가 되어 파고들었다. 그림자는 이제 완연한 실체로 다가왔다. 그렉은 영원한 빛들이 주변을 에워싸며 하지 말아 달라 했음에도, 순간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조지.”

  “정말 오랜만에 보네. 오 년만인가?”

 

  네가 어떻게, 라고 말을 덧붙이기 전에 흡혈귀는 조용히 자신의 검지를 제 입술에 대었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말아줘. 그는 그렇게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는 신체는 오 년 전과 똑같은 십 대 후반의 소년이었지만,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약간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과 머리카락도 마치 때가 묻은 천처럼 약간 누런빛으로 일렁였다.

 

  “그렉이여, 우리의 어린 사제여. 저 흡혈귀를 몰아내라.”

  “하지만 저 아이는 제가 그토록 구원받기를 바랐던 아이입니다. 제가 그럴 수는 없어요!”

  “사제여, 그대의 기도는 언젠가 구원에 닿으리라. 하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니다.”

 

  영원한 빛은 자신들과 상극인 개념, 저주에 민감하다. 영원한 빛을 기리고 빛의 가르침을 따르는 성소에 저주받은 존재가 나타났다면 사제의 기도가 없이도 그들은 저주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지의 구원을 바라는 그렉의 기도가 있었기에 그들은 유예를 주고 있는 셈이었다. 직접 쫓아낼 수 있도록.

 

  촛불이 모든 것을 태워 잿더미로 만들 듯이 새파란 불꽃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렉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흡혈귀를 몰아내는 기도문을 배운 적이 있던가. 기본적인 지식은 체칠리아가 이야기해준 것도 같았는데. 하지만 정말로 그를 몰아내야 할까. 그가 정말로 내가 아는 조지라면, 내가 그를 몰아낼 수 있을까. 그렉은 수많은 생각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쾌하네. 내 발로 나가겠어.”

 

  조지는 자신을 없애려드는 파란 불꽃에 얼굴을 찡그렸다. 조지는 끝내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 그렉에게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는 성소의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의 목소리가 성소에 메아리를 남겼다.

 

  “달라졌어. 너무 밝은 곳의 그렉 형은 나에게 노래조차 해주지 않는구나.”

 

  흡혈귀가 사라지고, 새까만 하늘로부터 날아드는 밤바람만이 아득한 소리를 내며 성소를 채웠다. 그림자를 모두 잿더미로 만들 기세로 타오르던 촛불도 다시 잠잠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렉은 결국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멍하니 그림자가 있던 자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고는 한참 뒤에야, 눈물인지 밤이슬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얼굴에 드리운 채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

 

  “조지, 나로는 너를 정말 구할 수 없었던 걸까.”

  “무슨 일 있었나요?”

 

  그렉은 황급히 옷소매로 제 얼굴에 드리운 것을 닦고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성이 숙소로 이어지는 지하 계단에서 나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밖이 소란스러운 것 같아 나왔답니다. 아직도 잠들지 않고 공부 중이었나요?”

  “아, 캐서린 사제님. 그러니까, 이건.”

 

  이 성소를 관리하는 주임사제 캐서린은 머뭇거리는 그렉을 보고, 그를 둘러싼 영원한 빛의 무리를 느꼈다. 그녀는 조용히 뒤돌아섰다.

 

  “그만 돌아오세요, 그렉. 너무 늦게 자면 내일 할 일에 지장이 생긴답니다.”

  “아, 네!”

 

  그렉은 캐서린을 따라 지하로 들어갔다. 캐서린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그는 침대에 누웠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사춘기의 비행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애써 눈을 감으며 잠을 청했지만, 눈을 감으면 조지의 모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잠에 들지 못하고 밤을 넘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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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나 19-05-2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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