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아아아-!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끔찍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 자처해서 뛰어든 제로스를 탓하고 싶었지만, 집중하는데 방해될까봐 말을 아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말을 하게 되는 때는, 푸른빛의 마나 핵이.
까앙-
이런 소리를 내며 내 곁을 스쳐지나갈 때 뿐이었다.
[으아아악!]
사실 말이라기 보단,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지만... 크흠.
그렇게 심장이 벌렁벌렁 해지는 드라이브(?)를 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여태껏 로봇의 머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제로스가, 몸을 일으킬 기색을 내비쳤다.
퍼억! 퍽!
한손은 사용 불가에다, 남은 손 마저 이곳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용되고 있었기에.
고작 몸을 일으키는 행동에도 많은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킴에 따라 노출 면적이 넓어져, 날아드는 파편에 피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제발...! 몸 좀 아껴주세요! 이러다 다 망가지겠다고!!]
날아드는 파편도 파편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마나 핵이 몸에 꽂혀들어올 때였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날아온 마나 핵들은 대략 3~5초가 흐른 뒤에 폭발했다.
그런데 그것들이 몸과 부딪혀 잠깐이나마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면?
콰앙-!
[으악!]
이런 식으로 지근 거리에서 폭발하게 된다.
다행히 이번에는 큰 피해 없이 넘길 수 있었다.
로봇의 빠른 속도 덕분에, 일단 몸에서 떼어 놓기만 하면, 마나 핵과의 거리는 상당히 벌어지게 되니까.
하지만 다음번엔? 다음에도 운 좋게 넘길 수 있을까?
장담컨데, 아니라 말 할 수 있다.
내 운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니까.
[왜 일어난거야!]
"으-음. 당연히 떨어지기 위해서다."
[뭐?! 떨어진다고? 여기서? 그게 뭔 개소리야!]
"...사람의 언어를 사용했는데, 그게 개의 소리로 들린다니.... 역시 머리 뿐만이 아니라 귀가..."
[이런 개....으아아아아악!]
"....안됐군..."
떨어지기 위해서 일어난다는 말에, 내 이성은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나가버렸다.
그렇게 이성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웃음 뿐이었다.
[하하하하핳! 아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
나는 그저 웃었다.
금방이라도 목숨을 거둬갈 것 같은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라!
이 광경을 보고 어찌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쯧쯧..."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렇게 기억들을 살펴보니, 나는 평소에 잘 웃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미소 정도는 자주 짓곤 했지만, 크게 웃음을 터트린적이 적었다.
그래서 더 크게 웃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질질 짜는 것보단, 세상을 향해 웃음을 터트리는게, 인생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해줄 것도 같았고.
"간다."
내가 미친듯이 웃고 있음에도, 제로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뛰어내릴 준비를 마쳤다.
전과는 달리, 살짝 틀어진 대각선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제로스.
정면이 아니라 대각선 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인지, 시야 밖에서 날아오는 파편들을 쉬이 피할 순 없었다.
그 때문에 몸에 적중하는 유효타가 상당히 늘어났다.
고개를 트는 것과 동시에 몸까지 틀었기에 망정이지, 고개만 돌렸다면 진짜 셀 수도 없을 만큼 두들겨 맞았을 거다.
...따지고 보면 지금도 셀 수 없는 건 마찬가진가?
퍽! 퍽!
주륵-
근데 왜 얘는 기껏 방패로 만들어둔 왼팔은 쓰지도 않고, 멀쩡한 오른팔을 방패 대용으로 사용하는 거지?
왼쪽 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일까?
방패로 만들어둔 왼팔은 뒤로, 구멍에 걸쳐놓은 마나 블레이드를 붙잡고 있는 오른팔은 앞을 보는 형태가 되었다.
애초에 왼팔은 움직일 수가 없기에, 왼팔만을 옮겨 앞에서 날아오는 것들을 막는다는 선택은 할 수가 없다.
효율적으로 방패를 활용하기 위해선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게 훨씬 낫다.
꼭 왼쪽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주르륵-
아니, 근데. 머리는 좀 움직여주면 안되겠니? 왜 갑자기 뻣뻣해진 건데?
내가 목에 철심을 박은 것도 아닌데, 목이 너무 뻣뻣한거 아냐?
얼마나 머리를 처맞았으면, 이렇게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냐고!
지금도 뒤통수를 가격당하고 있는 것인지, 시야가 덜컥 거리며 흔들린다.
그에 내가 뭐라 한소리 하려는 순간.
"흡!"
돌연, 제로스가 허공을 향해 몸을 날렸-
덜컹!
[-다?!]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왼쪽의 통로.
본래 그곳을 향해 뛰어내리려던 제로스의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도 분명, 뭐에 걸린 것이 확실한 상황.
제로스는 구멍에서 뽑아낸 마나 블레이드를 급하게 차체에 꽂아넣었고, 검신이 전부 차체에 박혀들고 나서야 떨어지던 몸을 멈춰세울 수 있었다.
기기기기깅-!
파고들어간 검신이 중요한 부분을 손상시켰는지, 차체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왠지 불안하다.
안그래도 옆의 벽면이 코앞이라 불안해 죽겠는데, 환장할 일이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제로스의 움직임이 뒤이었다.
덜컥 덜컥
몸이 걸린 원인은 다름아닌 왼팔이었다.
정확히는 왼팔의 틈새에 쑤셔 박아놓은 냉각 기기, 그 기기에 달라붙어 있는 파편들이 원인이었다.
정면을 보고 있을 땐 문제가 없었는데, 왼팔을 뒤로 돌릴 때, 뒤에 있던 이음새 부분에 파편 중 하나가 끼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상당히 얇고 긴게, 적당히 힘을 주면 빠질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애초에 왼팔을 움직일 수가 없기에, 왼팔에 힘을 주어 빼낸다는 선택지는 불가능했다.
저것을 빼낼 방법은 내가 생각하기엔 총 두가지.
하나는 정말 온 힘을 다해 여기서 뛰어 내리는 것.
방금 전엔 착지를 생각해 적당한 힘만 준 것이 문제였던 거다.
그러니 착지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점프를 보여준다면 저것을 떼어내는 것이 가능 할 것이다.
물론, 저 파편의 강도 따위를 내가 잘 알지 못하기에. 실패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른 하나는, 뛰어내리기 전. 마나 블레이드로 저것을 자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마나 블레이드는, 차체 위에 있을 때와는 달리, 단단히 박혀 들어간 상태다.
그것 하나에만 온 체중을 지탱하고 있으니, 얼마나 단단히 박혀들어갔는지는 알 거다.
그렇게 깊게 박힌 것을 찰나지간에 빼내고, 또 왼팔에 붙어 있는 파편을 자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제로스가 뛰어내리려던 통로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을 보고 내린 판단이다.
그기기기기깅-!!
내가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있는게 걱정스러웠던 걸까?
나보고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말라는 듯, 차체가 거대한 울음을 토해왔다.
그 소리에, 내 머릿속은 백지가 되어 버렸다.
[야야! 이거 터지는 거 아냐? 튀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이고! 아이고!]
그때, 시야가 일순간 확! 변했다.
흑갈색 일색의 벽면이 사라지고, 뻥 뚫린 통로가 나타났다.
그 순간에 보인 것은, 수 많은 기계 인간들이었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놈들과 눈이 마주쳤다 느꼈다.
놈들도 아마 그것을 느꼈을 거다.
쌔애액-! 쌔액-!
눈이 마주쳤다는 신호로, 무언가를 쏘아냈으니까.
누가 기계 아니랄까. 정확한 계산을 통해 쇄도해오는, 아마도 공격일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
놈들도 우리가 차체 옆에 달라붙어 있다는 사실은 예상 못했는지, 우리를 비껴가는 공격들이 대다수였다.
그와는 반대로, 정확히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도 있었다.
퍽! 퍽! 퍽!
다른 소리와는 다른 피격음이, 정확히 세번 들려왔다.
그 외의 것들은 전부 콱! 쾅! 같은 소음을 내며 차체에 박혀들어갔다.
"음..."
[괘,괜찮은거 맞죠?]
제로스의 시선이 신체를 전체적으로 한번 훑는다.
그를 통해 내 몸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세번의 피격음은 전부 왼팔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녀석! 짐덩어린 줄 알았더니, 제 역할 톡톡히 하네!]
방패 역할을 잘 수행한 왼팔을 향해 칭찬을 날려준 뒤, 그제서야 보이는 공격 해온 물체들.
화살처럼 박혀들어간 물체들의 꼬리엔, 굵은 와이어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것은 차체에 꽂힌 다른 것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전부 굵은 줄을 달고 있었다.
[뭐야, 이건?]
그 줄은 전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줄의 반대편에 아까 그 기계 인간 부대가 있는 것 같았다.
분명 부스터의 열기가 상당할 텐데도 끊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작정하고 온 것 같다.
이런 류의 작전을 펼친 것에 대한 이유는 아마도, 폭주하는 로봇을 멈추기 위한 것.
무작정 공격을 펼치기엔 이것이 터질 가능성이 있었고, 저들은 이곳의 시설이 더이상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해서 이런 복잡한 작전을 펼친 것 이리라.
그그그그긍-!!!
아무리 공격을 최소화하고 단순히 꼬챙이 같은 것을 꽂아넣었을 뿐이라지만, 현 상태의 차체엔 그것 마저도 무리였나 보다.
차체에서 들려오는 괴음이 심상치가 않다.
"으음..."
하지만 심상치 않은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왼팔에 꽂혀든 3개의 금속창.
그 창의 끝에 있는 굵은 줄 또한 팽팽한 상태다.
한마디로 내 팔이 강제로 뜯겨나가기 일보 직전이라는 얘기다.
안그래도 멀쩡한 팔 잘라내고 기계팔 붙인 것도 서러운데, 그 기계팔마저 뜯어가려 하다니...
그야말로 병주고 병주는 상황!
제로스가 어떻게든 해보려 하는게 보였지만, 나는 이미 마음을 내려놓은 상태다.
콰아아-!
놈들의 작전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부스터가 여전함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오른쪽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싶다.
통로가 왼쪽에만 있는건 좀 비효율적이니까.
음? 그렇게 생각하니 좀 이상한데? 오른쪽에도 통로가 있으면 거기로 뛰어내리면 좀 더 편하지 않았으려나?
....없겠지? 그래, 없을거야.
차라리 뒤쪽에서 쫓아오던 놈들이 발사한 거라 생각하는게 나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럴싸하네.]
그때, 또다시 눈 앞에 변화가 생겼다.
벽면이 사라지고 뻥 뚫린 통로가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는 느려진 속도 덕분에 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번 통로 역시 기계 인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쌔애액-
마찬가지로 쇄도해오는 작살.
그것들이 날아오자, 결심이 섰는지, 행동에 나서는 제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