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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시야기 (詩夜記) _ 시가 있는 밤, 그리고 이야기
작가 : 2+1=3
작품등록일 : 2016.9.26

주인공은 고아 출신이고, 현 직업 백수이다. 시간제 업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바빴던 그는, 어느날 출판사에서 걸려온 전화에 크게 놀란다. 그의 소설이 크게 흥행했고, 그에 따른 페이가 오늘 중으로 입금될 것이라는 이야기. 그는 자신이 아니라며 당황해한다. 그러나 소설을 직접 구매해서 살펴 본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전에 써두었던 시들이 소설에 삽입시로 수록되어 있었고, 소설이 진행되는 배경은 비록 그 지명이 나와있지는 않았으나, 그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정감이 드는 장소들이었다. 과연 그를 유명 작가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은 누구이며, 대체 어떻게 그도 모르는 그의 삶의 이면까지 파악하고 있었을까?

 
Prologue_ 나는 작가가 아니다
작성일 : 16-09-27 09:01     조회 : 536     추천 : 2     분량 : 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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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장 서막 - 나는 작가가 아니다

 

  내 몸은 뼈가 갈리는 굉음 속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치과의 수술대 위에 눕혀져있다. 무엇이라 말할 수 없지만 너무도 익숙한 특유의 물 비린 냄새와, 나의 입안 세계를 뒤지는 수술용 장갑의 고무 냄새 비슷한 것이 인중 밑을 겉돈다. 젖통 빠는 갓난 아이처럼 입안 수분을 모두 빨아들이키는 석션 때문에 목젖이 말라 바스러질 것 같다. 의사는 내게 이가 시리면 말하라며 위선적인 격려를 보내지만, 개구기로 입을 벌리고 가녀린 잇몸을 위협하는 날카로운 수술도구들이 입안에 가득한 채로 말을 꺼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불어, 말한다 한들 이 뼈저린 고문을 그만두기나 할 텐가? 차라리 석션을 쥔 반대쪽 손으로 내 움직임을 통제하는 간호사의 의도적인 신체 접촉을 즐기는 것이 이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할 것이다.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수술대 쪽으로 붙어 그녀의 있으나마 못한 빈약한 것을 내 얼굴에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곤 머릿속으로 생각하겠지,

 

  ‘나는 이 남자에게 충분한 섹스 어필을 주었을 것이다.’

 

  과연 지당하나, 지금은 그녀가 던지는 추파를 받아주기에는 성욕보다는 분노가 들끓는 순간이다. 담당 의사였던 여자가 해외 연수를 떠나고 나서 경험 없는 남자 신입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치료 시작부터 마취주사를 혈관에 정확히 놓지 못해 애먹는가 하면, 계속해서 스케일링을 잇몸에 갖다 처박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의 발달은 나의 잇몸을 심각한 유혈사태로부터 보호해 주었지만, 무지한 이의 서투름은 나의 주먹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곤 내일 아침 기사에는 이렇게 실리겠지,

 

  “작가 J 씨, 치료 중이던 담당 치과의사에게

  무차별 폭행 저질러…”

 

  그래서 나는 그만둔다. 나는 작가니까. 나는 지나치게 감정에 충실한 인간이며, 순간의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는 순간 상상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추한 예술인으로 낙인찍힐 작자니까. 그 낙인은 나를 관중들의 충실한 개로 만들 것이다. 불에 뜨겁게 달궈진 인두가 피비린내 나는 노예들의 살가죽을 찢어놓은 것처럼, 나는 내 긍지와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자들에게 고개 숙여 절해야 할 것이다. 온갖가지 변명을 해대며 기자들의 눈치를 살피고, 반성은커녕 복귀에 알맞은 시간을 탐색하며 그동안 축적한 부로 혼자만의 여가를 가질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사실 지금 당장 이 의사를 때려눕히는 것도 그리 나쁜 방안은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나를 향한 의사의 시선을 의식했다. 혹여 내 생각이 표정에 묻어 나오지는 않았을지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개구기를 끼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환자에 불과했다.

 

  "충치가 너무 깊어서 건들기만 해도 이가 바스러지네요." 형편없는 의사가 말을 꺼냈다 (이가 바스러지는 것은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이만 건드리란 말이다!)

 

  "그래도 아직 레진으로 치료 가능한 정도입니다. 비용은 15만 원인데, 괜찮으시죠?"

 

  나는 개구기를 착용한 채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의 의사를 표했다. 의사는 옆에 있던 차트에 무언가를 적어 넣기 시작했다.

 

  치과는 나 같은 환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치료를 받는 동안 심심풀이로 해석해볼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나의 치아를 숫자를 붙여 구분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치료가 시작될 때면, 나는 1번 치아가 어디며, 만약 오른쪽 위의 어금니가 1번이라면 그 번호는 윗니부터 차례대로 계산하는지, 아니면 합이 맞는 아래쪽 어금니를 2번으로 하는지 따위의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암호를 해석해보려고 애썼다. 요즘은 시대가 발전해서 글을 쓸 때에도 컴퓨터라는 것을 이용하고 그 컴퓨터라는 것이 내가 궁금한 것들을 대신 찾아주기도하지만, 사실 이런 암호들은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지루한 보철 치료를 그나마 빨리 흐르게 해줄 놀이인 동시에, 입안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위약 같은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혹시 무슨 일을 하시나요?" 차트를 살펴보던 의사가 내 입에 달린 개구기를 빼주면서 물었다. 끈적한 침이 묻어나 길게 늘어졌다.

 

  "왜 그러시죠?" 나는 간단히 입을 헹구고는 괜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많이 들어본 성함이어서요. 혹시 글을 쓰는 일을 하시나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며칠 전에 이 밑에 있는 서점에 갔었는데, 거기 맨 앞 진열대에 있던 베스트셀러 작가와 성함이 똑같으신 것 같아요. 아마 제목이 시야기(詩夜記)...였던 것 같은데, 제가 맞게 봤나요?"

 

  이 풋내기 의사는 내가 대답해줄 때까지 일어날 생각이 없는듯했다. 나는 별로 대답해줄 의향 따윈 없었지만, 의사를 밀치고 수술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글쎄요, 저도 그 소설을 정말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작가 이름을 몰랐었는데, 동명이인 것 같군요."

 

  거짓말은 필요 없는 마찰을 줄여준다. 내가 알고 보면 작가라는 사실이 그에게 득이 되거나, 혹은 그것을 숨김으로써 그에게 독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내가 그 작자라고 말하는 건 사실 조금 껄끄러웠다. 더불어 다음 진료 때는 실력 있는 담당 의사가 해외연수에서 돌아올 터였고, 이 형편없는 풋내기를 다시 만날 일도 없었다. 만날 일 없는 이와 소설에 대한 질문을 받아주며 괜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책이란 결국 독자가 완성시키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 그 죄를 작가에게 물으려 하는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얼굴에 가슴을 비벼대던 레지던트에게 다음 예약을 하고 치과를 나왔다. 코끝을 축축하게 하던 물 비린 냄새가 사라지자 숨통이 트였다. 쾌적한 공기의 복도에는 작은 병원들이 조목조목 붙어있었다. 치과 바로 앞에는 정신과가 있었고, 그 옆으로 소아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이 줄을 이었다.

 

  상쾌함을 즐길 틈도 없이, 병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약품 냄새들이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계단을 타고 내려가 의사가 말한 대형 서점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동안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문을 뚫고 나온 짙은 에스프레소 향기와 아침이라 비교적 오염되지 않은 도시의 가로수 냄새를 온 피부로 만끽했다.

 

  자동문에 다다르자 키가 훤칠한 경호원이 눈에 띠었다. 투블럭을 하고 검은색 정장으로 말끔히 차려입은 그에게서는 페라리 라이트 블루의 은은하면서도 톡쏘는 향이 났다. 그의 옆으로 자동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서점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차 발 디딜 틈 조차 없었다.

 

  여전히 가장 앞에 진열되어있는 인기작은 화제의 시야기(詩夜記)였다. 마치 쇼윈도에 전시된 명품이라도 되는 듯이, 조명을 받은 그 책은 영롱한 빛을 반사해냈다. 책의 표지를 몽환적인 느낌의 시골 밤길이 장식했고, 가로등 밑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녀는 책 표지에 적혀있는 한편의 시를 감상하는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 시는 이렇게 읽혔다.

 

  『술 취한 밤

  고요를 깜빡이는 저 가로등은

  얼마만큼의 외로움을 마셨기에

  저리도 딸꾹질을 하나

  나무도, 땅도, 바람도, 나도

  어느 것 하나 울렁이고 술렁이지 않는 것이 없는데

  오직 하나 저 하늘의 별만 혼자 우두커니 박혀있다

  그대는 외롭지 아니한가 보다

  나도, 저 가로등도, 술에 취해 외로움을 딸꾹이는데

  홀로 선 그대 뒤로는 내가 보지 못하는 수많은 기쁨들이 있나 보다

  어쩌면 깜빡이는 저 가로등 밑으로

  내가 기다리는 사람도 나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뻔뻔한 놈.'

 

  시야기(詩夜記)는 시야(詩夜)라는 제목의 시집으로도 출간되었었다. 시야기(詩夜記)가 출간된 이후 반응이 뜨겁자, 소설에 등장하는 시들을 모아서 단편 시집을 낸 것이다. 많은 팬들이 작가와의 만남을 원했지만, 그는 신인상 수상식에서조차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독자들에게 제공된 정보라고는 그의 이름, 그 위대한 석 자뿐이었다.

 

  그대들은 내가 시야기의 작가라고 단언하고 있었나? 그렇다면 지금 나의 서술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뛰며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던 한낱 백수에 불과했다. 그런 내가 하루아침에 온 국민이 사랑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버렸다. 동명이인?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쓴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그리운 향기가 났다. 생각나지 않는 기억 저편의 노스텔지아를 불러일으켰단 말이다! 이건 분명히 나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라고, 난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그의 소설에 사용된 시들은, 모두 내가 어릴 때부터 수첩에 적어 보관해왔던, 나의 일기장과도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과거의 일이 기억나지 않았고, 그 시들은 과거를 붙잡아 주는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 그런 시들을 그는 마치 자기 것인 양, 자기 소설의 모티브로 삼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는 어째서 나의 삶을,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삶의 이면을 세상 사람들에게 멋대로 공개했나? 그는 어째서 그의 성공을 나의 몫으로 남겨두고, 그 많은 돈마저 나에게 넘겼나?

 

  SNS 의 보급으로 별 해괴한 글들도 시라며 설치는 잔챙이들이 늘어났고, 정작 서점에서는 시라는 장르를 접하는 사람들이 점차 줄던 추세에, 시를 주제로 한 소설로 대성공을 거둔 작가. 세간에 단 한 번도 얼굴이 공개된 적 없는 변태적인 성격의 신비주의 작가. 그는 그 추악한 모습을 감추고 주변에서 누군가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떠들어댈 때 남몰래 우수감과 승리감에 도취해 혐오스러운 수준의 전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찾아야만 했다. 내가 기억날 때마다 서점에 들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시야기가 처음 언론에 언급되기 전에도 그 책을 찾아 이곳에 왔었고, 시야라는 후속 시집이 출간되었다 했을 때도 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헛된 희망을 품고 이곳에 왔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를 찾아야 했다. 내 이름을 사칭해서 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누군지도 모르는 나를 돈방석에 앉혀준 작가라는 작자를, 나는 찾아야만 했다. 나도 기억나지 않는 나의 과거를 속속들이 소설로 써내리고 있는 이 변태 같은 작자를 꼭 잡아다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쓴 시를 너무도 뻔뻔하게 책의 표지로까지 설정해놓은 그를 찾아 꼭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대체 누군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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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ologue_ 나는 작가가 아니다 2016 / 9 / 27 537 2 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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