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 뒤에 쪼그려 앉으며 아내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감기 걸린다. 들어가자.”
정미경은 말없이 그때 쓰러졌던 그 자리를 덮은 눈을 쓸고 있었다. 김근수 입에서도 어떠한 궁색한 위로도 변명도 나오지 않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물끄러미 아내의 옆모습을 보면서 감싼 어깨를 두드리기만 했다.
‘그때는 사랑하던 사람이 당신이 아니었기에! 이수현을 사랑했기에 당신에게 갈 수 없었어!’
정미경의 눈물이 볼까지 흘러내려 얼음이 돼 떨어지기 않고 있었다. 김근수가 아내의 볼을 두 손바닥으로 꼭 쥐듯이 감싸며 눈을 마주치며 불렀다.
“여보!”
대답은 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 있었지만 이해한다는 의미를 담은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 눈이 김근수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김근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물을 숨기려는 듯이 아내의 얼굴을 그의 가슴에 당겨 꼭 껴안았다.
그 시각에 송년회 자리는 시끌시끌했다. 누군가가 김근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야! 수경이! 근수한테 연락 안 했어? 안 올 놈이 아닌데 왜 안 와?”
이수경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오히려 물었다.
“그 애 뭐해? 옛날 집 전화로 했는데 집사람이 받더라. 걔 사업해?”
“사업은 무슨! 그 새끼도 지금 과장일거야. 취직만 하면 뭐해. 우리처럼 연줄이 없는데.”
이수경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걔도 취직했어?”
그때 이수경이가 김근수 자취방 앞에 가져다 놓은 도시락 때문에, 김근수와 정미경이 간혹 삐걱거리며 싸우는 현장에서 싸움을 말리며 도시락을 거의 다 해치웠던 김근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눈을 흘겨 이수경의 표정을 살피면서 심하게 부풀려서 말을 하고 있었다.
“야! 임마! 네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몰란단 말이야? 나는 네가 근수와 결혼을 안 해서 별 희한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취직한 줄도 몰랐다고 하니 더 희한하네. 혹시 시국사범은 취직 못하는 줄 알고 일찌감치 차 버렸냐? 그렇지 않고는 모를 수가 없지. 그 친구 최연소 부장으로 진급하고 바로 독립했다. 지금 직원이 백 명도 넘어!”
그때 김근수와 친했던 다른 친구가 귀속말로 물었다.
“야! 근수 지금 소 키운다고 들었는데. 농사도 짓고. 내가 잘못 들었어?”
부풀려 얘기했던 친구가 눈을 찡긋하며 귀속말로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그래! 소가 백마리 넘는다. 소는 직원 아니냐? 너도 지금 소처럼 일하고 있잖아?”
그러나 취직해 최연소 부장이고 지금은 독립했다는 말에 놀라고만 있었던 이수경이 두 사람 간에 귀속말로 오고 가는 대화를 듣지 못하고, 취직을 했다는 자체에만 관심을 두고 김근수와 친했던 또 다른 친구 옆에 바짝 붙어 다시 물었다.
“내가 분명히 들었어. 시국사범이라 원서 넣을 마음 전혀 없다고 했는데……. 무슨 말이야?”
이 친구는 한술 더 떠 이수경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애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그때 우리 과에서 전원 취직해 교수님이 겹 경사라며 한방 세게 쐈잖아. 아! 맞다. 너도 군대 갔다 온 줄로 내가 깜빡 했네. 너는 그때 이미 학생이 아니었지. 그래서 모르는구나. 근수 마누라도 근수하고 같은 회사에 취직했어.”
이수경이 다시 믿지 못하는 듯이 추궁하듯이 물었다.
“그럼! 마누라도 우리 학교 출신이야? 누군데?”
그때 다른 여자 동기가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너도 알걸. 정외과 다니고 뽀얗게 생긴 게 엄청 예뻤어. 그런 애가 학생운동을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그때 학교가 떠들썩했는데. 맞다. 근수 고향 여자 친구가 학생 운동을 했는데 그 애하고 아마 아는 사이였을 걸. 그러니 근수를 소개해줬겠지.”
김근수하고 친했던 친구들이 눈을 크게 뜨고, 끼어들어 양념을 추가하듯이 말한 여자동기를 보고 있을 때 이수경의 도시락을 가장 많이 먹었던 친구가 배를 잡고 웃으면서 말했다.
“야! 제 추리 멋진데. 어쨌던 부부는 부부다.”
그때 추리한 여자동기가 이수경에게 말했다.
“허허허! 수경아! 너! 전화번호 몰라! 전화 해봐라. 지금 다른 데서 헤매는 거 아냐?”
이수경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김근수를 멀리하게 된 계기가 된 때보다 더 치욕스런 기분을 느낀 이수경은 그때 있었던 일을 말해버릴까 하다가 자신만 더 초라해 질 것 같아서 참고 있었다. 가끔씩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수치심을 불러 일으켰던 이수현이란 이름은 영원히 이수경의 뇌리에 거머리같이 붙어 있는 이름이었는데 또다시 환생해 앞으로 몇 년 동안 또 나를 괴롭히겠구나.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하게 지켜보며 몰래 배필 한 결과는 뒷구석에서 날아오는 조롱의 눈빛들. 이 친구들은 학창 시절에도 나의 어줍잖은 선행을 알고 있었고, 그건 멍청한 팔불출이나 저지르는 오지랖. 나의 오지랖을 즐기면서 시국사범과 사상범이란 말을 내세워 철저히 나를 기만까지 한 놈. 목숨까지 아니더라도, 나! 이수경이 아닌 이수현을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구하려고 했던 놈이 이수현이 아닌 그 새내기. 이래나 저래나 낙동강 오리 알. 이수경은 자신의 통찰력에 흡족해하면서 떨리는 치는 어쩔 수 없어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그때 김근수와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는 가장 친한 친구가 말했다.
“야! 근수 이놈 출발하진 다섯 시간이 지났단다. 이 놈 어디서 헛다리 짚고 있어.”
“그 족집게가 헛다리 짚을 때도 있네. 결혼식 때 마누라 보니까 역시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그 놈 그거 하여튼 신통한 놈이야. 이래저래 집적거려 맛보고는 최고만 딱 골랐다는 기분이 들더라. 그 놈 그거 회사 그만두고 사업하는 것도 더 이상 있어봤자 회사를 갖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만 뒀겠지. 그렇겠지?”
이수경을 빙 돌려 씹고 있는 동기는 신입생 때 이수경에게 줄기차게 집적거리던 친구였다. 이수경은 두 번 다시는 동기들 모임에 오지 않기로 작정을 하면서 못 들은 척하며 웃고만 있었다.
“야! 직장 생활 하는 놈 중에 사장되는 걸 목표로 두고 하는 놈이 몇이나 된다고 그런 말을 하냐? 자기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그만뒀겠지.”
“아니! 그 새끼 배부른 놈이라서 그래!”
이 말 저 말이 오 갈 때 이수경이 김근수 자취방에 가져다 놓은 도시락이며 반찬을 가장 많이 먹었던 동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처럼 기댈 구석 없는 놈들이야 처자식을 위해라도 숨 죽이고 살아야 하지만 그 놈은 아쉬울 게 없어. 그 놈이 다니던 회사와 우리 회사가 경쟁사인데 오래 전에 근수 상사가 그러더라. 근수 그 놈 겁 대가리 없는 놈이라고. 학교 다닐 때나 회사에서나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박아버리는 건 똑 같더라.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래! 우리처럼 아무것도 없는 놈들은 꿈도 못 꾸는 짓이다. 다 제 복이라고 겸허히 받아들이자.”
그때 옆에서 듣던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까짓 촌 동네에 땅이 많아 봤자 거기서 거기지 뭐! 있어봐야 서울에 한 평 값밖에 더 되겠어. 애 새끼가 겉 멋만 들어서 그래! 야! 오지도 않는 놈 가지고 좋은 자리 술 맛 떨어지게 하지 말고 우리끼리 위로나 하자. 자! 건배!”
이수경과 몇몇 동기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건배를 했다. 김근수와 친한 친구 몇몇은 돌아앉아 헛웃음도 숨기고 있었다. 그렇게 누가 김근수와 친하고 친하지 않는 지로 갈라서지면서 송년회 자리도 그렇게 나눠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