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이 길어가면서 어느새 송년회 날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은 날 전화가 왔다.
“아가야! 애 아비 동기란다. 전화 받아라.”
어느새 마음이 누그러진 온화한 음성에 정미경이 쪼르르 들어갔다가 ‘아차!’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근수하고 동기인 이수경이라고 합니다. 근수 좀 바꿔주세요.”
‘이런 싸가지. 어디 남의 신랑한테 함부로 근수라니. 아! 너! 미니스커트! 이수경!’
“아! 예! 안녕하세요. 애들 아버지는 모레 오시는데 무슨 일이죠?”
“출장 갔나요?”
‘이런 따지기는!”
“아뇨! 직원들과 야유회 갔어요. 무슨 일이에요. 제가 전할게요?”
“어! 사업하세요? 직원이 몇 명?”
‘이런! 알아서 뭐하게?’
“글쎄요! 제가 집에만 있어서 저는 몰라요. 오시면 전화 왔다고 전해드릴게요.”
“휴대폰 번호 좀 가르쳐주세요.”
“그건 곤란합니다. 업무용 휴대폰만 가지고 다녀서요. 개인용은 제가 가지고 있는데 개인용이라도 괜찮겠어요?”
“많이 바쁜 모양이죠. 휴대폰을 따로 들고 다닐 정도면. 그럼! 송년회 때 꼭 참석하라고 하세요.”
‘이런!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야!’
“아! 예!”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운기 소리와 함께 김근수가 아버지와 함께 들어왔다. 정미경이 경운기로 쫓아가서 경운기에 가득 실린 비료 내리는 일을 도우면서 물었다.
“자기 과에 송년회 한다던데 갈래?”
김근수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비료만 내리고 축사로 가고 있었다. 정미경이 많이 가고 싶었던 것 같았다. 불 같은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던 목소리가 사금 (沙金) 상납 후부터 닭살 돋는 아양으로 변하더니,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천성이 애교만점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변해 있었다. 김근수 몸에 짝 붙어 팔짱을 끼고 사지까지 흔들며 추근대고 있었다.
“자기야! 가고 싶단 말이야. 같이 가자!”
“당신은 정외과잖아.”
“그래도 가고 싶다. 자기야! 행사장에 일체 안 들어갈게. 교정만 보고 있을 게. 응!”
겨드랑이를 서너 번만 간질이면 바로 넘어가는 김근수의 약점도 적극적으로 이용한 정미경의 작전이 딱 들어 맞았다.
“언제래?”
“다음 주!”
김근수가 난색을 표시하면서 정미경에게 말했다.
“안돼! 당신 피부 이식하려고 병원에 얘기해뒀어. 진찰받으러 가야 해.”
정미경의 인상이 벌겋게 변하고 있었다. 숨도 씩씩대기 시작했다.
“아니! 그걸 왜 자기 마음대로 해. 설령 내가 이 부위가 아파도 그렇지. 내하고 의논부터 될 거 아냐? 그리고 내가 괜찮은데 뭐 하려고 쓸데없는 데 돈을 버려? 싫어!”
정미경이야 앙탈을 부리던 말던 김근수는 축사에 짚단을 풀어 헤쳐 던져 놓고 소 사이로 들어가 발로 툭툭 차 깔고 있었다. 노려보던 정미경도 똑 같이 툭툭 차면서 칭얼대듯이 말을 했다.
“솔직히 무서워서 말을 안 했어. 내 몸에 쇠 대는 거 정말 싫어. 하고 싶었으면 벌써 했지. 응! 최소해줘!”
“쇠 덩어리가 꼭 나쁜 데만 쓰이는 게 아니란 걸 당신에게 경험시켜주고 싶어서 그랬어. 당신 삽도 호미도 갈고리도 무서워 못 들잖아. 나무 삽이며 나무 호미며 나무 갈고리 만들 나무도 이제 없어. 그러니 이제 잊어버리고 훌훌 털어. 학교에 가고 싶을 정도면 이젠 시술해도 된다는 말이잖아. 앞으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았는데 말 나왔을 때 해!”
김근수가 암소 궁둥이를 세게 치면서 단호하게 말을 하고 음탕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비키니 입은 미끈한 여자가 계속 눈에 아른거려서 요즘 일을 못하겠다. 당신 몸매면 모델 뺨치는 데 한번 입어 볼래? 내가 아무래도 발정기인 것 같아. 이거 한번 시작하면 나도 걷잡을 수 없어.”
정미경이 갑자기 아랫도리가 찌릿해 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흉터 때문이 아니었다. 이 동네의 환경 때문이었다. 시집왔을 때나 지금이나 동네 어귀에는 빨간 집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많아졌고 불과 몇 분 거리에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수현도 턱 하니 버티고 있어서였다. 그보다 더 무서운 저 놈! 부녀회 회장을 하면서 총각 때 김근수의 실체를 확실히 파악해버렸다. 이수현도 단지 스쳐간 여자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던 것 가까이 살아서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
“좋아! 이식할 테니까 그대신 학교에 가는 걸로. 오케이?”
김근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침침하면서 밖에 세워 둔 포터를 보자 정미경이 바로 눈치를 채고 김근수의 입을 막았다.
“뭐! 버스 타고 가면 되지. 자기나 나나 술 고래인데 차를 어떻게 가져가?”
김근수 표정이 소 똥 속에 있으면서도 똥 밟은 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음날 자동차 영업을 하는 김근수 친구가 김근수는 본체 만체하고 마당으로 쫓아 들어와 김근수 부모님에게 구십 도로 인사부터 하고 정미경 앞에 서서 허리를 굽실거리며 부탁을 하고 있었다.
“제수씨! 신용카드로 안 되겠습니까? 제가 남는 게 없어서.......”
정미경이 단호했다.
“그럼! 다른 데 알아볼게요. 그 대신에 내일 바로 준비해주면 웃돈은 드릴 수 있어요. 차 안은 얘기한 대로 최상으로 요. 떼먹을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최고로.”
누구는 십 년이 훨씬 넘은 세월 동안 도랑에서, 다리가 퉁퉁 부어 썩어갈 정도로 사금을 캐 벌은 돈을, 누구는 통장 관리하는 위세 하나로,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가 된 현실. 다음날 김근수의 친구가 이 나라에서 가장 비싸고 최고로 좋은 차를 구해 왔다.
획 둘러보던 정미경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친구가 준 서류를 보고 두툼한 봉투를 친구 손에 호기롭게 탁 소리를 낼 정도고 건넸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미경 여사님! 보험까지 제가 깨끗하게 해결 했으니까 걱정 마시고 타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정미경 여사가 미리 들고 온 바구니에 담긴 뭔가를 차 위에 획획 뿌리며 김근수를 보고 깨끗이 닦으라고 했다.
“뭐야! 지금!”
깜짝 놀래며 어안이 벙벙했던 김근수가 물었다.
“새 차 표시 나면 안되잖아.”
“그렇다고 거름 쓰려고 발효시킨 소 똥을 부어? 아이고 내가 정말! 시내에 한 시간만 몰고 다니면 차 배기 통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만으로도 충분한데. 아이고 정말 정미경여사 때문에 내가 울다가도 웃는다.”
“친구야! 웃어라. 세계에서 최고의 부인을 둔 네가 부럽다. 이런 차를 현금으로 사는 고객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부럽다고 말을 하자마자 ‘고생해라’ 는 말이 나오다니 친구야! 내 마음이 엄청 아프다. 이 나이에 울 수도 없고. 세차장에 맡기면 혹시 상처가 날 수 있으니 네 손으로 꼼꼼하게 닦아라. 나는 간다.”
그때 김근수 딸이 이수현의 손을 잡고 와서 물었다.
“어이 냄새! 이 똥차 누구 거야? 이모 빨리 도망가! 몸에 전염되겠어. 어! 냄새!”
이수현의 손을 끌어 마당으로 들어 가버리는 딸을 보면서 정미경이 무안한 듯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