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금이야?”
멈칫하던 김근수가 약간은 맥이 빠진 소리로 말했다.
“응! 저런 장독 스무 개에 더 있다.”
환희에 찼던 정미경의 얼굴이 급격하게 실망으로 돌아서면서 말했다.
“거짓말도 어지간히 해라. 장독대에 장독이 스무 개가 겨우 넘는데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해. 에이 씨! 김 세네!”
정미경이 벌렁 눕더니 획 돌아누워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김근수는 어이가 없어 그저 웃고만 있었다. 비록 황금은 아니지만 사금(沙金)이 쌀 한 가마가 들어가는 장독에 들어가 있는 데 실망해 돌아 누운 저 여자. 욕심에 끝이 도대체 어디일까?
다음 날 김근수는 정미경을 데리고 스무 개가 넘은 장독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래며 눈이 휘둥그래졌지만 이내 시큰둥하게 말했다.
“뭐야! 사금(沙金)이잖아. 난 또 황금인 줄 알았잖아.”
“그럼! 어제 본 건 뭐야? 황금이라며 좋아했잖아!”
“한 움큼이라서 신기했지만 많이 있으니까 별로 내. 황금도 아니고. 그런데 이거 어디서 났어?”
미심쩍은 눈으로 김근수 눈이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아 물었다. 김근수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기분 나쁘다는 눈치를 확실히 전하고 난 뒤 정미경의 눈을 붙잡고 나갔다. 거긴 정미경이 가장 가기 싫어하고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앞 도랑이었다.
“어릴 때 형들이 여기서 사금이 난다고 해서 몇 번 따라왔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아서 헛소리가 생각을 했어. 금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형들도 그렇게 주워담아서 놀다가 집에 가져 가지 않고 버렸어. 나도 그랬고.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수현이 신랑이 죽고 난 뒤에 솔직히 당신하고 송희씨를 의심했었어. 수현이 동생도 내처럼 촌놈이고 신랑이 경찰인데 농약의 독성을 모를 리 있겠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분명히 누군가가 몰래 뿌렸을 거란 생각을 했어. 그렇게 도랑을 뒤지다 보니까 도랑에서 농약 병이 거짓말 보태서 수천 병이나 나오더라. 사람들이 농약을 치고 난 뒤에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조금 남은 농약을 집에서 보관하기도 마음에 걸리고 귀찮으니까 병을 논에 버려두고 갔겠지. 특히 우리 동네는 바다와 가깝잖아. 태풍이나 큰비가 오면 병들이 물살에 떠밀려 전부 바다로 가고 어떤 병은 태평양을 건너 해외로도 가겠지. 그렇게 병이 사라지면서 은어도 사라지더라. 그 사이 우리 집도 그렇지만 다른 집들도 축사에서 나오는 분뇨가 개울로 못 가게 처리를 잘 하고 있는데도 사라진 물고기는 은어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 그때부터 도랑 청소를 짬 나는 데로 한번은 사금이 내 손바닥만하게 집혔어. 이상하다 싶어서 주변을 다 뒤졌는데 정말 많이 나오더라. 그래서 그날 바로 자료를 찾아봤어. 저기 높은 산 있지? 저 동네에 옛날에는 칼 만드는 대장간이 많았다는 자료가 있더라. 우리동네로 내려오는 물이 시작되는 데가 저 산이고, 그렇게 또 찾다가 금광도 있었다는 기록을 보게 되었어. 가장 최근인 쪽발이들이 원숭이새끼처럼 우리나라에 기어들어와서, 사람뿐만이 아니고 눈에 띄는 건 전부, 도둑놈 피를 물려 받았다는 증명이라도 하듯이 눈에 보이는 건 전부 훔쳐가면서 저 산에 있던 금도 채굴해 훔쳐갔다는 기록도 있었어. 만약에 그 놈 나라에 원자폭탄이 더 일찍 떨어졌으면 우리동네 도랑은 황금색이었겠지. 허허! 그때부터 전국 도랑을 돌아다니며 사금을 주워 모았지.”
정미경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김근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여튼 쪽발이 새끼들은 눈에 띄는 건 모조리 탐을 내. 그 놈들 나라에 성(姓)이 몇 개인 줄 모르지?”
김근수가 모른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봐. 그렇게 많은 이유도, 기모노가 생긴 이유도, 여자들 발이 작은 이유도 전부 나와 있어. 전부 같은 맥락이야. 그건 그렇고. 그럼! 이수현이 신랑과 동생 살인범으로 내하고 송희씨를 지목하면서 여기서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왔단 말이네? 야~~ 정말 믿을 놈 없네. 어떻게 그런 상상해? 그럼! 그날 자기는 어디 갔었어?”
옆구리에 두 주먹을 턱 하니 받치고 심문을 하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글쎄! 워낙 오래됐어 기억이 안나!”
“그럼! 방금 한 얘기는 기억나?”
“뭐?”
“내하고 송희씨 의심한 거?”
“응!”
“좋아! 그럼! 지금까지 모은 사금 전부 내 명의로 넘겨. 만약에 넘기지 않으면 무고죄에 명예훼손까지 추가해 고발해버릴 테니까! 다 내놔! 만약에 한 톨이라도 숨기면 인격모독 죄까지 추가시킬 거야.”
“그건 뭐냐? 그런 죄도 있어? 내가 언제 당신 인격을 모독했는데?”
“이게 정말!”
정미경의 발이 김근수의 정강이로 날아갔다.
“억! 폭행죄 하나! 한 개 타협하지?”
김근수는 그날 부로 의심한 대가로 그 동안 몰래 숨겨두었던 사금까지 전부 정미경에게 넘기고 빈털터리 신세가 돼 버렸다. 더 기 막히는 일은 사금을 팔아서 이자 놀이를 하면서 이수현에게는 이자를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변명도 그럴 사했다.
사금으로 돈을 벌게 된 계기가 이수현의 남편에서부터였다고 했다. 김근수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계기는 이수현의 남편과 동생의 죽음이 아닌 아내와 친구의 아내를 의심한 게 계기였는데 아내는 완전히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
한가지 더 아내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세상에 드러나지 말아야 할 계기는, 혼자 사는 이수현을 보면서 애처롭고 안쓰럽고, 항상 마음에 걸려, 사금 판 돈을 이수현에게 몰래 줄 계획을 김근수는 가지고 있었다. 이 마음으로 사금에 더 집착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자만 받지 않고 돈을 빌려줬다는 아내의 배려에 김근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졸지에 빈털터리가 된 김근수가 아내를 볼 때마다 ‘혼자만 잘 났다!’ 는 의미를 가진 비틀어진 눈으로 흘겨보며 꽁한 심보를 풀지 못하고 있을 때, 오랜만에 윤성화가 고향에 내려왔다. 윤상화가 약을 올리는 듯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너 요즘! 빛 좋은 개살구라면서?”
“아니! 빛은 빼라. 언덕 비탈에 썩어가는 개살구다. 아들 용돈 훔쳐왔다.”
“내년에 또 올라 오겠네.”
“올라오면 뭐 하나? 지나치는 사람들 그늘만 지어주는 개살구인데.”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맞아봐야 알겠냐 그냥 불고 나가라고 했는데 기어이 고집을 부리는 걸 보고 정말 안타깝더라. 그때 그 놈은 수현이에게 정보를 다 캐서 더 이상 얻을 것도 없었어. 네 마누라 내 마누라나 그 놈의 고집 때문에 몸도 마음도 다 상하게 했잖아. 너도 고생 많겠다. 미경씨 고집 때문에.”
“너도 그래?”
“지금 우리가 먹고 술 보면 알잖아. 오랜만에 고향 와서 한잔 얻어먹으려고 했는데 너나 나나 같잖아!”
“미안하다. 친구야. 고향에 온 너한테 멸치 대가리에 소주가 뭐냐? 아이구 저 여편네! 죽어서 돈을 싸 짊어지고 갈 사람이야. 얼마나 독종인지. 서글프네. 참! 수현이 부를까?”
윤성화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