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몸매가 변해 있었다. 학생 때는 야들야들한 죽순 같아 만지면 부르질 우려를 주었지만 지금은 만져보고 싶은 욕망을 즉시에 불러 일으키는 말랑말랑할 살을 덧붙여 왔다. 학생 때도 그랬지만 직장인이 된 지금도 그런 몸매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치마가 찢어질 정도로, 허벅지사타구니가 보일 정도로, 엉덩이에 짝 달라붙은 짧은 치마를 입고 김근수 앞에서 미끈한 다리를 다른 다리에 얹어 꼬아 앉으며 직장인 티를 내고 있었다.
“야! 밖에서 만나자고 하지. 내가 맛있는 거 사줄 건데.”
“미안하다. 밖에 나갈 버스비가 없어서 여기서 만나자고 했다. 그나저나 그 좀 가려라. 내가 꼴리는 데 어린 애들은 어떻겠나?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가리거나 그런 옷은 안 입고 오는 게 예의 아니냐?”
너무 장황하게 충고를 한 효과가 있었는지 이수경은 꼬았던 다리를 내려놓고 요조숙녀처럼 다소곳한 자세로 바꾸며 눈을 흘겨 투덜댔다.
“너 웃기는 소리 하고 있다. 내가 뭐 네 각시나 되는 줄 아냐? 머리 속에는 항상 그 생각뿐이지. 그러니 벌써 동거나 하고. 너는 도대체 뭐가 되려고 네 인생을 그렇게 빨리 버리냐?”
“왜? 내가 어째길래 네 눈에 그런 식으로 보였어? 우리는 어린애라 돈이 없어서 여관에 못 가고 집에서 한다. 얼마나 검소해. 검소한 것도 잘못이냐? 안타까우면 네가 내 인생 책임져. 뭐! 젊었을 때 연애 한번 못해 본 놈이 어디에 있냐? 어릴 때 말썽꾸러기가 어른이 되면 오히려 모범적인 삶을 산다고 했잖아. 혹시 아냐? 그게 내가 될 지. 너한테 진 은혜도 갚아야 되니까 네가 기회를 줘야 내가 그 은혜를 평생 동안 갚을 거 아니냐?”
비웃는 표정이지만 그렇게 썩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입술을 뚝 내밀면서 물었다.
“원서는 어디 넣었어? 성적이 좋으니 서류전형은 문제 없을 거고.”
“당연하지. 내가 성적이 나쁘냐? 영어를 못하냐? 내 같은 놈을 안 뽑는 회사가 이상하지. 어쩔래? 은혜 갚을 기회를 줄 거야 말 거야? 너도 알잖아. 내가 성질머리 급한 거. 여기서 대답 안 하면 다른 사람 찾는다.”
이수경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 애는 어떡하고? 참! 그 애보다 이수현은 잊었어? 나도 네가 싫지가 않으니까 반찬을 갖다 주는 짓을 했지. 전부 정리되면 그때 생각 다시 해볼게.”
김근수가 목을 몇 번 돌려 두둑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그 애는 얘기했잖아. 하나의 추억거리. 이수현은 지금 청상과부가 돼 고향에 와 있어. 내가 미쳤나? 내 싫다고 도망갔다가 과부 돼 돌아온 여자와 살게. 그런 걱정은 마! 어쩔 걸래?”
이수경이 놀라면서 몸을 바짝 붙여 물었다.
“어쩌다가? 왜?”
김근수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낸들 아냐? 갈 때마다 보이길래 물어보니까 남편이 죽었다고만 하고 이유는 말 안 했어. 그 뒤로는 묻지도 않고 멀리서 보이면 피했다. 하여튼! 내보고 욕하는 놈들도 내 싫다는 놈들치고 잘 되는 것 한번도 못 봤다. 전부다 인생이 꼬이는 것 있지. 허허! 그런 놈 들보면 고소해서 혼자 박수도 친다. 이수현도 마찬가지. 이 정도면 됐지?”
김근수가 제법 크게 소리를 내며 웃으며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이 더러운 새끼!”
하필이면 손바닥이 김근수의 콧등에 꽂혀버렸다. 벌써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수경이 손수건을 잽싸게 꺼내 김근수에게 건네며 물었다.
“저건 또 누구야? 너 도대체 여자가 몇 명이야?”
이수경이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나도 몰라! 뭐 저런 게 다 있어. 아마 너처럼 뒤에서 훔쳐본 애겠지. 아! 참! 이 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네. 허허허!”
“지금 웃음이 나와? 창피하지도 안 해?”
김근수가 여학생이 사라진 출입문을 힐끗 보고 눈을 이수현의 눈에 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어이 씨! 허풍 좀 쳤더니 듣기 싫었던 모양이다. 너도 알잖아. 우리학교 명함 들고 대기업에 취업하기 어렵다는 걸. 시시껄렁한 소리로 들렸겠지. 사실은 나도 정말 볼품 없는데. 너! 기억나? 그때 이수현이 따라 갔던 날. 그때 나도 사상범으로 등록됐더라. 얼마 전에 교수님이 추천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그 기록이 고스란히 넘어가서 그 회사에서 오히려 미안하다고 하더라. 데모를 주도한 사람을 뽑으면 자기 회사도 감시 대상이 된다네. 그래서 취업은 포기했어. 고향 가서 농사나 지으려고. 나는 너처럼 섹시한 마누라가 도시에 있는 건 불안해. 내하고 같이 우리 집에 가서 농사나 짓자. 우리 집에 논이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아.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으니까 내하고 정답게 손잡고 시골길이나 걸으며 청춘도 보내고 여생도 보내는 게 어때? 멋지잖아. 가끔씩 뱀이 나와서 그게 문제지만 뱀이 또 몸에 좋잖아.”
김근수가 이수경의 눈을 똑바로 붙잡아 보고 있었다. 이수경의 동공이 요란스럽게 우왕좌왕하다가 중심을 잡으며 물었다.
“너 지금 장난치는 거지?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지금? 제 5공화국!”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을 내쉬던 이수경의 기분이 기하급수적으로 함몰하고 있었다. 김근수와 아주 잠시 눈을 마주치고 죄지은 듯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김근수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혹시라도 운이 좋아서 취업하면 연락할 게. 해봐야 동네 구멍가게겠지. 그때 보자!”
이수경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작별인사도 하지 않았다. 김근수가 휴게실에서 사라진 뒤에야 그녀는 그가 사라진 출입문을 닭 쫓던 개마냥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김근수의 장난스런 행실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고 자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미경의 염장이 뒤틀리고 있었다.
“진짜라니까! 그래서 내가 쌍 코피를 터트리고 왔어. 너는 이게 좋은 추억거리라고 생각해? 야! 정말 잔인한 놈이었어. 같이 살아도 내가 불안해서 못 볼 것 같다. 뭐 그런 새끼가 다 있어.”
신혼 방이나 다름없는 방에서 정미경의 친구가 흥분해서 고자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 김근수가 불쑥 들어왔다.
“여기 있습니다. 허허허! 영화를 보려면 끝까지 보고가야지 중간에 그렇게 나가버리면 어떡해! 너! 앞으로 우리 미경이 근처 얼씬도 하지마! 벌써 넌, 내 복수! 아니! 감시 대상에 넣어졌어.”
정미경의 친구는 벌써 놀라서 뒤로 나자빠진 상태였다. 정미경도 미간을 잠시 좁혀 놀라고 있었다. 복수라니? 무슨 복수? 설마? 알고 있었나? 정미경의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불안한 며칠을 보내던 정미경이 백송희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러나 백송희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벌어지지 않은 일에 넘겨짚어 신경을 쓰지마. 겁도 먹지 말고. 근수씨가 알고 있으면 오히려 그런 말을 절대로 안 하지. 아마 건달 본색이 나왔을 거야. 호호호! 걱정하지 말고 빨리 내려가. 오히려 이게 더 의심만 쌓아. 내만 믿고 빨리 내려가!”
정미경은 백송희가 잡아준 손에 불안한 마음은 가라앉았지만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불안하긴 해도 그날은 후회하지 않으며 눈을 감고 그때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