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김근수와 윤성화가 작은 식탁에 마주 앉아서 미역국에 밥을 먹고 있었다. 두 놈의 얼굴이 술 독에 담가 숙성시켰다가 갓 빼내온 것처럼 퉁퉁 부은 상태였지만 윤성화는 뭐가 그렇게 고소한지 비실비실 웃으며 해장국을 먹고 있었고, 김근수 곧 죽은 인상을 쓰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다.
“아이 참! 제가 안 그랬다니까요.”
“뭐야? 이 놈이 어디다가 거짓말을 해. 내가 다 알고 있어. 순순히 자수하면 용서 해주마!”
그렇잖아도 굴에 절어 퉁퉁 부은 눈에, 귀까지 꼬집혀 당겨져 눈물까지 흘린 김근수의 얼굴은 말 그대로 꼴 보기 사나운 형상이었다.
“그때 그 애가 시내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갔다가 버스에서 내려 몇 발짝 가지고 않았는데 사라져버렸다니까요. 제가 누님 집 말고 아는 집이 어디에 있다고 애를 팔아먹겠어요? 걔가 도망갔어요.”
김근수와 윤성화가 있는 집은 마을 입구에 있는 일명 빨간 집! 술도 마시며 성 매매도 하는 이 두 총각의 단골 술집이었다. 군대 가기 전에 있던 일을 가지고 아직도 술집 주인이 김근수의 귀를 안주처럼 잡아 당기고 있었다. 이날로 정미경과 백송희가 술에 취해 잠을 자는 틈을 타 여기서 술을 마시고 나이 많은 여자와 회포를 풀고, 해장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빨리 가라! 너희 모친들이 이 앞을 벌써 수천 번은 지나갔다.”
“혹시?”
윤성화가 물었다.
“당연하지. 너희들 자는 것까지 확인하고 갔다. 술이 좋은지 여자가 좋은지……. 쯥쯥쯥! 두 분이 똑 같이 이 말을 하면서 혀를 다시고 가더라.”
김근수의 미간이 찌푸려지면서 윤성화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똑똑한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어느 게 맞아?”
“야! 이! 등신아! 뒤 때문에 여기 왔지 앞이 먼저면 집에 있지 여긴 왜 왔겠어?”
“너는 집에도 있잖아?”
“너는 없나?”
“나는 아직!”
“야 임마! 네가 그랬잖아. 아끼다 똥 된다고. 하던 대로 해!”
“야! 야! 빨리 가라! 나도 좀 쉬어야겠다.”
벌써 양가 모친에게 들켜버린 김근수와 윤성화가 떳떳하게 술집에서 나왔다. 그때 이 둘을 비키라는 듯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던 윤성화가 돌덩이 같은 김근수의 어깨에 부딪쳐 비틀하면서 술집 문고리에 이마를 박아버렸다.
“야! 피다!”
김근수가 배를 잡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윤성화는 이성을 잃어버렸다.
“저 새끼가!”
이마서 흐르는 피를 보던 윤성화가 구급차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필 이날이 좁은 촌 동네에 오일만에 있는 장날이었다. 차와 리어카와 인파가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구급차도 사이렌 소리만 울렸지 길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윤성화가 구급차 운전석 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야! 문 열어! 대가리 깨 놓고 어딜 도망가! 문 열어!”
그러나 인파와 차들이 길을 터주면서 구급차는 떠나가는 마지막 열차처럼 윤성화를 내버려두고 가렸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집으로 들어갔을 때 김근수와 윤성화는 정미경과 백송희에게 금의환향을 받았다. 잠시 어리둥절했던 이 둘은 삼일 더 어리둥절한 상태로 지냈다.
정미경의 얼굴을 얼음장처럼 굳어지게 만든, ‘야 이 촌 년 놈들아! 저 짚단 속에 가서 해라. 미친 새끼들!’이라고 해서 김근수 입에서 ‘저 개새끼가!’란 욕을 나오게 했던 이수현의 남편이 하나밖에 없는 처남과 횃불로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다가 잡히지 않자, 집회장에서 최루탄을 뿌리듯이 농약을 도랑이 뿌려 잡은 물고기를 회 쳐먹다가, 비명횡사 버린 것이었다. 뿌릴 줄만 알았지 피할 줄은 모르는 경험과 무경험의 차이였다.
김근수와 윤성화가 어쩔 수 없이 문상을 가게 된 이유는 이수현과의 인연과 그 집안과의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동기 회에서 날린 단체 문자가 한 몫을 하기도 했다. 휴대폰이 없던 김근수와 윤성화는 모른 척하려고 했지만 제일 먼저 알았다는 마음의 짐 때문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큰 화근만 불러 일으키는 문상이 되고 말았다. 전투 경찰로 군복무를 한 윤성화를 알아보는 경찰들이 제법 있었다.
자연스럽게 백송희의 이름도 같이 문상객들 사이에 떠돌았다. 정미경이 젊은 혈기에 불뚝하는 의협심을 참지 못해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면, 백송희는 전 대학을 쫓아다니며 학생들을 설득해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한 거물이었다. 이수현도 지방 대학생에 불과한 백송희의 활동을 보면서 자존심이 상해 나섰다가 끝내는 모방만 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남편을 만나게 되고 단지 모방에 불과했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넘겨주면서 풀려나고 곧 결혼을 했던 것이었다. 윤성화가 문상을 간 건 경찰에게는 경찰의 위신을 세워주는 하나의 행운이었다.
요식적인 행위인 문상도 가지 않고 김근수는 바로 그날 학교로 돌아가 버렸다. 버스에서 정미경이 물었다.
“그 사람 남편이지?”
김근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며칠 후 백송희는 취조실에서 고개를 끄덕이라고 강요 당하고 있었다.
“당신이지?”
이 질문 하나에 벌써 뒷조사를 했다고 판단을 내린 백송희의 눈에서 불화살이 날고 있었다.
“왜? 절름발이로 만들더니 이제 뭐 할건데?”
“당신도 프로잖아. 증거가 다 있으니 길게 끌지 말고 빨리 끝내지.”
“무슨 증거? 농약? 시골에 농약 없는 집도 있나?”
“농약인 줄 어떻게 알았어?”
“현장 조사 안 했던 모양이지?”
“말 장난 하지마!”
“여기서 당신 듣고 싶은 데로 불어주고 검찰에 가서 엎어줘? 아님 판사 앞에서? 그 뒤로도 많다는 건 당신들도 알고 있지? 한판 붙어볼까?”
직장에도 부서가 있듯이 경찰서도 마찬가지이듯이 조사하던 경찰이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맡았던 사건과는 전혀 별개이고 조사받는 사람도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이란 걸 알고 한 발짝 물러 서기로 하고 윤성화를 대질했다.
“너는 잘 알잖아. 하필이면 고향에서 왜 그랬어. 처치하려면 다른 데서도 될 텐데…….”
윤성화가 손가락을 올리며 비꼬는 말을 했다.
“불이 깜빡 거리는 데 웬만하면 끄고 하죠. 다른 데서 처치해 주길 바랄 정도로 눈에 가시였던 모양이죠? 어떻게 형사가 돼 가지고……. 노래 불러 줄까요? 녹음 다 되게. 괜히 경찰 위신 세운다고 죄 없는 사람에게 덮어씌우지 마세요.”
순간 당황하던 경찰이 자세를 가다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날 왜 거기 갔어?”
“추수철이잖아요. 벼 베고 타작하려고요.”
“왜 같이 갔어?”
“며느리니까요.”
“결혼 안 했잖아?”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현장에 가서 조사부터 하세요. 어떻게 농약을 물 대포 쏘듯이 그렇게 많이 퍼붓는 놈이 어디 있습니까? 경찰 맞아요? 우리는 알리바이도 충분하고 증인도 많이 있으니 조사하고 난 뒤에 다시 불러 주세요. 언제든지 올 테니까.”
자신 있게 말하는 윤성화와 달리 경찰은 머리를 숙이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