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두희가 김인태가 죽었다고 그렇게 서둘러가서 저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김인태와 박영걸이란 두 사람을 모두 미워해서 생긴 마음인지, 아니면 박영걸이 골프 공을 밟아 미끄러져, 기억을 상실하게 한 원인 제공자여서인지 이선근의 마음은 께름칙하면서도 후련했다.

　항상 마음 한쪽 구석에 남아 있던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면서 죄책감이 이전보다 더 많이 생기지 않을 까 걱정도 되었다. 사람들도 원망이 되었다. 골프 공을 사람에게 던지는 건 살인행위나 다름없는 데, 따라서 할 게 따로 있지 그걸 왜 따라서 했는지,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완전범죄를 저지른 것 같은 짜릿한 쾌감도 맛보며 주변 사람들을 둘러 보았다.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심이 전혀 없었다. 단지 ‘하필이면 운동하러 다니는 데서 죽었어! 무서워 밤에 가겠나!’하는 불평의 소리만 들렸다. 애리도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은 마음이었지만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찹찹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젖어있는 눈가를 닦으며 남편에게 고개를 돌렸다. 심란해져 있는 이선근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다른 뉴스가 나오고 있는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천명구가 혼잣말로 말했다.

　“허 참!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말에 허병식이 애리도 공감을 하는 말을 했다.

　“그 뭐 좋은 일이라고 가게요.”

　다음 날 미우나 고우나 친구고 직장 상사여서 어쩔 수 없이 문상을 같이 간 애리는 남편의 직장동료들이 하는 놀라운 말을 들었다. 이선근 훗날에 무슨 좋은 소식이라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애리는 굉장히 섭섭했다.

　“우리 회사 대주주가 주식을 내놨다며? 왜?”

　“김인태 저놈과 사장에 엄청 해먹었다더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소문으로 김인태 마누라가 자기 입으로 대주주한테 불어 버렸다던데.”

　“아니! 우리 회사에 대주주가 누군데?”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선근도 같이 일어서면서 놀라고 있었다. 그 놈이었다. 그 희한한 놈이 문상을 와서 빈소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부사장과 악수를 하고 몇 마디만 나누고 갔다. 말하자면 눈 도장만 찍고 간 셈이었다. 이선근이 소근거리는 말을 듣고 세월이 오래 지나서 월급쟁이 사장이 된 후에 그때 들었던 말과 변천사를 애리에게 전했다.

　“지금은 내가 아닌 그 사람이 사실상 사장이지만 그때는 대주주였다는 것도 그날 상가에서 알았다. 그 사람이 총각 때 이 지역에서 주먹세계를 평정할 때 주먹도 주먹이지만 물려 받은 재산이 많아서 돈으로 조직을 탄탄하게 만들었다네. 정보망을 구축하기 위해 건달들에게 지원을 해주고 돈 될만한 일거리만 찾아서, 경쟁해야 할 회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서 약점을 찾으면 그 허점을 이용해 회사를 뺏었단다. 우리 회사를 뺏어가려고 김인태 마누라를 돈으로 매수해 회사뿐만이 아니라 사장부터 시작해 간부들의 재산까지 모든 정보를 입수했다 더라. 말하자면 우리는 그 사람 손바닥 안이었지. 지금은 고인이 된 천명구사장님도 그 스크린 그거 하나 때문에 건물 전체를 뺏겨버렸잖아. 그 일당들이 소문을 퍼트려 건물 값을 폭락시키고 헐값으로 자기 처남에게 넘기면서 김인태 마누라한테는 그 건물에 학원까지 차려줬다 더라.”

　애리가 어디서 그런 되지도 않은 헛소문을 들었냐며 흘겨보면서 콧방귀도 쳤다. 그런데 이선근의 오해 싹을 또 키우려고 안달이 난 사람처럼 목소리가 매우 격앙된 채 말했다.

　“이 영감이 내가 눈이 어둡다고 어디서 개똥 같은 소설책을 가져 와서 읽고 있어! 말 같은 소리를 해요. 세상 사람들이 전부 등신인 줄 아나? 그 여자만 하더라도 그렇잖아요. 말이 선생이지 창녀나 다름없는 그런 늙은 년에게 학원을 미쳤다고 차려줘요? 그 놈 그거 정신 나간 거 아냐? 썩은 고기나 쫓아 다니는 하이에나일거야! 분명해! 어이 씨 더러운 놈! 별 희한한 놈이네.”

　사십이 넘어가는 세월 동안 같이 살면서 애리가 이렇게 흥분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마치 이선근 본인이 그 짓을 한 것처럼 화를 내고 있었다. 이선근이 주두희도 그렇고 이훈희도 그렇고 허병식도 그렇고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데도 애리는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이 획 돌아 누워버렸다. 그때 전화가 왔다.

　“사장님! 한잔 하시러 오시겠어요? 다 모여 있는데! 다들 애리 누님 보고 싶어하는 데.”

　안도경이었다.

　“여보! 당신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다 보여 있다는 데 일어나시지.”

　“누구?”

　“안사장! 그 희한한 놈 처남!”

　다시 사십 년 전으로 돌아갈 줄 알고 깜짝 놀랄 정도로 애리가 잽싸게 일어섰다.

　“어딘데? 더 이상 소외되면 안되지.”

　여든의 할머니가 아니었다. 이선근이 따라 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애리가 앞서 갔다. 시끄러웠던 그 당시의 사람들 중 고인이 된 세 사람만과 한 사람만 빼고 전부 모여 있었다. 주두희는 바람 피웠다가 참변을 당한 경험으로 중년의 여성들에게 성교육을 가르치고 있었고 이훈희는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가르치고 있었다. 모두 경험에서 나온 교육이라 벌이가 짭짤하다고 했다. 허병식은 선술집 할머니와 지난 얘기 삼매경에 깨가 쏟아져 애리를 본적만적 하고 있었다.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애리와 두희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이선근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혹시라도? 허병식을 쳐다봤다. 머리카락도 이도 없는 허병식이 왜 이렇게 경계가 될까? 걱정하던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이선근이 발신번호를 확인하고 허겁지겁 받았다.

　“예! 예! 바로 가겠습니다.”

　시선이 집중했다.

　“회장님께서 회사에 오셨네. 빨리 가봐야겠다.”

　“누구요? 우리 매형 왔어요?”

　“응! 그래! 빨리 가야겠다.”

　이선근이 손만 흔들고 나가버렸다.

　“도경아! 매형이 저 사람에게 어쨌길래 저렇게 쩔쩔 매냐? 혹시 주먹이 재발했냐?”

　안도경이 대답을 하지 않고 입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선근이 불이 나게 쫓아간 장소는 회사가 아닌 룸살롱이었다.

　“형님! 노인들과 어울리면 같이 늙습니다. 뭐하냐? 빈 잔이다.”

　“예! 오빠!”

　이선근도 이런 자리를 한두 번이 아닌 걸 증명하듯이 능숙했다. 이선근이 한잔 들이킬 때 선술집 주인과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가 들어왔다.

　“동생! 오늘 감시하라는 사람이 이 분이야?”

　“예! 누님! 그때나 지금이나 250만원은 그대로죠?”

　“너! 나하고 장난치냐? 2,500만원이다.”

　“이 분이 사장님이신데 그까짓 2,500만원을 저한테 덮어 세우지는 않겠죠. 형님 그렇죠?”

　이선근이 눈을 지긋이 감으며 한숨 섞인 말을 했다.

　“아! 그랬구나. 내한테 그렇게 돈 자랑 하더니 250만원 때문에 저 세상에 갔구나!”

　“아니죠! 형님! 반으로 나눠야죠!”

　“아니! 김성태는 절대 반으로 나눌 놈이 아니야. 허허허! 그런데 이 술 마시려니 굉장히 미안한데.”

　“형님! 죄책감 그런 거 가지지 마세요. 그 놈들은 그렇게 안가도 다른 데서 벌 받았을 겁니다.”

　“그 말이 아니네!”

　이선근이 눈에 힘을 잔뜩 주며 노려 보고 있었다.

　“형님! 다시 태어나면 그땐 형수님 손은 제가 먼저 잡을 겁니다”

　“자식이 눈치는 빨라가지고. 안돼! 자네 이미 내 뒤야!”

　그 시각에 애리가 도경에게 물었다.

　“그 희한한 새끼 잘 있어? 너 매형이라며?”

　“예!”

　“그 새끼 저승에서도 나하고 마주치지 마라고 해. 마주치는 순간 저승 행이라고 꼭 전해. 알았어?”

　“예! 누님! 분부대로 꼭 전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