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아! 이 놈들 정말 허술하게 관리하네. 옥상 문도 안 잠그고.”
“그러게요. 매형! 저 아주머니 자살하려고 하는 것 같죠?”
“아니! 같은 게 아니고 할 참인데. 그만 내버려둬라.”
“벌써 늦었습니다. CCTV에 우리도 걸렸어요. 자살 방조죄가 아니라 살인범이죠. 여기에는 저 아주머니하고 매형하고 저 밖에 없잖아요.”
“그거 아쉽네. 소문도 더럽게 나 있는데 자살까지 했다는 소문이 나면 최소한 10억은 더 건질 건데. 아깝다.”
“아이 참! 매형! 농담을 해도 어떻게 그런 농담을 해요. 사람 목숨을 가지고.”
안도경이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안애리가 깜짝 놀라 돌아섰다. 남의 건물에 도둑질하듯이 살금살금 왔기 때문에 벌벌 떨고 있는 건 당연했다. 애리 앞으로 도경이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애리가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뛰어내리다가 전선 줄에 걸린 사람처럼 사지를 떨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만약에 담벼락이 없었다면 애리는 이 사람들을 바로 살인범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주머니! 진정하시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한번뿐인 생명이잖아요.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이렇게 마음을 다듬어 보십시오.”
안도경이 자기 가슴에 손을 올려 쓸어 내리며 따라서 하라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야 임마! 뒈지던 말던 다른 데가 뒈지게 빨리 끌어내. 아니면 던져버리던가! 괜히 올라와가지고 손해가 얼마야! 빨리 끌어내려.”
“아이 씨! 매형!”
‘이게 무슨 말? 뒈지던 말든? 끌어내려?’
화는 당연히 났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건물주는 천명구인데 자기가 왜 주인 행세를 하면서 끌어내라고 하고 말고야? 별 희한한 새끼네. 아랫배에 힘을 있는 대로 다 주고 고함을 질렀다.
“이봐요! 아저씨!”
고함 소리에 깜짝 놀란 안도경이 소애리를 멀뚱히 보고 있었다. 그러나 들은 만척하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버리는 모습에 애리 머리에서 뚜껑이 열려버렸다.
“당신 말고 저 아저씨! 저리 비켜! 뭐 저런 희한한 새끼까지 사람을 이상하게 봐! 야~~~”
소애리는 자기도 놀라고 있었다. 그 별 희한한 놈 때문에 찾았던 강변에서 화가 나면 강변을 내달렸고 가끔씩 알지도 못하는 그 놈과 데이트하는 상상을 할 때 미친년처럼 히죽거리면서 걸었던 다리통이 이렇게 가벼울 줄이야. 순식간에 뒷덜미를 붙잡았다. 그러나 바로 내려버렸다. 오줌도 찔끔 나왔다. 성난 호랑이 눈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여사님! 타시죠!”
젊은 사람이 하는 말이 마치 명령처럼 느껴졌다. 같은 남자라도 주눅이 들 정도의 덩치에게 어디서 용기가 나서 고함을 내질렀는가? 바로 후회할 짓을! 애리는 눈을 꽉 감고 있었다.
“아줌마! 그 배짱 어디 갔어요. 빨리 타요.”
이번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섬찟할 정도로 무서운 목소리였다. 도저히 같이 탈 용기가 나지 않아 떨리는 목소리로 정중히 거절을 했다.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내려가십시오.”
“같이 탔다가 다시 올라와서 뛰어내리던가 하세요. 괜한 사람 경찰서 왔다 갔다 하게 하지 말고.”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일단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따졌다.
“아저씨! 지금 무슨 말하는 겁니까? 제가 뛰어내리긴 왜 내려요? 나는 그냥 시가지 구경하고 싶어서 올라간 거예요. 별 희한한 사람 다 보겠네. 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애리가 획 돌아서 벽만 보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덩치답게 거친 욕이라도 나오면 덜 불안할 것 같은데 아무 말도 없어 불안만 더 가속되었다. 새로 지은 건물에 새 엘리베이터도 더디게만 내려갔다. 게다가 이 높은 건물에 사람도 없었다. 목이 조여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멈췄다. 애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듯이 후다닥 뛰어 나갔다.
그리고 ‘퍽’ 남정네에게 안겨 버렸다. 그런데 어찌 남정네의 힘이 이렇게 까지도 빈약할 줄이야. 애리가 남정네에게 안겨 비틀댈 때 우악스런 몸이 덮쳤다. 남정네도 바닥에 머리가 부딪히기 직전에 붙잡혔다.
“아이고 놀래라. 아이고 놀래라.”
천명구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애리를 보고 있었다.
“형님! 오늘 황천길 갈 뻔 했습니다. 허허허!”
한 순간에 두 사람을 움켜진 사람이 애리부터 풀어주었다. 천명구가 많이 놀랐는지 몸을 한번 움찔하면서 말했다.
“그래! 큰일날 뻔 했다. 그런데 어떻게 애리씨하고 같이 내려와.”
“시가지 구경한다고 옥상에 계셔서 만났습니다. 여기 회원인 모양이죠?”
안도경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천명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지. 자네 말 바꾸면 안돼.”
“매형! 어르신이 걱정이 많은데 오늘 확실하게 도장을 찍죠.”
“당연하죠. 형님에게 어떻게 한 입으로 두말 합니까? 원하는 대로 다 드리겠습니다. 말 나온 김에 오늘 끝낼까요?”
“그럼 나도 좋지.”
애리도 이들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던 중에 이들의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안도경의 매형이라는 사람을 계속 쳐다보며 걸었다. 분명히 어디서 본 사람인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단 하나는 아주 나쁜 놈은 확실했다.
처남에게 뛰어내리지 못하게 막았다며 난리를 친 이유가 이 건물을 더 싸게 살 기회를 잃었다는 의미로 들렸는데 능글맞게 천명구에게 전혀 반대의 말을 하고 있었다. 아주 많이 놓은 가격으로 건물을 매입한다며 천명구를 위하는 척 하는 말을 해대고 있었다. 만약에 자신이 뛰어내렸다면 쌍 손을 들고 만세를 부를 사람이 아닌 척 시치미들 뚝 떼고 하는 짓이 가련할 뿐이었다.
저런 잔인한 놈도 주두희 신랑처럼 벌을 받았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여기서 고자질을 해버릴까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천명구가 더 애가 타는 것 같아 참고 있었다.
거래가 끝난 것 같았다. 천명구의 주상복합아파트는 안도경이란 처남의 이름으로 넘어간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대구에서 공사가 끝나면 처자식을 따라서 외국으로 간다고 했지만 그 나라 이름은 일체 나오지 않았다. 벌써 전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애리 귀를 솔깃하게 나오는 말이 나왔다. 애리는 기절할 뻔했다. 남편 회사 이름이 안도경의 입에서 나왔다.
“매형! 그 회사 경영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정보가 들어왔는데 우리 주식은 처분 해버리죠?”
“뭐? 그런 회사 주식도 있었어? 그런 자질구레한 건 처남이 알아서 해.”
나이가 몇 살 되지도 않을 것 같은데 박영걸보다 더 거만한 말투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인사만 하고 가버리려고 했지만 어디서 봤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곁눈질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