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저 아주머니는 형님 스크린에 오는 단골 아닙니까?”
허병식의 얼굴이 짜증스럽게 변하며 대답을 했다.
“그래 맞아. 방금 왔다가 너보고 도망친 놈의 마누라다. 저것들이 언제부터 저런 사이가 됐지? 아무리 뜨겁게 불을 붙어도 웬만하면 다른 동네에서 붙어 다니지. 여기서 뭐 하는 짓이야. 꼴 사납게. 불붙었다고 광고할 작정인가? 하여튼 정신 나간 년 놈들이야.”
김인태는 옆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일체 무시하고 주두희의 어깨에 반쯤 손을 걸친 채 걷고 있었다. 당황한 주두희가 옆에서 떨어지면서 안절부절 했지만 김인태는 오히려 주두희 손을 낚아채듯 잡아서 선술집으로 끌고 가듯이 들어갔다.
“허허! 저년 저거 조금만 빨랐더라면 또 성형 수술할 뻔 했네. 우리는 다른 데로 가야겠다. 오붓한 자리에 우리가 훼방 놓을 수는 없잖아.”
“그러게요. 동네가 왜 이렇게 됐는지 참 한심합니다. 형님! 빨리 상호를 바꾸던가 저년을 다시는 못 오게 하고 분위기 쇄신해야겠습니다.”
“저걸 보니 그렇네. 지금이 딱 기회 같기도 하다. 저년이 우리 집에 절대로 못 오게 출입 금지 시켜버리면 갈 때라고는 영감뿐이지. 그러면 거기 있는 사람들이 같은 년이란 이미지를 받을까 봐 내한테 우르르 몰려 오겠지. 허허허! 일단 자리부터 피해주는 게 예의겠지?”
안도경이 안쓰럽게 보며 말을 했다.
“형님! 정말 왜들 이러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 놈의 돈! 돈! 돈! 돈 때문이니 제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두 분도 그렇고 우리 형님도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형님이 시키니까 형님 편을 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도 형님 의견을 따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일단 폐업한다고 딱지 붙이는 게 태풍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 같습니다. 정말 속 시끄러운 동네네. 우리 형님이 왜 어르신과 형님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고 다른 연습장에 갔는지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한잔 하는 데는 저 집에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데가 맞겠네요. 허허허!”
한숨을 내쉬면서 뒤로 돌아설 때 또 다른 광경이 허병식의 혀를 내둘리게 했다. 폭행도 폭력도 아닌 중년의 남녀간에 유혈혈투가 벌어질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사람들 보잖아. 이 손 저리 치워!”
이훈희가 붙잡힌 팔을 떨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고, 박영걸은 처음에는 애걸하듯이 이훈희 발을 잡고 매달렸다가 지금은 있는 힘을 다해 놓치지 않으려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게 미쳤나. 남자가 왜 이렇게 찌질 해. 이거 놔!”
“뭐! 찌질?”
멀리서 봐도 박영걸 눈 속의 벌건 핏대가 보일 정도였다. 허병식이 안도경의 팔을 잡아 당기며 나지막이 소곤댔다.
“모른척하고 가자. 같이 망신 당하겠다. 눈감고 돌아서는 게 최상책인 것 같다.”
“지당하신 말씀!”
그렇게 돌아설 때 다시 되돌아서지 않을 수 없는 괴성이 두 사람의 귀속으로 파고 들렸다.
“이년이 미쳤나!”
박영걸이 찌질 이란 말에 격분해 손바닥을 하늘 높이 치켜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기량을 연마한 이훈희의 손바닥이 훨씬 재빨랐다. 박영걸의 귀싸대기를 순식간에 후려쳐 버렸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을 모독시키는 행위를, 극히 일부에 속하는 못된 선생인 이훈희가 학교도 아닌 학생도 아닌 어두침침해지는 길거리에서, 그것도 가로수 아래서, 그것도 자기가 살았던 집 근처에서, 그녀와 똑 같은 행실을 갈망하고 같이 저질렀던 어른에게 폭력을 행사 버렸다.
한때는 비록 불륜이었지만 발가벗은 채 몸까지 섞을 정도로 사랑했던 연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훈희는 매몰차게 고함을 지르고 택시에 올라 사라져버렸다.
“찌질 한 새끼! 다시는 내 근처에 얼쩡거리마. 등신 같은 새끼!”
잠시 기절한 듯 정신을 못 차린 박영걸이 정신을 차리고 이훈희를 쫓아 갈 기세로 씩씩대면서 앞으로 다가오는 택시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그 광경을 본 택시는 전부 무시하고 가버렸다. 벌써 몇 대가 지나쳤는지도 모를 지경으로 수많이 지나쳤지만 택시는 박영걸의 부름을 무시했다.
“도경아! 가서 코피 좀 닦아줘라.”
“허허!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형님 고객입니다.”
잘못 맞았는지 아니면 선생님의 숙달된 실력이 발휘돼서 그랬는지 박영걸은 쌍 코피를 줄줄 흘리며 지나치는 택시에게 태워 달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빠! 기분이 이상해. 괜히 조마조마한 거 있지. 불길한 마음도 들고. 나 먼저 가야겠어.”
김인태 손에 끌려 들어가 앉았던 주두희가 서둘러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부부간에 이심전심인가? 박영걸이 길바닥에 서서 쌍 코피를 흘리는 광경이 전자파를 타고 주두희 뇌리에 꽂힌 것 같았는지, 빨리 가서 구출하라는 지령을 받은 듯이 주두희는 김인태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 곧바로 택시에 올랐다.
마음이 불안할 땐 반드시 남편의 손찌검이 있어 오늘도 그렇나? 불길한 마음뿐이었다. 일단은 어떠한 꼬투리도 잡혀서는 안될 날이다. 앞에서 백미러로 힐끔 보던 기사가 말했다.
“요즘 세상 참 무섭습니다.”
그래! 무섭다. 남편도 너도 남자들. 아니! 이기적인 너 같은 남자만 무섭다. 신랑이 집에 올 시간이라고 목이 아프도록 말을 했는데도 김인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술만 먹자고 했을 때, 이 사람이 나를 무엇으로 생각하나? 차라리 한번 더 몸을 비비러 가자고 하지!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야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일찍 집에 가서 밥상을 차려 놓고 남편의 욕구도 충족시켜 주고, 그래야만 다음에 또 이런 시간이 만날 수 있는데도 김인태는 거기까진 생각 못하는 단세포였다.
단지 코 앞에 닥친 성욕에만 가득 찼지 지금까지 만난 놈 중에서 배려나 센스라고는 최악인 놈은 확실했다. 즉! 아마추어도 아닌 기저귀도 차지 못한 놈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휴대폰에서 번호를 삭제할 까 하다가 차단만 해버렸다. 삭제했다가 혹시라도 모르는 번호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대답이 없는 주두희를 백미러로 힐끔 보던 기사가 다시 말을 했다.
“요즘 세상 참 무섭더군요. 방금 어떤 여자가 남자 귀사대기를 때렸는데 하필이면 쌍 코피가 터진 것 있죠. 우습더군요. 그 정도면 부부가 아닌 게 확실하고 분명히 불륜인데, 좋을 때 생각을 한번쯤 했다면 길바닥에서 그럴 수 있을 까? 참! 어이가 없더군요.”
주두희는 대답 대신에 빙긋이 웃었다. 다시 차를 돌려달라는 말을 할까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다시 돌아가 김인태의 귀사대기를 때려 버릴까?
자기밖에 모르는 새끼!